무능한
자의 유능한 일 (2017/3/1)
©
Suk Hoon Han
겨울방학이지만
대학의 한 센터 일을 맡고 있는 나는 쉬지 못하고 2월의 셋째 주까지
쭉 일을 해야 했다. 나의 심신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혼자 며칠 간 여행을
다녀왔다. 이 나라 동부의 산악지역 오지를 차를 몰아 쏘다니다 동해안으로
넘어가 바닷바람도 쐬고 왔다.조용한 산속에서 집필에 몰입하고픈 생각도
있었으나, 그냥 바람처럼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놀았다. 무위자연을
실천했다.
워낙 내적 사유형인데 혼자 자유롭게 있으니 더욱
내면 성찰이 깊어진다. 그간 내 생긴 꼴에 안 맞게 밖으로 향하는 일만
해온 것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하기도 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참으로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무능하다. 이 정도로 무능하면서 자기실현
강좌를 만들어온다는 것이 엉터리 같기도 하다. 아마도 젊을 때보다는
피상적으로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사회성이
약하고, 관료주의와 권위 체계와 타협할 줄 모르고, 관습과 타성에 절충하기를
싫어한다. 사회화가 덜 된 인간이 사회화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학자
행세를 한다는 것도 웃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사회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데에도 다 그럴 만 한 이유가 있다. '이유'란
원인과 목적 양자일 것이다. 원인은 유전적 요소와 가정 내의 족보에서부터
부모의 개성 및 양육 방식, 그리고 내가 겪은 특유의 성장과정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 허면 '목적'은 뭘까? 그건 개성화일 수밖에 없다. 나의
사회적 무능을 통하여 내가 이룰 수 있는 나만의 개성화, 그것이 목적이다.
그 목적은 역설적으로 나의 사회에 대한 최대의 기여를 끌어내줄 수도
있다.
결국 무능이 곧 유능이다. 무능한 내가 진실로 유능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내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편향된 삶은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자기실현을 방해한다. 나 또한 매우 편향된
삶의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30대 후반까지는. 그때 내게 일어난
초월 경험은 나의 편향성을 혁명적으로 뒤흔들었다. 내 자아의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일을 나로 하여금 감행하도록, 저질러버리도록 밀어붙였다.
그건, 생계마저 불확실한 프리랜서직에 투신하는 짓이었다. 나처럼 소심하고
겁이 많은 찌질이가 그런 엄청난 일을 감행한다는 것은 나를 뛰어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은 나로 하여금 나를 뛰어넘도록 부추겼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비정규직이다. 살다보니 계약직 교수 직함은 받게
됐으나, 언제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위치다. 그나마 이만큼 오는
데도 17년 넘게 걸렸다.
혼자 쏘다니는 여행은 재미있다. 자유로우니까.
이렇게 바람을 허파에 집어넣어줘야 그나마 새 학기 맞아 근면성실하게
움직일 심신의 조율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번 학기에도 나의 무능을
재료 삼아 유능한 교육자 행세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