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를 보내며 (2017/12/27)
©
Suk Hoon Han
올
한 해도 '나'를 깊고 넓게 공부했다. 내면의 여정을 이어가면 갈수록
내 안이 마치 영험한 기운이 그윽한 깊은 호수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그
호수를 구석, 구석 다 파헤치려 하기보다는, 그러한 나를 그냥 담고
있으면 된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냥 가만히 담고만 있어도 마음이
주도적으로 다채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에는 선과 악이 불가분한
방식으로 편승하고 있다.
나의 어둠과 악을 인식할 때 타인의
어둠과 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복잡해진다. 그들의 어둠과 악이 배태한
행위는 비판하지만, 그들 인간을 이해한다. 나는 여전히 저녁 뉴스에
등장하는 악인과 모리배들을 욕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감지한다.
나의 빛과 사랑을 인식할 때 타인의 빛과 사랑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단순해진다. 내 안에 있는 그것이 그들 안에도 있음을
단순히 믿게 된다.
늙어가며 죽음에 관해 묵상하면서 인생의 종반부의
의미를 정리해가는 길 위에서, 나는 전보다 조금 더 관대해졌으며, 조금 더 두리뭉실해졌다.
공동체를 위한 고귀한 의무를 수행하는 사법부에서 서릿발처럼 날카롭고 곧은
심판을 내리는 고령의 판사들이 존경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전혀
부럽지는 않다. 그들은 성실한 개미이이만, 나는 게으른 베짱이니까
심판과 같은 무거운 의무를 안져도 된다.
그게 이번 생의 내 팔자인 것 같다. 그러나 베짱이는 노래를 들려줄 줄 알아야
한다. 재미있는 나의 노래는 무엇일까?
나의 노래를 지어서 세상에
들려줄 수 있게 된다면 내 삶을 온전히 마감하는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