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성찰교육 원고 1 (2019/12/20)



© Suk Hoon Han                                                                                                                                                                            


 

몇해 전에 중장년층 독자 대상의 70년대 만화 등을 소재로 한 성찰 소설을 집필하며 그 원고의 일부를 수행일상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한참 써나가던 중, 한 대학의 교육센터 일을 맡게 되며 바빠져서 접었었다. 그 원고도 1/3은 진행이 됐었는데, 그것보다 한발 앞서서 집필을 마치고픈 소재로 죽음에 이르는 중노년층의 성찰이 대두됐다. 해서 이 원고 집필을 시작한 것이 재작년이건만, 그간 삶에서 또 여러 일들이 일어나서 집필에 몰입할 시간을 내지 못하여 이제 겨우 1/3 정도 써내려가고 있는 참이다. 일단 죽음에 이르는 성찰을 다루는 이 책의 원고를 여기에 올려본다. 오십대 사업가 남성이 원숙한 심리상담가를 만나 대화—다소 메마른—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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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의 주장인데요,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는 대개 다른 이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게 되면 만족을 느끼며 잘 산다고 합니다. 즉, 타인의 시선이 매우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삼십대 후반부터는 이게 변해서 남들의 칭찬이 예전처럼 신나게 하지도 않고, 자신이 스스로 자기의 마음에 들 때 만족감을 맛본다는 것이죠. 즉,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점이 더 중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충 알아듣겠습니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이 중요해진다는 말씀이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융은 ‘중년의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왜 위기인고 하니, 평생 남의 눈에 들기 위해서만 살아오다가 갑자기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마음에 드는지 질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비록 사회적으로는 아주 잘 나가고 돈도 벌었을지 몰라도, 남들이 자신을 봐주지 않을 때 그냥 자기 자신으로서 홀로 있을 때 자신이 잘 살고 있는지, 잘 살아왔는지 회의가 드는 겁니다. 이런 회의가 들 때 자신의 내면의 깊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적으로 탐구하며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여생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바깥세상 못지않게 중요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위기라는 겁니다.”

‘가만 있어보자, 이것도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은 걸...’

“전에는 젊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번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내면 성찰’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계속 잘 살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뭔가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이렇게 성 박사님을 찾아오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내면 성찰을 못하는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 이후에 어떤 큰 어려움을 겪는지 그걸 말씀해주세요.”

“융에 따르면 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온전한 전체적 인격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겉에만 신경 쓰고 안을 잘 돌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절반도 제대로 못 살린 것이고, 이렇게 불완전한 인격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없어서 인격적으로 고장이 나고 불행해지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사회적, 정치적 성과가 아무리 크다 해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삶에서 가장 깊숙하게 원하는 것을 찾지도 못하고, 가장 소중한 주변 사람들과 깊은 관계도 맺지 못하고, 계속 타인들의 인정받기에만 급급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내적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파괴적이고 자해적인 행위를 취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중독이 포함되죠, 이를테면 술, 마약, 도박, 성적 도착 등등. 심한 경우 지독한 수전노가 돼서 타인들을 착취하며 스스로도 불행해지는 스크루지 같은 노인네가 돼서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을 증오하며 불평과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죽음에 이르는 불쌍한 인생도 있죠.”

‘뭐야, 내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너무 우울한 이야기인데요. 그리고 또 머리가 아파졌어요. 이것도 말씀하신 융이란 사람의 일반론이 저의 경우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아픈 건가요?”

“유 사장님께서 중년의 위기를 극복 못하신 케이스일지는 이제 알아내셔야 할 과제입니다. 이런 질문들에 답하셔야 하죠. 세상의 평가만 따르는 것은 아닌, 자신 내면의 기준이 있으신지, 자신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만족할만한 답을 구하셨는지, 만약에 못 구하셨다면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파괴적인 중독에 빠지셨는지, 등등.”

‘시바, 욕 나오네. 중년의 위기에서 걸려버렸네.’

“어려운 질문들이죠. 당연히 당장 빨리 답을 내놓으셔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약에 유 사장님께서 중년의 위기를 아직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신 경우라 하더라도 유 사장님은 지금 내적 성찰의 중요성을 감지하시고 그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내려는 시도를 감행하셨기 때문에, 앞으로 하시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위기를 뛰어넘어 풍요로운 노년을 일구실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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