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중노년층의
성찰을 소재로 하는 다음 번 책의 초고 집필을 마쳤고, 이곳에 그 내용일부를 여섯 번째로 올려본다. 쭉, 오십대 남성이 여성 심리상담가와
대화하는 내용이다. 임시 제목은 '죽음과 친해지는 노후대비 - 무의식적 안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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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박사의 말을 듣고 보니, 유 사장은 최근 들어 자신의 분노 발현
빈도수가 꽤 줄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고, 과거에 자신의 내면에 얼마나 분노가 들끓고 있었는지를 명료히 회상할 수 있다.
비록 겉으로는 점잖고 온화한 페르소나를 유지했으나 안으로는 자그마한 부스러기 같은 일에도 쉽사리 동요하여 지뢰 터지듯이
분노가 튀어오르곤 했던 얼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확실히 그러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에 ‘씨발’을 붙이고 살았잖아! 뭐 조금만 틀어져도 씨발, 길가다 돌부리에 채여도
씨발, 옆 차선의 차가 끼어든다고 씨발, 택배 박스 안 뜯어져도 씨발... 그걸 다 대놓고 말로 뱉었더라면 내 옆에
붙어있을 인간 한 명도 없었을 거다, 씨발... 앗, 죄송, 신이시여.’
스스로 명확히 자각하게 된 자신의 변화가 새삼 놀랍다. 비록 삶이 주는 자극에 전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긴 하지만, 그
빈도수와 정도는 과거보다 감소했고, 무엇보다 때로는 마치 유체이탈하듯이 자신이 분노하고 있음을 분노 바깥으로 빠져나와
지긋이 바라보는 것마저 심지어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더불어 감사의 마음마저 일어난다. 유 사장의 이 같은 내적
상태를 감지하는 듯, 성 박사는 신비롭게 주어진 내면의 평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깊은 마음 탐구와 보다 정확한 소명
각성으로 그를 몰아간다.
“저는 유 사장님의 천성이 온화하고 인정 많다는 것을 알아요. 오랜 세월 내면에 억압되었던 분노와 공격성을 감안해도 유
사장님의 겉으로 드러난 인격은 가식이나 위선이 아니고, 그게 바로 유 사장님의 본 모습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양면적이어서,
한 사람의 인격이란 겉에는 온화함과 속에는 난폭함이 공존하는 것이 흔한 일이죠. 겉과 속이 다른 건 위선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모습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난폭함을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해졌다며 감정적 만족을 느끼는
저급한 인격 통일을 기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우리는 속의 난폭함을 잘 들여다보고 깊이 이해해서 그것을 온순한 강아지처럼
길들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씨발거리며 평생을 살아온 씨발놈의 본모습이 선하다 해주시니, 눈물이 앞을 가릴까봐 겁이 납니다.’
온 마음으로 스승의 법문을 흡수하고 있는 유 사장에게 더욱 깊은 심리적 메스가 가해진다.
“제 생각에는, 사장님 내면에 억압된 난폭함은 세상과 부딪히며 자수성가하는 노정의 스트레스 때문에 증폭된 측면도 어느 정도
있겠으나, 그 이전에 어릴 때 부모님과의 관계형성에서 초기설정이 잘 되지 못한 이유가 더 본질적인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사장님은 평소에 웬만해서는 감정적 자제력을 잃지 않지만, 부친과 마주할 때는 이상하게도 꾹꾹 눌러둔 분노가
폭발해버리고, 잠자고 있던 공격성 또한 튀어나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셨잖아요.”
“네.”
“이상적으로는, 동물인 우리 인간의 선천적 공격성을 성장기에 부모가 사랑으로 달래줘서 잠잠하게 만들어주거나 다른
활동능력으로 승화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제로 이런 양육능력을 가진 부모는 소수에 불과하겠죠. 그래서 장성한 많은
사람들이 공격성을 다스리지 못해서 버럭 폭발하고, 분노를 쓸데없이 이곳, 저곳의 아무 상관없는 과녁에 오인 발사해서 자신의
정력을 소진해버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영적으로 퇴보하는 것이죠. 자, 그러니 유 사장님은 왜 그렇게 부친과의
관계에서 감정 통제력을 잃게 되는지, 그 원천을 찾아가 볼까요? 쉽지 않지만, 오십 년 전의 꼬마 시절로 한 번 여행을
떠나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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