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성찰교육 원고 9 (2021/1/26)



© Suk Hoon Han                                                                                                                                                                            


 

죽음에 이르는 중노년층의 성찰을 소재로 하는 새 책, '죽음과 친해지는 삶 - 심층심리학습소설'의 출간 직전에 즈음하여 그 내용 일부를 올린다. 주인공인 여성 심리상담가가 학문적 동료와 제사에 관해 대화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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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님은 완전히 새로운 제사가 우리 사회에 시급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나요? 유교적 전통제례가 현대화와 기독교화, 세속화와 짬뽕이 돼버리면서 종교적으로 사분오열된 집안이 급증하는 바람에, 명절에도, 기일에도, 돌아가신 어른들과 조상님들을 어떻게 기려야 할지 혼란스럽고도 애매한 상황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짐작해요. 그러니, 박정희 때 ‘가정의례준칙’을 전 국민에게 선포했듯이 무경계클럽의 최신제사준칙을 선포하면 어때요?

제사의 본질이 뭡니까?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귀한 마음을 나누는 거잖아요. 정확히 조상의 어떤 은덕에 감사하느냐? 물론 기초적으로 논밭, 집, 재산을 물려주셨으면 그것에 감사해야 하고, 거기서 더 수준을 높여서,”

본드가 재빨리 끼어든다.

“흠, 유교적 제사의 본질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매즐로우 욕구위계 식 업그레이드를 하시다니!”

“그래요, 수준을 높여서 후손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신체, 또는 유전자를 물려주신 데 감사하고, 나아가 후손들끼리 웬수가 되지 않고 사이좋게 살 수 있는 문화, 즉 가풍을 물려주신 데 감사하고, 더 나아가 특별한 재능과 적성, 개성을 물려주셔서 후손들이 평생 그 개성의 꽃을 피우도록 등 떠밀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제사의 본질이어야 하죠.”

“일부 급진적 성리학자들은 동의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분들이 있나요? 흥, 농담이죠? 아니라구요? 암튼, 이런 본질들에 비춰볼 때, 제사상에 뭘 올리고, 홍동백서가 어떻고, 지방은 어떻게 쓰고, 동태전은 여자가 부쳐야 하는지 마는지 따위가 얼마나 비본질적이고 제사의 참 뜻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니 저의 초종교적 과학적 제사를 통해서 후손들이 본질적인 데 집중해서,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나 부모의 어떤 재능, 개성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물려받았는지에 관한 성찰적 대화의 장을 펼쳐준다면, 진실로, 본질적으로 조상께 감사함으로써 제사의 본질을 구현할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는 개인의 인생을 인류적 진화 수준과 연결시킬 수 있는 사고의 알고리즘을 심어주고, 드물고도 귀중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형식적이지 않으며 실로 프래그매틱하고 교육적인 가정 문화를 창달하게 되지 않겠어요?”

“멋지긴 한데, 각 가정마다 에바님 같은 제사장이 한 분씩 있어야 하겄네.”

“우리, 언젠가는 각 가정에 이런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원이 있을 수 있게끔, 우리의 교육을 업그레이드 해야겠죠.”

“그리고요, 조상이 남겨준 거라곤 빚더미와 악습 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자칭 흙수저에게는 이런 제례가 제사상 뒤엎는 조상 성토 내지는 정신적 부관참시의 장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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