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투사와 정치 (2022/8/5)



© Suk Hoon Han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한 번 정치와 관련된 수행일상을 쓴 적이 있지만, 그외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 사실 나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도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 내 보기에 정치판은 일종의 쇼 무대와도 같이 느껴져서, 그 동네에 관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막장 연속극에 대해 그러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우리의 정치적 무관심이 최악의 정치 지도자를 낳을 것이라는 플라톤의 충고는 절대적으로 유효하다고 믿지만, 아무튼 정치판에 대한 가십의 소비와 전파에 가담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주 오랜만에 정치와 관련한 나의 감상을 적어놓으려 한다. 그저 분석심리학적 인물론으로 여겨도 좋겠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논하려면 아마도 다소 긴 추후의 역사적 전개를 조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의 이런 저런 정책의 성패를 논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전직 대통령은 상당수 국민들('콘크리트 지지자 40%' 또는 '대깨문')로부터 분석심리학적으로 볼 때 현자 원형의 투사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것은 그가 반드시 항상 현명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성격이나 성향이 조용하고 차분하며(내향형), 늘 책을 곁에 두고 도덕적 지향성을 뚜렷이 유지하는 식이었기에(늘 도덕적이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얼핏 보기에 현자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것 같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 남녀들, 특히 성숙한 여성들이 현자 원형에 걸맞는 남성을 실제 삶에서 보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남자들은, 아버지들은, 선생들은, 성직자들은, 정치 지도자들은 현자의 풍모를 충분히 구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러한 풍모를 일관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이는 전직 대통령에게 현자 원형을 투사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특히, 삶에서 이익과 승리보다는 의미와 지혜를 암암리에 간구해왔던 수많은 지적인 성인 여성들은.

한편, 한 전직 검사의 부인의 팬 카페에 똑똑하고 멀쩡한 남성들이 가입하여 지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이 현상이 불가해하고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여기에도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원형 투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여성 영웅' 원형 투사. 신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성 영웅들의 무력과 용맹함과는 대조적으로, 여성 영웅은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폭력적인 남성을 유혹하여 길들여서 얌전하게 만든다. 여성 영웅의 현대적 변형인 원더우먼도 원래는 검이 아니라 밧줄을 썼고, 밧줄로 묶는 행위는 날뛰는 짐승을 길들이는 방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여성 영웅 캐릭터는 서양의 '미녀와 야수'와 우리나라의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에 전형적으로 등장한다. 오늘날 전직 검사 부인이 바로 이러한 여성 영웅의 원형을 몸소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녀는 한 명의 거칠고 공격적이며 드세어서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충성을 바치지 않는) 짐승 같은(자세가 세련되지 못하고 칼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 남성을 사로잡아 길들였다. 그녀의 이같은 영웅적 성취에 어떤 한국 남성들은 무의식적으로 감탄과 충성심을 헌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아직 내면에 길들여지지 않은, 또는 적절하게 성숙하지 않은 공격성을 억압해온 남성들이 특히 그리 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종합하여,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진정으로 현명하고 성숙하여 인생의 안내가 되어줄 만 한 현자에 대한 그리움을 품어온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내면의 무의식적 공격성에 휘둘리는 것이 두려워 그러한 성질을 다스려줄 영웅적 여성에 대한 동경을 품어온 이들도 많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빡센' 곳임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빡세서 자살률 세계 최고이고 대다수 젊은이들이 2세를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할 정도로.

우리는 어떻게 덜 빡센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까?

묘수나 '대박' 따위는 없다. 이런 말 자체가 주술적이다. 오직 일일신우일신, 오늘도 또 나를 단련하고 키워 배움을 이어갈 따름이다. 그밖의 길을 모르겠다. 빡센 험로가 다 그럴만한 이유(목적)가 있어서 주어진 것임을 믿어보려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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