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존재함 (2021/10/24)



© Suk Hoon Han                                                                                                                                                                            



 

그냥 존재함이 중요하다. 매 순간이 의미있다. Every minute counts.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매 순간은 어차피 성장과 성숙의 일부분이고,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하여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저 성장의 매 순간에 존재성, 즉 '참된 나됨'을 심화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할만 한 일에 대하여 숙고해보고 그것을 실행해볼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런 심화와 확장의 활동에 신으로부터 받은 인증서를 붙이거나, 말거나 하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존재의 심화와 확장이 나의 궁극의 성숙으로 이어지고, 또 그것이 나의 후대에게 계승되는 것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하든, 신성한 티쿰올람으로 찬양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런 존재함을 통해 선대로부터 후대로 무언가를 계승하는 일을 밝히는 작업은 과학적이어야 하겠으나, 계승을 실제로 이루어내는 활동은 과학을 뛰어넘어야 한다. Science views the unmeasurable as valueless, while spirituality reckons the immeasurable as invaluable. [과학은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보지만, 영성은 측량을 초월하는 것이야 말로 가치를 뛰어넘는다고 본다.]

과학을 포함하지만 과학을 뛰어넘는 영성은 만물에서 사랑과 선함을 본다. 성선설을 견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애쓰는 일로, 비과학적이며 어리석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성선을 믿으며 세상의 비웃음을 받고 살겠는데, 왜냐면 그것이 프래그매틱(Pragmatic)하기 때문, 즉 그것이 가장 나다운 나로서 존재함에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자기실현은 꼭 직업과 능력의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사랑하기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사람이 선악의 절체절명의 갈림길에서 선으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악을 이미 보고, 이해하고, 포용했었어야 할 것이다. 내 안에서 악마를 봤으나, 그게 바로 어둠의 유혹의 방식이며 진짜 나가 아님을 눈치 챌 수 있게 된 것은 성찰과 수행이 베풀어준 축복의 선물이다. 악과 선이 함께 신이다.

신께서는 나를 지상으로 돌려보내 사랑할 것을 명하였으나, 나는 곧 내가 타인들을 증오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증오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존재의 궁극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과 증오 사이에 끼어서 투쟁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존경해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냥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 감사하라.


+ 군대에 있을 때 남자들은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뺑이 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건 말건 간에 매 순간이 의미 있다는 말이다. 매 순간이 제대라는 지상 목적에 가까워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의 매 순간이 의미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건 말건 간에 매 순간이 죽음이라는 지상 목적에 가까워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삶의 종식이 아니라 삶의 결과, 삶의 목적이라고 보면 이런 태도를 품는 것이 가능하다. 죽음이 왜 삶의 목적인가? 생명 받고 태어나 살아온 평생의 최종 결산이기 때문이다. PPL: 죽음과 친해지는 삶 - 심층심리학습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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