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 존중, 친절 (2021/4/25)


© Suk Hoon Han                                                                                                                                                                            



 

우주가,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나'가 온전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신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각 개인마다 인식하는 우주가 다르고, 이해하는 신이 다르다. 신비가들도 체험한 신의 임재의 양상이 제각각이다. 우리 뇌의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 인식 방식으로 인하여 당연히 매우 개별적인 우주와 신의 모습이 각 개인의 의식 속에서 생성될 것이라는 물리학적, 생물학적 추론과는 또 별개로, 각각의 영혼이 육신과 결합하여 우주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점을 오랫동안 목도하며 나는 깊은 묵상에 빠지게 된다.

각 개인의 인식의 양상이 다른 이유가 인간적-현세적 심판의 대상이 돼선 안되는데, 이를테면 '문화적 배경,' '성장과정,' '지능,' '교육수준,' '지성,' 또는 '영적 진화의 수준' 등등이 그러한 다름의 배경 요인으로 (타당하게) 거론되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배경 요인의 종류와 수에 대하여 인간은 아직 대단히 무지한 것 같다.

나의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나의 인식의 진·위에 대한 판단을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내리게 되는 결론은,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예禮로써 존중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이다. 나와 그가 다른 신을 보는데, 둘중 하나가 옳다거나 둘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 별개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일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겸허와 똘레랑스, 그리고 그에 따른 친절이 불완전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미덕이라는 결론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도 우리는 각자의 삶의 노선을 정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떤 인식이 이 노선의 순항에 기여할 것인지 가늠하게 되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똘레랑스의 분위기 속에서도 나의 길을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누구의 인식에 우리가 찬동할 것인가는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준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열매가 분리와 배격과 폭력을 부추기는지, 아니면 화해와 수용과 치유를 지지하는지를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 상태인 우리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이보다 더 합당한 판단의 준거를 아직 알지 못한다. 이 준거를 택함으로써 나는 다시금 나의 열매에 집중하게 된다. 이런 나의 태도가 또 우주와 상호작용한다. 이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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