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LOVE愛 (2019/1/6)
 



© Suk Hoon Han                                                                                                                                                                            


 

지난 해 끄트머리 글에 '사랑을 잘 해서 행복하고, 사랑을 못 해서 불행하다.'고 썼는데, 세상에 '사랑을 못' 하는 예는 차고 넘치는 것 같지만, '사랑을 잘' 하는 건 어떤 건지 예시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들 부모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일종의 순수한 사랑의 이상상처럼 말한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에서는 모성 역시 오직 자애롭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식을 집어 삼키려는 무시무시한 애욕이라는 반면을 늘 품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이런 관점은 나 자신의 자식 사랑에 대해서 오랫동안 반추해보고 성찰하도록 자극해주었다. 부모 사랑이 반드시 '잘 하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대인기를 끌고 있는 TV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부처의 대자대비의 자비심이야 말로 '잘 하는' 사랑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일런지도... 부처처럼 모든 중생을 자비로 대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특별히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랑은 속박하지 않으므로 '자유'라는 존재의 본질적 지향과 어긋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사랑이야 말로 '신적인 divine' 사랑일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차원에 다다르기를 꿈꾸지만, 그러나 여전히 신적인 것보다는 인간적인 것에 끌린다. 제 핏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묘사한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가 말해주는 동양인의 사랑 방식)


나는 자라면서 "사랑해요"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건 내 부모가 나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부모는 나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새롭게 정착한 미국 땅에서 녹초가 되도록 일을 했다. 나는 부모님을 자주 보지 못했고, 어쩌다 볼 때에는 두 분이 너무 피곤해서 기분이 안좋으셨을 경우였다. 그러나 내 부모가 아무리 지쳤어도 언제나 저녁 밥을 차려주셨고, 고급 요리는 못되어도 배를 곯은 적은 없었다.

희생으로 보여준 부모님의 본능적인 사랑에 대한 기억은 내 뼈 속 깊이 박혀있다. 말 한 마디나 억양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런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한 번은 로스엔젤리스 거리의 상점 앞에서 엿듣게 된 대화 내용에서 그것을 느꼈다. 내 옆에 서있던 사람은 소박한 옷차림의 평범한 외모의 동양인이었다. 그는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베트남 남부 방언을 썼다. 그의 외양은 조금 거칠어 보였는데, 노동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식과 베트남어로 통화할 때에는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번역할 수가 없다. 그저 느낄 수 밖에 없다.

그가 말한 것을 문자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여보세요, 아가야, 아빠다. 밥 먹었니?" 이것은 영어로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베트남 말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밥 먹었니?"라는 말은, 자식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결코 쓰지 않는 베트남의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방법이다. 이런 풍습에 젖어, 이런 감정을 느끼며, 이런 정을 품고 자랐던 나는 그 사내가 자식에게 그 말을 했을 때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가 베트남인이라는 것을 안다. 나의 역사가 내 핏줄을 타고 흐르고, 나의 문화가 내 탯줄이기 때문이다.


- Viet Thanh Nguyen, American Like Me, Time, 2018.12.3, p. 31 (한석훈 번역).


업의 토의 때 젊은 학생들이 '애국'이라는 용어를 께름칙하게 여긴다는 것을 감지한다. '애국심'의 영어판 용어인 'patriotism'에 대한 미국 대학가의 거리 두기에 익숙한 나로서는 우리의 젊은이들의 그런 태도에 전혀 반감은 없다. 그러나 나는 '애국'이라는 용어는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동족과 그들이 함께 사는 이 땅을 내가 강렬하게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다. 이것은 매우 인간적인 사랑이다. 내가 외출했다 들어온 내 딸들에게 언제나 밥 먹었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신적인' 사랑의 수준을 우러러봐야 할 것 같다. 우리 내면 깊숙한 데 숨어있는 신적인 수준은 드물게나 제 자신에 대한 힌트를 던져준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때 제 피붙이가 아닌 수백의 어린 소년, 소녀 생각에 다수 한국인 부모들의 가슴이 찢어졌던 경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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