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유행 (2022/6/26)



© Suk Hoon Han                                                                                                                                                                            



 

* 다음 글은 최근에 내가 출강하고 있는 대학의 학보에 원고 청탁을 받아서 기고한 글로, 출처를 밝히고 나의 사적인 독자들께 공개한다.


MBTI 열풍에 대한 교육학자의 생각

최근 들어 청년들 사이에서 MBTI 검사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대중매체에도 이런 유행에 대한 보도가 등장하고 자신의 성격유형을 ENFJ라거나 INTP라고 자연스럽게 보고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MBTI는 칼 융의 성격론을 기반으로 삼고 나는 십수 년간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자기 이해를 기도해왔기에, 나의 동문인 서강의 청년들이 MBTI를 유익하게 활용하는 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서강의 모든 청년이 알고 있지는 않겠는데, 우리나라에 MBTI를 최초로 소개하고 전파한 이가 서강대학교 제17대 이사장을 역임한 김정택 신부님이다. 김 신부께서 한국에 MBTI를 보급하기 시작한 1990년 무렵, 그 본산인 미국에서는 이미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몰이에 성공한 이 검사에 대하여 학계가 우려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이런 부정적 반응은 대체로 MBTI의 경험과학적 근거의 불충분함과 심리검사로서의 약점에 기인하였다. 융은 생명체가 생존전략을 선택하게 되는 진화 과정에서 어떤 개체들은 자신을 증식시키는, 즉 후손을 양산하는 ‘외향적’ 길을 가게 된 반면, 다른 개체들은 자신의 내적 견고함을 다지는 ‘내향적’ 길을 가게 된 것을 내, 외향의 효시였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물론 이는 매우 사변적 추측이어서 과학적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인간의 성격유형을 이를테면 그 태도에 있어서 외향과 내향으로 나눈 융의 시각을 과학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비판은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오직 계량적 측정방식만이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본다. 융이 정신과 전문의로서 평생토록 수많은 환자의 신경생리적 반응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어떤 이들은 내향적 상황에서 편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데 비하여 다른 이들은 외향적인 상황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질적인 연구의 과정을 그저 비과학적이라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편 미국의 학계가 지적했던 MBTI의 심리검사적 약점들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현재 북미의 심리학자들 다수가 이미 낡은 MBTI보다는 최신의 성격유형 검사들을 더 신뢰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리검사로서의 여러 문제 중에서도 특히 MBTI 검사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같은 사람이 MBTI 검사를 반복하여 실행했을 때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검사의 타당도, 단정적인 이분법, 4개에 불과한 성격유형 등은 앞으로도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약점들’을 잘 인식하고 MBTI 검사 결과를 활용한다면, 꽤 유익한 자기성찰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인간 성격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세상에 100% 내향이거나 100% 외향인 사람이 있겠는가? 단지 어느 한쪽으로 얼마나 치우쳤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뿐이다. 자신이 코로나 시국의 은둔생활이 매우 행복했다고 느낀다면 내향으로 많이 치우친 성격이고, 최근에 사람들을 못 만나서 우울감이 급증했다면 외향으로 많이 치우친 것이리라. 그러한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나와는 다른 성향의 타인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줄 수 있다. 또, 자신의 치우침을 확인함으로써 삶에서 보완해줘야 할 사항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비록 내향적으로 홀로 주관적인 사색에 빠지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자신의 사색을 타인과 나누는 기쁨과 효용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다면 밖으로 나가(외향적으로) 객관성을 보완해주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 비록 외향적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자신의 활동의 의미에 대해 탄탄한 사유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때로 내면으로 들어가(내향적으로) 깊이 사고하여 주관을 다져보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

MBTI가 제시하는 인간의 세계 인식의 기본적 태도인 내, 외향과 더불어, 사고/감정이나 감각/직관 등의 기능에 대한 이분법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치우침을 관찰함으로써, 치우침을 뛰어넘은 중용의 경지를 상상해보고, 보다 온전한 인격체로서, 보다 전인적인 삶을 영위하겠다는 존재론적 욕망에 불을 지피는 것도 가능하다. 융과 그 후예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삶의 목표점은 ‘개성화(individuation)’와 자기실현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개성화란 ‘가장 나다운 꽃을 피운다.’는 의미로, 평생에 걸친 자기실현의 도정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인격의 치우침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대극(내-외, 사고-감정 등)의 합일’을 향해 꾸준히 정진하면서 거두게 되는 결실이다. 모든 것이 너무 ‘스마트’해서 고속으로 휙휙 지나가는 오늘날, 잠시 걸음을 멈추고 MBTI 검사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성찰이 유용하지는 않을까? 나의 치우침을 이해할 때, 내 앞의 타인의 치우침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한두 번의 MBTI 검사로 건실한 자기 이해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검사 결과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인지 질문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자기 이해의 도정에 오를 수 있다.

- 서강학보 202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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