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왕들 (2021/8/10)



© Suk Hoon Han                                                                                                                                                                            



 

전부터 꼭 찾아서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미국의 다큐멘터리 'The Philosopher Kings(철학자 왕들)'를 유튜브에서 발견하여 며칠 전에 시청했다. 아마도 플라톤의 '철인왕'에서 따온 제목일 텐데, 실제 내용은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근무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것이다. 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다양한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을 접해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약 40년의 세월에 걸쳐서 나 자신의 학업으로 4개 대학을 거쳤고, 시간강사로 출강했던 대학도 10개소가 넘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하면서 내가 하기 싫은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윤리적 결론을 품게 되었기 때문에, 평소에 별로 친화력도 없고 인간미도 없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에게는 인사도 잘 하고 말도 건넨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내가 접하고 봐온 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삶을 이 다큐멘터리는 '철학자의 삶'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청소 노동자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지혜를 향해 다가가는, 굴곡지지만 아름다운 여정임을 소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속의 청소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사회적, 직업적 책무를 대하는 태도는 감히 교육자임을 자처해온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들은 강의실과 복도와 화장실을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줌으로써 자라나는 젊은 인재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일이 대단히 고귀한 사회적 임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아가 고단한 육체노동의 완수를 넘어서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극복해내기 위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동등하게 귀중한 영혼이고, 따라서 모든 이가 동등한 한 표의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새삼 상기하게 된다.

과거 나의 유학 시절, 미국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은 흑인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짧지 않은 미국 생활 속에서 많은 흑인들과 조우하고 관계를 맺었는데,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동양인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흑인 남녀로부터 인종차별적 대우를 받은 횟수는 쉽사리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반흑인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미국 흑인들의 사회문화사에 대해 교육 받았고 그래서 그들의 처지를 지적으로 이해한다는 이유보다도, 때로 내게 친절한 손길을 건네고 정을 나누어주었던 여러 명의 흑인들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젊은 시절의 나는, 아니 늙어버린 나였다 하더라도,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흑인 청소 노동자들에게는 호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귀국하여 국내의 여러 대학에 출강하게 되었는데, 거의 모든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은 중년 여성이었다. 이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나를 대단히 깍듯한 태도로 대해줬는데, 내가 아직 청년처럼 보였던 20년 전에도 그러했었으니 이제 할배처럼 보이는 요즘에 와서는 그 깍듯함이 더 심해진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겠다. 그러나 내가 그분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수긍할 수 없는 나로서는 늘 인사만 받고 있기가 미안하여 대체로 먼저 인사하려 의도적으로 노력하게 됐다. 한 번은 그렇게 먼저 인사하는 나를 중년의 여성 청소 노동자 한 분이 붙잡아 세우더니, '교수님께서 자신에게 인사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의사 표시를 한 적도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다. 비록 내가 그 대학의 정규직 교수는 아니었지만, 같은 직장동료인 교직원들끼리 복도에서 마주쳐 인사를 나눈 것에 대해 특별한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이란... 하긴, 언젠가 내가 출강한 대학에서 머리에 피도 안말랐을 학생이 어머니 뻘의 청소 노동자에게 무도한 '갑질'을 저질렀다는 참으로 부끄러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역시 내가 출강한 다른 대학에서는 이른바 구조조정으로 청소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그렇지 않아도 열악했던 청소원 휴게 공간을 더 축소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서울대에서 청소 노동자가 과로사해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으니...

헌데 내가 시청한 '철학자 왕'에 등장하는 미국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의 직업 환경은 대한민국의 동종업 종사자들의 그것과는 딴 판이다. 대학의 직원과 교수들이 청소 노동자와 격의 없이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대학의 행사에 동등한 주체로 청소 노동자가 참여한다. 한 대학의 경우에는 부서의 회의에도 청소 노동자가 참여하여 당당하게 발언하기도 한다. 우리의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도 교수와 복도에서 마주치면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하기를 그만두고, 가볍게 서로 목례나 주고 받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당당하게, 동등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될 날이 올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인정받는 '능력'에 의해 개인들 간에 큰 소득 격차가 발생하고, 나 역시 내 자식들이 자신의 능력을 키워 가능하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계층에 속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에 대하여 인도주의적 시늉이나 하는 위선성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세상이 현실적으로 우대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나도 잘 알지만, 영혼이 잠들어 있는 평소의 흐리멍텅한 눈으로는 잘 보이지가 않아서 세상의 의해 그 존재와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재들도 무수히 많다고 짐작한다. 그들은 직업세계의 '낮은 곳'에서 불우한 처우 속에서도 자신의 최선을 바쳐서 이 세상이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능력'이 출중한 '엘리트'들이 신나게 활약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청소 노동자 같은 이들로, 이들의 희생을 뻔한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새삼 민주주의의 원리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학 캠퍼스에서 교수 대접을 받으며 오만하게 지내다 영화 '철학자 왕들'을 보고 나니, 예전에 미국 대학의 흑인 청소 노동자들 모습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들중 적지 않은 이들이 나에게 이유 없이 불친절했고 때로는 도발적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에는 나 또한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기분 나쁨을 숨기지 않았었다. 분명 흑인 청소 노동자들의 나에 대한 차별적 행동은 잘못 된 것이었지만, 과연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영혼으로 바라봤었던가? 나도 그들을 모종의 차별적 마음으로 보고 있던 적이 없었던가? 인간 영혼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청명한 눈을 뜨고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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