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2019/8/5)



© Suk Hoon Han                                                                                                                                                                            



 

한여름에 보름동안 가족과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로서는 지난 세기에 미국을 떠난 후, 20년만에 돌아가본 것입니다. 십년 쯤 전, 두 딸들이 다 대학생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미국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던 집안의 큰 '과업'을 실천한 것이기도 합니다. 돈과 시간과 정력이 다 요구되는 특별한 가족의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천지신명께 감사합니다. 특히, 자신의 집을 내어 네 식구를 나흘이나 묵게 해주고 기꺼이 여행가이드까지 돼준 죽마고우 부부도 있었고, 바쁜 일정에 겨우 연락했지만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달려와 밤늦도록 아쉬운 정을 나눈 형제, 우리 가족을 만나러 온종일 차를 몰고 달려와 밥사주고 돌아간 벗님들 부부도 있었으며, 여행 떠나는 저 대신에 치매 투병중인 아버지를 지켜봐준 형제도 있었습니다. 빚을 많이 진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고, 미국도 그럭저럭 변화한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제가 생활하던 시절과는 달라진 습속들도 적지 않아, 이런 저런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할 때 초심자처럼 허둥댄 일도 있습니다. 또한 20년 전과는 다른 저의 육체적, 정신적 쇠락 덕분에 식구들 이끌고 대륙을 운전하며 숙식 제공하는 일이 전과 다르게 힘에 부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학위 받기 위해 공부만 해야 했던 과거의 피폐했던 시절과는 달리 자유롭게 여행하러 가서 겪고 보니, 미국만의 매력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중서부에만 살던 저로서는 이번에 세 번째 방문하게 된 서부 캘리포니아의 풍광과 문화가 신선하고 낯설기도 했고,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과 공생의 분위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창조적 생기에 압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내 문화와 내 동족의 행복에 대한 궁리에만 골똘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내 문화'에 캘리포니아와 같은 다양성과 생동감은 크게 부족하다는 느낌을 새삼 갖게 됐습니다.

이번 여행의 특별한 점은 실은, 첫째 딸의 고향인 시카고 방문이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미흡한 능력으로 힘겹게 공부하며 갓난 아기를 키웠던 옛 집과 공원, 캠퍼스를 거닐며 세월의 간극과 일치를 동시에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번 방문이 딸에게 더 깊은 예술적 영감을 일으켜주기를 기원합니다.

그 모든 걸 글로 풀어내기에는 축적된 감흥과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여, 지금은 우선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멋진 풍경 사진 한 폭만 나누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앞으로 틈틈이 끄집어내볼까 합니다.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국적과 문화의 차이가 무색해집니다. '미국'이 아니라, 그저 '어머니 자연'이라는 감동을 맛보게 해주는 요세미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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