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2019/9/1)



© Suk Hoon Han                                                                                                                                                                            


 

요즘 개혁 성향의 법무장관 후보자가 자신의 자녀의 교육과 진학과정에서 엘리트 계층의 특혜를 누렸다 하여 비난과 변호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끓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꽤) 있으나, 나 자신도 그와 동일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여긴다. 나도 내 두 딸들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서 아내의 헌신에 더하여 내가 가진 정보, 지식, 역량, 돈, 다 동원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내심 우리 같은 부모를 갖지 못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 비하면 분명히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덕분인지, 아님 자신들 실력 때문인지 둘 다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했고, 아마도 그런 '성과'가 앞으로 그들의 인생에서 가산점이 되어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내 '자식 사랑' 행각에 대해서, 위법은 전혀 없었다느니 하는 식의 변명을 할 생각은 없다. 자식이 입학을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보내기 위해서 내 역량을 쏟아부은 것은 내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무였기에 변명할 생각 따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미안하다.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에게. 특히 소외 계층의 아이들에게.

소외되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단체인 '위기의 청소년'에서 얼마 전에 보내준 메일의 내용이다. '위기의 청소년'의 메일 내용은 읽고 나면 늘 마음이 무거워서 열어보기가 두렵다. 그러나 피하지 못하고 열어서 꼭 읽어본다. 이번에도 읽고 나서 며칠동안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글의 말미에 수녀께서 한탄하시듯, 삶은 참으로 슬프다.

그 글을 공유한다.


엄마의 손수건 - 조호정 시인의 소년 희망 편지

정호는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눈이 큰 사내아이인 정호는
보육원 뒤뜰에 핀 채송화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곱고 따뜻한 아이, 보육원의 선생님들과
형과 누나들이 좋아하는 정호는 보육원의 귀염둥이였습니다.

정호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학교에 가면서 알게 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겐 집이란 게 있고 엄마아빠란 사람이 있는데
자신에겐 집도 엄마아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분이 상했습니다.

엄마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안 뒤론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습니다.
그 구멍으로 슬픈 바람이 가슴 속을 휭휭 드나들었고
눈으로 스며들면서 슬픔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정호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깟 눈물은 소매로 훔치면 되니까요.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있는 학교 친구들은 비싼 메이커 새 가방을 메고, 새 운동화를 신고, 멋진 새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친구들은 가방과 운동화와 옷이 떨어지기도 전에 바꾸고는 정호에게 자랑했습니다. 친구들은 싫증이 나면 엄마 아빠에게 졸라서 새 물건을 샀지만 정호는 후원 물품이 아니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갖고 싶은 물건을 갖지 못하는 것도 참기 힘들었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놀림과 따돌림이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심술궂은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정호는 엄마아빠가 없다", "정호는 보육원에 산다"라고 놀리면서 따돌린 것입니다. 엄마아빠 없는 것이, 보육원에 사는 것이 정호의 잘못이 아닌데도 정호가 죄를 지은 것처럼 낙인찍은 것입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면서 정호의 몸과 마음이 거칠어졌습니다. 밤이면 보육원 뒷산에 올라가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왜 엄마 아빠가 없을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어버릴까?

정호는 갖고 싶은 물건을 갖기 위해 물건을 훔쳤습니다. 자신을 놀리면서 따돌린 아이들과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힘이 부족하면 돌로 때려서라도 이겼습니다. 그러면서 정호의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정호를 슬슬 피했고 학부모들은 이름 대신에 '나쁜 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쫓아온 학부모들은 "보육원에 사는 나쁜 놈을 내 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정호는 '나쁜 놈'에서 그치지 않았고 '양아치', '쓰레기' 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정호는 더 삐뚤어졌습니다.
학교가 싫어진 정호는 보육원을 가출해 거리를 떠돌았습니다.
거리를 떠돌다 만난 형들과 돈과 물건을 훔치고 담배도 피웠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촉법소년'이어서 풀려났습니다.

어린 정호를 보육원에 데려와 보살핀
수녀님은 변해 버린 정호가 안타까웠습니다.
정호에게 수녀님은 엄마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채송화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곱고 따뜻했던 정호를 안아주면
큰 눈으로 눈웃음 지으면서 가슴으로 파고들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수녀님이 경찰서에 찾아가 정호를 데려왔습니다.
정호의 눈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그날 저녁, 수녀님은 정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상자에서 수채화로 꽃이 그려진 보라색 손수건과 노란색 편지를 꺼냈습니다.

"정호야, 이 손수건과 편지는 너의 엄마가 남긴 물건이야. 너의 엄마는 정호처럼 눈이 크고 예뻤단다. 정호, 너처럼 마음이 따뜻했어. 너의 엄마와 나는 한 고아원에서 자란 친구였어. 옛날엔 보육원을 고아원이라고 불렀어. 성년이 되어 고아원을 떠나면서 나는 수녀가 됐고 너의 엄마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다 헤어진 뒤에 너를 낳았어. 너의 엄마가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와서 찾아갔더니 그곳은 병원이었어.

거의 10년 만에 만난 너는 엄마는 암 투병 중이었어. 아름다운 큰 눈엔 슬픔이 가득 고여 있었어. 고아로 자랐던 너의 엄마는 직장 선배였던 남자를 사랑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남자는 가정이 있는 남자였어. 그 남자가 정호를 너를 지우라고 했지만 너의 엄마는 너를 지키기 위해 회사와 남자 곁을 떠난 뒤, 너를 혼자 낳아 혼자 키우다가 암에 걸렸어. 너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어. 너의 엄마는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너무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만든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서 항의했어.

주여, 이 불쌍한 여인을 이토록 외면하시다니… 너무 하십니다."

 

 





 복잡한 인간사에 답이 무언지 잘 모른다. 부끄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찾아내서 하려 할 뿐이다. 할 말 없다. 그저 부끄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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