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방명록2 (2003.3.9 ~ 2004.4.26)

[2006년 8월초에 기존의 웹호스팅 업체였던 네띠앙이 사라지면서 함께 소멸된 방명록의 내용을 가능한 한 복구하고,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여 '구방명록3~7'에다 옮겨놓습니다. 이는 2003년 3월부터 시작하여 2006년 8월까지의 내용을 포합합니다. html 로 작성된 내용이나 링크 등은 복구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 2006년 10월24일]

 

■한석훈 ■알림: 방명록 내용이 사라져버렸습니다. ■20030309

그동안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신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나모 웹에디터를 새로 업그레이드해서 이리저리 실험해보던 중 관리자의 실수로 방명록 파일이 삭제되어 버렸습니다. 어떻 게든 복구해보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알 도리가 없군요. 그동안 방명록에 연락처를 남겨주신 분들의 이메일 주소는 별도로 보관해두고 있습니다만, 최근 한

달간 올려주신 글은 미처 백업을 못해두었습니다. 귀한 글들을 잃어 가슴 아픕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 한석훈 올림


■한석훈 ■구 방명록에서 백업해둔 부분 ■20030309

구 방명록에서 백업해둔 부분을 표지 페이지의 방명록 옆에 링크해두었습니다. 문선생님 말씀대로 공수래공수거이지요. 다만, 여러분들께서 제게 맡겨두신 것을 제가 없애버린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죠.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


■misook ■kriyayogi@hanmail.net ■20030310

Hi, Dr.Han. i'm misook and i'm in Melbourne. i'm enjoying my holiday now, but sometimes i feel left out a little bit, that's because i haven't met any koreans here  and i have some difficulty finding a job. but i will recover all problems soon. i believe God will guide me if i want and pray. i read your diary. it's so inspired to me. keep up the good work and have a good day, bye!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전부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 ■20030310

많은 분들의 방명록이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것도 포함해서요. ^^ 어떻게 보면 아쉽기도 하지만, 한번오고 말 분들이 아니기에, 오히려 시원하게 생각할수도 있겠죠. 게시판이란 늘 새롭게 단장되야 손님들도 좋지 않겠어요? 단순하게 살아라란 책에서도 보니까 한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자잘한 물건들이 심하면 1만개도 넘는다고 하더군요. 다버려야 새로운것들도 들어온다는 말도 있구요. 아무튼 새롭게 다시 꾸며가면 될듯싶습니다. 기운내시구요. 떡본김에 재사지낸다고 들려서 책에 대한 한가지 또 올리고 가렵니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책 "요가난다" 상,하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요가난다의 어릴시적부터 많은 스승들을 만나 신과의 만남을 얻는 구도기가 그 내용인데요... 정말 재밌었습니다. 가끔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구도기를 읽는 것은 큰 힘이 될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책의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것을 문제삼아 시시비비를 논하곤 합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스승에 대해서도 여러 말들이 있고, 라즈니쉬에 대해서도 여러말들이 있습니다만. 전 개의치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가지 현상을 다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요가난다의 책이 한석훈님 싸이트에 소개되어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문인희 ■prajna@dreamwiz.com ■20030314

방명록 파일이 사라지다.. 어쩌면 한선생님이 이 명상수행 사이트를 만드신 속뜻을 간접적

으로 경험하게된 계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생활 하나 하나가 모두 명상수련의 소재가 아닐까요. 오늘은 이 화두로 살아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인희 드림


■NAME=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안녕하세요. 또 지나가다가..^^ ■DATE=20030320

별일 없으시지요? 저는 이번에 호된 일을 좀 겪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닐수도 있지만... 자꾸만 신경이 그리 가게되고 ...암튼 지금도 큰 공부중에 있습니다. ^^ 지나 서미나라의 전생에 관한 책들이 소개되었길래 잠시 보다가 글을 올립니다. 지나 서미나라의 책이 현재  3권정도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그중 앞선 2권이 절판된듯 합니다. 귀따갑게 지나 서미나라 이름만 듣고 책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또한가지 전생, 윤회에 대해 재미난 책이 있어 적어봅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브라이언 와이스의 책 3권입니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라는 불후의 베스트셀러와 "전생요법" 그리고 "기억" 이렇게 3권인데요.  1권은 정말 재밌고 윤회나 전생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용으로 최고인것 같습니다. 2권은 좀 지루할수도 있고 전문적인 내용도 있고, 의료인들에게 추천이구요.  3권은 정말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입니다. 단숨에,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only love is real"이것이 3권의 원제인데... 우주안에 그어떤 일도 오차없이 정확히 일어나며, 이유없는 일은 없다는 메세지가 참 인상적입니다. 물론 사랑에 대한 메세지또한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한석훈님의 추천으로 지금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책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예전에 읽었던 "닥터스"가 많이 생각나더군요. 아무래도 하버드 출신의 유머감각이 다 비슷한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좋은책 추천 감사드리며, 저또한 다른분들께 추천하고 있습니다. 베크부부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주위에 많습니까.. 많은 도움이 될듯 합니다.


참, 그리고 조지부시 부자는 제생각에는 전생에 이라크나 아랍권에서 노예생활을 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럼 이만..


■이병춘 ■choon97@hanmail.net ■20030322

오늘도 즐려 찾기로 꾹 클릭 했는데, 처음엔 잘못 들어 온줄 았았네요.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네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홈페이지의 단골손님이다라고 자청했는데, 어느날 다시 생각해 보니 전 단골손님이 아니라, 선생님 글도둑놈이 되버렸더군요, 다름이 안오라 친구와 후배들과 이런전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 해보니까. 선생님의 말을 인용해서 내꺼인냥..>.< 요즘에 숨을 쉬고 있는게 죄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TV에서 내 내 조카 또래의 이라크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체 아름다운 눈을 깜빡깜박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말이죠. 또한 인간이 지능을 소유하고 있는것이 큰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치 뛰어난 과학기술은 인류생활을 안락하게 만들었지만, 한편 다른 살상무기를 만들어 놓것같이.


인류는 지능을 소유함으로 각기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사상을 가지고, 다른게 판단하고, 느끼고,또한 인간은 지능을 가졌기에 인간개개인이 자익을 위해서 다른사람을 비난하고, 험담하고, 심지어 정당하게 살인을하고(지금처럼), 혹은 사상이 들려서, 피부 색갈이 틀려서, 정말 이건 어찌보면 동물의 왕국보다 더 추악하기 그지없어 보이기 까지. 그들은 생존을 위한 싸움, 종족보존을 위해서 싸운다, 또한 성취를 한다음은  더이상 바라지 도 않는다. 마치 배부른 사자가 사냥감을 더 찾지 않는 것 처럼. 하지만 지금같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너무나 추악해 보이네요. 말이 좀 길었네요.. 전쟁기사에 지친 눈과 마음을 여기서 좀 쉬고 가야 겠군요. 그럼 이만.


■민들레 ■loj76@hanmail.net ■감사합니다. ■20030324

항상 몰래 들어와 글만 퍼가다가 사이트 개편까지 하시면서 애쓰시는 주인장님께 오늘은 웬지 미안한 맘이 들어 감사의 말씀 드릴려구 글 올립니다. 이 사이트를 발견한 건 작년 한 10월 쯤 되는 것 같군요. 개인적인 일상의 복잡 다단함, 연애 문제 등등해서 힘들때 님이 올려주시는 글이 정말 힘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제 신념이나 정신적인 믿음과 사회에서 겪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혼돈스러운 상태이네요. 역시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찾듯이 수시로 이 사이트로 부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번 접속하고 나면 목마름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네요.^^ 사랑으로 충만한 글들...늘 감사합니다. Namaste!


■김미숙 ■축하드립니다 ■20030324

예전에도 참 예쁜 사이트였는데, 다시 꾸미니 훨씬 보기에 좋네요.. 하시느라 수고많으셨겠어요.. 오늘도 잡 구하러 시티에 나와 구하려는 잡은 못 구하고 이렇게 유학원에서 인터넷만 합니다...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어 글은 못 읽고 가지만 가끔 님은 수행 잘 하고 계신가 생각은 한답니다.. 저는 예전엔 미처 몰랐던 저의 모자란 점을 여기 spritual sister and brother로부터 많이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만나는 meditation meeting에도 참여하고 여러 비디오도 보면서 inspired합니다... 나중에 좀 여유있을때 글 읽고 다시 쓸께요.. 저도 하고 싶은 얘기 많거든요...


■동방의물결 ■전체 메일을 또 이렇게 보내주셔서...^^ 들렸다가...링크 보고 한마디 적습니다. ■20030324

매번 들를때마다 하나씩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링크에 있는 한번 클릭으로 굶는 아이에게 식사가 제공되는 싸이트...아주 마음에 들어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저의 동아리 홈페이지에도 싸이트 연결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월드비젼에서 한 아이를 후원하고 있는데 이곳은 훨씬 쉽고 작은 방법으로 지구촌 아이들을 돕고 있는 점에 감탄했습니다. 좋은 싸이트 소개감사합니다. 또 들릴께요.


■의심남 ■의심 하게 됩니다.. ■20030325

저도 칭하이 무상사 스승님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본격적으로 입문하고 싶은데.. 의심하게 됩니다.. 이상한 사이비 교단 같기도 하고 입문 후에 모든걸 알려주는것도 좀 그렇습니다.. 칭하이 무상사에 대해 강연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저도 그 분의 강연록은 많이 읽어서 이건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몇몇 부분은 받아들일수 없지만. 그런데 그분의 사진을 보면 음..외모로 판단하기는 뭐하지만.. 스승 답지가 않다고나 할까요? 너무 화려하고 전형적인 사이비 교주 같습니다.. 비판 싸이트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영어가 딸려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객관적인것 같던데.. 강연동영상은 클릭해도 나오질 않고요.. 삶의 중심이 절실히 필요한데.. 함부로 발을 디뎌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비판사이트 까지 있고.. 그래서 부탁 하나만 드릴께요 비판 사이트 내용에서 무슨 말인지 간략하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돈 내는것을 강요받았다는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런 정보를 ..알고 싶고요~~으흠.. 혹시 입문 하셨다면.. 입문 과정에서 무얼 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으흠..의심많은 사람이..


■한석훈 ■Re: 의심하게 됩니다. ■20030325

칭하이 무상사 스승에 대하여 제가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저는 그분의 가르침을 '진짜'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관음명상을 배우기 위해 그분의 컬트에 입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저 나름의 명상을 수행중이라서요. 그리고 단체 가입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제 성향 때문에요. 제가 링크해놓은 칭하이 무상사에 관한 '평가' 싸이트에는 꽤 많은 사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 싸이트에서 주장된 가장 부정적인 의견은 칭하이 무상사 컬트에 가입한 자신의 배우자들이 거액을 헌납했다는 남편들의 불평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눈에 띄는 비판이 없습니다만, 그 싸이트의 글 자체가 기본적으로 냉소적으로 씌어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무도 칭하이 무상사 단체의 '비리'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저는 '비리'는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지만요.) 설혹 거액을 헌납한 신도가 있다한들, 그것이 제게는 문제로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헌납한 사람의 문제이니까요. 저는 아직까지 돈의 헌납을 요청하지 않는 종교 조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 때문에라도, 이곳처럼 열려있는 인터넷 싸이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돈 안들이고 영적 수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만. 물론, 입문하시는가 마는가는 님의 결정이지요. 많은 컬트들이 입문과정을 비밀시 하고 있고, 저는 그 또한 존중할 뿐 아니라, 때론 그런 비밀스러움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짐작합니다. 허나 저는 입문하지 않고, 그저 간접적으로나마 칭하이 스승의 가르침만 받겠습니다. 아, 또 한 가지, 그 비판 싸이트에 나온 내용인데, 컬트에 입교한 아내를 둔 남편이 이런 불평도 한다는군요: 아내의 성적인 욕망이 사라져버렸고 맨날 명상만 하고 앉아 있다고. ^^ 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했습니다. 혹 다른 방문객분들 중에서도 칭하이 무상사 스승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렇게 제 입장을 밝혀 봅니다. Namaste.


■바이올렛 ■EMAIL=violet7514@hanmail.net ■축하드립니다 ■20030325

개편 축하드립니다. 전에도 예쁜사진이 많았었는데,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이 넘쳐나는군요. 여러날 수고 많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님은 참 특이한 분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다들 잘살겠다고 바쁜세상에, 영적수행과 글쓰기에 몸과 시간을 바친다는 것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있다고해도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지요. 어떨때는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제삶을 찾겠다고 10여년을 보내고 지금은 평온한 마음을 즐기고 있지만, 현실적인 삶에 아직도 연연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인생이 하나의 연극이다 환상이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연극에 푹 빠져보고 싶고 환상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가봅니다. 더욱 정진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기상 ■davidleks@hanmail.net ■다시 와봤습니다 ■20030326

홈피가 더욱 멋있어졌군요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님은 더 멋있어 지세요^^


■박범상 ■tigerkor@hananet.net ■싸이트 개편을 축하드립니다... ■DATE=20030327

안녕하세요? 싸이트가 봄철을 맞이하여 예쁘게 꾸며졌네요. 님의 신앙고백을 읽으며 내가 즐거워 지는 이유는 님의 내면에 기쁨과 평화가 나에게 까지 전달되기 때문이겠지요. 더욱 빛나고 향기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없는 글재주라 짧게 올리지만 마음만은 전해주고 싶어서 글을 남겼습니다. 이곳저곳 쓸때없는 흔적만 남겨 지나는 이들의 불쾌감만 주는것은 아닌지 하는 소심한 생각때문에 글을 남기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네요...^^;


■이진경 ■★축 새단장!!★ ■20030327

마우스를 가져가면 바뀌는 연꽃의 초록색이 참 신선하고 신비하고.. 그렇습니다. 이렇게 싸이트를 가꾸어 가시는 일은 한석훈님 삶의 실천중 한 부분임을 느끼고.. 또 저에게 가장 필요한게 바로 실천임을 배웁니다. 올해는 딴데 정신 덜(?) 팔고 상담공부와 학교공부라는 목표에 충실할 스스로를 그려보네요. 필승~~~!(잉?) ^^: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한교수님 안녕하세요~싸이트개업 1주년이 다가옵니다. ■20030328

왼쪽 하단에 보니 2002년 4월 싸이트가 만들어졌네요. 9835명이 왔다갔구요. ^^  한창 월드컵열기로 전국이 흥분의 도가니였을때부터 있었군요. 1년이란 시간의 힘이 느껴집니다. 이 많은 책들과 짜임새있는 구조, 그리고 풍성한 컨텐츠... 한교수님이 지난 1년간 스스로의 약속을 정말 충실하게 지켜온 결과가 아닐까...생각하면서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한교수님의 싸이트는 참으로 제게 의미가 깊습니다. ^^ 뭐 쓰자면 길구요..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하셨는데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참!  개업 1주년 미리 축하드립니다. 4월 1일 되면 또 축하드리겠지만요..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싸이트 오픈 1주년 축하드립니다~~ 경!!!! 축!!!!! ■20030401

더욱 더 싸이트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부자되는 비법~!  돈을 왕창? 끌어모으는 방법~! 아는 사람들끼리만 전수되던! 그 비법을 공개한 책을 소개합니다!!!  ^^

캐서린 폰더 지음. 국일미디어 펴냄. 제목 " 부의 법칙 "

왠 뜬금없이 돈이니 부니 한다구요? ^^ 재밌게도 이글의 저자는 목사님 입니다. 여자 목사님이죠. 가난은 죄다!  돈은 신성하다.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힘이다. 라고 말합니다.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은근히 돈을 멀리하고 부도덕하게 생각합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온걸까요?  왜 돈을 더럽고 나쁘게 생각하는 무의식이 만들어진 것일까요? 마음속 깊은곳에서 이렇게 돈에대한 알지못할 거부감과 괴리감이 스스로를 돈과 멀어지게 합니다. 돈!!! 이 돈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울수 있습니다. (물론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수미산과 같은 돈을 보시해도, 법보시만 못하다 하셨습니다만..) 아무튼 한교수님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왜냐하면요... 결국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행하며 가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돈에 대한 편견을 깨어주고 돈이 순환하는 법칙과 돈에 대한 진실을 알게 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눔의 돈때문에 얼마나 울고 웃고 합니까?  그러면서도 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경제학 이론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말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놀라운 이야기들을 쭈욱 읽으면 될듯 싶습니다. (사실 전 예전부터 들어왔던 터라 놀라진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의외로 놀랐다라고 하시더군요) 돈에 대한 것 뿐만아니라 이책은 삶의 지혜로 가득한 책인 듯 하여 과감하게 추천합니다. 한교수님께서도 잠깐잠깐씩 읽어보시면 꼭 도움이 될듯하여 장황하게 글을 올렸습니다. 부우자 되세요~~ ^^ 그럼 개업 1주년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건강하세요~


■김민환 ■싸이트오픈 1주년을 축하드립니다. ■20030401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한석훈님을 비롯한 이곳을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신지요? 싸이트가 오픈한지 1년이 되었다고 하니 첫돌을 맞이한 셈이네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컸음 합니다. 요번주 업데이트한 '이해하는 마음'이란 글 참으로 공감합니다. 정말 쉽지않은 일 중의 하나라고 보는데요. 무엇보다 당사자들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해결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인식이란 단순한 인지와는 다른 차원으로서 그것외에 도 '긍정','수긍'등의 의미가 함께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서로간의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그러니까 당사자들간의 현 문제에 대한 인지와 더불어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면에 대한 나름대로의 절충안적인 수긍과 긍정적인 태도확립,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개선하려는 본인들의 의지가 있어야만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것 같습니다. 사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지만요! 아무리 훌륭한 중재가 있어도 그것을 해결하려는 당사자의 긍정의지가 없다면 어려울것 같네요. < 단 한번이라도 '그렇다'라고 마음으로부터 긍정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과거의 모든 것을 긍정한 것이다 - 니체 >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임을 더 이상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전에 인류가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라크에 평화가 함께하길 기원하며........♥


■가람 ■잘 보고 있습니다. ■20030402

멋진 사진과 함께 지혜로운 글들 잘 보고 갑니다. 전에도 왔었는데 홈이 달라졌네여 ^^ 가끔 와서 봅니다. 이제 봄입니다. 사이트가 벌써 1년이 되었다니 축하드립니다. 좋은 날들 되세요. - 가람 http://byunhosa.netian.com


■sjk ■감사합니다. ■20030402

한석훈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을 체험한 이후로는 인생이 송두리째 변화되며, 그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무의미한 삶이 되어버린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아무런 의심없이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저는 크리스챤입니다. 크리스챤이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것을 주장하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바로 이곳에서, 지금 이순간에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의 본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시구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천국은 네 안에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남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저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만났지만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좋은 사이트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윤성아 ■juliase@empal.com ■잘 읽고 갑니다..^^ ■20030402

안녕하세요.. 하루건너 하루는 꼭 들려보는 사이트 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신거 같네요.. 님께서 같이 수행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다른 분들도 즐거워하나 봅니다... 대문이 바뀌었네요..^^ 연꽃이 색깔이 변하는데..너무 이쁘네요.. 님 말씀대로 요즘 틱낫한 스님이 "뜨고" 있습니다. 이때만 반짝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 졌으면 합니다.. 요즘은 틱낫한 스님 책 중에서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요즘 명상, 불교 등에 심취해있는데..모두 님 덕분이거든요.. 여기서 하나하나 추천하는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그리고..오쇼 라즈니쉬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데요.. 혹시 추천해주고 싶은 책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평화롭기를 희망하며..
 

■동방의물결 ■한교수님! 어제 한참 쓴 글이 다 날라가버렸네요.흑흑 ■20030403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에 영문도 모르게 컴퓨터가 다운되버렸습니다. 흑흑 한참 쓴것인데.. 별도로 메일을 보내려면 약간 번거로움이 있어서 싸이트 들릴때 생각나는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방명록을 이용하려고합니다. 어제의 충격을 뒤로하고 오늘또 글을 올립니다. 음...무슨말을 하려고 어제 글을 썼을까... ^^ 아 맞다. 음.. 아시는 내용이더라도 부의법칙이란 책을 읽고 실망하시진 않을듯 합니다. 서로 통하는 사람과 한두시간 대화 나누웠다고 생각하시면 만족할듯합니다. 또 다시한번 돈에관한 생각을 정리하실수도 있겠구요. 지하철이나 캠퍼스에서 잠깐잠깐 시간나실때 읽으면 금방 읽을 편한책이니 ... ^^; 저같은 경우에는 만원짜리 책을 사서 몇줄이라도 배움이 있는 책이라면 기쁜마음으로 그책의 평가를 좋은쪽으로 해버리는 경향이 좀있습니다. ^^; 사실 한교수님의 바쁘신일정과 읽어야 할 산더미같은 책들의 상황을 아는 저로서 괜한 말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 그리고 한교수님 책의지혜 코너에 정말 있어야 할 책이 없어서 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스승 라마나 마하리쉬에 관한 책은 언제쯤 올라올지요?  국내에 아루나찰라 총서로도 나와있고.. 여기 저기에서 조금씩 책이 나온것도 있는것으로 아는데요.. 마하리쉬님의 책은 제 개인적인 수행 초기때 참 재미있고 깊이 빠져들어 읽어던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읽었을정도로 유명한데요... 아주 재밌게도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바로 그 라마나 마하리쉬를 찾아 영국에서 인도로 영적수행을 떠난 서양인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한교수님을 알게된 한참뒤에 제 친한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우연히 알고보니 그친구와 한교수님이 또 각별한 사이였다는 식의 느낌입니다. ^^; 얘기가 옆으로 또... 라마나 마하리쉬님에 대한 한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행입문용으로 마하리쉬의 책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명록 밑에 어떤분이 라즈니쉬님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라즈니쉬님의 책이 너무 방대하고 다방면에 걸쳐있고...해서 어떤것을 추천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마하리쉬님의 책중에서도 그 유명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기범 ■그래, 이라크인들을 위해... ■20030404

솔직히 전보다 특별히 뭐가 좋아졌는지 모르겠는데 싸이트 오픈 1주년, 그러니까 생일이네. 그동안 관리하느라 수고 많았겠다. 그리고 축하한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는 싸이트가 되길 빈다. 그래, 우리 한번쯤은 죄 없는 이라크인들을 위해,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해야해. 또 부시를 비롯해 플라이셔, 럼스펠드등이 TV에서 빨리 사라지게 해달라고도 기도해야지. 못 참도록 목구멍이 컬컬할때 전화할께. 얼마 못 참을거야.


■윤성아 ■juliase@empal.com ■안녕하세요.. ■DATE=20030408

요즘들어 일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더 자주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상처를 잘 받아서...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굉장히 속상해 하거든요... 회사라는 것이 이익집단인지라..그리고 제가 하는 일이 대부분 클라이언트와 협상하는 일이 많아서..때론 심한 말을 들어도 감내해야하고..제가 약자이기에.. 혼자 힘들어하다가..제 풀에 지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제도.. 제가 한방 먹었죠.. 전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원체 약육강식이 판치는 곳이 또한 살벌한 직장이니... 제가 깨갱할수 밖에 없네요... 이런 현실이 너무 싫지만...따로 대안이 없어서...하루하루 열받는 일이 있어도 그냥 잊혀지려니 하고 넘어가곤 하죠.. 어쩔 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저같은 현실순응자는 감히 용기내기 어려운 결단이지요... 어쩌다 보니 신세한탄이 되었습니다... 어제 하두 울어서 부은 눈을 진정시켜야 겠네요.. 그럼..


■friend ■윤성아님께 ■20030408

사이트에 들렸다가 우연히 윤성아님의 글을 읽고, 테레사 수녀님의 글이 생각나서 이곳에 올립니다. 윤성아님, 힘내세요.

Mother Theresa had this on her wall....

People are often unreasonable, illogical, and self-centered.

Forgive them anyway.

If you are kind, people may accuse you of selfish, ulterior motives.

Be kind anyway.

If you are successful, you will win some false friends and some true enemies.

Succeed anyway.

If you are honest and frank, people may cheat you.

Be honest and frank anyway.

What you spend years building, someone could destroy overnight.

Build anyway.

If you find serenity and happiness, they may be jealous.

Be happy anyway.

The good you do today, people will often forget tomorrow.

Do good anyway.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it may never be enough.

Give the world the best you've got anyway.

You see, in the final analysis, it is between you and God - It never was between you and them anyway.


■한석훈 ■윤성아님의 글을 읽고 ■DATE=20030408

아래 올려진 윤성아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아파 이곳에 직접 답글을 써봅니다. (지금까지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신 분들께는 모두 개별적으로 메일을 보내드렸지만요.) 님의 글을 읽고 제가 마음이 아픈 것은, 님의 고통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고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님께 고통을준 그 사람들도 비슷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조직생활 할 당시, 저 자신의 특수한 처지로 인하여 많은 부정적인 상황에 놓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화나고, 짜증나고, 복수하고 싶은 그런 상황들... 비록 제가 그런 상황들에 썩 잘 대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헤치고 나갔다고 자평합니다. 결국엔 저에게 부정적인 상황을 안겨주었던 그 사람들 모두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도 보복하지 않고 평화롭게 조직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들은 모두 저의 성장을 위한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런 부정적인 상황을 겪었을 때, 그것을 먼저 자신과 타인들에게 털어놓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님께서 이곳에 글로 털어놓으셨듯이. 그 다음에는 그 부정적인 상황들을 저주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님께서도 좋아하시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따르자면, 그것들을 나의 내면의 기름진 거름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방법을 써서 자주 성공해봤기에 추천해드립니다. 부정적인 상황을 지긋이 바라보고, 쌍방의 처지를 이해해보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그러한 집중이 결국은 나를 더욱 크게 하는 거름이 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지요. 조만간 그로 인해 내가 더 커질 것을 굳게 믿으며.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님께서 마주하고 있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님 자신 뿐입니다. 힘을 내세요. 지지 마세요. 그러기에는, 님께서 너무도 소중한 존재지요. 이것을 아시고 미소 지으시기 바랍니다. 제 머리도 못깎는 중 주제에 감히 조언을 드렸습니다. 저의 내면의 선의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그러했음을 이해해주시기를. 다른 길벗님들, 방문객님들께서도 윤성아님께 좋은 답글 남겨주실 것을 청해봅니다.


■한석훈 ■테레사 수녀님의 글 번역 ■DATE=20030408

(아래에 'friend'님께서 남겨주신 아름다운 글이 영문인 탓에, 혹여 읽기 불편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몰라 제가 우리 말로 옮겨보겠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방 벽 위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여라.

네가 친절하다면, 사람들은 네가 이기적이며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래도 친절하거라.

네가 성공한다면, 너에겐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또 몇 명의 진짜 적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성공하거라.

네가 정직하고 솔직하다면, 사람들이 너를 속일지 모른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거라.

네가 몇 년을 걸려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떤 이가 하룻밤 새에 부숴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만들거라.

네가 평정과 행복을 찾는다면, 사람들이 너를 질시할지 모른다.

그래도 행복하거라.

네가 오늘 베푼 선행을 곧잘 사람들은 내일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선행을 베풀거라.

이 세상에게 네가 가진 최고를 준다하여도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 세상에게 네가 가진 최고를 주거라.

이보아라, 결국에는 너와 신 사이의 일이다. - 그것이 너와 그들 사이의 일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윤성아 ■juliase@empal.com ■따뜻한 글 정말 감사합니다... ■DATE=20030408

님들께서 저에게 주신 따뜻할 말씀들 잘 읽었습니다... 어제 그 일이 오늘까지 계속 연결되는 문제로 남아있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까도 그 일 때문에 회의 들어갔었는데 일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는데..뜻밖에 반가운 메일이 와 있더군요.. 지금 님들께서 적어주신 글을 읽고나니..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의 아픔에 대해서 진심으로 같이 아파해 줄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무척이나 큰 위안이 됩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에게 힘을 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야 겠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김민환 ■4월의 향~기 !!! ■20030408

봄기운 가득한 가운데 따뜻한 내용이 오가는 情많은 싸이트!! 모두가 없는것을 생각하기보다 지금껏 받은것을 생각하고 남이 나에게 못한것을 생각하기보다 (비록 미약할진 몰라도)지금껏 나에게 해준것을 생각한다면 지혜로운 인생을 살수있지 않을까요? 벌써 힘이나셨다지만 앞으로 있을 잠재된 어려움에 미리 응원을보냅니다. ★윤성아님께!! (힘내세~요)

P.S. 때론 '모'아니면 '도'라는 강경한 자세도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는것 같던데.... ?!?!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조금 늦었습니다. 개업1주년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DATE=20030414

개업1주년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내년에는 저또한 같은 축하를 받고 싶습니다. ^^; 한교수님 요즘 저도 생업으로 바빠 연락드리질 못하고 있었네요. 인연인지... 운명인지...의지인지...알수 없지만, 일거리가 늘어서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좀 황당하게도... 음... 무슨일을 개업했냐고 물으신다면..^^; 아직 할말이 없습니다.  한 보름정도 지나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수 있을것도 같은데..대학교 앞에 애들이 놀만한 공간을 좀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그일로 너무 바빠서...책읽을 틈이 없었습니다. 틈이 있었어도 책읽을 마음이 도대체 일어나질 않아서요.. 오늘은 융에 대해서 한교수님께서 올린 글을 좀 보았습니다. 아주 재미있었구요.  한교수님께서 추천하신 책을 구하려고 좀 알아보았는데... 어렵더군요.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큰 서점에 한번 나가봐야지..인터넷으로는 구하기 힘든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보물이라고까지 평을 하셨는데.. 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읽은 몇권의 책들에서 융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해서 호기심이 많이 갔었습니다. 좋은 책 추천해주신 것 감사드리구요. 책의 지혜코너에 마하리쉬 책이 결국 올라왔더군요. ^^  많이 기쁩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마하리쉬와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사람마다 코드가 달라서 내가 읽고 감동받은 책이 남에겐 정말 따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걸 알면서도...추천하는 심정은... 아마도 한교수님께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융과 교수님께서 말한 것처럼 저또한 종교는 생각없이 믿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한 경험과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유대교의 율법학자들을 꾸짖던 예수님의 뜻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세영 ■sylim@kut.ac.kr ■잘 쉬고 갑니다. ■20030416

맑은 하늘과 청량한 바람과 시원한 물을 마신 것에 비유할까요. 연꽃으로 장식한 문을 젓히고 들어와 보니 열린 마음으로 계속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주인이 보였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줄기차게 말입니다. 종종 컬컬할 때면 들려 물한모금씩 마시고 가게 될 것 같습니다. 2003년에 이루려고 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를, 이루어지는 만큼으로 또 감사하시기를, 그리고 함께 이랔크의 얼린이들이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그리고 그들이 당한 공포의 상처와 폭력의 흔적이 감싸 어루만져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박명기 ■joowoo@dreamwiz.com ■지혜에 감사하며 ■DATE=20030423

반갑습니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렀습니다. 저의 www.synage.net 사이트에서 양서를 구매 대행을 한답니다. 들러서 참고하시길... 항상 감사를..


■빈윤경 ■ykbin@naver.com ■이젠.. 자주 들르는 사이트가 되었네요.. ■20030512

우연히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해놓은 책의 지혜라는 페이지를 검색하게 되어서 좋은 책들을 보다가 한석훈 님의 사이트 전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후의 느낌은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분들이 많구나 하는 기쁨이였습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불만족과 불편함으로 살아오다가 결혼후 참다운 평안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도중이였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그 깨달음을 느낀 순간들의 기쁨과 평화는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한석훈님의 사이트는 길동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주 한번씩 업뎃되는 내용도 기다려 집니다. 한석훈 님의 마음의 평안이 언제나 함께 하시길 기원하면서 이런 평안함을 같이 누리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는 바램도 해봅니다.


■채수민 ■사이트 잘 보고 갑니다. ■DATE=20030515

검색엔진에서 요가난다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좋은 사이트란 느낌이 오네요 ^^ 주인장님의 종교관,신앙관도 저랑 유사한 것 같아서.. 사실 전 천주교 신자지만, 다른 종교에도 관심이 많고, 여기저기 많은 방황(?)했는데..^^ 구경 잘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내용 올려주세요 ^^ 참! 요가난다님의 그 책은 저도 여러번 읽었답니다. 절판되어서 구입은 못했고, 도서관에서 빌려서요.. 그게 벌써 수년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


■윤동주 ■ydjman@hanmail.net ■멋진 홈이군요. ■20030516

예전에 이곳을 찾아 왔엇는지 기억이 나지는 안치만 저의 홈이 이곳에 링크되어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쁘기도하고 감사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정말 다양한 자료를 올려 놓고 계시고 디자인도 좋군요. 정말 부럽습니다. 더욱 발전하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김종규 ■산책하다 돌아가며... ■DATE=20030526

오늘은 느긋하게 한석훈님의 정갈한  홈페이지를 돌아보다가 그냥가기 섭섭해서 몇자 올립니다. 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제자신도 정화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네요. 바쁘신 가운데도,홈페이지를 꾸려가시는걸보면 완벽을 추구하시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농담입니다.^^ 비가 시원스레 내리는 밤에,님의 사이버정원을 산책하다가 휘바람불며 돌아갑니다. 신의 축복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조성례 ■hkb4444@hanmir.net ■월시의 새 책도 함께 소개 바랍니다 ■20030526

안녕하세요. 늘 진솔한 일상 속의 수행을 엿보며 더불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책의 지혜를 통해 동련의 사색을 함께하는 선생님과의 코드가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이번에 닐 도널드 월시의 새 책 <신과 나눈 이야기 - 새로운 계시록>이 나왔습니다. 함께 공유해야할 책 같아 이렇게 글 올립니다. 아무쪼록 좋은 에너지가 되길 소망합니다.


■홍승아 ■inmuri@yahoo.co.kr ■간만에 책을 읽다.. ■DATE=20030527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소설을 거의 백번쯤 읽나봅니다.. 읽을때마다 남다른 느낌이 들지요. 그냥 스쳤던 대사나 묘사들도 참 사무치게 다가오는 그런날도 있지요 이동하란 작가의 오래된 단편..'잠든 도시와 산하' 이건 18살 이후로 계속 읽었고. 최근까진 윤대녕의 '파아노와 백합의 사막'이란 단편을 무지 읽었지요.. 남들은 무모하고 소모적인 시간이라 할진 몰라도 제겐 중요한 작업이지요. 끊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뭔가 남다른 감동을 찾아 살아야하는.. 그랬던것 같습니다. 늘 내 삶에서 나를 이어갈 감동들을 찾아서 사람들속을 세상속을 그렇게 미친듯이 헤맸나봅니다.. 격한 것에서 잔잔한 것으로의 이전..이제 변화랄수 있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장마철이 옵니다. 그전 계절에서 가장 좋았던 감동은.. 스승의 날. 들꽃을 뜯어다가 내게 쥐어주던 어린 소녀의 수줍었던 손..그게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5월은 이렇게 갑니다.. 남도의 사진들..너무 감동적입니다. 들르길 잘했답니다.. 우울한 날이었는데...... 오늘 저는 또 하나를 버릴거 랍니다.. 오랜 집착중 하나...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한교수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죠? ■20030605

아주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그동안 연락뜸했었는데... 저에겐 아주 커다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엉겁결에 시작했던 가게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적자는 면하고 있습니다만, 개업한달만에 동종업종이 2개나 옆에 생겨버렸답니다. ^^; 영적으로는 7년넘게 끌어온 답을 알게되었다고 해야하나요 찾았다고 해야하나요. 찾아서 찾아지는게 아니라서..그동안 해메였던 것이 한참 부끄럽습니다. 요즘은 수행에 탄력을 받아서 재밌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책읽을 틈이 없었는데 최근 시간이 좀 생겨 류시화님의 <지구별 여행자>를 다 읽어버렸습니다. 아주 유쾌한 책이더군요. 인도여행15년 결산기였는데 제가 인도여행을 하고온 기분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후속작인 <천사들의 제국> , 조엘로스차일드의 <영혼의 시그널> , 한문화에서 나온 <라마크리슈나> <있는 그대로>, <톨스토이 단편집1,2>  <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 등등을 읽었네요. 연금술사는 정말 환상적인 동화같았습니다. 2천만부가 넘게 팔렸다니 그책을 읽은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다음에 읽을려고 베로니카 죽기로...도 사놓았습니다. ^^ 가장 강렬하게 읽었던 책은 역시 라마크리슈나 스승의 책과 마하리쉬님의 책이였는데... 이책들을 읽고 매우 큰 감명을 받아 수행에도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톨스토이는 언제 읽어도 진국인 사람입니다. 성자라고 생각합니다. 티피는 역시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자연과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존재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만...아기 그림책으로도 꽤 유용할것 같은데...아기가 없는분들께는 비추입니다. ^^ 천사들의 제국은 전편보다 흥미진진한 모험과 기발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좀 부족한듯 보입니다만 베르베르의 여러가지 생각이짬뽕되어 있고, 여러 인간군상들의 내면세계를 보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영혼의 시그널>은 파울로 코엘로의 극찬과 닐도널드 월시가 서문까지써서 매우 유명한 책인데요. 감동 그자체였습니다. 이책구하려 몇시간 뛰어다닌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음...오랜만에 소식전하면서 책얘기만 해버렸네요. 한교수님께서도 건강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시리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들렸고 글올리고 갑니다. 그럼 이만..


■고요 ■juliase@korea.com ■안녕하세요~~ ■20030609

처음에 이거저거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들렀습니다. 우연히 들른 사이트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들르게 되었네요.. 자주 드나들면서 님의 수행 일상을 읽으며 저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소개해주신 책들을 한권 두권 읽다보니 저또한 많이 변화되고 가고 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항상 사이트 관리에 열심히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늘 평화로우시길 바랍니다..^^


■milarepa ■milarepa@cein.or.kr ■한석훈님의 신실한 Faith에,,,, ■20030610

NAMASTE! 님의 신을 향한 신실함에 감탄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우연치 않게 둘러본 한석훈님의 신앙싸이트는 각각의 언어들이 진지함과 진심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추천하신 책들을 비롯하여 많은 배울 점이 있겠다 싶습니다. 내면을 즐겁게 바라보는 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깊은 밤! 내면을 향한 한석훈님의 마음에 이끌려서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찬찬히 바라봅니다. 저기 위에 하늘! 과거를 뽐내는 초롱초롱 조용한 별들로부터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가끔 들러서 영혼의 친구처럼 여겨지는 님의 좋은 글들과 지혜의 도움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NAMASTE ♬


■처용 ■먼발치에서... ■20030614

철저하게 육체의 정욕과 거짓과 위선으로 무장하며 살아가고있는 내 자신이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냥 명상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좋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철없는 중생들 감동주면서 밥 굶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제 그 재미도 시들해가네요. 가끔 찾아뵙겠습니다.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한교수님 새 책이 또 올라왔군요~ ^^ 반갑습니다 새책~ ■20030616

홉킨스 박사님의 의식혁명이 드디어 올라왔군요. 저도 강추했던책인데요...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에 가보니 거의 새책인데 절반값도 안되게 팔더군요. 순간 또 구입해서 지인들께 선물할까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T  이미 많은 책을 들고 있었던 터라 또다시 구입할순 없었습니다. 관심이 없는 분들께 이책은 아주 지루하거나 어려울수 있는데.. 반면에 호기심많은 분들에게는 아주 흥미진진한 소설보다더 재미있을수 있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의식레벨 측정원리는 매우 과학적입니다. 이미 수년전에 O-RING 테스트에 관한 것들이나 근운동 역학에 관한 것들을 섭렵하면서 연구했을때는 정말 그 열기가 대단했었습니다.  CRA 테스트라는 것도 같은 종류인데 핵심은 그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해로운것과 유익한것을 구분할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으며 그답은 주관식이 아닌 2진법식의 예스 또는 노로 답이 주어집니다. 한교수님께서 이쪽에 관심을 갖고 조금 공부해보신다면 정말 놀라운 사실들을 더 발견하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무라박사의 오링테스트라는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근육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테스트에는 변수가 너무도 많습니다. 정말 많기 때문에 정확한 실험과 재현성에 상당한 무리가 많이 따르는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러한 발견자체가 너무도 혁명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호킨스박사 스스로도 말했지만 측정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의 측정이 더 정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00% 정확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최대 80%까지는 정확한것 같습니다. 근운동역학은 채널링하고는 다르며 참자아에게 직접 묻고 대답을 받는 형식입니다. 물론 잡다한 스스로의 생각을 배제해야 하므로 근육의 강도로 대답을 받는 것이지요. 진리를 확인하는 것은 의학으로도 가능합니다. 그점이 정말 재밌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길이 실제로 건강이나 생리적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이 얘기는 너무 길어서 다음기회를 기약해야 겠습니다. 그럼 이만..감사합니다.


■Lee, Sara ■sarayounglee@yahoo.com ■Thank you for your wonderful website! ■20030620

우연히 Richard Clayderman의 site를 찿다가 만난 Dr.Han's Faith Site 를 읽고서 제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 LA에서 직장에 다니는 한 평범한 사람인데 internet에서 음악도 듣고, 고교 동창 website도 가끔씩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한국 website에도 이렇게 좋은 신앙 page가 있을줄은 전혀 상상을 못했거든요. 하긴 한국을 떠난지도 28년이나 되었고 1981년 한국다녀온 것이 마지막이니 그동안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상상이 잘 안됩니다. 아무튼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고 미국에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틀에박힌 형식적인 교회생활속에 오래 있다보면 껍질만 남고 알맹이는 빠져버린듯 허탈한 종교생활을 하기가 쉽지요. 늘 깨어 있으려고 나름대로 신앙의 도움이 되는 책들도 읽고 나를 위한 생활에서 남들을 위한 삶을 살수 있게 되기를 위하여 늘 기도하지요. 저도 타종교에 대해서는 open mind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좋은 신부님의 강연이나 (또는 수녀님, 저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매우 좋아합니다),좋은 스님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듣고 싶습니다. 결국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든것이고,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진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점은 취해서 자기 신앙에 도움이 되게 하면서 사는 날까지 배우며 고치며 깨달으며 실천하며 사는것이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교수님의 "수행일상" 잘 읽었습니다.
 

멋있는 사진들과 어우러진 일상생활속에서의 작은 깨달음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지혜"속에서 제가 읽고 싶은 책도 보았고 "링크"속에서 제가 존경하는 최일도목사님도 만났구요. 김진홍목사님과 같이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시지요. 종교나 교파는 다 인간들이 만든것이지 예수님이 만드신 것은 아니니까 거기에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은 이웃들과의 관계이겠지요. 모든일의 해결은 기도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실천이 가장 힘들지만요. 그래도 우린 노력해야겠지요. 테레사수녀님처럼은 못해도 아주 작은일부터 말이에요. "Tuesdays with Morrie" 에 나오는 Morrie 교수님처럼 멋진 교수님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우리나라가 총체적으로 부폐되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기에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website가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In His Amazing Love, Sara
 

■이희정 ■tatemodern@hanmail.net ■수행일상을 자주 찾게 되는 이유... ■20030622

안녕하세요. 이희정입니다. 어느덧 해를 넘겨 님의 수행일상글에 고정독자(?)가 되었답니다. 우연히 인터넷사이트를 검색하다 만나게 된 곳인데 어쩐 이유인지 마음이 가 한 번 두 번 방문하다 요즈음에는 이메일을 확인하는 일처럼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문득 '고맙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님의 신비체험같은 독특한 경험은 없지만 신과 창조주의 존재함을 믿으며(어떤 종교적 배경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육체와 정신만의 존재가 아닌 영혼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상대적으로 물질계에서 신성함을 구하는 체험을 위해 지구에 왔다고 간주하고 있답니다. ^^;;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모든 사회활동을 접는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분명합니다. 요즈음은 유학을 준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학준비는 지난날의 생활과 전혀 다른 일상에 대해 커다란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만 실은 아무도 제 근본적인 변화를 눈치채고 있지 못하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지만 말이지요. 사회적 존재로 안정을 누리던 시절(세속적인 기준에 불과한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아시죠?) 존재의 불안함이 극에 달했던 지난날에 비하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개인적으로 느끼건데, 내면의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은 사회와 분리되는 것이 우선이겠다는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좋은 사진들과 감수성이 느껴지는 님의 좋은 글들에 대해 감사합니다.


■Milarepa ■milarepa@cein.or.kr ■내 마음의 신에게,,,, 너 자신을 용서하라고 ■20030625

이야기를 그리 즐기지 않았었는데, 어제는 성서완벽의 개신교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난 그(녀)를 신으로 존경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계속 이을 수 없었습니다. 침묵할 수 밖에는, 돌아와서는 저녁에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신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내 마음에 대고 이야기합니다. 내 마음의 신에게,,,, 너 자신을 용서하라고, 사랑한다고~! 나는 그 사랑에 빠져 잠이 듭니다.

◈ 책의 지혜에 있는 목록의 지혜서를 모두 읽어보고 싶은 바램이 있네요..모두 재밌고 즐거운 책으로 보입니다. ◈


■서미경 ■provenceseo@hanmail.net ■좋은 싸이트네요..*^^* ■20030627

안녕하세요.한석훈 선생님...^^ 이렇게 좋은 싸이트를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잠시 들리면서 글 남깁니다. 앞으로 자주 올 것 같아용~ 그럼... 낼도 넉넉한 하루 되십시요.^()^ 참, 평촌 어디쯤이시죠? 연구실이...?? ^^


■Milarepa ■milarepa@cein.or.kr ■나 자신의 눈에 결국 비쳐지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태만하는 것 ■20030702

"의식하고자 하는 자는 그 영혼을 다한 진실을 맛보려는데 자신의 눈에 결국 비쳐지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태만하는 것입니다."라고 자기반성을 합니다. 방명록글들에 일일히 메일을 띄워주시네요. 번거러우실텐데도 저는 답글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전 "신과 나눈 이야기"-월쉬의 책 3권을 읽었습니다. 많고 많은 비젼과 비밀들을 담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신의 모습~!이 은빛으로 퍼져나가는 보석들처럼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삼나무, 교육에 관한 이야기,,,유치원행성, 중학행성 ,,, 왠지 신이말하는것이 현실이고 조용한 소용돌이안에서 나는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내게 습관이된 "바깥을보는 것"으로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답답함을 느낌니다.(ㅠ,ㅠ), 제 에고가 아직 건재하게 팔팔히 운동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책이 조용하게 말해주는 그것으로 나는 고맙게 고무되었습니다. 우연히 전라도 여행이라는 글을 읽다가 한석훈님께서 세상에 살면서 신과 함께하겠다는 그 비슷한 말씀(?)을 읽으니 제가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실은 제가 전라북도에 살기에 보다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민박집 주인님도요. 내용은 적은데 글만 길어졌습니다. 10줄을 넘어가다니,,ㅋ.ㄷ 신의 사랑안에서 평화와 사랑을 만끽하시기를,,,,,,


■이희정 ■tatemodern@hanmail.net ■맑은 물에 세수를 한 느낌... ■20030703

안녕하세요. ^^ 늦게나마 주인장님의 연구소 open을 축하드립니다. 간만에 관대함에 대하여 올려주신 글을 보고 마치 맑은 물에 깨끗이 세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원한 사진도 좋았구요. 모처럼 저녁모임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사람의 이기적 속성에 질리고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저를 경계하는 느낌을 받으며 무척 기분이 상했거든요. 이제 모두 씻어버리고 다시 제가 속한 일상으로 돌아와야겠습니다.


■동방의물결 ■한교수님!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20030707

연구소일은 잘 되어 가시는지요? 오늘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한교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스티븐 카비의 경험담과 교수님의 이야기들을 감사히 읽었습니다. 또 지금바로 여기서라는 글도 읽었습니다. 한교수님 싸이트를 하루 하루 손가는대로 클릭하여 글들을 보고 있는데 언제나 제가 필요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한마디로 의미있고 따뜻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도 같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많은 한교수님 팬들 ^^ 역시 저와 비슷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행복하시겠어요~ 그러고보니 저는 한교수님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지 뭔가 통한다는 느낌으로 늘 글을 올립니다. 한교수님이 올리신 글들을 읽다보면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습니다. 조금씩 한교수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시작합니다. 한교수님도 건강하세요~
 

ps;  참, 오늘 읽은 글중에서 한교수님의 식성?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었습니다. 한교수님께서는 먹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아무거나 잘 먹는 것이 건강에 유익할지.. 아니면 몸에 좋은 것은 따로 있는지..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 경이의 초소식요법" "밥따로 물따로 음양식사법 "  한번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사람의 몸또한 얼마나 경이로운지, 놀라실겁니다. (신체의 신을 저는 神이라 생각합니다. 신이 거하는 성전인 몸이 얼마나 음식으로 오염되고 훼손되는지...정말 요즘 심각한 문제입니다.) 에디터에서 나온 "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이란 책은 유명한 전홍준이란 의사선생님께서 쓴책인데 아봐타마스터입니다. 국내 건강서적중 깊이나 내용면에서 최고입니다. 이분과는 아직 인연이 닿지않아 만나뵙지 못했네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을 갖으시면 명상또는 신의 가르침에, 아니 신께 훨씬 더 가까이 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경 ■moksha99@hanmail.net ■참, 오랜만입니다..^_^ 평안하시길.. ■20030710


■뿌뿌 ■ㅇㅇㅇ ■DATE=20030710
 

■Milarepa ■milarepa@cein.or.kr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 ■20030725

절대가 현상을 경험하는 의식의 통로인 몸(?)은 하나의 현악기처럼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해도 팽팽하게 해도 좋은 연주를 할 수 없다고 제자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는 고타마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고타마 붓다가 12여년만에 그의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보물을 가지고, 그의 아내 야소다라가 폭발했습니다. 흐느껴 오래동안 웁니다. 눈물이 마를 무렵, 그는 아껴두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뭔가를 얻었소. 뭔가를 깨달았소. 그대가 진정하게 되면 나는 그대에게 내가 깨달은 진리를 주려고 하오. 나는 그대가 실컷 울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렸소. 12년의 세월은 긴 시간이오. 그대는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오. 그대가 화를 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아직도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오. 그러나 이 사랑을 초월한 사랑이 또 있소. 그 사랑 때문에 나는 당신을 다시 찾아온 것이오. 뭔가를 말해 주려고 말이오" 그러나 야소다라는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고요하기 때문에 느끼기가 쉽지 않았나 봅니다. 싯다르타는 우리가 반응하는 것과 다시 반응하는 것은 양 극단이고 이것이 일상적으로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시계추처럼! 고타마 붓다가 말하는 방식은 너무도 합리적입니다. 그는 고요한 사랑이란 방식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행위의 반응과 반작용 사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판단이 정지된 지점인 고요한 곳에 있는 그런 흐름들을 들어다보면 그 고요에 따라서 나도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흩어진 고요조차도 그렇게 강력한가 봅니다. 그리고 전 원래 영향을 잘 받는 편인가 봅니다. 친구들에게도 사회에서도~요! 흔한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사랑원하지 않아~!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그런 흔한 사랑을 초월한 사랑이 뭘까요~! 님들은 아시지요? ㅜ.ㅜ


■山河 ■bud1255@hanmail.net ■나를 보고 내가 본다 ■20030726

_()_

http://cafe.daum.net/sariza

건강하세요


■빈윤경 ■ykbin@naver.com ■스페샬 울타리없는 신앙!! ■20030727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많이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좋은 글들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울타리 없는 신앙을 보고 마음이 찡하네요. 정말 감동입니다.^^; 꼭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노숙자분들과 조선족,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런 소망이 생깁니다. 그럴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물질적인 여유가 생길것이라고 믿어요.^^; 하시는 일 다 잘되시구요.. 즐거운 휴가도 보내세요.


■Milarepa ■milarepa@cein.or.kr ■스스로 되어서 우러나오는 그런  ■20030728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한석훈님의 신앙 싸이트 덕분에 요몇달간은 매우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책속 지혜의 속삭임이 절절이도록(^-`) 기쁘게 합니다. 님의 싸이트에도 그 책들에서도 내면에서 스스로 되어서 우러나오는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얼마전에 글을 한번 올리긴 했는데 왠지 이상해서 글을 지우게 됐습니다. 10줄을 훨씬 넘어버려서지요(<,,>) 농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용에 대해서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예상대로) ㅜ,ㅜ 며칠간의 동해안, 경상도 휴가를 마친 후라 가벼운 마음으로 페테르 에르페의 "나는 신이다"라는 책을 부록으로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문득 데미안의 첫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정녕 내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스스로 되어서 우러나오는 것을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하는,, 저는 그렇게 어려웠던 것을 그만두려 합니다. 그리고 모래들을 겸손히 비키며 샘솟는 우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오늘을 살아가겠습니다. 사이트에 자주 들러 구경도 하구 말이지요.. 님들 모두 신의 사랑이 가득한 삶안에서 행복하세요. Namaste~!


■한석훈 ■좋은 글들 감사드립니다. ■20030731

단골 손님이신 Milarepa님께서 며칠 전에 올려놓으셨던 글을 삭제하셨길래, 제가 그 글을 다시 읽고 싶다고 졸라서 재게재의 허락을 받고 요 앞에 다시 올려놓았습니다. 시계추의 움직임 한 가운데 지점의 고요함에 관한 묘사는 매혹적입니다. 고요한 지점을 응시하다보면, 양 극단을 오가는 시계추같은 현상 속의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을 'healing(치유)'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러 손님들 좋은 글 많이 나눠주세요. Namaste.


■Milarepa ■milarepa@cein.or.kr ■그 사람의 완벽한 연기 ■20030808

수행일상(8월7일자)에서 '사람의 관점은 정말 다양하구나'하는 생각이 들도록 도와준, 종교다원론을 기복 대상의 증폭성향의 발로로 파악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신의아들(친구?)이 아닌 것으로 살기로 결정하며 존재하는 그 사람의 완벽한 연기(?)에 감탄합니다. 대단해~요~! That's it 여름방학이라서 좋습니다. 저는 섬의 학교에 다닙니다(사실은 숙식을 해결합니다). 섬에 들어오기 며칠전 상당히 오랫만에 축구를 하다가(ㅜ.ㅜ) 발을 다쳤습니다. 다리가 아프므로 신께 "아! 뭐 고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도 기쁜가 봅니다. 전 운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운동하는 것을 몇년동안씩이나 그만두었기 때문에 격한 운동을 제몸이 못따라 잡을거라 생각 못했습니다.(아차~!) 냉장고안의 수박이 차겁습니다.(아차~!) 더운 여름 배탈, 감기조심하세요.... 변산해수욕장에서 멀리 보이는 작은 섬안에서,,,,,


■김민환 ■잘 지내시는지요? ■20030808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제가 개인적인 일로 인해 무척이나 바쁜생활을 보내고 있는 관계로 오랜만에 인사드리게 되네요. 잘 지내시는 것 같고 여전히 무척 바쁘신것 같군요. 삶에 있어 여유란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요즘입니다. 바쁜생활은 제 마음까지 옮아매는군요. 나태또한 좋지 않은 결과를 나타내기란 마찬가지란 생각에서 적절한 생활의 균형이 얼마나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되어집니다. 다시금 부족한 글이라도 가끔씩 올릴 수 있길 바라며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youknow ■yoonho_kim@hotmail.com ■우연히 발견하고 저의 즐겨찾기 사이트에 추가 시켰습니다. ■20030820

반갑습니다. 저는 얼마전 1주일의 휴가기간동안 계룡산 마음수련원에 다녀 왔었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후, 약간의 갈등과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데, 그 곳에서 방편으로 제시하는 방법들에 대한 의문들이나 그곳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 등에 대해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곳에 계속 몸담기보다는 혼자서, 수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곳에서는 혼자서는 어렵다고 만류했지만요. 사실 혼자서 명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전에 읽었었던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를 다시 읽고 있는데, 한구절 한구절 마음수련원에서 이야기한 것과 많은 공통점이 있더군요. '삶의 비밀은 죽기전에 살아서 죽는 것'이란 말이 대표적입니다. 한참 책을 읽다가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다, 이 사이트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자주 들러 보게될 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Milarepa ■milarepa@cein.or.kr ■<<죽기전에 살아서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다. ■20030821

우리가 신이나 부처가 아니면 신선이 '되려고 할 때'에 '죽기전에 살아서 죽는 것'는 필수적입니다. 고대의 유명한 로마의 누구인가는 '나는 매일 죽는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매일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상태를 이룬(&이루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사람의 충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어서 곧 실수하지요. 만약 어떤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재미나고 좋은 목표입니다. 하지만 존재하는 최고(?)의 상태를 포함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몸이 나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저는 최고의 상태를 제 목표로 하려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즐겁게 생각하며 고요히 생각합니다. 부처는 '여래'라고 하였던 상태이며 신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고 할 때의 그 상태를 저는 궁극적인 목표로 하려 합니다. 그때에 몸이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살아서 죽는 것이 비록 <생사를 초월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 엄청나게 커다란 천지신명이여~! 그 천지신명이 환상이었음을 알게되는 시작점이 아닐지? 산에 가셔서 수련을 하신 youknow님의 글을 읽고 '무명'속에서 허우적대듯 생각하였습니다. <<죽기전에 살아서 죽는 것>>에 대해 ~! NAMASTE~!


■한석훈 ■참된 수행의 방식들에 축복을 ■20030824

Youknow님께는 수행의 진전을 비는 메일을 보내드렸지만, Milarepa님의 글에 대한 답신은 이곳에 그냥 적어봅니다. 저는 Milarepa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읽고 들은 정보에 의존한 이성의 판단으로서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제가 체험한 초월적 현상(또는 실재?)에 비추어 보아서도 동의합니다. 수행의 그 모든 다양한 방식은 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영원과 절대자에 맞닿아 있는 것은 이 몸이 아니라 그것의 주인인 '참나'임을 믿습니다. 그 참된 나를 드러내도록 도와주는 모든 참된 수행의 방식들에 신의 축복이 함께하시옵기를 기원합니다.


■빈윤경 ■ykbin@naver.com ■이번주 수행일상 정말 공감입니다. ■20030828

바쁘신 중에도 항상 좋은 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루 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 오늘도 기다리던 사이트에 방문을 해서 즐거운 글들을 읽고 혼자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마 저도 한석훈님처럼 자살하는 사람들의 행동변화중 많은 부분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그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향이 한때는 부끄럽고 싫었던 적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사색하고 조용히 행동하는 내 모습이 점점 나의 진짜 모습이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싶은 마음, 남들이 좋아하는 행동을 위해서 억지로 활발하고 밝아 보이려 했던 그런 가식을 벗어버리고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나를 받아들인 그순간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다는것이 참으로 힘이 되네요. 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하시는 일 다잘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지수 ■hah-young@hanmail.net ■오늘 처음 사이트에 방문합니다. ■20030904

우연히, 아니 많은 우연으로 엮어진 필연으로 이 사이트를 방문하게 됩니다. 저는 님과는 다르게 기독교(신교)쪽에서 회의를 가지고 신을 바로 보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불교와 도교를 포함한 신을 향한 여러 종교를 살피고 있습니다. 님께서 이미 사유하시고 경험하신 내용이 제것과 많이 다르지 않아 반갑기도 하고 또 이미 몇 걸음 앞서 가시는 님을 볼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직장이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님께서 사유하시고 수행하시며 또 이런 인터넷의 공간까지 채워주심에 감사합니다. 아직 님께서 채워 놓으신 대부분의 공간을 살피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둘러볼 생각입니다.  앞로도 가슴뛰는 신과의 합일을 이루어 가시길 빌며...  신 : 배경음악도 넘 좋네요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음악을 전공하거든요!


■sangsangon ■sangsangone@yahoo.co.kr ■혹시 ..했는데 ■20030905

맞네요... 얼마전 마음에 와 닿는 좋은 전시를 보았습니다. 작가의 욕심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고 삶은 좀더 단순한 거라고 아름다운 거라고 말해주는 거 같아 몇번이고 다시 뒤돌아보았습니다. 좋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 학교로 왔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다만, 누구의 말처럼 결국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그 날이 언젠간 오겠지요..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 왔습니다. 번잡스러운 제 마음이 요즘은 깨알같이 더 잘 보입니다. 올려놓으신글 하나씩 읽으면서 더 들여다 봐야겠습니다.그래서 담담해질수 있다면 좋겠는데..


■Milarepa ■milarepa@cein.or.kr ■현재(Present) 이미 되어 있음에 감사하며 ■20030907

책의 지혜 중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를 읽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영적인 책을 읽어나가는 나는 요즘 부쩍 유식(^_^)해진 거 같습니다. 신앙수행하시는 여러분(님)들 모두 평안한, 즐거운 여름 보내셨는지,,,, "모순"이란 제목의 수행일상~! 우리가 선물받은 모순이라는 벅찬 현재에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라도 감사합니다. 톨레의 저서에서처럼 시나브로 지구의 의식이 'Not Yet'이 아니라 벌써(Already) 상당하게 즐거운 수준으로 올라 즐겁게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의식도 이제는 밥이 끊듯이 진보하려는 '임계수치'에 도달하려나 봅니다. 만약 그런날이라면 우리 정말 '진짜인 모순덩어리(?)'겠지요(^ㅇ^) 신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단지 수행을 하려는 사람에게 뿐만이 아니라 전혀 하려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에게도 충만한 사랑을 주시는 신에게 감사합니다. '질투'라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인가 봅니다. - 현재(Present) 이미 되어 있음에 감사하며


■문인희 ■prajna@dreamwiz.com ■이 순간들 이 일상들의 의미 ■20030910

한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정기적으로 이곳을 들러 좋은 글 계속 읽으며 감사하는 마음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고마운 마음을 변변찮은 글로 남기려니 오히려 부끄러워 차일피일 하다 이렇게나 늦게 다시 글을 올립니다. 제가 추천해 드린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책의 지혜에 올려 다른 분들이 같이 읽도록 해 주신 것도 너무나 고맙고 기쁜 일입니다. 그동안 여러 책과 일상중에 체험과 깨달음을 겪고 있지만, 최근 어느 사이트에서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현인의 가르침이 있어 옮겨왔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쪼록 새 연구실에서 더욱 큰 정진하시기 바라며 여기 방문하신 분들.. 그리고 이곳을 모르는 분들도 깨달음 속에 매 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우주의 존재는 모두 신의 뜻에 의한 창조물입니다. 생명체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 생명을 지닌 입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주에는 비밀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뜻과 의미가 있습니다.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 실패, 행복, 불행, 건강, 질병 등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성공은 실패하고도 단념하지 않았던 데 대한 보상입니다. 실패는 더 크게 성공하기 위해 신이 주시는 충고입니다. 행복은 불행을 참아 낸 당신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불행은 고통에 잠긴 사람들의 마음을 배우기 위한 훈련입니다. 건강은 힘차게 인생을 개척하게 하기 위한 에너지입니다. 질병은 수고한 몸을 쉬라는 표시입니다.

모든 것이 신의 배려이며 서로 관계를 맺고 존재합니다. 안좋은 일을 당하고 자포자기하면 그런 결과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당신의 행동은 당신 내부에 있는 것이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초월하면 됩니다. 초월함은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성공을 받아들이고 실패하면 실패를 인정하고 행복과 불행, 건강과 질병도 담담히 수용해야 합니다.


- 인드라 초한의 마음을 다스리는 100가지 명상 중에서


■한석훈 ■김보H 님께 드리는 답신 ■20030920

(김보H 님께서 메일로 보내신 질문에 대하여 답신을 수차례 보냈으나 모두 되돌아와서 할 수없이 여기다 그 답신을 적어놓습니다. 오직 제 의견만 적어놓는 것이니 다른 손님들께서 읽으셔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내주신 메일 잘 읽어보았습니다. 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부분에 대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군요. 귀신이라든가 하는 초자연적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으면 그것 참 재미있는 일이겠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 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말고 하는 데에 대해선 전 아무런 관심도 없구요. 그래서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님께서 품으신 "엉뚱한" 발상이 멋진 결실을 보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역시 엉뚱한 것 좋아합니다. 아, 그리고 저는 신앙이 체념의 자세가 아니라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최상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요청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티벳의 독립과 만민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달라이 라마나 평화운동의 기수인 틱낫한, 비폭력주의 정치가 간디,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등 현대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전부 종교가들 아니었습니까? 혹 제 견해가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생각으로 몇 말씀 적어봤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Milarepa ■milarepa@cein.or.kr ■<<데미안의 구절처럼>> ■20030930

숫타니파아타는 아주 고귀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고 들었습니다. 전 언제에나 완전히 깨달을 수 있을까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처럼 고요히 앉아 혼자서 가려(?)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 '지혜는 고요히 앉아 있는 데서 나온다'인데 고요히 생각하는 것과는 고요만 공통분모이네요. 고요한 중에 생각을 해야 지혜가 오는 것인지 숫타니파아타를 정독해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사회생활에서 교류하게 되는 많은 스트레스와 마음의 다툼들이 가끔은 가장 자연스러운 한 과정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데미안의 구절처럼>> 그렇게 심한 다툼이 이보다 쉬운 것이었던가~!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었던가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구라는 의식이 쑥쑥 커나가는 소리인 것처럼,,,,우리 마음과는 관계없이 쉽사리 되어지는 무엇인가처럼요. 송구하게도 생각나는 것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이 밤에 가슴이 말하는 진실한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Namaste~!


■동방의물결 ■eastwave@empal.com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죠? ■20031001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바쁜것은 여전하시지요? 저도 많이 바빴습니다. 기어다니기만 하던 아이의 세상이 2차원의 것이라면 그 아이가 걷게 되면 3차원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는 것처럼, 그아이에게는 새로운 재미난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저의 생활도 그런것 같습니다. 호기심가고 무엇인가 배울것이 있다면 앞뒤안가리고 빠져버렸다 다시 나와 또 다른 영역으로 가고... 삶은 배움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저의 그런한 부분중 가장 커다란 부분을 같이 할수있는 분이 한교수님이라서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도메인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본래 일찍부터 관심이 많아서 아주아주 오래전에 활동을 많이하다 인터넷폭발이 되던 시기부터는 점차 관심이 뜸했었습니다. 피씨통신을 하던 시절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플래쉬를 띠우고 했던 시절만 생각하고 쉽게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하니.. 웬걸요. 세상이 몇 번은 바뀔 시간이 흐른것 같습니다. ^^;  그러고 나서 한교수님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니 정말로 정말로 정성껏 준비하신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수고많으십니다. ^^ 제생각에 10월달 안으로 간단한 홈페이지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의 많은 부분이 교수님과 비슷해서 느낌도 비슷할 껏같습니다. ^^ 많은 부분에서 교수님따라가려면 정말 힘들듯합니다.^^ 한교수님께서도 이쁜 따님이 있으시죠? 제 딸아이가 이제 말도 제법 쫑알거리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돌아다닙니다. 요즘 많은 관심이 아이교육과 가족경영?에 관한 것들입니다. 육아에 관해서도 교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듯합니다. ^^ 언젠가 때가 오겠죠? 저역시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요즘에도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사는 것을 줄이기위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 책의 선택은 하늘에 맡기고 저를 끌어다니는 책 위주로 읽고 있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지루하지도 않고 한번 앉아 쭈욱 읽고 있습니다. 스티븐 카비와 캔 블랜차드의 책을 줄줄이 사놓고 보았는데 최고라는 말이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은 어떤 면에서는 재밌고 어떤면에서는 지루한 부분도 있습니다. 작용 반작용이 자연의 법칙이듯 모든 것들이 늘 양면을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저번에 나온 임사체험은 앞으로 두고두고 읽어야 할듯합니다. ^^; 너무 까다로운 다카시님의 시각이 .. 그냥 넘어갈부분도 재삼재사 고찰하는 자세때문에 쉽게 피로해집니다. 하지만 이것역시 수백권의 엑기스에 해당할테니 조금씩 봐두어야 할듯합니다.  다카시님의 책들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나"이런 것만 빼고는 대부분 사서 봅니다. 핀드혼 농장사람들과 비슷하면서도 더 재미있는? ^^; 하지만 글씨가 더 작고 더 두꺼운 "식물의 정신세계"란 책도 그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옛날에 정신세계사에서 나온것인데... 저에게는 아주 흥미진진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이끌어준 책이었습니다. 모든것을 인간의 생명과 연결해서 해석하려는 제 취향에 맞는 책이었구요. ..... 한교수님과 한참만에 연결된 것이라 할말도 많고 추천할 책도 많지만 , 한교수님도 무척 바쁘실것 같아. 많이 줄여야 겠습니다. 급한것보다는 소중한것부터 먼저하라는 코비,아니 카비아저씨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교수님 언제 한번 디카로 서재에 있는 책들 찍어서 올려보심이 어떠시겠는지요? ^^ 많은 사람들에게 무척 도움이 될듯합니다. 사실 인터넷에 소개하려면 정말 고심해서 선택해야 할텐데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수많은 책들이 정말 아깝습니다. 또 한교수님께서도 많은 지인분들을 통해 추천받는 책들이 있으실텐데요. 직접 검증은 못하셨더라도 추천받은 책들 목록이라도 볼수 있으면 큰도움될텐데요. 싸이트를 통해 그런 리스트 공개해주실 마음 없으신지요? ^^ 아,참! 교수님께서 소개해준 헝거싸이트는 제가 만들 싸이트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하게 해서 많은 분들이 후원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년30딸러를 내면 클릭이 2배로 되더군요! 정말 재밌게 운영되는 싸이트인것 같습니다. 헝거싸이트외에도 4개나 더 있구요. 환경문제, 동물학대문제, 열대우림문제, 암문제, 어린이학대 문제는 전부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훌륭한 싸이트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교수님 건강하시구요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해놓고 또 가는군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꾸뻑~
 

ps; 아래분이 말씀하신 숫타니파타는 법구경과 더불어 법정스님이 가장 아끼고 수불석권하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저역시 최고의 가르침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만큼 힘있는 것은 없는듯합니다. 숫타니파타는 이레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법구경은 나무심는사람에서 나온 진리의 말씀이란 제목의 책이 좋은 듯합니다. 전부 법정스님이 쓰셨지요.
 

■평안 ■beenbeen@kornet.net ■잠시 ■20031004

잠시 머물 공간이 있다는게 참 좋아보입니다. 누구인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이나 의식이나 마음 등이 더욱 포용적이고 밝아지고 넓어지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friend ■수행일상을 읽고 ■20031015

이번주 수행일상을 읽고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있어 적어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는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 ~ 20 >
 

예수님께서 좋은 선지자들을 알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셨네요. 좋은 열매, 즉 사랑과 화합과 평화와 희망의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좋은 선지자겠지요. 제 마음속에 끝까지 남아서 저를 성장시키는 것은 이런 좋은 말씀들입니다. 그 반대되는 말들은, 즉 미움과 분리와 분쟁과 절망의 말들은 결국에는 불에 던지워진 못된 나무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이 사이트도 그런 좋은 말씀을 나누는 장으로 만들어주시는 것 감사드립니다.


■Milarepa ■milarepa@cein.or.kr ■아침의 햇살을 귀하게 여기며  ■20031114

경건함(Reverence)으로 아침의 햇살을 귀하게 여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언제어디라도 현존하는 지혜가 마음의 정지에서, 고요히 앉아 있는 데에서 그리고 최고의 말씀을 듣는 데에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듣습니다. 그냥 있을 뿐인데 온 천지(지혜)가 나를 돕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책의 지혜 중에서 영혼의 의자, 기억, 의식혁명, 나는 누구인가를 그동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마하리쉬아저씨는 너무 쉼오해서요. 구스타프 융의 회상꿈그리고사상이나 베로니카**로결심하다등의 책들은 책방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더군요. 칸트가 썼다는 스웨덴보그에 관한 논문도 구하지 못해서 읽지 못하였구요... .  .   . 하기는 그렇게 한다면 어려운 언어일테니 굳이 찾아서 읽는 고생을 사서(?) 하는 형국이 되어 버리네요. 칼융 아저씨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했었는데 이번 책은 너무 희귀하군요. 그동안 읽은 책에서 얻은 교훈(감상문대신)은 직관과 감정을 소중히 하는 것이고 삶을 귀하게 여기는 것(Reverence) 그리고 내가 눈을 뜨면 넘도 많은 사랑이 있을 것 같다는 신선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책이 주는 많은 지혜와 상황들에서 오만으로부터의 겸손의 일부분을 배우게 됩니다. 어제 감기가 독하게 들어서 저녁에 일찍 자고 일어나니 새벽이어서 책을 거의다 읽었습니다. 며칠 가리라 했던 감기님이 쉽게 물러가 주시니 어째 아쉽습니다. 글벗(?)님들 감기 조심하세요. 깨끗하고 쾌활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세요. 합.장. NaMaStE~!


■한석훈 ■Re: 아침의 햇살을 귀하게 여기며 ■20031119

Milarepa님, 'Reverence'의 번역이 '삶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었군요. '경건'이 바로 '삶을 귀하게 여기는 것'일 터이니 옳으신 말씀입니다. 님께선 이미 수행이 안정된 경지에 다다르신 것 같사온데 마하리쉬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나'를 모른다 하시니, 때때로 나는 '나'를 안다고 오만 떨고 있는 저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도록 일깨워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음의 평화 나눠주심에 감사드립니다. Namaste.


■김윤호 ■yoonho_kim@hotmail.com ■수행일상인 '평판(2003/11/23)'을 읽고... ■20031124

이번주에 올리신 수행일상인 '평판'을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타인을 믿지 말고, 그냥 사랑하는 것이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해와 믿음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저의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저는 저에게 적대적인 언행을 드러내는 이를 적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니 그들을 그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이기에 결국 제가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 생각이 짧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선생님과 제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임에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요.


■평안 ■beenbeen@kornet.net ■판단 ■20031127

님의 글이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이 되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단지 특수하게 조건 지워진것으로 인하여  연연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대할수 있다는 것에 존경을 표합니다. 좌우 기웃거리지 않고 속히 갈길을 갈수 있을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엔 마음의 평정을 더디 얻게 됩니다.주로 아집으로 인한 결과로 고통이 있게 마련이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아직 많은 미련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의도함이 있고 또 목마름이 계속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때론 판단으로 인한  괴로움조차 미숙한 저를 성찰할수 있으니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삶과사랑 ■imsarang@dreamwiz.com ■사랑 ■20031127

이렇게 아름다운곳이 있었다니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신과나눈이야기 시리즈(총7권), 내안의 나, 람타, 초인생활을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사랑을 잊은 지구형제들에게를 비롯한 정신세계서적들에 대해서두요... 일과 영적인 목적을 조화를 이루며 살면 참 좋은텐데 돌아보면 삶 자체가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싫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신과 사랑과 영적인 세계를 갈구하는것 자체가 어떤 착각속에서 헤매이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혼란스러웠을때도 있었습니다. 내면의 지혜를 갈구하고 자신의 장대한 경이를 찾고자 하는것들 속에서 영적으로 성숙하고 위대한 내면의 평화가 늘 함께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늘 지금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과 침묵속에 현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이 되고자 하지만 왜 그렇게 힘들게만 여겨지는지...... 늘 아름답고 소중한 날들이 되소서 나마스테!


■한석훈 ■Re: 판단 ■20031127

평안님께서 제 글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으셨다니, 잠시 잡무로 정신이 혼탁해있던 제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가 주입된 듯, 활기가 동하는군요. 저 역시 님과 같이 현상계 속에서의 미망으로 인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기까지 주관적으로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언제나 궁극적 결과는 평화일 뿐이었다는 점을 잊지 않고, 힘을 내서 이 다음 번에도 반드시 꾿꾿하게 나아갈 겁니다. 일상에 활력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Namaste.


■한석훈 ■Re: 사랑 ■20031127

삶과사랑님, 환영합니다. 님과 마찬가지로, 운영자인 저나, 또 여러 길벗님들, 방문객님들께서도 아직 완벽한 해탈이나 평강의 상태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허나 인류의 숱한 스승들께서 우리 모두 반드시 그곳에 이른다 하시니, 아니 지금 이 순간 그곳에 있다고 하시니, 그분들이 사기꾼이 아닌 이상 저로선 그 말씀 믿고 살 도리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 진리를 믿고 사는 편이 그것을 부정하고 사는 편 보다 훨씬 평안하고, 또 비교할 수 없게 행복합니다. 참된 나의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전부 축복임을 믿습니다. Namaste.


■송옥 ■우리의 여정 ■DATE=20031204

* 無極時代에 道明神이 있어 道의 설계도대로 대우주가 창조되었으며, 本法의 설계도대로 삼라만상만물들이 생겨났으니 도를 닦아 大法을 깨달으면 대자연을 관통하여 天地人 三生을 自在하는 것이니라.

* 나무 속에 물이 담겨져 있는 것과 같이 바람 속에 도가 숨어 있느니라. 사람 몸 속에 영혼이 숨어 있듯이 영혼 속에 마음이 담겨져 있느니라. 우주 안에 도가 담겨져 있으며, 도 안에 만물의 성품이 숨어 있으니 도를 닦아 깨달으면 삼라만상의 이치를 알 수 있느니라.

* 한 마음속에 우주가 들어 있으며 우주 안에 자연이 담겨져 있느니라. 자연 안에 만물이 들어 있으며 만물 속에 진리가 담겨져 있느니라. 그리하여 모든 도의 진리는 마음 안에 있으니 마음을 닦아 대도를 깨달으면 天地를 통달하게 되느니라.

* 心이 없으면 道가 없고 道가 없으면 心도 없는 것이니, 心道는 自然正理요, 自然妙法이니라. 道의 體는 자연이며 道의 用은 理이니라. 心의 體는 진공이며 心의 用은 지혜이니라.

* ...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도가 있었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도는 항상 살아 있어서 만물을 창조하시여 살리시는 것...

* 본래 허허탕탕 하고 空空寂寂한 것이 대우주라 하지만, 깨닫고 보면 비고 빈 곳에 비어 있지 않고, 비어 있지 않은 곳에 비고 비어 있으니 본래대로 돌아가고 오는 것이 저 태양이 뜨고 지는 것과 같이 四生六道함이 끝이 없는 것이니라.

* 無極에서 始道하셨고 太極에서 始法하셨으니 天地人은 道法敎요, 圓正方은 大道德이니라. 그러므로 무극은 태극이요, 金剛은 蓮華라 하시고 玄天은 乾父요, 妙地는 坤母라 하셨으니 天地는 乾坤이요, 日月은 도덕이니라.

* 有와 無가 不二이듯이 虛와 空도 不二이며, 선과 악이 不二이 이듯이 지옥과 극락이 不二이니라. 그리하여 일체의 시비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마음의 본바탕이 不二라는 뜻이니라.

* 天地自生하여 일월이 운행하는 것이 道이며, 無來萬物生하고 無去萬物滅하는 것이 道이니라. 道는 無虛無空의 心이 주인이며, 萬有妙有의 性이 주인이니라.

* 도를 닦으며 가난하게 살다 죽은 자는 몸은 갈 곳이 없으나, 영혼은 갈 곳이 많은 것이며, 도를 닦지 아니하고 재물을 모아 부귀하게 살다 죽은 자는 몸은 갈 곳이 많으나 영혼은 갈 곳이 없느니라.

* 대도를 닦아라. 대도를 닦는 자만이 용화세상에 인도환생할 수 있고 대도를 깨닫는 자만이 용화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느니라.

* 대도가 나를 키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닦아 대도를 키우는 것이며,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늘을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니라.

* 하늘은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이며 사람은 하늘을 지켜 주는 것이니라. 하늘이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곳에 있는 것이며, 사람이 하늘을 지켜 주는 것은 악을 여의고 선을 행하는데 있느니라.

* 하나의 인과에 걸리어 대각을 이루지 못하고 그 인과를 풀고자 사바세상에 환생한 자들이 하나를 애써 소멸하지 못하여 좌절에 빠지고 타락에 떨어진다면, 하나의 걸림 때문에 내생 일만 가지 죄업의 허물을 쓰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고 애석하기 한량이 없고나.

* 사람의 성품 속에는 온갖 인과의 뿌리가 숨겨져 있고, 마음 속에는 모든 죄악의 씨앗이 담겨져 있으며, 언행 속에는 실패하고 망하게 하는 습업이 숨어 있는 것이니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소멸하여 허물을 벗지 않고서는 언제나 곤란의 시련이 따르게 되는 것이니라.

* 좁은 性品을 넓히는 것은 참는 곳에 있는 것이며, 좁은 마음을 넓히는 것은 이해하고 용서하는 곳에있느니라

* 마음은 마음으로 깨달아서 밝게하고 성품은 성품으로 참아서 맑게 하는 것이니라. 말은 말로써 곱게하여 口業을 소멸하고 행동은 행동으로써 바르게 하여 고행을 없게 하느니라.

* 성직자 팔자가 俗家에 나아가서 살게 되면 온갖 풍파를 다 겪고 살게 되는 이치가 있으니 공연히 부질없는 생각에 온갖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三惡道에 떨어져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수도 생활 속에서 부귀함을 찾고 영화를 찾아야 하느니라.

* 마음을 닦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며, 인욕하는 것이 성품을 닦는 것이니라. 도를 닦으려면 마음을 바르게 쓰는 것을 배워야 하며, 성품을 닦으려면 인욕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마음은 기선으로 닦는 것이며, 성품은 선근고행으로 닦는 것이니라.

* 得道의 本은 못난 天性을 고치는 곳에 있는 것이니, 도를 닦고 닦으면 못난 마음이 고쳐지고, 마음을 닦고 닦으면 못난 성품이 고쳐지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本心으로 돌아올 때 本性이 보여 眞空法界가 밝아지느니라.

* 大德은 대도의 바탕이고 대도는 대덕의 기본인 것이니, 積德함이 없이는 대도를 깨달을 수 없고 수도함이 없이는 대덕을 이룰 수가 없느니라.

* 大德을 닦아서 大道를 깨닫는 것이 득도의 근본이니, 대덕 닦는 것을 먼저 배우고 배워라. 그러면 德田에 스스로 대도의 씨앗의 새싹이 돋아 나오는 것이니라.

* ...지금 살고 있는 그 자체가 道요, 지금 생활하는 모든 일들이 도이니라. 이 몸이 살고자 숨쉬는 것이 도의 뿌리이며, 움직이려고 먹는 것이 도의 근본이니, 어찌 도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 福慧雙修는 不二요, 道德雙修는 同一이니 복을 짓지 아니하고 깨달을 수 없고, 덕을 닦지 아니하고는 대도를 통할 수 없는 것이 天則이며 자연인 것이니 이런 이치를 누가 거역하고 기선정진에만 힘쓸 것인가. 그리하여 불사에 뜻이 없는 자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니 기선이 기선이 아니고 정진이 정진이 아니될 것이니라.

* 念禪정진을 하고 善根을 심을 줄 모르는 자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며, 선근정진을 하고 念禪할 줄 모르는 자는 성취하기 힘든 것이니 염선과 선근은 不二이니 雙修로 할지니라.

* 그림으로 떡을 그리면 세상사람이 다 먹고도 남음이 있듯이, 말로 대도를 얻은 사람은 우주를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며, 글로 그림을 그리는 자는 자연보다 더 잘 그리고도 남음이 있듯이, 생각으로 도를 얻으면 자연진리를 다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니, 공연히 알지 못하고 아는 체하고 깨닫지 못하고 깨달은 체하여 말업, 글업의 인과만 짓지 말고 하나의 진리라도 修身躬行으로 행하면서 사는 것이 대도의 길로 가는 것이니라.

* ...말로써 대도를 깨닫고 글로써 대도를 깨달았으나 마음으로는 대도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나라고 하는 相이 아직도 남아 있음이니라. 마음은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고 이 몸은 중생과 더불어 하나가 될 때 허상은 사라지고 실상만 남게 되느니라.

* ...성현의 律을 지키지 아니하고 도를 깨닫겠다는 자는, 모래로 싹을 트이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 邪되게 닦는 자는 내생에 거리에 나앉아 역학자나 점쟁이 밖에 안 되는 것이니 우선 인과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사된 곳에 빠져 자손만대로 빈천고에 떨어지게 하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하느니라.

* 깨닫지 못한 생각이란 옳다 할지라도 번뇌에 불과한 것이며, 깨닫지 못한 행은 바르다 할지라도 망상에 불과한 것이니 성취함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니라.

* 신념이 없는 기도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며, 선근을 심지 않는 禪은 지혜가 소생하지 않느니라.

* 色心이 앞을 서면 정신이 죽게 되는 것이며, 욕심이 앞을 서면 마음이 죽게 되는 것이니 색심을 끊어 정신을 살리고 욕심을 멀리하고 버리어 본심을 살리어라. 그러면 대도는 스스로 닦아져 스스로 득도하게 되느니라.

* 정진 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善根정진이요, 둘째는 祈禪정진이니라. 善根정진은 大德을 갈고 닦는 것이며, 祈禪정진은 大道를 갈고 닦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大道를 닦지 않으면 得道를 할 수 없는 것이니 大德과 大道는 不二이니라.

* '자신이 성현인 줄 알면 성현이 아니라'고 하셨으며, '자신이 도를 깨달은 것을 알면 그 것은 도를 깨닫지 못한 것이라' 하셨느니라.

* 더럽고 깨끗함이 있다면 너의 마음은 둘이 되어 간사하여 도의 길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며, 좋고 싫은 것이 있다면 너의 마음은 잘 변하는 분별심이 있어 업장소멸하기가 어려운 것이며, 선과 악을 둘로 본다면 너의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으니 깨닫기가 어려워 도는 멀리 있느니라. 도란 추하고 깨끗함과 좋고 싫음과 선하고 악함을 초월하는 곳에 있으니, 나라고 하는 존재가 없이 下心하는 곳에 더럽고 깨끗함이 초월되며, 어려움과 고통을 능히 인욕할 줄 아는 곳에 좋고 싫은 것이 초월할 수 있으며, 만인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곳에 선악이 초월하는 것이니 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을 뻑뻑이 머무는 곳에 도가 있느니라.

* 하늘이 밝다 하나 구름이 있고, 공기가 맑다 하나 티끌이 있으며, 허공이 고요하다 하나 바람이 있고 마음이 공하다 하나 생각이 있는 것이니, 일념의 바탕으로 定에 드는 것이니, 번뇌를 끊으려고 싸우지 말고 마음을 바로 쓰는 것을 배워야 번뇌가 소멸되는 것이니라.

* 알고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생각에서 지나쳐 버리니 복이 될 수 없고, 깨닫는 것은 마음에 이르게 되니 世世生生 福田이 되는 것이니라.

* 알았다고 하여도 깨닫는 길이 없으면 아는 곳에 끝나는 것이니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깨달았다고 하여도 실천하는 길이 없다면 깨닫는 길에서 끝나는 것이니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 ...마음이 상하고 괴로워지고 불안하여지면 修心함이 멀어지어 깨달음이 없는 것이니 바르고 떳떳하게 생활하는 것을 배워야 하느니라.

* 사람으로 태어나 言行心을 正으로 하고 살면 도를 닦지 않아도 도를 얻게 되는 것이니 심성을 바르게 쓰고 言行一致하여 사는 것을 배우고 배워라.

*...반은 자신이 닦아서 깨닫고 반은 진리로 깨달아야 하느니라.

* 바르고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 修心의 길이며, 참고 또 참아서 생활하는 것이 수도하는 길...

*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흉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我相我執이 생기어 고정관념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니라. 그러므로 回光返照하여 자신부터 되돌아보고 악한 성품부터 고치는 것이 깨달음의 바탕이 되는 것이고, 못난 마음부터 고치는 것이 복의 바탕이 되는 것이며, 바르지 못한 습업을 고치는 것이 성취의 바탕이 되는 것이니라.

* 잘못된 도자기는 쓰지 못하도록 깨서 되돌려 보내는 것과 같이 잘못 닦아진 도는 깨서 새롭게 닦지 않으면 깨달은 지혜가 꾀로 변하여 악을 짓게 되는 것이니 깨어 버려서 새롭게 정도를 닦아야 하느니라.

* 백 년 수도를 하였다 하나 성품하나 고치지 못하였으니 수도함이 부질없는 세월이요, 대각을 하였다 하나 습업하나 끊지 못하였으니 깨달음이 무용지물이라. 무엇을 닦았다 자랑할 것이며, 무엇을 깨달았다 알릴 것인가. 못난 성품이나 고치고 못난 습업이나 끊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이니라.

* 모든 사물은 길이 있어 찾아갈 수 있으나 대도의 길은 없으니 어찌 찾아갈 것인가. 바르고 바른 길을 잃지 말아라. 그러면 대도길이 보이리라.

* ...욕심을 가졌을 때 도는 무너지며, 애착을 끊지 못하였을 때 도는 멀어지고, 참지 못하였을 때 도는 미해지나니 가슴에 손을 얻고 참회할지어다.

* 대도가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그 것 또한 대도인 줄 모르고 대도를 구하고, 대도의 모습을 설명하고, 대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숨만 짓느니라.

* ...마음을 닦고 닦아 도를 깨닫는 것은 多劫生이 걸리는 것이니 탑을 다듬듯이 심성을 다듬어 갈고 닦아 완성하여라.

* 도의 길은 心으로 찾는 것이며, 운의 길은 誠으로 찾는 것이며, 복의 길은 忍行으로 찾는 것이니라...

* ...충정의 신하는 비록 임금이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임금을 따르는 것이며, 자식은 부모가 잘못이 있더라도 반발하지 않고 모셔야 하는 것이며, 제자는 스승이 잘못하더라도 꾸짖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忠孝誠敬은 百行之本이니라.

* ...운이 없는 사람들이 욕심을 크게 가지면 쉽게 죽고, 복이 적은 사람이 욕심을 크게 가지면 사업이 망하여 불행하게 되는 것이니, ... 祈禪을 하여 운을 키울 줄 알고, 善根을 심어 복을 넓힐 줄 아는 사람이 되면 ...

*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지어야 재물이 따르는 것이니 우치하게 복을 지을 생각은 없으면서 재물욕심만 부리어 성취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물없이 쌀을 씻으려 하는 거와 같고 불없이 밥을 지으려는 거와 같은 것이니라.

*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수를 받는 것은 전생에 남 모르게 닦은 선근이며, 생각지도 못하였던 불행을 당하는 것은 전생에 남 모르게 죄를 지은 것이니라.

* 종교를 믿으면서 마음을 바르게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종교를 헛 믿는 것과 같으며, 기선을 하면서 성품을 바르게 쓰지 못하면 祈禪을 헛하는 것이니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야 득도할 수 있는 것이니라.

* 바르게 산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태산같은 죄업을 지을 수 있으며, 어리석게 산다고 하나 태산같은 덕을 쌓을 수가 있는 것이니 자부심을 가지고 교만을 부리지 말아라.

* ...세상 위에 또 세상이 있고 지구 위에 많은 별들이 있듯이, 학술 위에도 또 진리가 있고 진리 위에 깨달음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대우주의 뿌리는 玄玄妙妙하여 깨닫고 깨달아도 끝이 없는 것...

* 글을 배워 안다고 我執망상을 부리지 마라. 수만 권의 책을 읽고, 또 책을 써도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다 허사가 되는 것이요, 앞날을 알고 신비한 재주를 부린다 하여도 大道를 깨닫지 못하였다면 모든 것이 무상한 것이니라.

* 사람이 고귀하게 살았다는 자랑보다 얼마나 사람답게 살았느냐가 문제이니라. 사람이 부자로 살았다는 자랑보다 사람으로 태어나 얼마나 善根을 심었느냐가 문제이니라. 사람이 높은 출세로 살았다는 자랑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얼마나 백성들을 이롭게 하였느냐가 문제이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자랑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서 大道를 믿고 얼마나 祈禪을 하면서 살아왔느냐가 문제이니라. 어찌 大道를 깨달아 보지 않고 한 인생을 후회없이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겠느냐.

*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남의 잘못만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口業을 짓게 되느니라.남의 흉을 볼 때 에는 자신의 흉은 없는가를 한 번쯤 되돌아 보고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죄업을 짓지 않는 시초이니라. 나에게 한 가지 흉이 있다면 남의 흉을 보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 현세에 복이 있다고 함부로 살지 마라. 한 생을 잘못 살다 죽으면 남는 것은 죄업 밖에 없느니라.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등은 생각 한 번 잘하고 생각 한 번 잘못한 차이이니라. 행복한 사람의 생각은 미래를 생각하고 祈禪하며 善根을 심었고, 불행한 사람의 생각은 미래를 우습게 보고 현재만 편안하면 그만 이라는 생각 때문에 허송세월을 보낸 탓이니라.

* 만물들이 죽게 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과 벌레 때문인 것과 같이,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죄업 때문에 죽고 망하고 괴롭게 되는 것이니라.

* 죽으려 하는 자를 살리려고 만류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죽이는 자가 있으니, 자신의 목숨을 남으로 하여금 관리하는 인연은 조상으로부터 살생한 인과가 돌아와 지금에 이르러서 받게 되는 것이니...

* 아무리 착한 자라 할지라도 사리판단이 정의스럽지 못하면 한량없는 죄업을 짓는 것이니라.착한 일을 한다고 하나 지혜가 부족하면 착한 일을 하여도 오히려 큰 일을 그르치게 되어 죄업을 짓는 수가 많으니 종교를 믿지 않는 착한 자는 지옥에 가더라도 종교를 믿고 祈禪을 하는 악한 자는 극락에 간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선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느니라.

* 괴로운 수난을 당하면서도 전생에 지은 죄업의 과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시 지옥길로 찾아가는 것이니라. 괴로운 魔障이 들어오면 전생에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정성을 다하여 祈禪을 하고, 믿는 마음이 지극하면 일체의 죄업이 소멸되어 극락의 길로 가게 되느니라.

* 빚을 지면 내생에 가서라도 갚아야 하고, 개나 소가 되어서라도 갚아야 하며,자식대에 가서라도 갚아야 하는 것이니, 인과의 빚을 짖지 말아야 하느니라.

* 전생에 지은 죄업을 소멸하지 않고서는 잘살 수 없고 전생의 인과를 풀지 않고서는 매사가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니 노력만 하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과 근심 걱정으로 해와 달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믿음을 가져 수도하는 길을 찾고 修心하는 길을 배워라. 그러면 일체의 죄업의 인과가 소멸되어 자손만대 성취의 길을 얻게 될 것이니라.

*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전생에 잘못 살아온 증거가 있다는 증거이니라. 병은 약으로 고치듯이 인과는 진리로 고치는 것 성현의 진리를 따라 한 평생을 살아가면 인과가  소멸되어 잘 살게 되련마는 사람들은 진리를 멀리하여 죽는 길로 가는고나.

* 스쳐 가는 한 생각이 자신은 죄가 되는 줄 모르지만, 그 생각이 공기 속에 새겨져 인과로 돌아오느니라.

* 내가 슬프고 슬픈 것은 남에게 슬프고 슬픈 인과를 지어서 그런 것이며, 내가 괴롭고 괴로운 것은 남에게 괴롭고 괴로운 인과를 지어서 그런 것이며,내가 가난하고 가난한 것은 남에게 베풀어야 할 것을 베풀지 않은 인과이며, 높은 출세를 하지 못하는 것은 도를 닦지 않은 인과이니라.

* 노력없이 편안하게 소원을 이루어 사는 것은 인과로 모아진 재물이니라. 그리하여 자손대에  가서는 인과를 받게 되어 재물이 도리어 인과로 화하는 것이니 믿음으로 善德을 베풀어 유전되기 전에 인과를 소멸해야 자식들의 앞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니라.

* ...천만대 조상께서 죄업을 지으면 천만년 후에도 자손에게 유전이 되는 것이며, 천만대 조상께서 인과가 있으면 천만년 후에라도 자손에게 돌아오는 이치를 일찌기 깨달은 부모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알고 알 것이니라.

* 나의 잘못은 자신보다 남이 먼저 아는 것이니 나의 허물은 남을 통해서 본다고 하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자를 대고 금을 긋는 것과 같이 大道를 닦는 길이 바르게 되느니라.

* 재산이 많으면 성공했다고 하나 그 재산이 禍根이 되어 도리어 괴로워지는 근본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출세를 하여 성공을 했다고 자처하나 그 출세가 無量인과를 짓는 화근의 뿌리가 되어 도리어 고통스러워지는 근본이 될 수 있는 것이니라. 부귀를 그리워하나 알고 보면 괴로움의 뿌리이고 고통의 뿌리이며 화근의 뿌리이고 자손만대 지옥의 뿌리도 될 수 있으니 부귀를 누리되 修道의 길속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만이 참다운 부귀영화임을 깨달아야 하느니라.

* 남 잘사는 것을 부러워하고 흉보지 말아라. 그 사람도 전생에 괴롭고 고생스러운 것을 참으면서 마음 닦고 善根심은 복록이니라.

* 마음이 아무리 착해도 大道를 닦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것이며, 아무리 좋은 일을 하여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니 大道를 닦고 진리를 깨달아야 지옥 길을 면할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느니라.

* 재물이 많으면 잘살 줄 알지만 인연법에 걸리어 속이 썩게 되고, 출세를 하면 잘살 줄 알았으나 몸에 병이 들어 고생하는 것이니라.

* 나의 잘못을 생각지 않고 남의 잘못만 생각하는 자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시비가 그칠 새가 없어 항상 자신의 성품 때문에 항상 괴로워지는 것이니 모든 일을 나의 부덕함으로 돌리고 남의 잘못을 이해하여라.

* 남에게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하였을 때에는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기 전에 자신을 한 번 뒤돌아다 보아라. 나는 남에게 가슴 아픈 언행을 하지 않았는가 하고 반성하여라. 因이 아니면 果일 것이니라. 因은 내가 어리석어 심은 것이고 果는 전생에 심은 것이 때가 되어 받는 것이니라.

* 만 가지 책을 다 읽어도 깨닫지 못하니 허무한 것이며 만고풍상으로 세상을 살아 보아도 깨닫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니라. 답답하고 허무한 가슴알이를 풀려고 하면 마음 닦는 공부를 하여 성현의 진리를 깨달아야 풀어지는 것이니라.

* 보약 열 재를 먹어 몸을 보호하는 것보다 祈禪으로 번뇌망상을 끊는 것이 몸에 더 이익이 되는 것이며, 病藥 석 재를 먹어 몸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修心을 하여 근심걱정을 끊는 것이 몸에 더 유익하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건강의 비결을 알게 되느니라.

* 부귀영화가 있다 하여도 깨닫지 못한 자는 내일부터 지옥이며, 부귀영화가 없다 하더라도 깨닫는 자는 내일부터 극락이니라.

*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의 이야기와 남의 흉을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진실된 사람일 것이니라. 자신의 사리사욕을 차리기 위하여 남을 헐뜯고 흉을 보는 사람은 小人의 행실이며, 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충고의 말을 하고 없을 때에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大人이니라.

*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남을 원망하는 자는 그 인과로 괴로움이 곧 돌아오느니라.

* 누구나 앞날을 헤아리지 못하니 세상의 五慾에 물들어 나도 잘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인연 따라 살다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한 평생 허무하게 살다 죽으니 지옥이요, 三惡道라, 이제 한탄을 한들 이미 늦었으니 후회한들 무엇하고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믿음이 없는 부귀는 한낱 꽃이 피었다가 시드는 거와 같고, 정진이 없는 일생은 하루살이가 태양을 맞이 하는 거와 같은 것이니라.

* 믿음이 없는 자는 한생 잘 살았다 하나 죽으면 남는 것이 없고, 修道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한생 부귀공명을 누렸다 하더라도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니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니라.

*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나의 잘못을 보아 고치어 행하면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와 인과없는 大道를 깨닫게 되는 것이니라.

* ...참다운 德이란 선악이 없는 것이며, 참다운 지혜란 자연을 역행하지 않는 것이니 眞德은柔한 곳에 머무르게 하고 妙慧를 강한 곳에 쉬게 하는 것이니라. 外로 강한 지혜가 있더라도 內로 덕을 베푼 것이 없다면 지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니라.

* 알고 깨닫는 것은 약이 되는 것이나 배우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병이 되는 것이니라.

* 생각에 머무는 자는 허송세월을 보내는 지름길이니 한 생각을 일으켰으면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행복의 성취가 돌아오는 것이니라.

* 좋은 집에 많은 재산이 있더라도 福根이 없는 자가 살면 그가정은 얼마 안가서 망하게 되는 것이며, 큰 종단, 좋은 성전이 있다 하더라도 修道人이 살지 아니하면 얼마 안 가서 망하게 되는 것이니 큰 집, 큰 절, 큰 교회가 무엇에 필요할 것인가. 초가삼간이라도 진정한 수도자가 사는 곳이 眞성현의 도량이니라.

***   강연이 2003.12.17(수) 오전 10시부터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송도) 청량산에 있는 송도宣院에서 있습니다. ***


■John Kim ■[예수는 있다] 소개합니다 ■20031207

▣ 추천의 글

솔직한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읽는순간, 속에서 불 같은 무엇이 치미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느하스의 분노 같은 것이었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변증학을 가르치는 누군가에 의해 곧 답변이 나올 것이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교계의 침묵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생각지 않은 곳에서 답변이 제기됐습니다. 이 책을 쓴 이국진 목사는 이민교회의 젊은 목회자입니다. 더구나 변증학이 아닌 해석학을 공부한 분입니다. 그럼에도 이책에는 우리가 기다리던 치열한 변증이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장 현학적인 상식으로 우리를 시원케 하는 웃음과 우리를 울리는 눈물의 감동까지 살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두책의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같은 것입니다. 노련한 종교학자에 대한 치기어린 목회자의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젊은 다윗의 손에 붙들린 물 맷돌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 책이 불신자들 에게까지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수는 없다]를 접하고 혼란을 느낀 모든 이들에게는 충분한 치유를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스트모던 시대라 부릅니다. 혹은 다원주의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이시대의 상징을 아는 이들에게 오강남 교수의 글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글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이미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글은 시작부터 진리를 상대화하는 편견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다원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근본주의나 복음주의의 편견 이상으로 존재하는, 더 무서운 그들의 편견을 현대인들이 쉽게 알아 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국진 목사가 강조한 진리의 사실성입니다. 기독교와 성경의 진리에 대해 사실에서 접근을 시도할 경우, 독자들은 이국진 목사의 변증에 “가편"손을 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어온 진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음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즉시 우리 교인들에게 읽힐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비진리의 경계선상에서 방황하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찬양하고 싶습니다. 그 분은 구속의 은총을 경험한 모든 성도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유일하신 인류의 구주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는 있다]의 함께 증인된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그래도... 역사와 우리안에 예수는 있다

2001년 출간된 원로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저서 ‘예수는 없다’(현암사)는 출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교서적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책이다. 크리스천들이 믿는 ‘진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유아적 믿음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도 인정하는 성숙한 종교인이 되라’고 충고하는 이 책은 쉬운 비유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수많

은 비기독인과 크리스천들에게 영향을 끼쳐 왔다. 그 영향력의 정도는 이를 반박하는 책이 계속 나오는 데서 알수 있다. 지난 4월 ‘기독교를 뒤집어 읽어도 그런 예수는 없다’(나됨)는 책도 나왔지만 이번에는 ‘…없다’를 거꾸로 패러디한 책 ‘예수는 있다’(기독신문사&#8226;02-552-8794)가 나왔다. 또 ‘…없다’ 출판 직후 ‘한국교회언론’지에 반박문을 발표했던 허호익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8226;신학적 연구들을 총정리,비판에 대한 종합적인 답을 제시하는 책 ‘예수 그리스도 바로보기’(한들출판사&#8226;02-741-4070)를 내놨다.


◇고고학적 증거 제시를 통한 반박

‘예수는 있다’와 ‘예수 그리스도 바로 보기’의 공통점은 성경에 나온 사실들이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에도 ‘사실’의 수준에 있다는 점을 논증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없다’에서 오강남 교수는 동정녀 탄생,기적,육체 부활,예수의 재림과 심판 등 성경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읽고 믿으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21세기 현대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흥부전이 사실이 아니어도 교훈을 주듯이 성경도 그렇게 읽으면 된다는 것. 그러나 이 두 책은 ‘성경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는 데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있다’는 “성경은 믿음으로써 철저한 결단을 하고 읽을 것을 요구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바로 보기’ 역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한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바로 우리 구세주인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두 책 모두 ‘각 복음서의 기록이 서로 어긋나므로 사실이 아니다’‘설화나 전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제자들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다’ 등 성경 부정의 논리들에 대해 그동안 여러 신학자들이 밝혀온 증거들을 성실히 제시하는 것으로 반박하고 있다. 일례로 ‘…없다’에도 나오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예수 사후 거의 40년이 지나서 처음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두 책은 한목소리로 맞선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예수가 죽은지 24년만에 기록된 것(고전 15장)이며 이때는 예수의 일생을 지켜본 목격자들이 살아있던 시기라는 주장이다.


◇패러디를 통한 반박

‘예수는 있다’는 ‘예수는 없다’의 흐름을 목차와 소제목의 순서까지 그대로 따라가면서 뒤집어 제시한다. ‘…없다’에서 어렸을 때는 ‘우리 아빠가 최고’라고 믿던 철수가 커가면서 그런 믿음을 버린다는 예화를 들었다면 ‘…있다’는 초등학생 영희가 음악 신동으로 명품 ‘스트라디바리’를 소장하고 있음에도 그 친구들은 ‘네 악기와 내 악기가 무엇이 다르냐’며 비웃는 상황을 예로 든다. ‘…없다’가 불교에 귀의한 서양인 ‘현각스님’의 내용을 소개한 자리에는 기독교를 배척하던 대학 교수가 눈물로 예수를 영접한 사연을 소개한다. ‘성경을 다 믿지는 않는다’는 한 목사의 인터뷰를 실은 자리에는 회심한 사도 바울에 대한 가상의 인터뷰를 실어 거울처럼 반대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은 ‘…없다’가 그럴 듯한 사례와 논리로 포장한 내용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반박 하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평신도들에게는 시원함을 안겨줄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의 내용은 역사적 증거로나 논리적으로나 충분히 반박될 수 있는 취약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파장은 생각보다 길 것이다. 복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가져다 쓰기에 딱 맞는 예화와 논리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크리스천이라면 고고학적 자료 없이도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믿을 것이다.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만은 의심없이 믿는다. 반면 마음이 닫힌 사람은 예수님이 눈앞에 나타나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게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복음은 머리가 아니라 영적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크리스천들의 사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책들이다.- 황세원기자 / 국민일보


■한석훈 ■Re: [예수는 있다] 소개합니다 ■DATE=20031208

John Kim님께서 올리신 글은 제 싸이트에서 추구하는 바와 조화되지 않는 내용이군요. 저는 이성을 도구로 논쟁하는 것의 가치를 회의하기 때문에 올리신 글에 대하여 아무런 평을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올리신 글을 환영해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만, 삭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리 하지 않으시겠다면, 님의 의향을 존중하여 저도 함부로 삭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 싸이트에서 추구하는 바와 조화되지 않는 내용이라는 것만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제 싸이트는 분리보다 화합을, 차이점 보다 공통점을, 그리고 투쟁보다 평화를 추구합니다. 이 세 가지가 실천될 때에 사랑과 믿음이 드러나며, 사랑과 믿음이 종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이 싸이트의 입장입니다. Namaste


■평안 ■beenbeen@kornet.net ■올리신 글을 보니 ■20031208

아랫글 올리신 분의 글을 보니 이 사이트를 눈여겨 보시는 것 같네요.또 의도하심은 반응도 보고 싶어하시는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 이순간 내안에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 ,불심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은데,사견에 불과할수도 있는 이책을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읽어보셨군요. 올리신 분의 인내심과 지성을 존중합니다. 지성이라는 도구가 전체를 알아가는데 유용하게 사용되길 바랍니다. 단지 노림수만 조심하면 되겠지요.


■가람 ■바다 그곳에 가고 싶다. ■20031215

<img src=http://byunhosa.cafe24.com/zero/data/my/img1603_3.jpg border=0>


■어린왕자 ■쉽고 간단하고.. 재미있게... ■20031217

알 수는 없는 걸까요?? 전 늘 그렇게 생각하는데... 영성이랑.. 깨달음이랑... 뭐 그런것들.. 세상에서 가장 쉬운게 바로 그런 것들이라고.. ㅋㅋ 아인슈타인이 그랬어요.. 물리학이론은 5살 아이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전... 깨달음도 그래야 한다고 말이죠... 너무 쉬운 걸 왜 그리 어렵게 다가설까요??

ps..  책소개부분 좋았어요..  독후감도 정성스럽게 쓰셨구요.. 행복하세요..


■물병자리 ■namaste ■20031221

생명의 실상과 관련된 정보를 뒤지다 이곳까지 왔습니다. 사막에서 깊은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네요. 감사합니다.


■빈윤경 ■ykbin@naver.com ■감사합니다. *^^* ■20031223

한석훈님의 사이트를 알게된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일이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좋은 글을 올려주시고 양서들을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주 올라오는 글들을 아주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주에 소개해주신 " 내 안의 나"라는 책은 구매를 하고 싶을만큼 은혜로운 내용이네요. 이전에 소개해 주셨을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마음속에서 반감이 생겼던 책인데 많은 시간이 흐른후 다시 보니 이젠 또 다르네요. 다사 다난했던 한해동안 많은 성장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를 느낍니다.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또 한주에 한번씩 열심히 뵙겠습니다.
 

■이진규 ■donthurt7@empal.com ■문득 글을 남기고 싶어 적어봅니다 ■20031225

대부분의 님들도 그러하시겠지만 사이트의 글중 대부분은 어렴풋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입니다 이런경우 영혼의 의식수준이 많이 성장해 있다는 걸까요? 또 누군가와 텔레파시는 아니지만 비슷한 높은 의식의 사람과는 묘하게 인식감을 느끼눈군요
 

┼..:..:..:..:..:..:..:..:..:..:..:..:..:..:..:..:..:..┼

│*** Merry ☆ Christmas!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I I         ☆

│ *** Merry ..:+ +:.. Christmas! ** ★

┼``:``:``:``:``:``:``:``:``:``:``:``:``:``:``:``:``:``┼

━○━★‥…+->♡<-+…‥★━○━♬

┎┒  -┒  ─┒ -┒  ┃ ┎┒  ┃

┃┃ㅔ┎┚┃ ─┨ ┎┚┃/\ ┃┃┠/\

┖┚ ┖─┃ ── ┖- ┃-──┖┚┃──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MILaREpA ■milarepa@cein.or.kr ■HApPy New YeAr~! ■20031227

sAsloME~! 지혜속에 평안을~! 저에게 많으신 도움을 주신 한석훈님의 사이트와 이를 사랑하시는 분들께서 밝고 깨끗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싸이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몇가지 책을 더 읽느라고 날을 새가며 밤을 즐깁니다. 외계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진화된 인류인 그들이 알고 있는 창조와 사랑과 지혜와 평안은 또다른 편견을 벗도록(?) 해 줍니다. AnYWayS~! 우리에게 가득차서 놀라운 것도 없는 많은 '엽기'행각들, 그리고 사람들의 무심결에 생각하는 폭력같은 것이 모아져 곧바로 자신에게 영향(ㅜ.ㅜ)을 받습니다. 저는 명상으로 현재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위해 내면을 듣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 바로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의 최상층부는 "신"이며 "부처"이며 인과(CoDEX)의 영향을 받지 않는 "cHrisT"라는 것, 자신이 얼마간 모르는 사이 '조정'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히틀러'조차도 "창조"인 신과 바로 보다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믿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던져진' 아이들의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이 자유롭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지구와 모든 인류가 사랑과 평안으로 자유로워지기를 새로운 한해가 되기전에 기원합니다. NAmastE~E~! & HApPy New YeAr~!


■한석훈 ■감사 감사 ■20031229

아이들이 쓰는 '방가 방가'라는 말이 듣기 좋았기에 '감사 감사'라고 저도 한 번 써봅니다. 잘 어울리진 않지만... 그간 방문하고 글 남겨주신 분들과 이진규님의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도 감사드리고, 단골손님 Milarepa님의 글도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이 싸이트를 통해 또 어떤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떤 우정을 만들게 될지, 새삼 가슴이 뜁니다. 저 개인의 영적 진보의 수준은 여전히 초보이더라도, '참된 나'로 향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Namaste.


■오늘도 좋? ■^______^ ■20031229

오전에 들렀을 땐 글이 아직이었는데 저녁에 새 글을 봐서 기분이 좋습니다. 늘상 깨어있으시고 늘 제 때 홈피 업데이트 해 주셔서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남자친구 에게도 사이트 소개했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고맙습니다. 아이쿠 퇴근해야겠네요. 이 차를 놓치면 걸어가야 할 지도 모르거든요. 법정 스님 말대로 날마다가 다 특별하지만. 그래서 굳이 구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가는 해 잘 마무리하시고 오는 해 잘 맞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friend ■만남 ■20040105

"We are not human beings having a spiritual experience; we are spiritual beings having a human experience." ~ Pierre Teilhard de Chardin

이른 새벽에 나를 스쳐간 생각을 몇 시간 후에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고 감사하네요. 저처럼 느낄수는 있지만 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런 글과의 만남이 아주 소중합니다. 이 사이트를 만난것도 그런 의미에서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새해에도 항상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석훈 ■Re: 만남 ■20040105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하고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friend님께서 남겨주신 영문을 제가 이렇게 옮겨보았습니다. 무엇이 主이고 무엇이 客인지를 늘 잊고 생활하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명언이군요. 나눠주심, 그리고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Namaste.


■MilaRepA ■milarepa@cein.or.kr ■사랑을 더 많이 주면 줄수록 ■20040106

여기는 꿈속입니다. NaMAstE~~! 달콤한 꿈 안에서 나 자신(SeLf)을 발견한 기쁨에 춤추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손에는 아직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행성은 파괴적인 존재들에 의해 장악된 악몽일 수도<(ㅜ.ㅠ)_무서워~!> 그것은 악몽(?)이 나빠질지도 모르나, 어쩌면 자신이 알기도 전에 끝날 것입니다. 잠에서 저절로 깨어남으로 해서, 어쩌면 자신이 알기도 전에~~끝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밀의 화원처럼 현실은 영혼 안에 놓여 있지 않은가요(?.?) 이렇듯 허무하게 희미한 꿈결속에서 안개같은 섣달 보름달은 케니지가 연주하듯이 노래합니다.^^;) 하늘과 별과 달과 바람과 시를 사랑합니다. 이 말씀밖에는,,,,,왜냐하면 우리들이 주는 것이 우리들이 받는 것이기 때문인데, -- 우리들이 사랑을 더 많이 주면 줄수록, 실로 더 많은 것을 우리들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대 내면의 신(SELf)께 감사합니다.


■장재석 ■rarusel@empal.com ■좋은글 많이 읽고 갑니다.^^ ■20040111

엠파스 검색으로 악보 보는 법을 찾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잘못 짚었구나..싶었는데 글을 읽다보니 마음속에 따뜻한 뭔가가 남게 되는군요. 참고로 전 피아노를 산지 5년이지만 똑딱똑딱 멜로디를 칠뿐,악보를 전혀 보지 못한답니다. 너에게 피아노를 사준것은 인생최고의 실수였다고...부모님께서 자주 말씀하시곤 하지요.^^;;; 이 홈페이지에 들어온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생각하렵니다. 햇빛을 피해 쉬어갈수 있는 나무 같은 홈페이지....잘 구경하고갑니다.^^


■박주영 ■sangsangone@yahoo.co.kr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20040112

∵∵∵∵∵∵∵∵∵∵∵∵∵∵∵∵∵∵∵∵∵∵∵∵∵∵

∵∴∴∵∵∵∵∵∵∵∵∵∵∵∴∴∵∵∵∵∵∵∵∵∵∵

∵∵∵∵∵∵∵∵∵∵∵∵∵∵∴∴∵∵∵∵∵∵∵∵∵∵

오랜만에 서울에도 눈이 옵니다. 이 맘때쯤 되면 그래도 한해가 다시 시작 되었구나 실감이 되요. 그 동안 안녕 하셨는지요? 지난 학기내내 처음과 변함없이 느낌 좋은 수업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새해에도 교수님 하시는일 모두 다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 내시길 기원합니다.그리고,더 건강하시고 가내에 행복과 사랑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한석훈 ■Re: 사랑을 더 많이 주면 줄수록 ■20040113

Milarepa님의 글을 읽으며 쉽게 답글을 못 쓰고 있었던 것은 꿈같은 현실과 영혼에 관한 말씀의 난해함에 발목을 잡힌 탓이지요. ^^ 여러 번 읽다보니 저 나름대로 이해를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만. 지구가 신이 꾸는 악몽일지도 모르지요. 결국 우리 모두가 꾸는 악몽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인데, 역시 그 악몽을 선몽으로 만드는 힘은 우리에게 있겠지요. 그 힘은 우리가 신과 공유하고 있는 사랑일테구요. 이것이 님께서 남기신 글의 제 해몽입니다. 100점을 주시기를. Namaste.


■한석훈 ■*공지사항: 글을 남긴 모든 분들께 답글을 드립니다. ■20040113

글을 남긴 모든 분들께 싸이트 주인의 답글을 드립니다. 방명록에 남기신 글의 성격을 봐서 사적(私的)으로 응답하는 편이 적절하다 싶으면, 남겨주신 이메일 주소로 한석훈이 답메일을 보내드립니다. 남기신 글이 이 싸이트 방문하는 여러분들께 드리는 말씀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에는, 저 역시 방명록에 직접 답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방명록이 매일 여러 편의 글이 올라오는 번잡한 곳도 아니고 하여, 글을 남기신 분들께는 꼭 위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응답드리고 있습니다. 혹 메일이 제대로 배달이 안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와 메일 주소를 안 남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 답글을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Namaste.


■눈보라 ■taoist2624@hanmir.com ■좋은 자료가 참 많네요 ■20040116

우연히 프레데릭 렌즈의 자료를 찾다가 들렸습니다. 많이 보고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자유인 ■.... ■20040116

지나가는 길손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나 힘들 때마다 자주 여기 들러 내적인 평화를 일깨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인사 드립니다.


■miLArepa ■milarepa@cein.or.kr ■슬.픔.의.  끝. ■20040117

▣ 니르바나의 경지를 체득한 고타마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說)했다. "제자들이여 흙, 물, 불, 바람이 없는 세계가 있다. 그곳은 끝없는 공간도 아니요, 끝없는 생각도 아니요, 무도 아니요, 생각과 생각 아님도 아니다. 그곳은 이 세계도 아니요, 저 세계도 아니다. 그곳은 오는 것이 없고(不來) 가는 것도 없고(不去) 머무름도 없으며(不停) 죽음도 없고 태어남도 없다. 그곳은 슬픔의 끝이니라. 어떤 상(對象)에 달라붙으면 떨어짐이 있지만, 대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떨어짐이 없다. 떨어짐이 없는 곳에 휴식이 있고 휴식이 있는 곳에 욕망이 없다. 욕망이 없으면 옴이 없고 가고옴이 없으면 죽음과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태어남이 없으면 이 세상과 저 세상 또는 그 사이(바르도)가 없나니 이때 모든 슬픔은 끝나느니라. ♡ 제자들이여! 변화하지 않고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상을 갖지 않는 세계가 있느니라. 만일 이런 불변, 불생부조(不造), 무형의세계가 없다면, 변화하고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형상가진 세계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느니라. 그러나 불변, 불생 부조(不造), 무형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형상을 가진 세계로부터의 벗어남이 있느니라. ≪팔리어 경전 <우다나(Udana)[自說]> 8장≫


추상적인 단어로 시작해서 관념적인 의미로 끝이 나는 글인데 '슬픔이 끝'장?나는 글이어서 어렵지만 가슴과 삶을 가볍게해주네요. 언어 구사력이 부족해 종국에는 중언부언되고 마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ㅜ..ㅠ) 저에겐 과분한 글입니다. 슬픔이 끝나는 때(곳)에 우리의 꿈도 끝나게 될까요? 착(달라붙음)심이 없을 때 슬픔이 끝나게 된다고 하네요. 우리가 신과
공유하고 있는 사랑이라면 달라붙을(習)게 없을 것 같습니다. 100점짜리 해몽과 내면과 외면의 신에게 감사하며...NamaSTE~!


■friend ■'기독교의 본질'을 읽고 ■20040126

참으로 좋은 말씀이네요. 특히 마태복음 25장의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의문을 풀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해석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다가오네요. 사랑을 보여주려 오신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좋은 글 올려 주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석훈 ■Re: 슬픔의 끝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을 읽고 ■20040126

Milarepa님과 friend님께서 불교와 기독교라는 다른 배경으로부터 말씀해주셨는데, 의도된 바는 아니나, 동일한 이슈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무엇에도 달라붙어서 집착하거나 고수함 없이 모든 것을 뛰어넘으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신앙의 끝없는 재생(regeneration; renewal)을 요구하는 예수의 가르침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마태오 복음의 '열 처녀의 비유'를 여직껏 뭔 소린지 모르고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를 올려 봤습니다. 또 다시 맞은 신년, 두루 평화로우시기를. Namaste.


■시나브로 ■vidya ■20040129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진다. 그와 같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안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젊은이도, 노인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해버린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그 누구도 죽음으로 가는 이들을 구하지는 못한다. 보라, 모든 이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그들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숫다니파타)


진정한 수행자는 시간의 속박을 받지 않으며 또한 생존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는 어떤 견해에도 끌려가지 않으며 어떤 지식에도 결코 오염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저 갖가지 견해의 가시밭을 손쉽게 뚫고 지나가 버린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지식의 쟁취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숫다니파타)


무엇을 굴레라 말하고 무엇을 족쇄라고 말하는가? 육신은 나를 얽어매는 굴레다. 육신의 욕구와 욕망은 정신을 얽어매는 굴레다. 이와 같이 감정과 생각에 매달림, 그리고 자기 중심적 사고도 우리를 얽어매는 굴레요, 족쇄이다 (아함경)


차별의 생각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속박이 있을 수 없다. 지혜를 통해서 자유를 얻은 사람에게는 미망이나 착각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편견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숫다니파타)

 

인간이 순수해지는 것은 학문에 의해서도 지식이나 도덕에 의해서도 아니다. 긍정도 하지 말고, 부정도 하지 말고, 어떤 것에도 고집하지 말며,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말라. 그 어디에도 의존하지 말고 조용히 살라. 생존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평화의 길이다. (숫다니파타)


진리는 하나요 둘일 수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안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진리를 찬양하고 있다. 자기와 반대 의견을 가진 자는 어리석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진리에 이른 완성자로 간주하고 있다. 또 자신을 완벽하다고 여기며 현자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끝없이 언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모든 편견을 버린다면 세상의 모든 언쟁은 종식될 것이다. (숫다니파타)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로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공포를 초월한다. 헛된 삶으로 이끄는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진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면 더 이상 무거울 것이 없는 것 처럼. 집착을 여의고 애써 노력하며 피안에 이른 사람은 목숨을 다한 것에 만족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처럼. 진리의 최고경지에 도달하여 세상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도 없는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집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 사람처럼.(아함경)


자신의 지난 생(前生)을 꿰뚫어보고 하늘의 기쁨과 동시에 지옥의 고통도 알고 있는 사람, 탄생과 죽음의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 그 영혼의 새벽 강가에 앉아 있는 사람,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성취해버린 사람, 그를 일컬어 진정한 브라만이라 한다.(법구경 끝 구절) 출처: 민족사판 작은 경전 1 법구경, 가슴을 적시는 부처님 말씀


■friend ■Live the questions! ■20040202

"...be patient toward all that is unsolved in your heart and try to love the questions themselves like locked rooms and like books that are written in a very foreign tongue. Do not now seek the answers, which cannot be given you because you would not be able to live them. And the point is, to live everything. Live the questions now."

릴케가 쓴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영혼을 위해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투정섞인 하소연을 했더니, 이 구절을 보여주시네요.


■이진경 ■moksha99@hanmail.net ■영혼을 두드리는 타악기 ■20040203

영혼을 두드려주는지 검증되진 않았습니다만 심장이 음악들에 심하게 반응하네요^ ^ 산뜻하고..좋아서..나누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그나저나 여기다 이런거 올렸다고 짤리면.. 설마 자르시진...그래도 설마... .. . [이진경님께서 보내주신 내용은 ‘길벗과 모은 글’ 섹션에 옮겨 실었습니다.]


■한석훈 ■시나브로 friend 님들 ■20040205

불경의 귀한 말씀 많이 적어주신 시나브로님께 감사드립니다. 법구경 말씀을 보니 저 자신은 진정한 브라만이 아니군요. (물론 놀라운 것 아닙니다만.) 헌데 브라만이 왜 그러한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는 이제 이해합니다. '이해'란 표현이 그다지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실은 남겨주신 불경 말씀들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기독교 경전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friend님께서 남겨주신 릴케의 글을 이번에도 영문으로 바꿔보겠습니다(어릴 때 릴케를 좋아했습니다):

"당신 가슴 속에서 해결이 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인내로써 대하세요, 그리고 질문들 그 자체를 사랑하고자 해보세요, 마치 그 질문들이 문이 잠귄 방인 것처럼, 또 마치 그 질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로 적혀 있는 책인 것처럼. 지금 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마세요. 그 답이 지금 당신에게 주어질 수 없는 이유는 당신이 그 답을 몸소 실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말의 요지는,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라는 것이지요. 그 질문들을 지금 실천하십시오."

번역하기 어렵네요. 특히 "live the questions"라는 표현이요. 격려와 도움 또 감사드립니다. ^^ Namaste.


■MiLArePA ■milarepa@cein.or.kr ■Avidya(無明) ■20040207

괴로운 곳, 견뎌야만 하는 곳(忍土), 이 곳을 떠나기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탈은 쉽지 않고 눈물을 흘린 것은 "나의 에고"였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는 이곳(이순간)을 녹일 정도로 사랑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류시화'시인의 '지구별 여행자'란 책속에, "아즈 함 바후트 쿠스헤"라는 힌두어가 생각납니다. 오늘 난 무척 행복합니다.라는 뜻의, 오늘 무척 행복하시길, 신의 은총과 함께,,,,


■한석훈 ■Re: Avidya(無明) ■20040210

오래 전, 이곳을 떠나려 결심하고 흘렸던 에고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모래시계'에서 최민수가 '지금 나 떨고 있니?'라고 묻던 그 순간에 농축된 환상에 대한 그 강렬한 집착을 기억합니다. 삶의 환영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말을 웃음지으며 쓰고 있습니다. 최소한 웃음 속에서 삶의 환상을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커졌음에 자족합니다. 그리고 오늘 난 무척 행복합니다. 어제와 그제도 그랬음을 기억합니다. Namaste.


■시나브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 ■20040214

무아라고 그럽니다. ‘나’라고 하지 않고 ‘나 아님’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나 아닌 것’의 모임이기에 그렇습니다. 나를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나’인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온전히 ‘나 아닌 것’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금의 ‘나’ 속에는 아침에 먹었던 밥이며, 반찬들, 물이 있고, 또 그 이전에 먹어왔던 숯한 음식들이 있으며, 오전에 쬐었던 햇빛 또한 들어 있습니다. 내 생각 속에는, 숯한 사람들의 부모님이며 선생님을 비롯한 온갖 사상가들의 이념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고, 부모님과 부모님의 부모님 또 그 위의 숯한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나’는 온전히 ‘나 아닌 것’들의 모임입니다. 아무리 ‘나’를 찾아보려 해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이 ‘나’입니다. ‘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직 ‘나’만을 사랑합니다. 나를 가꾸고, 나에게 양분을 주고, 나의 소유며, 나의 관념을 늘려 나가기에 바쁩니다. 나무 가지에 물을 주면 당장에는 윤기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뿌리에 물을 주는 것 만큼 근원적이지는 못합니다. 가지는 뿌리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 아닌 것’들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양분을 주는 것 보다 ‘나 아닌 것’에 양분을 주는 쪽이 더 근원적입니다. 좀 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 아닌 것’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나’를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나 아닌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둘이 둘이 아니게 될 때 우리의 사랑은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나’와 ‘나 아닌 것’이 둘이 아니게 된다는 것, 그것은 ‘나’와 ‘일체’가 둘이 아님을 아는 동체대비의 마음입니다. ‘나’를 가꾸려 하고, ‘나’의 소유를 늘리려 하고, 내 생각만을 고집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실은 ‘나’를 죽이는 길이며 ‘나 아닌 나’를 모르는 어리석은 행입니다. ‘나 아닌 것’을 사랑하세요. 나 아닌 일체 모든 것이 바로 ‘나’입니다. 안과 밖은 서로 통하게 되는 법이고, 나아가 그 둘은 사실 하나인 것입니다. 부모님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친구들을, 동료들을, 도반들이며 이웃들을 온전한 ‘나’로써 사랑하고 받아들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온전한 사랑을 베풀 때 결코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기적 같은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설령 내가 미워하고 있던 대상이라도 그 또한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우린 나를 바라보면서 100% 만족하지 못합니다. ‘나’ 가운데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는 아주 미워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눈이 혹은 입술이 예쁘지 않다고 눈과 입술을 미워하여 혹사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 또한 ‘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도 그것은 ‘나 아닌 것’, 다시말해 ‘나’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세상 그 어떤 이라도 나를 쉽게 인정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작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라도 그것은 나와 똑같은 비중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아귀에게 쫓기는 비둘기를 위해 허벅지를 떼어낸 부처님의 일화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둘기 무게 만큼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도 평형을 이루지 않던 저울은 부처님께서 온 몸을 내던지고서야 평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비둘기가 부처님의 몸과 똑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한여름밤에 나를 괴롭히는 파리나 모기, 들녘의 풀벌래며 작은 개미, 여치들에서부터 개울가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작은 조약돌 하나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 하나는 ‘나 아닌 것’으로써 ‘나’의 또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나 아닌 것’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자는 ‘이기심’이라 불리우며 업을 짓는 일이고 아상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수행자에게는 별로 추천해 줄 만한 방법이 못됩니다. 그러나 ‘이타심’이라 불리는 후자는 복을 짓는 일이며 아상을 녹이는 일이기 때문에 나아가 수행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소중한 길이 됩니다. ‘나 아닌 것’들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나’의 행복은 ‘나 아닌 것’들의 행복에 전적으로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주위에 시선을 돌려 베풀고 사랑하고 아껴줄 일입니다.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배풀고 사랑하고 아껴줄 때 우리는 ‘나 아닌 것’들에 의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경이로운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미소지을 때 세상은 나를 향해 웃음 짓게 될 것입니다.

♡♥♡♥♡♥♡♥♡♥♡♥♡♥♡♥♡♥♡♥♡♥♡♥

♡http://www.moktaksori.org 에서 퍼왔습니다^^;♥

♡♥♡♥♡♥♡♥♡♥♡♥♡♥♡♥♡♥♡♥♡♥♡♥


■와사비 ■wasavi@empal.com ■그녀가 이해가 가니 큰 일입니다... ■20040216

안녕하세요? 한석훈님. 날마다 들어오는 골수 팬... 내지는 중독자입니다^^ 언제 업데이트가 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새 글 올라온 것을 보고 무척 반가왔습니다. 이승연씨 사건에 대한 단상을 올리셨더군요. 저도 뭐 사람이 워낙 얄팍해서 그런지 그녀에 관한 기사를 참 많이도 보았답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상업적인 의도를 갖고 찍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게 상업적으로 '될 거라는' 판단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그녀가 잘 했다는 게 아니라) 그녀의 생각이 이해가 가지 뭡니까?? 시류가 시류인지라, 이해가 가는 자신이 두렵더군요-.-;;; 1부는 팔라우에서 그렇게 찍고 2부는 일본에서 게이샤하면서 사랑과 복수 사이에 헷갈려하는 모습을 찍고, 3부는 어디 불교 사원에선가 복수도 훌훌 털고... 하는 모습 찍어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화제를 모색한다는 컨셉도 이해가 가고 그래서 그동안 네티앙과 이승연씨가 부득부득 할 말이 있다고 할머니들을 설득하겠네 어쩌네 했던 거로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 컨셉이 말이 된다는 건 아닙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이성조차 상실한 컨셉이지요. 제가 든 생각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데 자기 입장과 처지에만 확 빠져있다보면 영 말이 안되는 일도 말이 되는 거처럼 느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에게 '이건 순수한 거야!'라고 설득하게까지 되는, 의식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어느 일본인이 지었다는 <바보의 벽>이라는 책도 그런 내용이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얻고 싶은 정보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보여도 인지하지 못한다고요. 다시 한번....사람들은 모두 나와 닮았고, 사람들이 하는 일 가운데 나와 무관한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녀가 한 일은 저도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녀도 나의 일부지요...

※ 물론 그녀를 쉽게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러자는 의도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용서는 신의 몫이고 우리는 인간의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에 살고 있으니까요.


■김성환 ■doolf@goodnews.or.kr ■기쁜소식 선교회 성도입니다. ■20040216

안녕하세요. 저는 기쁜소식 선교회 소속의 마산중앙교회의 성도 김성환 이라고 합니다. 님께서 우선 관심으로 저희 선교회 홈에 방문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지 모르겠지만 저희에게 방문하여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이라는 책을 보신 것도 참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기쁜소식 선교회에 들어온지도 거의 8년이 되어갑니다. 처음 제가 죄사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파격적이고 도저히 제 양심상으로도 허락되지 않는 세계 였지요. 처음에는 과연 이 진리가 맞는가 하면서 강한 불신을 가지기도 했답니다. 말씀을 펴서 살펴보기도 하구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성경을 알면 알수록 '죄 사함'은 분명한 사실 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지요. 오직 은혜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복음을 저는 다른 교회에서 들어보지를 못했답니다. 그러니 이 '죄 사함' 이라는 말씀이 제겐 너무나 파격적이었지요. 님께서 저희 교회 젊은 목사님이 강요를 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한번 두분이서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 그렇지 않으시면 '죄 사함'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셨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대하면 대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선명하게 기록된 것을 봅니다. 아마 저희 목사님께서 님에게 교회 한번 나오라는 말도 진지하게 대화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요는 하지않습니다. 어찌 믿음을 가지는 부분이 강요한다고 가질수 있겠습니까. 손목시계를 보고 "너 이거 손목시계야! 안 믿으면 안돼!" 이게 말이 안되지요. 믿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강요한다고 해서 대체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지요. 아마 저희 목사님도 한번만이라도 대화를 했으면 싶어서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선교회 안에 있으면서 참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희 선교회를 비방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기쁜소식 선교회 안에 있으면서 너무나 그런 비방과는 거리가 먼것 같습니다. 가정이 파탄 직전에 계셨든 분들이 믿음을 가지면서 행복한 가정으로 바뀌어지고 자살 하기 일보직전에 가셨던 분들이 믿음을 가지고 변화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단지 죄 사함을 받고 믿음을 가지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무수히 많이 보았습니다. 심지어 일반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저희 선교회와 연결되어 참된 믿음을 가지면서 너무나 아름답게 삶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전하는 이 복음이 정말 거짓되고 잘 못된 진리라면 말씀을 통해서 한번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말씀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고 지적해주시면 제가 기쁜소식 선교회를 떠나겠습니다. 이건 분명하게 약속을 드립니다. 님께서 가지고 계신 책을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고 말씀을 기준으로해서 거짓된 부분이 있으시면 제 메일로 연락을주세요.


■박수찬 ■psc0711@empal.com ■^^ 고맙습니다!~ ■20040217

저의 고민을 해결해주시고 나아갈 방향까지 설정해주시다니 고맙습니다^^a 앗..뭔가 아쉬워서 추천책 : '부처와 돼지' (학교 도서관에서 1권부터 3권까지 독파한 감명깊은 만화책;) 따로 만화책의 지혜를 만드심도('-';)


■shh ■Thich Nhat Hanh teaches... ■20040218

The Essential Discipline

More than thirty years ago, when I first entered the monastery, the monks gave me a small book called "The Essential Discipline for Daily Use," written by the Buddhist monk Doc The from Bao Son pagoda, and they told me to memorize it. Ut was a think book. It couldn't have the thoughts Doc The used to awaken his mind while doing any task. When he woke up in the morning, his first thought was, "Just awakened, I hope that every person will attain great awareness and see in complete clarity." When he washed his hands, he used this thought to place himself in mindfulness: "Washing my hands, I hope that every person will have pure hands to receive reality." The book is comprised entirely of such sentences. Their goal was to help the beginning practitioner take hold of his own consciousness. The Zen Master Doc The helped all of us young novices to practice, in a relatively easy way, those things which are taught in the Sutra of Mindfulness. Each time you put on your robe, washed the dishes, went to the bathroom, folded your mat, carried buckets of water, or brushed your teeth, you could use one of the thoughts from the book in order to take hold of your own consciousness.
 

The Sutra of Mindfulness say, "When walking, the practitioner must be conscious that he is walking. When sitting, the practitioner must be conscious that he is sitting. When lying down, the practitioner must be conscious that he is lying down......No mater what position one's body is in, the practitioner must be conscious of that position. Practicing thus, the practitioner lives in direct and constant mindfulness of the body...." The mindfulness of the position of one's body is not enough, however. We must be conscious of each breath, each movement, every thought and feeling, everything which has any relation to ourselves. But what is the purpose of the Sutra's instruction? Where are we to find the time to practicing mindfulness, how will there ever be enough time to do all the work that needs to be done to change and to build an alternative study Joey's lesson, take An's diapers to the laundromat, and practice mindfulness at the same time?


■milarepa ■milarepa@cein.or.kr ■헌신(바크티)의 씨앗 ■20040222

배불리~! 배불리~! 였던 현실속에서 음식을 적게 먹습니다. 그리고 채식을 합니다. 고행과 불행이 주는 지혜속에서 헌신(바크티)의 씨앗을 뿌립니다. -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글로리아 ■kriyayogi@hanmail.net ■나의 작은 깨달음.... ■20040226

나는 영적인 길을 걷길 원했고 또 그 길로 접어들어 지금도 걷고 있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수도 없이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기를 써도 인간의 깨달음은 한계가 있다는 것..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 어떤 구루들은 인간의 영의 세계는 무한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나는 종교다원주의와 유일신 사상 사이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아님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부모, 아이, 아내, 남편 등등)이 지금 죽음의 세계로 서서히 가고 있다면 나는 그때도 마음속 신에게 마음 평화로이 빌며 수행을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아직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라면,아님 그런 상황이라면.... 결국 나는 절대자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이것이 나의 깨달음이다...

■나뭇잎 ■sofiakim@hotmail.com ■반갑습니다.^__^ ■20040302 ■URL=http://www.shaumbra.or.kr

<100년 묵은 호두나무에서 딱따구리의 아침식사 작업이 한참이다. 다닥딱딱딱..부드럽게 나무를 울리는 소리가 난다. 오솔길을 따라 새벽 산책을 나서면 숲속의 모든 것들이 반갑다고 악수하자 한다. 한 순간 난 멍해진다. 아하 그래..밤새 잘있었니? 그들에게 분주히 아침인사를 보내고 풍요한 여신의 젖줄마냥 불은 계곡물에 세수를 한다. 한번 귀의불 ,두 번 귀의승, 세 번 귀의법. 계곡물을 마신다. 한번 성부, 두 번 성자, 세 번 성신의 이름으로 마음은 지복으로 가득하고 내려오는 내 마음에는 그 어떠한 언어도 없다.>
 

진작부터 인사드릴려 하였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늘 반가운 마음으로 이 곳을 찾곤 하는 사람입니다..


■candlemonk ■murderstory@hanmail.net ■스쳐감니다. ■20040305

둔하고 어리석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깨우친 일마져도, 한참을 헤멘후에야 조금씩 자기것으로 만듭니다. 다만 위안이라면 내게 조금은 무언가가 비쳐지고 있다는 그 지점이지여. 문득 눈내렸습니다.


■한석훈 ■4편의 답신 ■20040306

그간 남겨주신 글들에 대한 답신을 한꺼번에 메일로 보내드리고 그 내용중 일부를 여기다 붙여놓습니다:


♥Re: 헌신(바크티)의 씨앗

말씀하셨듯이 소식, 채식이 소위 수행한다는 이가 결국 가게 되는 필연적인 식생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죄다 먹어 치우지만, 제 집에서도 점점 육류 소비는 줄어가고 있지요(최근의 역병 파동 이전부터요). 하지만 이것이 고행도 아니고 헌신도 아니군요. 저에겐 이 또한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의 일환일 뿐이네요. ^^ 섬에도 이번엔 눈이 많이 왔겠죠? 지난 주엔 가족과 대천에 다녀왔는데, 이 다음 번 여행 갈 땐 그보다 더 남쪽으로 가보려 합니다. 섬 생활의 독특한 체험 가끔 일러주세요. 호기심 납니다.


♥Re: 나의 작은 깨달음...

한국에 돌아오신 건가요? 이역에서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얼마 전부터 제게 빌려주신 책의 내용도 제 싸이트에 번역해서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이 보관하고 있는 책은 귀향하신 걸 일러주시는 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먼 곳에서 님께서 입수하신 책이 결국 제 손까지 들어와서 그 내용이 한국어로 바뀌어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는 그 경로가 재미있습니다. 님께서 남기신 글을 보니 혹시나, '종교다원론'과 '유일신'을 서로 반(反)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신 건 아닐까 하여 한 말씀드립니다. 저 자신의 배움을 통해서도 그렇고 또 제게 빌려주신 책의 저자 요가난다를 비롯하여 수많은 구루들의 말씀을 통해서 보아도 그렇지만, 종교다원론과 유일신관이 서로 모순되는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선 양자가 조화롭습니다. 신은 하나이지만 종교는 다양하니까요. 님께서도 그렇게 믿고 계시는 것으로 짐작해왔기에 님의 글을 제가 오해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자 재정리 해봤습니다. ^^ 그런데, 왜 이렇게 님의 글이 어둡게 읽히는 것일까요? 글의 내용 자체는 저에게는 조금도 암담하지 않습니다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님의 마음이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저의 오해일까요? 혹시 남기신 글의 내용을 암담하게 님께서 받아들이고 계신지는 몰라도, 저는 똑같은 내용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만에 뵙는(?) 님이 반갑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궁금증도 일고 합니다.
 

♥Re: 반갑습니다.^__^

'나뭇잎님,' 제 싸이트 방문하시고 청량한 글 남겨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 글을 읽고는, 이 분은 참으로 축복받은 환경에서 살고 계시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저 자신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리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저는 그리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저도 집 부근 산 속에서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를 신비롭게 여기며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Re: 스쳐감니다

남기신 글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껍질 안의 깊숙한 의미를 대개는 알지 못하고 지나치지만 결국 늦게나마 이해하게 되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하여 키워가는 참 자아에 대한 참지혜에 감사한다는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문득 내린 눈으로 인하여 고생길이 된 심야의 귀가 길을 축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눈은 무심하겠지만요. ^^ 평화를 빕니다. Namaste.


■나뭇잎 ■sofiakim@hotmail.com ■잠.꼬.대.(참으로 겸손한 한석훈님께~♥) ■20040309
■URL=http://www.shaumbra.or.kr

혼자라는 것이 행복합니다.(釋迦牟尼佛初生 一手指天 一手指地周行七步 目顧四方曰 天上天下唯我獨尊) 누우면 발을 닿을 듯한 공간에서 하루종일 벽만 쳐다보고 있어도 나는 진정 행복합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복이 가슴으로 흘러나와 온 우주로 퍼지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나의 숨에 달콤함이 베어 있습니다. 온 몸을 깊고 평온한 붉은 빛이 감싸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평안한 느낌입니다. 매우 고요하며 감사만이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위의 부산함과 시끄러움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자유자재한 존재입니다. 나는 무섭게 불을 뿜는 흉칙하게 생긴 용입니다. 그 혀끝으로 치솟는 불의 낼름거리는 불꽃입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바다를 누비는 돌고래입니다. 빗껴들어오는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는 에머럴드빛 바다입니다. 그 바다를 지탱하고 있는 금빛 모래입니다. 아니 나는 열대풍에 휩쓸려 다니는 모래 언덕입니다. 그너머로 속절없이 섬처럼 떠있는 오아시스입니다. 그 위로 흑단같이 까맣게 펼쳐진 밤하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별빛입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입니다. 나는 빛이요, 사랑이며, 생명입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I am that I am입니다. 생생하고 행복한 꿈 한가운데 있는 자존자입니다.


■DW ■좋은 사이트입니다. ■20040311 ■URL=http://maharshikorea.com.ne.kr

우연히 검색하다가 들렀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수행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하르쉬님을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면서 얼마전 마하르쉬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한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안 하시길...
http://maharshikorea.com.ne.kr


■일원 ■pillow10@hanmail.net ■안식처가 따로 있겠어요?.. ^.^ ■20040316

흐르는 음악들도 좋구,, 곳곳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감사드립니다..


■이진경 ■moksha99@hanmail.net ■봄기운 물씬~~ ■20040318

안녕하세요~ 수행일상을 보니 여전하신것 같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몸에 밴 탐욕 많이 털고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님처럼 잘 난척 할 날 맞이하고 싶네요~ ^_^ 머리의 지식이 마음으로 내려가도록 정성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마음으로 알아야,,체득해야 탐욕이 뜨겁게 달군 쇠구슬임을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그래서 오늘도 좀 더 멋진것, 반짝이는것, 아름다운것으로만 눈이 돌아가는 스스로를 참회합니다.. 그리고 잘 났다 못났다를 가르고 괴로워하는 비교의 마음도요.. 그들이 헛깨비임을 아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아니 실은 순간순간 맞이하고 있네요 몇분과 태국엘 가게 됐습니다 절에서 하는 비빠사나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러 하는데 10박 11이랍니다. 무사히 마칠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아..봄입니다 쫙 한번 기지개 펴고 일없어도 싱긋~ 웃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가정에 평화 함께 하시길..


■안효식 ■an1003@hanafos.com ■공유 ■20040321 ■URL=http://soosunjae.org

깨달음은 자신을 알고 자신을 찾아가는 고행인가요. "한국의 仙人들" 책을 통해 새롭고 옳바른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공유하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나그네 ■nollazima@hanmail.net ■외로운 영적 모험가 ■20040322

쥔장님! 다녀갑니다.^^* 2002년 10월 09일 13시 43분 홈페이지 :  http:// IP : 61.254.207.21

외로운 영적모험가.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계의 모든 정신은 심리학입니다. 필자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세계의 모든 학문과 종교와 정신은 심리학으로 통한다. 예수는 심리치료사였고 부처도 심리치료사였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심리치료사였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심리치료사들입니다. 저는 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그들은 인간의 육체적인 고통을 치유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도 인간의 육체적인 고통은 어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육체에 몸담고 있는 한. 예수도 기적을 일의키고 신통한 일을 벌이고 부활하고 했다지만 장구한 역사속에서 모든 인간의 육체까지도 편안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물론 정신과 클리닉이나 정신과 의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사찰에서의 승려들이 특히 선사들이 그런 심리치료사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조선시대에도 정신적으로 고뇌나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인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심령을 치료해줄, 문제점을 해소해줄 처소가 필요했을 것이며 사찰이나 무속인들의 무속의식은 그런 주요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죠. 주로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들은 세파에 더 많이 상처 받고 괴로워하고 죄책감을 받고 카라마조프가의 알료샤처럼, 알료샤 맞나, 그래서 속세를 등지고 승려가 되어 자신의 홀가분한 삶의 길을 선택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예수와 부처가 훌륭한 심리치료사 심리연구가 였듯이 그와 비견될 만한 훌륭한 심리학자가 19세기 말에 다시 한 명 태어납니다. 오늘은 아주 고독하고도 모험적인 인물을 한분 소개할까 합니다만. 서구의 정신적인 십자가를 다시 한번 홀로 짊어졌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열린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구촌을 자신의 안방으로 생각하는 누구보다 열린 정신의 소유자인 대인이 한명 있습니다. 누굴까요? 다들아시겠지만 소개와 함께 현대인에게 봉착한 성문제나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유령을 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것들을 무척이나 무서웠했습니다. 자신으로서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죠. 신기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 아이의 주변에는 즉 일가나 친척 중에는 그런 영능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강령회에 나가 영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해보곤 했습니다. 누구일까요? 벌써 맞추셨나요. 그는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자 신학 자연과학 의학 철학에서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못했습니다. 이미 그는 다른 차원에 있었던 겁니다. 신기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남들이 접하지 못하는 영역에 발을 들인자에게는 다른 학문들이성이 찰 리가 없었겠죠. 그래서 그는 정신의학을 통해서 인간 정신을 탐구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프로이드 선생 밑에 들어가서 의식의 구조들에 대해서 연구하게 됐는데, 그는 프로이드를 존경하면서도 프로이드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칼 구스타프 융이란 사람입니다.


그는 정신의학을 하는 과정에서도 오컬트에 대해 흥미를 느껴서 그것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컬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라면 벌써 한 세기 전에 바다건너 저쪽 동네에서는 똑같은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뭔가 누군가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사실을 알때 참으로 늦게 태어난 사람들은 착찹한 마음을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몇십년 전의 서구인들의 생활양식을 거의다 따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라파 양식들을 일본이 전해 받고 일본의 것을 우리들이 건너 건너 전해받은 셈이죠. 우리의 존재가 그들의 모방 존재라...... . 여러분들이 현재인으로 그토록 매달린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이 이처럼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실이 반복된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서 이런 선조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으며 현세인들이 봉착한 문제들에 아주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이드도 역시 오컬트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정신의학에 오컬트를 보충하는 보충물로 생각했는데 솔직하고 자신을 굽히지 않는 구스타프 융 선생은 조선식으로 말하면 신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오컬트에 더 매료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융은 프로이드가 자신의 성이론에 집착하고 있으며 자신의 귄위와 이론을 고집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개방성은 연구자로서의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융은 아버지처럼 여기고 의지하던 프로이드의 그들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인간의 아집이란 뭘까요. 자존심이란 뭘까요. 자신의 학설, 자신의 권위 이런 것이 도대체 뭘까요. 진정 자신의 학설이 자신의 권위가. 도대체 우리가 이런 자신의 학설 자신의 권위를 위해 우리는 연구하고 모험하고 열정을 품고 하는 걸까요. 그런 욕망, 자신의 학문적인 야욕과 고집을 위해서 우리는 정신을 소진하나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빛나는 통찰이나 우리들의 영감이나 직관은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우리들의 영감이나 가설이나 학설 모두가 실제로 무에서 우리가 새롭게 창조한 걸까요. 단지 우리는 안테나나 감지기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서로 공유하기 위해 창고에 쌓아둔 것을 발견한 것 뿐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에 대한 애착과 권위나 자존심이 부질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까요. 우리 모두가 잘 어울어져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학문을 연구하고 미래를 예견하고 하는 것일겁니다. 이런 더 깊고 본래적인 의도를 안다면 우리는 그런 자기만의 집착을 떨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정으로 학문을 사랑한다면 남의 좋은 점이 있다면 자신의 좋은 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설렙니다. 누구의 학설이나 누구의 이론을 떠나서 진정으로 그 학설 자체에 설레게 된 것입니다. 그 희열과 설렘. 진정 정치를 사랑한다면 단지 대통령만 되기 위해서 서로 물고 뜯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 영화를 사랑하면 감독만 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진정으로 학문이고 정치고 영화를 사랑한다면 누군가 대통령이 되고 감독이 된들. 진정 훌륭한 학설이 나오고 국회가 성립되고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들은 어떤 위치에서든 설레는 것입니다.
 

지구 영화사에 명장으로 남은 데이비드 린 감독도 그처럼 장중하고 유려하고 과거의 한 상황을 그대로 떼어다 놓아버린 듯한 작품들이 많은데, 영화 감독이라면 자신이 직접 쓴 허구적인 시나리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독의 우수한 작품들을 보면 그 원천이 우수한 원작이나 실제로 삶을 살았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 스크린에 담습니다. 물론 자신의 쓴 시나리오와 허구를 영화로 담는 작가들에게도 개성이 있겠지만 그는 더 훌륭한 원천, 자신의 상상보다 더 훌륭하게 영화의 원천을 창조하는 전문적인 예술가들의 존재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서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권위나 자존심보다는 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영화 자체에 대한 열정. 그 설렘. 그 셀렘은 아마 도의 경지라고 말을 바꾸고 싶군요. 그런 작품은 감독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되버립니다. 모두의 것이. 그 설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느끼는 공유하는 그 설렘. 학문 예술을 통한 그 설렘. 서로 교감하고 서로 함께 울린다는 그 설렘.


지그문트 프로이드 영감님은 그런 열림과 아량이 좀 모자랐던 모양입니다. 어찌보면 자존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학설에 대한 애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융이 보기에는 좀 얄미웠던 모양입니다. 융은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오컬티즘의 영역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는 정신분석이 이천년의 역사를 자랑해온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종교와 같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부가 넓고 심원한 것이었죠. 프로이드가 오컬티즘에 두려움을 품고 있다고 판단하고 융은 자신의 독자적인 의식탐구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 융의 선택, 분수령,100년전의 융이 처해진 두려움과 모험과 가시밭길 그는 모험가였다. 2000년의 역사를 등지고 온 기독교 이외의 길로 접어든다는 정신적인 외로움 불안. 종교적인 불안과 참다운 현상, 어떤 체제와 역사적인 왜곡도 되지 않는 참다운 현상을 한 번 찾아본 것입니다. 기존의 어떤 우상의 정신적 억압과 주시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가지 못한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참다운 앎을 위해서.


왜 나는 융을 말하는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남한의 땅에 무수한 융과같은 정신적인 기로에 놓인 수없이 많은 청년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청춘들이 고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46468;문이다. 도시 야경에 불쑥 불쑥 파묻힌 그 교회의 십자가들과 내 주위의 손 위 아래의 종교적인 문제로 회의하고 의지하고 괴로워하는 청춘들을 볼 때면 나는 융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기 때문입니다. 내 주위에는 어린시절 부터 항상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한명씩 따라다녔는데 그들은 귀찮을 정도로 나를 교회에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거의 모든이가. 그러나 나는 교회의 이미지가 싫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전도를 하고 애를 쓰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면서도 가끔 회의하고 절망하고 했지요. 아이러니하게. 어떤 친구는 고교시절에 어떤 친구는 대학시절에 어떤친구는 대학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마당에 그 종교에 대해 회를 품게 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종교의 본질이 과연 무엇일까요.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던 청춘들이 회의감을 가지고 멀리할까요. 이 필자가 미쳤다고 바다 건너 그 먼나라의 그것도 백년전의 한 청춘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이야기 하고 있겠습니까. 그 안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기 &#46468;문이다. 백년전의 그의 모습을 답습하고 어디에도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 알고 있는 청년들의 정신적인 혼란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기 즐비하게 널린 유흥업소의 간판 술집에 비견될 만하게 도시 곳곳에 즐비하게 널리 퍼진 십자가들 뭔가 용서받아야 할것이 많기에 뭘그리도 사죄받아야 할 일이 많기에 그토록 많은 십자가들이 고뇌하는 심신이 평안하지 못하고 수고로운 자들을 감싸 안으려고 하는 지. 성적인 풍경들이 인터넷어디서건 클릭만하면 어린아이들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혼란스런 세상에. 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교회들은 그 진리의 알맹이를 제대로 전파했는지. 학자들은 제대로 연구했는지. 우리의 정신적인 구조에 대한 참 앎은 무엇인지. 나는 교회는 나쁘다. 기독교는 나쁘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교육의 부재다고 떠들지만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기에 참으로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기에 이 사회는 그나마 이렇게 부족한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종교적인 알맹이에 가까워지기 위한 하나의 소견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는 예로부터 인간에 심령의 안정을 주는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신이 거처하는 전당에는 동시에 악마가 제단을 쌓는다는 에드가 알렌 포우 말처럼  그 신이라는 존재를 빙자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과 자존심과 기득권 그리고 밥그릇 싸움을 해대는 그래서 종교전쟁을 일삼는 극단적인 태세로 까지 몰고가는 종교의 형식주의와 변질주의, 그리고 그러한 세태를 조장하는 역사적인 축적, 왜곡, 비순수, 이중성, 몇천년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날조들을 볼때면 우리들이 찾아가야할 더 순수하고 맑은 종교적인 알맹이가 어디쯤에 있을까 가늠해 봅니다. 그것은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그 순수한 사상에도 단지 그 사상의 약점때문에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겠는가. 그 사상을 빌미로 서로의 권력과 야욕을 채우려는 인간군상의 혼란스런 행태들이 이와같은 역사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종교는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저 깊숙히 묻어둔 인간의 혼란스럽고 어두운 면들을  계율을 만들어서 욕망을 억압합니다. 단지 문제는 그 계율로서 끝나버린다. 어떤 신의 존재가 있어서 너는 그 계율을 지켜야 한다. 너에게는 그 모습 밖에 없다. 그게 너의 진짜 모습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벌을 받는다. 어떤 때에는 말에 의해서 어떤 때에는 묵시적인 분위기에 위해서. 더 나은 진보적인 종교가 되기위해서 계율이 계율로서 멈춰서는 안되고 인간에게 내재된 역사와 원죄와 업과 같이 드리워진 그림자들을 함께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해소해낼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을 모색해 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믿어라, 예수믿어라, 침을 튀겨가며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 와 아울러 그 밑에 자리하고 있는 더 깊은 인간의 의식과 이야기들도 함께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성인이 된 청춘들에게는 은연중에 자신을 괴롭히는 그런 종교적인 억압을 덜어내 줘야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죄와벌 성과 속의 단계를 넘어서는 좀더 성숙된 영적문화를 마련해가야 될 것입니다. 불교든 기독교든 다른 어떤 종교체계를 통하여서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굽어있는 것을 바로볼 수 있을까요 굽어 있는 것을 굽어 있는 대로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다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신성한 면만이 아닌 어두운 그림자의 면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어두운 그림자의 존재를 무시하고 신성한 면만이 진리라고 도외시해버리면 우리들의 심연에 축적된 그 욕망들은 언젠가 압력이 팽창되어 터져나올 것이므로 그런 것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물고를 터줘야 하는 것입니다. 순화와 정화 그리고 조화 정리 정돈의 방식으로. 그것들이 있어야할 곳에 잘 정리 정돈해둬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를 배반하고 사회질서를 흔들기 위해서 주장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더 진실된 종교와 더 참된 신성을 밝히기 위한 하나의 작업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 자신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프로이드도 니이체도 기독교에 반대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더 할 수 없이 예수에게 안식에게 목말라 있었던 사람이라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아도 얼마만큼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반항이 혼란을 위한 것이 아닌 안식을 위한 반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의식, 마음의 구조를 좀더 열심히 들여다보고 연구해서 그리고 직시해서 진짜를 보게해주는 것이 미래와 영원위해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에게는 선하고 질서 정연하고 밝고 종교적인 신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의식의 깊은 곳에는 그렇지 못한 어둡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의식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인간 각자 종족 각자에게는 서로 비슷한 의식들이 울타리져져서 자리하고 있다고 융은 말합니다. 융은 이것을 집단무의식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우주 태초의 시기부터의 모든 정보들이 그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다시 복제되어 걸머지고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만일 우리가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우리 내면에는 그 한국의 집단 무의식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도인들 용어로 바꿔보자면 조상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디언이나 원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종족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는 우리는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지 않으면 찜찜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그 무엇이 있기때문입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자연과학을 공부한 엘리트들 조차도 큰 일을 주체하기 전에 고사를 지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들 내부에 집단 무의식이 내재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무속의 정신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계속해서 소급해 올라가면 인류에게는 종족 종족마다에 비슷한 유형의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통찰인가요. 자신이 태어나 자라온 기독교의 환경에서, 어린 시절에 구축된 그 종교적인 금기를 깨고서 이천년의 종족령을 깨고서 새로운 의식의 양태을 찾아 모험을 나선 융의 행로와 고독감과 불안은 무척이나 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벌써 백년 전에 이들은 기독교를 등지고 이런 연구를 시작했는데 무려 백년 후인 우리 한반도의 기독교가 크나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입증하는 것일까요. 그 종교의 주인들은 이미 그 종교에 대해 제동을 걸고 새로운 면모를 탐구하고 진정한 알맹이를 찾으려는 마당에 백년 후인 이 한반도의 사람들은 도대체 진정한 종교를 구가하고 있는걸까요. 종교적인 껍데기가 가버린 참 종교, 그리고 참앎을 위해서 우리는 쉬지 않고 탐구해야 합니다. 왜곡된 역사와 알맹이를 도외시한 지나친 형식주의 종교적인 야욕들의 찌꺼기를 허섭스레기를 걸러내야합니다. 융은 세계 각지도 여행을 떠납니다. 아메리칸 티벳 인도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는  그 모든 종교와 의식들을 열린 마음으로 연구하면서 수용하고 그것들의 원형 찾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참 밝고 맑게 잘 살아가더란 말입니다. 자신들의 개성적인 신들께 숭배하며 종교적인 양태를 들어내면 평안한 서구인 못지 않는 평안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태양신을 숭배한 인디안들, 주술적인 의식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아프르카 원주민들, 중국인 인도인의 사상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는  명상을 합니다. 참으로 선구자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요. 애개개! 뭐 명상정도 하는 걸 같구. 하실지 모르지만 그 아저씨의 시대와 지금처럼 명상에대한 정보가 널리퍼진 때와는 그 명상에 대한 낯설음이 더 강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너무 길어지는 군요.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전체 모습 속에는 종교적인 순결성 뿐 만이 아니라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어둡고 불결하다고 말되어지는 그 모든 모습들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실한 종교인일 수록 이러한 어두운 면들이 뇌리에 불쑥불쑥 튀어나올 것입니다. 현재 자신이 겉으로 드러내는 순결한 자기상과는 다른 음흉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왜냐. 인간의 의식과 욕망이라는 것은 음식과 함께 그리고 봄, 시각과 함께 자연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라서, 종교적으로  청교도적인 순결성을 가진 분에게 이러한 경향이 많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가지고 그런 의식을 억압하고 눌러서 자신의 의식 더 깊은 곳에 감추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불미스런의식들을 그저 흘려보내세요. 직찹하지 말고. 너무 자신을 죄악시하지도 마십시오. 이런 의식들을 눌러서 솟아나오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그런 욕구는 다른 곳으로 길을 찾거나, 옆구리로 터져나오거나 밑부분으로 터져나오거나 해버리니, 어떤 방식으로든 터져나올 것이니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것이라면 그 의식을 마음에 거주함이 없이 흘려보내세요. 자연스럽게. 그것이 어른이고 종교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길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그렇다고 의지적으로 의식적으로 음흉한 마음을 품으라는 말은 안했으니.^^ 그 무수한 학식과 덕행과 공덕이 많은 서경보스님께서 하시는 말씀, 어느 날 방안에서 수행을 하는데 온 방벽에 여성의 성기가 덕지덕지 보이더라는 그 말에 저 중님은 진정으로 큰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스님이 그 스님을 모방하시면 않됩니다.^^ 그 지고하고 고고하신 그리고 청결하신 정신의 소유자 입에서 모든 세인에게 존경받는 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하실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고고하신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외면과 내면이 다르지 않지요. 부처가 되는 법 알려줄까요. 아주 쉬워요. 방법은 쉬워요. 실천이 어렵지. 자신의 외면과 내면이 언제나 같으면 그게 부첩니다. 그래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고 돌에게 불성이 있는 것입니다. 존재와 형상이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뇌에도 구생뇌와 신생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이 구생뇌가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도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의식의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솔직히 융의 동시성 이론을 설명하고 싶었는데 의도와는 달리 다른 글이 길어져버렸군요. 필자의 생각에 융의 동시성 이론은 동서양의 사상체계와 투시력 예시 그리고 각종 초능력등과 아카식레코드 그리고 배르그송의 시간개념, 그리고 선불교의 절대현재 등 일련의 현상들과 결부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참으로 독특하고 멋지며 참으로 애매하기도하고 아직은 잘 감잡기 힘든 그런 이론인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생각해야겠습니다. 인과론과는 다른 이세계를 동시성에 의해서 파악하는..... 만약 물질 현재 과거 미래가 이미 한몸으로 덩어리져 있고 여러 분의 영혼만이 그 물질을 타고 이 시간들을 여기저기 여행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엉뚱한 상상일까요. 제 상상인데...... . 마치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자들처럼. 융의 동시성 이론과 맥락이 좀 같아서 적어봅니다. 세계가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동시성. 아쉬워서 예를 몇개 들어보죠. 융이 하루는 영혼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신기가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과거의 원혼들....... . 그는 이것에서 동시성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동시적으로?........ 그리고 융은 죽음은 동시적으로 또다른 삶으로의 탄생이다. 역시 동시성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인과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전체를 한눈에 시간과 공간을 한눈에 일별하며 하나의 깨달음. 하나의 동양적인 도. 죽음과 동시에 삶으로 탄생? 제가 생각하는 용어로는 절대시간, 절대현재,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하나인 절대현재, 비이성적인, 그런 것들이 연관된, 아마도 동시성 이론은 그런 것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그를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모양입니다. 동시성은 한몸이겠죠. 한마음이겠죠. 위의 동시성이론과 부가된 제 주변 생각들은 그저 참고하십시오. 그러나 그런 예들을 융보다 더 많이 들라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오신 인내력이 출중하신 한 분 감사합니다.^_^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보스럽지만 매력적인 분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아아!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란 책은 융의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소설이라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알을 파괴해야하죠. 그러고 보니 이것도 동시성이네요. 동시성^_^ 그리고 끝으로 중요한 것은 융의 생각도 그리고 필자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독자님 자신이 자신의 내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생각인지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정보일 따름이니까요. 주인공은 독자님입니다. 마지막엔 결국 독자님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솔하고 진실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요.^^


■노인과 여인 ■매번 좋은글 읽고 가는데.. 저도 한번 퍼다가 올려봅니다. ■20040322

노인과 여인

중미 카리브 해상에 있는 나라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에는 죄수의 몸으로 아랫도리만 수의를 걸친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꼭지를 빠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다. 방문객들은 늙은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자유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린 이 작품에 불쾌한 감정을 표출한다. 이런 해괴망측한 그림이 어떻게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미술관의 입구에...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의도로 이 불륜의 현장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 그림 속에는 감동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수의를 입은 노인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다.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음식물 투입 금지'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갔다. 딸은 해산한지 며칠 지나서 무거운 몸으로 감옥을 찾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 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젖가슴을 풀었다. 그리고 불은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 "노인과 여인"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동일한 그림을 놓고 사람들은'포르노'라고 비하도 하고 '성화'라고 격찬도 한다. 그런데 그림 속에 담긴 진실을 알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한다. 우리는 가끔 본질, 진실을 파악하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고 지레짐작하여 남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라는 달은 보지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경우도 많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교만과 아집, 그리고 편견을 버려야만 세상이 보인다. - 고인수 님의 홈페이지(www.kosoo.pe.kr)에서 발췌 -


■빈윤경 ■ykbin@naver.com ■수행의 작은 진전.. ■20040324

홈페이지를 운영하시는 것도 적지 않은 노력이실텐데..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한석훈님께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번주의 수행의 작은 진전을 보면서 이렇게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용기에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전의 삶은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였으나 요즘의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이 참 기쁨이며 참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요즘 그리고 지난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서 저와 같은 경험을 전해주시는 석훈님의 글이 참으로 반갑고 감사합니다. 제 마음의 상태를 읽고 마음속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약 2년 정도 됩니다. 그 기간동안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경험이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너무도 아름다운 경험이라는 사실은 같이 나눌수 있는 분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열린건강교 ■q67865@hanmail.net ■특이공능(일반인들 눈에는 초능력)보유자 회원 모집안내입니다 ■20040327

안녕 하세요 !!! 홈 잘 둘러보고 갑니다. 열린건강교실(치유명상/생활기공체조)은 남녀노소 현대인들에게 생활의 활력소를 불어 넣어줄수 있는 현대화/과학화/생활화/대중화된 치유명상/생활기공체조(의가기공)수련장입니다 국내에서 활동중인 수련을 통해서 능력이 개발된 특이공능(일반인들 눈에는 초능력)보유자 회원 모집안내입니다.(데이타 베이스를 구축중 입니다.)

1. 대상 : 활동중인 분이거나 비활동중인분 들을 추천 바랍니다. (본인 및 타인 추천가능) - 사람을 보고서 아픈곳이 진찰 가능하신 공능(능력) 보유자 (남녀노소 불문) - 사람을 보지 않고서 진찰 가능하신 공능(능력) 보유자 (남녀노소 불문) - 외국에 나가있는 분들을 한국에서 진찰이 가능하신 공능(능력) 보유자 (남녀노소 불문) - 병(고질병/암환자등)의 근본원인을 찾의실 수 있는 공능(능력) 보유자 (남녀노소 불문) - 질병 및 건강에 관련된 특이공능(일반인들 눈에는 초능력)보유하신 분 (수련을 통해서 공능이 개발 되신 분) 예)열린건강교실의 고급공능(기공산삼요법)개발 조건 안내입니다. - 좋은/밝은/긍정적인/감사하는/배풀어주는/열린마음으로 열심히 수련하셔야 고급공능은 개발이 되는 것 같더군요...

문의 : 열린건강교실(055-943-3118), 손폰 : 011-298-4081, 이멜 : q67865@hanmail.net

홈 http://gigong.keochang.net


■서미경 ■^^ 안녕하셔요~ ■20040328

^________^... 여전히 이곳은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미소가 남고 여운이 남는 공간을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주일 잘보내시길...^^*

■바람 ■바람~~~~~ ■20040402

뇌졸중 1년 만에 일어선 소설가 김승옥씨  날 짜 : 2004/04/02 조 회 : 4 "말하기 조금씩 나아지는데 글쓰기를 어찌 마다하겠나"  꼭 1년 1개월 만이다. 지난해 2월 말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63)씨가 긴 겨울잠 같았던 투병생활을 뒤로 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어린 시절 추억과 성장과정, 문학에 투신(投身)하게 된 계기, 갑작스러운 '하나님 체험' 고백 등 문학과 인생의 고비와 전환점을 밝힌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 이달 중순 '작가'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물론 산문집에 실리는 글들은 발병 이후 쓴 게 아니다. 과거 계간지 '세계문학'과 국회 발행 월간지 '국회보', 기독교 관련 잡지들에 실렸던 것들이다. 김현.서정인.이청준.김치수.염무웅 등 쟁쟁한 문필가들을 배출한 1960년대 초반 서울대 문리대생 중심의 문학 동인지 '산문시대'의 창간 전후를 밝힌 4부 '산문시대 이야기'도 73년 서울대학보인 '대학신문'에 연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쓰러진 직후 혼자서는 거동하기 힘들었던 김씨가 슬그머니 병상에서 빠져나와 자전적 산문집을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승옥 문학의 향취를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갑기만 하다. 유신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70년대 김씨가 석방을 위해 백방으 로 노력했던 시인 김지하씨는 산문집에 붙인 서문에서 "서문 글을 부탁받고 깜짝 놀랐다"며 "소설을 못 써도 좋으니 부디 건강하라"고 당부했다. 산문집을 통해 그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신론자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의 돌연한 변신, '무진기행''서울, 1964년 겨울' 등 대표작들에 배어 있는 허무의식의 배경 등 궁금했던 점들을 이해하게 될 것도 같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원고뭉치를 들고 불쑥 출판사를 찾았다. 쓰러지기 전인 지난해 초 글을 주겠다고 한 출판사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서울 강북구 자택에서 서대문구 출판사까지 한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방문하며 산문집 출간을 준비해 왔다. 지난달 31일 출판사 부근 추계예술대 교정에서 만난 김씨는 몰라보게 건강해 보였다. 걷는 동작에 부자연스러운 점은 전혀 없었고, 양 볼의 붉은 기운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단어나 짧은 문장을 말할 때는 발음이 정확했지만 말이 길어지면 더듬기도 했고, 아무래도 복잡한 사안을 설명하는 데는 벅차했다. 무리를 피해야 하는 그의 건강을 고려해 40여 분간 진행된 인터뷰에는 필담을 곁들였다. 김씨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가장 궁금한 건강상태에 대해 묻자 대뜸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크기의 수첩을 꺼내 펼쳐 보였다. '언어요법실''한방재활의학‘과'동서협진실'같은 단어가 적힌 쪽을 보여준 뒤 일주일에 한차례 병원을 찾아 언어 치료를 받고 있고, 약도 하루 세차례씩 꼬박꼬박 먹는다고 설명했다. "조, 조금씩, (말하기가) 나, 나아져… "라는 힘겨운 대답이 뒤따랐다. 김씨는 올해 초 세종대 교수직도 그만두었다. 이어 펼쳐보인 종이에는 '술 ×. 부부관계 ×. 마음을 비움 ○. 운동과 식생활 철저히'라고 적혀 있다. 일종의 생활 수칙.투병수칙이다. 출판사 손정순 사장은 "지난해 말 선생님을 처음 뵌 후 언어가 좋아지는 게 눈에 띌 정도다. 특히 기억력과 꼼꼼함은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쓰러졌던 순간'을 설명하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 이문구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빈소에) 간다, 가야지 하다가 팍- 쓰러졌다"고 말했다. 산문집을 출간한 계기를 궁금해 하자 김씨는 자신에게는 최고인 신앙과 평생의 업인 문학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설은 안 쓰실 거냐"고 묻자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김씨는 과거 문란한 탤런트 아내와 대학 시간강사 남편의 결별을 다룬 중편 '서울의 달빛 0장'의 뒷이야기, 80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다 중단한 장편 '먼지의 방' 등을 이어 쓰고 싶다고 했다. "해냄 출판사에 원고빚이 있다"며 "올해는 힘들 것 같고 내년 12월에는 작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요즘 어떤 일이 가장 즐거우냐"는 질문에 "TV 시청"이라고 대답한 김씨는 대장금이 끝나서 섭섭하지만 대신 대통령 탄핵 관련 뉴스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소설을 다시 쓰기로 했다지만 김씨 마음의 중심은 여전히 신앙에 있는 듯했다. 김씨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산문집의 제목을 신앙 간증 경험을 밝힌 1부 제목인 '내가 만난 하나님'으로 정하고 싶어한다고 손사장이 귀띔했다. 김씨는 책에 작가의 말과 함께 직접 그린 삽화 몇 점을 덧붙일 생각이다. 글=신준봉.사진=신동연 기자. 2004.04.01 17:52 입력 / 2004.04.02 08:59 수정 중앙일보


김승옥!!!! 홧팅!!!


■바람 ■꼬마가 좋아 ■20040402

꼬마가 좋아  미셀 쿼스트/김항식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꼬마가 좋다고

모두 저렇게 되면 좋겠다고

꼬마처럼 안 되는 어른은 싫다고

나의 나라에는 꼬마밖에는 못 들어간다고

이것은 세상 처음부터 작정이 되어 있다고

꼬마라고는 하지만

주름살이 많은 사람도 있고

흰 수염이 길게 난 사람도 있고

몹시 꾸부러진 사람도 있고

짓밟혀서 납작해진 사람도 있고

여러 모양이 있지만 꼬마는 매한가지

마음이 어린애 같아서 꼬마라는 거지

그런 꼬마 말고는 천국에는 아무도 못 간다

내가 꼬마를 좋아하는 것은

나를 닮은 모습이 흐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서지지 않고 신선하게

얼룩진 자국도 없이 순수하게

상처도 없이 보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보면

그들 속에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한창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성장이 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장을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라고 하는 놈들을 보면

더는 자라지 않고 성장이 완전히 멎어 있다

갈데까지 다 갔다고 놈들이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놈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내가 꼬마들이 좋다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라

내가 그들이 죄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죄를 알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애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른이라고 하는 놈들은 다르다

놈들이 아무도 남을 해치지 않았다고 해도

놈들에게 책망할 일이 조금도 없다 해도

나는 놈들을 용서 못 한다

놈들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행하다- 참으로 불행하다

놈들에게는 진실이 없다

어쨌든 내가 꼬마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눈이다- 저 눈에는 젊음이 있다

천국에는 다섯 살 이상의 눈동자는 없다

꼬마의 눈만큼 아름다운 것을 나는 모른다

나는 그들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의 눈-  마음의 창문으로 내다 보는 것은 나다

그것을 나라고 알아서 놀랄 것은 없다

그들의  끝 없이 맑은 눈매와 마주칠 때

그들 속에서 미소 짓고 잇는 것은 바로 나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멍청해 있는 걱처럼 슬픈 일은 없다

창문은 열려 있어도 인기척이 없는 집처럼

두 눈이 열려 있어도 빛이 없을 때

나는 슬퍼지고 문밖에 서서 노크한다

나는 그 속에 들어 가고 싶다

어떤 불상한 외로운 꼬마들은

살찌고 뻣뻣해지고 목마름이 심해 늙어 가기도 한다

험한 세월 오래 살아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 꼬마들

학대 받고 짓밟혀도 오뚝이처처럼 일어나는 아주머니 꼬마들

어린 꼬마, 청년 꼬마, 노인 꼬마들아 모두 마음을 열어라

나는 너희들에게 영원한 젊음을 주리라

영원한 생명을 주리라

영원한 꼬마의 마음을 주리라

영원한 동심(童心)을 되살려 주리라

모두 마음문을 열어라- 어서 지금이다

너희들에게 한번 더 주리라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눈동자를

나는 꼬마가 좋단 말이다

모두 꼬마처럼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농부 ■farmer1894@naver.com ■훌륭하신 분이군요 ■20040402

선생님께서는 훌륭하신 수행자신군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자로서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옮김이 ■자유에 대한 단상--직관에 대한 더 없이 빼어난 글 ■20040402

직관에 관해서 더 없이 아름답고 명쾌하게 서술을 해놓아서 옮겨놓습니다.^^ 직관은 깨달음 도 영원 하나님 등등 신비적인 경험의 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필수불가결한..... 기독신비주의도 그렇구, 불교의 선, 공의 철학 인도의 힌두교에 있어서도, 하여간 세계의 어느 종교건 그 정점에서는 이성이 아닌 직관이란 작용에 의해서 그 어떤 신성한 것을 체험, 각성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관심있는, 저와 같은 방문객님께서는 읽어보시는 것도.... 물론 쥔장님께서 읽으셔도 공짜입니다.^^ 방명록에서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공유하고는 싶어서 올려 놓습니다. 쥔장님 양해바랍니다.^^ : 자유에 대한 단상 (하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15> 지은이 서연 [이 글은 ‘길벗과 모은 좋은 글’ 섹션에 2004년 4월18일자로 옮겨 놓았기에 이곳에 남겨두지 않습니다.]


■방황(samsa ■넋두리 ■20040403

불교나 힌두교는 염세적이다. 내가 바라보기에..... 이 현상계는 방황이며 나쁜꿈이며 허상이며 그리고 매트릭스라고 한다. 이 현상계가 다름 아닌 매트릭스인 것이다. 항상 변화하는,,,, 그렇다 영원하지 못하고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도 아니고 도도 아니고 마야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함 가볍게 따져보자 ~_~;; 과연 시각적으로 영원하지 못하고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도대체! 시각적으로 영원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아닌가. 진리문제에 앞서 우리는 왜 진리를 찾는가! 이쯤 되면 가치문제가 개입된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란 시각적으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히 행복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변전무쌍,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 바뀌는 이 생이 진정 가치가 없단 말인가. 진리라는 것은 이 현상계를 비롯한 우주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비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들과 한 몸으로 있는 것이다. 그것들 모두를 부정하고 비우는 것이 아니다. 단 우리가 비워야할 것은 불필요한 사적 관념, 사심있는 관념과 표면의식과 집착을 비워야 하는 것이지 이 우주의 현상계를 뭉뚱그려 모두가 부정적이고 비난 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이런 걸러지지 않은 종교적 관념과 논평을 앵무새처럼 자동인형처럼 암기해서 또다시 적용하고 곡해하고.....왜곡하고 이 현상계가 마야라는 것을 모르면 무지하다고 표현한다. 구태의연하고 개성머리 없는 식상한 무지, 라는 단어를 쓴다. 변하든 변하지 않던 이 현상계는 죄가 없다. 단지 마음의 소산이라고 절하될 것 까지도 없다. 그렇다면 이 현상계가 불필요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것도 마음의 소산이다. 이왕 마음의 소산인 바에는 이 현상계도 그 나름대로 진리이며 필요한 꿈이다, 라고 마음 먹어보자. 영화는 환상의 일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값어치가 있다. 이 현상계를 따로 떼어놓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도의 영혼은 이 우주 전역 그 어느 것도 떼어놓지 않는다.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상호침투 한다. 아니 한 덩어리다. 지속적으로.... 우리들의 지금은 우주의 전 시공과 함께한다. 떼어질 수 없는 함께이다. 그것이 진리이다. 아무것도 우리에게 달라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함께 붙어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한 진리이다. 우리가 덜어내야할 것은 표면의식과 개인적 사심과 이기적 사념이지 이 우주 모든 것이 아니다. 이 우주 전 영역의 시공의 형태로 우리의 관념에 있는 허상이라고 이르는 것까지도 죄다 진리다. 한 덩어리로..... . 우주는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꽉 차 있는 것이다. 힌두교 불교의 극단적인 언어는 바르지 못하다. 현세인들은 곡해하기가 쉽다.


■독자^^* ■한선생님! ■20040403

"내가 수행일상에 쓴 글, 또는 영어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글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곳에서도 내 글의 출처를 밝혀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전 선생님 글 출처 밝혀놓은 곳 두 곳이나 봤는데여^^* 사이버 여행때,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 다니세여, 한 선생님^^* 저 같으면 그냥 출처 안밝혀도 좋으니 누구라도 내 글 좀 퍼같으면 좋겠는데....... . 암도 안퍼가네요. 저도 아마추어 글일 하는데....^^ 그야말로 볼품없는 글 가진 사람에게는 출처 안밝히고 퍼간다는 것도 복에 겨운 소리이지요.^^ 저는 제글 제가 퍼다 놓는답니다.ㅋㅋ 하두 안퍼가니까. 저는 제발 출처 안밝혀도 좋으니 제글 누가 좀 한번이라도 퍼갔으면 하는 게 소원임니다. 이처럼 좋은 글 있으신 분들이 복에 겨운 말씀 하신다니까...^^ ㅎㅎㅎ^^ 하긴 출처를 꼭 밝히는 게 예의겠죠! 여러분! 하여간 전 두 군데서나 봤으니까 그렇게 넘 투정마세요. 좋은 휴일 되세요.^^


■이희정 ■tatemodern@hanmail.net ■감사합니다... ■20040404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이 곳에 인사글을 올립니다. 얼마전 참석했던 어느 모임에서 진행자가 '당신의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모두에게 돌아가며 했습니다. 대부분 어색해 하며 불편한 표정으로 답변을 하더군요. 그 중 어느 한 분이 '행복해 지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별로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 하고 싶지 않거나 구체적인 목표를 대신하기에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행복해 지는 것이라...' 진행자도 과연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듯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면 행복해 지느냐?'고 말이죠. 뒤 이은 답변은 정말 뻔한 내용들이어서 쓴 웃음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목표들이 달성되면 과연 행복해 지는지, 게다가 사람들은 그렇게 되면 행복해 진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수행일상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복은 달성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냥 행복하게 살 뿐이다.' 저는 이 말씀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에 눈길을 멈추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고 가슴으로 행복한 느낌이 잔잔하게 밀려왔습니다. 제가 느낀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군요. 불과 며칠 사이의 시간을 두고 '행복'에 대해 이렇게 다른 체험을 갖게 되다니... 과연 우연일까요? ^^


■한석훈 ■한석훈 몰아서 답글 드립니다. ■20040404

그간 바빠서 메일에도 방명록 글에 대해서도 답글을 못드리다가 이제 겨우 여유가 생겨 한꺼번에 인사드립니다.


♥Re: '바람~' '꼬마가 좋아'

'바람'님은 초면이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나눠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소설가 김승옥 선생의 개종에 대해서는 저도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분이 그런 체험에 대하여 책을 펴내신다면 꼭 읽고 싶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저도 꼬마가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는 꼬마보다는 어른놈에 가까운 듯 합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어른들을 흉보는 고약한 버릇도 가지고 있습니다.


♥Re: '훌륭하신...'

'농부'님, 반갑습니다. 같은 길을 가신다니 길벗이시군요.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은 저도 춤추게 합니다. 아이디처럼 '진짜' 농부이신 것으로 짐작하며, 흙의 지혜를 나눠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저는 흙을 좋아하지만, 뺀질뺀질한 도시인이어서 손바닥만 한 텃밭 한 철 갈아먹는 데도 엄청 힘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Re: '자유에 대한 단상...'

'옮김이'님,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그냥 멋진 글일 뿐만이 아니라 본 방명록에서 그 양에 있어 수위에 달할 만큼 장문의 글이군요. 제가 게으른 탓에 제 싸이트에서는 게시판을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있으므로 방명록이 그냥 게시판 기능까지 하고 있다고 보시고 좋은 글 나눠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니면 제게 메일로 따로 보내주시면 '길벗과 모은 글'에 게재하는 방법도 있구요. 남겨주신 글도 후일에 또 읽고 싶을 만큼 멋집니다. 그 글의 말씀대로 직관은 보는 것이 아니고 보여지는 것이라는 그 직관에 공감합니다. 정말 깊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Re: '한선생님!'

'독자^^*'님, 제가 모르고 있던 걸 알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제 이름도 싸이버에 퍼져 있다니... 그건 그렇고, 제가 투정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아셨죠? 투정은 저의 특기입니다 -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은. 어쨌거나, 제 글이 어떻게 떠돌든 상관않습니다. 다만, 저는 님과는 달리, 제 글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제 싸이트란 곳에 찾아오시게 된 분들만 읽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제 글의 질에도 자신이 없지만, 저는 스스로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이들에 비하여 너무 극단적이라고 내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물론 길벗님들께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래서 자신의 이런 극단성을 충분히 위장하기 전까지는 널리 퍼질만 한 글을 쓸 수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여하튼, 제 글이 어찌 퍼지든지간에, 그 랜덤性에는 신의 손길이 미치고 있을 것으로 믿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Re: '감사합니다...'

이희정님, 오랫만입니다. 감사하신다니 저 또한 감사합니다. 제가 행복에 대하여 쓴 표현의 오리지날 필자는 Burton Hills라는 작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It is a method of life." 저는 이것이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님께서 며칠 상관으로 행복에 대하여 생각하고 깨달은 과정을 표현하신 글을 읽음으로써 저 또한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님께서 겪으신 그런 과정이 우연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행복' 단원을 성공적으로 패스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wanderer ■나그네 생각 ■20040408

악의 반대말은 선(善)이나 신(神)이 아니라 영원의 도상에서 건강하게 건설된 올바른 교육과종교이다. 철학자든 교육자든 종교인이든 새로운 천년에는 좀 더 정확하고 섬세한 언어를 고르고 사용하는 것을 필요로한다. 비트겐슈타인적인 엄밀성을 필요로 한다. 이 우주에는 신의 사랑과 영혼이 충만해 있듯이 말에도 고유한 정령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말은 개성이 가득한 에너지의 한 모습이다.


■평안 ■bearazot@hitel.net ■영화 ■20040409

하도 오랫만이라 이름도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글을 보니 시원합니다. 며칠 전에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았는데 유독 내 혼자만 분한 마음을 품었던가 하는 기억이 있습니다.여기 저기 우는사람들 예외 아니게 눈물엔 인색한 제 아내도 눈이 부어 있고, 영화가 돈벌이로는 성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형 교회가 예수의 보혈과 십자가 장사로 또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가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던 상징이나 이유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정서적 해결만 되면 그만인가 봅니다 눈물 찔금 흘리고 나면 그것이 은혜요 용서함인줄로 압니다. 그러니 감정을 갖고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장삿거리가 되고 맙니다. 예수는 음란한 생각을 품는것이나 행위나 다 똑 같은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참선을 하건 마음수련을 하건 음란한 생각이 사라지게 하면 될터인데 그렇지는 않고 오늘가서 죄용서함 받았다 생각하고 또 내일가서 용서함 받고 계속 이러다가 그러니까 우리는 죄인이란 결론을 내리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교회에서 부처님 말씀이나 오컬트 얘기하면 대번 이단 삼단으로 적아닌 적이 되고 마니 이 또한 어찌하면 좋을꼬 그렇다고 아름다운 기독교 정신을 배척할 수도 또 양같은 성도들도 미워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찌 하면 좋겠소. 무심할 수도 유심할 수도 아니면 차라리 세월이 약이런가


■일원 ■pillow10@hanmail.net ■제 각기 취향은 다르지만.. ■20040409

아래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저 역시 감동받았던 영화 얘기이기에.. 몇자 적어 봅니다.. 저는 타종교인이지만,, 우리가 제 각기 취향과 스타일이 다르듯.. 그 방편과 길이 다를 뿐이지 본래 진리는 하나, 모든 성자들의 본의는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영화를 이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다.. 몇일 전 그 영화를 보았었습니다. 자신에게 욕됨과 고통을 주는 그 모든 사람들까지도.. 지긋이 응시하시며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찌되었든,, 제 개인적으로는 타종교인이라 할지라도.. 그 영화 한편을 통해..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으니.. 새삼 좋은 기회가 된 셈입니다... 더불어,, 그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예수님의 사랑과 본의를 오늘날 일부에서 잘 헤아리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는 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사랑이건... 부처님의 사랑이건... 그 본의를 자각하고 깨달았다면... 나부터라도,, 당장,, 지금,, 여기서,, 실천하며 사는 소박한 모습이... 나는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남을 교화하며 사는 모습이 아닐런가 생각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아닐런가...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내 자신의 영성을 풍부하게.. 맑혀볼 수 있는 많은 마음공부 자료들이 있는 이 공간이.. 삶의 활력을 줍니다.. 모든 님들.. 오늘도 소중한 하루 되십시요...


■milarePA ■milarepa@cein.or.kr ■하지만 사랑은 최고입니다. ■20040410

3박 4일 경주에서 있는 공무원연금교육에 다녀왔습니다. 예상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4명이 함께 숙소에서 있어 두통도 있을텐데 다행이 아는 사람들과 함께 배정받아서 상대적으로 편했습니다. 둘째날부터는 몸에 힘이 없습니다. 나는 민감해졌습니다. 예상밖으로 거기에는 특별한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육체)과 마음의 충동을 넘어서는 영혼을 느꼈습니다. 그 사람은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영혼이 가슴을 울게 합니다. 과거의 업보가 서로 공명하며 가슴을 소리내게 합니다. 주저하다가, 나는 내게 주어진 업을 뿌리지 않아 썩게 될 '씨앗'처럼 바람에게 맡겼습니다. 세상의 모든일은 구름이 모였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람에게 맡깁니다. 그것은 내가 신의 지혜(사랑)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난 묵묵히 연수장에서 떠납니다. 그 후유증으로 난 슬픕니다. Blue Day~! 교육을 마친 그날에 먼길을 돌아와서 밀린 명상할 겨를도 없이 친구를 만났습니다. 담배냄새가 배인 당구장에서 게임을 하며 난 내면의 신에게 물었습니다. "난 이럴 수밖에 없습니까?" 신은 "실제로는 자유의지란 없다"고 합니다. 난 무엇이 답답한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그리 슬픈지 울었습니다. 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냐고 말다툼하듯이 물었습니다. 그것을 신은 '침묵'으로 긍정합니다. "네가 알고는 대로"라고! 대충 설명되어지면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우리의 존재를 전혀 못 느끼며 우리가 그의 주변에 있지 않고 그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그가 구속받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곁에 있을수록 더욱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영혼에게 끌리는 것이 사랑인가라고 묻습니다. 신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야"라고 합니다. "그럼 뭐래요?" 그것은 구름처럼 모였다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업은 나를 끌어 거기에 갖다 놓고 나에게 "위장된 축복"을 줍니다. 나는 다시 한번 "왜 사는가"라로 물어봅니다. 무관심한 친구의 차안에서 난 바람에 맡긴 인연에 서러워 흐느낍니다. 나는 씨앗을 뿌리지 않고 썩게합니다. 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내가 씨앗을 뿌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준비된 씨앗을 뿌리는 것이지만 사랑과는 아무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맙소사~! 거기에 덧붙여 "수행자는 씨앗을 뿌릴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제기랄~! 이것은 과거에 알고 있던 사랑과는 다릅니다. 가슴이 매우 아픕니다. 여로로 집중이 잘 안되는 명상을 그만두고 난 스승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렇지만 아픈것을 안아프게 해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Lifestyle인 행복은 별도로 하고 "본질"을 알고 싶습니다. 내면의 스승은 "자연히 알게 된다"고 속삭입니다. 수행자는 남을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수행의 힘이 전달되어 그 영혼이 세상으로부터 괴로움(행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괴로움과 행복은 그사람을 이 세상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세상에 있기를 바라게 되면 몸과 마음이 심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수행자는 남을 좋아해서는 안되기에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사람이면 업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업(씨앗)에 따라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합니다. 움직임이 없는 바람(자연)에 맡겨야 합니다. 이세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난 그냥 있습니다. 스스로 그러한(自然) 속에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속에 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속에서 살거나 중요한 것을 그것이 아닙니다. 탄핵정국이거나 어떤 당이거나 유치한 공세는 허망(ephemeral)합니다. 우리는 다른방식으로 삶을 즐깁니다. 사람들의 lifestyle은 유치한 방향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정의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최고입니다. 영혼이 자라는 데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이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푸코의 진자 1권을 읽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상을 보며 분별함과 분별하지 않음을 동시에 생각해 보렵니다. 과연 천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대로 한번 보면 지구에는 더이상 오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부분에만 치우쳐버리게 되는 것이 어떤 과정인지를 생각하면서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을 알고 싶습니다. i only serve~! Allleft?) Reserved, 이글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영혼에게 드립니다. 업으로 느끼는 가슴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석훈 ■"Passion" and Passionate Love ■20040410

- 평안님, 일원님, Milarepa님의 글에 대한 한석훈의 답글 -

♥님들께 드리는 답글을 쓰기 전의 공지사항: 이번 주, 즉 4월의 둘째 주말의 업데이트는 개인 사정상 조금 지연되겠습니다. 아마도 월요일까지는 구조조정된 싸이트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네요.♥
 

♡ 저는 멜 깁슨의 'Passion'을 아직 안 봤습니다. 프리랜서인 주제에 언제나 바빠서, 웬만해선 극장에 갈 짬을 못내며 살아왔습니다. 아직 그 영화를 안 본 것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영화를 봐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 주저하고 있는 탓도 있습니다. 이미 타임 잡지 등을 통해서 예수 수난기의 끔찍한 사진들을 보아왔는데, 저는 공포물은 매우 좋아해도 피튀기는 잔혹극은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굳이 그런 영상을 봄으로써 나의 예수님에 대한 신심에 자극을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구독하는 Bruderhof 공동체의 뉴스레터를 통해서, 그 공동체의 대표적 필자인 Johann Christoph Arnold 라는 이가 이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실은 이 양반은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답니다. 보지도 않고 비판한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의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거든요. 예수님이 전해주려던 메시지는 기쁨인데, 멜 깁슨의 영화는 고통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메시지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이지요. (이런 주장에 관심이 있고 영문 읽는데 불편이 없는 분께선 다음 링크를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christopharnold.com/articles/jca/gibson-recap.htm) 그리고 이 영화가 나오기 70여년 전인 1932년에 'Passion, 즉 '수난'에 관하여 씌여진 다음 글을 얼마 전에 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受難을 모방해서 자기도 역시 괴로움을 겪자고 하는 마음도 어리석은 마음이다. 그리스도는 신성神性이니까 지금껏 한번도 수난은 없다. 십자가도 수난이 아니고 수고受苦가 아니고 법락法樂이다. 신의 자식은 '난難'을 받을 수가 없고 '고苦'를 받을 수도 없고 임운무작[任運無作], 법이자연法爾自然, 물이 흐르듯이 모두가 오직 신의 뜻 그대로의 법락이다. - 생명의 실상, 제3권, p. 17.
 

이 글도 멜 깁슨의 예수 'Passion'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글세요... 저는 안봐서 모르겠습니다. ^^  아마도 저 자신은, 멜 깁슨이 카톨릭 근본주의자이기 때문에 중세적 음울함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에 물들어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스스로의 편견을 버려야 이 영화를 볼만 한 시간을 애써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견 때문에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아서, 영화 볼 시간을 내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르구요. 몇 년 전에 달마이 라마에 대한 스코시지 감독의 '쿤둔'이 개봉되었을 때엔 세계적으로 이런 소동도 없었지만, 저는 직장 땡땡이 치고 동대문까지 달려가서 텅빈 객석에 홀로 앉아 감동으로 가득 차 영화를 봤었습니다만...


♡ 그리고, 여러 님들께서 기독교에 대한 사랑이 깊으시기에 현 한국 교회의 실태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시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 저처럼. 얼마 전엔 동네 교회의 '판촉물'이 가가호호 배달되었더군요. 그건, 성냥각처럼 생긴 박스 안에 이쑤시개가 가득 차 있는 판촉물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룸싸롱처럼 라이터도 돌리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 또 그리고, 사랑의 열정이란 과연 무엇일지... 남여 간의 사랑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은 정신적 고자(실례!)가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인 저로서는 적절한 응답을 해드릴 자격이 없네요. 저도 한 때는 한 연애 했었지만('연애'란 표현을 썼다고 그것이 가벼웠다는 뜻은 아님), 선수의 길을 접고 입산수도 시작한 이후로는 그 쪽의 길이란 게 그저 덧없고 덧없이만 느껴지네요 - 웬 겉늙음... 제가 아는 남여 간의 사랑이란 슬픔입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헛되고 아름답습니다. 여기서 슬픔이란 고통과는 또 다르고, 우울함 또는, 영원성에 대한 향수의 감상에 더 가까운 감정 같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왜 경험하며 사는지, 그 깊은 뜻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Namaste.


■나그네 ■이런 영화를...... ■20040410

그리스도의 수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이런 영화들을 어떤 이유에서 우리가 보려고 하고 또 선호하는지 영화를 보기 전에 자신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부끄럽지 않다면.....


악의 반대말은 선이나 신이 아니다. 악의 반대말은 올바른 교육과 종교다. 새로운 천년에는 좀더 정확하고 섬세한 실질적인 언어로 그 무엇을 찾아갔으면... 나그네 생각.


http://kenji.cnu.ac.kr/kenji/ 안가보신분 가보세요. 일본의 슈타이너.....?! . 미야자키하야로라든지 일본의 자연친화적 정신은 이분에게서 발아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언어가 독특하며 신비롭습니다. 차마시며 여행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milraespa ■milarepa@cein.or.kr ■'God-crazy'한 사람들처럼 ■20040411

'God-crazy'한 사람들처럼, 나도 신의 사랑에 미쳐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에 대한 사실이 전혀? 잘못알려진 상황'에서 표현된 영화인 Passion을 한번 보겠습니다. 시간이 있어서요. 그것을 관람한 분은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요. 감동먹었다구요. 남녀간에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녀간이 아니라 우리 인간간에도 그렇구요.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12년만에 궁으로 돌아온 왕비 야소타라에게 석가모니부처가 말하던 사랑을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고요한 logos(인 사랑)에 대하여 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슬픔이 오든 기쁨이 오든 우리는 "평안"과 "안전"안에 있습니다. 어쨌든 나의 반응은 즐거울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LifeStyle거든요. 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평안하세요. 이순간의 모두를 사랑해요. NaaM a sTe~!


■솔직 ■안녕하세요? ■20040412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생인데요, 이곳저곳 웹서핑하다가 이 싸이트 발견한 후, 즐겨찾기 해놓고 가끔 들어온답니다. 이 싸이트에 드러난 님과, 아래 방명록 남기신 분들의 글을 보고 제가 느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지, 참으로 무지하게 '애쓰신다'는 것입니다.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요. 옛날에 제 친구가요 절더러 '너무 애쓰듯이 살지마라' 라고 말해주었던 것 생각나요. 하지만 지금 제 모습 역시 꼭 그런 것을 보면. 음..흠.. 그래도 자꾸 찾게 되는 곳이네요. 담에 또 올테니, 그 때까지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오오


■나그네 ■시공초월에 관하여 ■20040412

안녕하세효^^ 아래의 글은 몇년 전에 쓴 두서없는 횡설수설에 가까운 글입니다. 지금은 아래의 글과 어떤 면에서 사상적으로 변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가볍게 쓴 글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쓸데가 없으신 분은 만화책 읽듯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재롱을 어떻게 떨어놨는지^^ㅋㅋ 벌써 2년이 지났군요. 크하하, 세월 빠르다. 이 글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지워집니다. 서버용량을 너무 소비하는 것같고 방명록에는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서....^^ 이글은 재래식도인과 서구식 도인님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간에 서로 소통을 위해 가볍게 쓴글이고 학술적인 글이 아닌 증거자료도 없는 어느 정도 무리가 있고, 가벼운 글이니 읽으실 분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시길....좋은 봄날 되시길 빕니다. 그리고 어떤 비이성적인 현상을 굳이 이성적으로 말하고 알아내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꼭 그렇게 그런 것에 마음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첫번째 어머니(신)께서는 그런 비이성적인 현상이 우리의 이성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하신 것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는 짐작도 되고 하면서...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신이라는 말보다는 첫번째어머니라는 언어가 더 좋습니다. 맘에 듭니다. 갓파더라고 하는데 전 아버지 쪽보다는 첫번째어머니라고 하는 것이......ㅋㅋㅋ

 

*시공초월에 관하여--동시성, 텔레파시, 투시, 천리안

이런 제기랄! 두 시간 동안 쓴 글을 죄다 날려버렸네요.^^ 모처럼 시간 내서 썼는데. 저는 이 곳 게시판을 글을 올릴 때 아래한글 사용해서 복사하지 않고 직접쓰는데, 도중에 인터넷 오류가 생겼는지. 게시판에 글을 쓰다가 복사하기를 해놓는데 그리고 오늘도 그랬는데. 그 복사해놓은 글도 마저 날라가버렸네요.^_^ 어떤 존재가 심술이 생겨 내 일에 훼방을 놓지 않나!^^ 오기가 생겨서 다시 씁니다. 도대체 두시간 동안 무슨 글을 썼는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제는 한글 97파일 열고 씁니다. 언젠가 시나리오를 쓰는 친구가 시나리오 한편을 죄다 날려서 다시 처음부터 기억에 의해서 쓰고 있다는 안타까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은 텔레파시, 예시, 원격투시, 예지몽 등의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제껏 자연과학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세계를 설명하고 했습니다. 인과론적으로 말이죠. 그러나 위에 제시한 일련의 사건들은 인과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하면서도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자주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들이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안된다는 데 있습니다. 융은 동시성의 이론을 들어서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융의 동시성 이론을 서두로 해서 우주에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의견을 최대한 알기쉽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제 이러한 비이성적인 일련의 사건들을 언어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융의 동시성이론을 제가 풀어서 제 언어로 말해보자면 이 우주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초월이라! 인간이 그 시공초월의 일을 언어적으로 이성적으로 과연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이제부터 차근차근 설명할테니까요. 동시성이론은 마음과 결부가 되 있습니다. 구스타프 융이 심리학자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죠. 제 글에서는 이 마음이란 단어와 함께 정신, 의식, 영혼, 자아란 단어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아울러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인류가 언젠가는 이제 이 우주의 물리적인 시공간틀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향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첨단 과학들,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그리고 자연과학적인 패러다임은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컴퓨터 문화까지도 말입니다. 인류는 인류가 개발한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나 화성에는 갈 수 있을 지언정, 빛의 속도로 간다 해도 천문학적인 시간이 필요한 안드로메다나 게성운 같은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몇억광년, 아니 몇 십억 몇 천억광년이 떨어진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우주선이 있다해도 그와 같은 속도를 낸다면 물질적인 우주선으로는 속도를 감당해내지 못할것입니다. 물질과 속도는 함께 동반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패러다임으로 발걸음을 옮길까요. 마음, 정신, 영혼, 의식, 자아라는 육체와는 다른 비 물질적인 존재를 통해서 물리적인 거리를 초월하게 되고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을 할 것입니다. 인류는 영혼이 육체를 이탈할 수 있는 뇌파나 영파, 그리고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될 수 있는 파장과 조건을 연구하고 조건화해서 육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계장치를 개발할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비 물질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아마도 진공에너지와 섬세한 양자컴퓨터라든가 그런 것을 이용할 것입니다. 언젠가 청춘 남녀는 같은 파장에 같은 시간에 동시에 육체를 이용해서 저 우주 먼 곳에 있는 또다른 성단으로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요원한 일이다구요. 물론 에스에프 영화에서는 어떤 물질적인 육체나 우주선과 함께 시간초월하고 속도도 초월하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어차피 시각적으로 우주선 등장인물을 보여줘야하니까 시각화하고 물질적인 상태를 유지해서 시공을 초월하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그건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존재로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미친게 아닙니까. 그렇게 물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 그렇게 믿고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달나라에 발을 디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고 이런 능력의 컴퓨터가 개발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과거에 그런 컴퓨터 얘기를 하면 다들 미친 게 아닙니까 하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요원한 일인지 아닌지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에 달렸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영혼과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 화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꾸미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또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모르겠습니다. 영혼, 마음.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나는 영혼을 믿지 않아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간에게 현재 그 영혼이나 마음, 의식, 자아, 즉 육체와 별리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지금 없다면 인류는 그 육체에서 별리될 수 있는 존재를 의지에 의해서 만들 것 입니다. 언젠가는. 영혼이 없다고 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육체와는 다른 그 어떤 지속적인 존재를 필요로 한다면, 그 장구한 몇십 억년동안 인간 생명체가 변해왔던 그 의지로 그 육체에서 탈피할 수 있는 영혼을 만들 것입니다. 영혼의 싹이 발아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생명체의 의지입니다. 우주의 의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간의 유기체에는 물질적인 원소들의 결합 이상의 어떤 것들이 생명의 탄생 과정에서 깃들었던 것처럼 그것들이 깃들었다면 벗어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말하고 싶은 것은 이처럼 현대의 진리는 이제 과거처럼, 과거형도 미래형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진리는 진행형인 것입니다. 변해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진리는 대부분 과거형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물질적인 것에 현혹되어 있는 너무 지나치게 숭배하는 시대에 이러한 생각들은 비 물질, 즉 영혼의 힘이 마음의 힘이 그 물질 이상이 될 수 있음을 심령적 심리치료적인 것 이상으로 현상적으로 또 다른 차원과 패러다임의 메타물리현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물질문명처럼 실용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런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저 먼 우주공간으로 신혼여행가는 날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융의 동시성이론에 대한 개요들과 몇몇 예들을 드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융이 제시한 이 동시성의 원리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생겨난다는 인과성과는 대립되는 가설로 생겨났습니다. 관련성이 있는 것은 동시, 혹은 연속해서 일어나기 쉽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동시성이론은 어떤 의미없는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과는 구별되게 의미 있는 두 사건이 일치하는 현상인 것입니다. 즉 시공을 초월해서 의미 있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동시성의 예를 들자면, 모든 예언처럼 어떤 이미지가 장래에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음의 내용과 마음 밖의 현상이 일어난 사건이 일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눈 앞의 테이블에 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 친구가 손에 꽃을 들고 대문을 열고 있습니다. 셋째로 꿈이나 예시가 멀리서 일어나는 일과 일치하는 경우입니다. 그 외에도 텔레파시, 원격투시등의 사건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러한 현상들은 인과적인 설명이 안되지만 그렇다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동시성의 이론을 구스타프 융은 동양의 도라든가 일련의 전체성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의 도교나 주역에서는 이러한 동시적인 사고 혹은 전체적인 사고는 생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에게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마침 스승이 온다는 동양의 속담처럼 이전에 만났다 지나친 스승을 마음이 열려 인식하게 되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낮에는 달을 보거나 태양이나 금성을 볼 수 없지만 역시 낮에도 그런 것들은 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면 낮에도 존재하는 그것들을 인식할 수 있겠지요. 책에 있어서도 어떤 책은 스물살에 보니 전혀 모르겠는데, 서른 살에 보니 쏙쏙 들어오더라. 그런 현상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습니다. 동시성은 마음과 직결됩니다. 자연자체 우주자체에 열린 마음을 통해 접근할 때 동시성 현상은 신비적 현상도 아무 것도 아닌 당연한 현상이 될 것입니다. 이 마음, 정신, 의식, 자아가 열린다는 것 뒤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이러한 동시성 현상의 기본적인 양상일 것입니다.


이는 도교에서 말하는 도의 비젼이 열리는 체험의 순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하나의 것의 여러 측면의 사고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이므로 두 가지 이상의 현상이 관련되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밤과 낮은 하나의 다른 두 측면이겠지요. 삶과 죽음은 하나 것의 다른 두 측면이겠지요. 동시성은 이처럼 도의 전체적인 사고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동시성 현상들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과학적인 시각에서부터 시작해봅시다. 얼마전 까지 만 해도 인류에게 있어서 시간과 공간의 패러다임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뉴튼이 제시한 시간과 공간의 틀은 절대불변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어떤 주어진 조건에서는 시간과 공간틀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상대론이 제시됐고 행성간 중력장 내에서의 빛의 굴절에 의해서 그의 아인슈타인의 지론이 입증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주체가 바뀌면 객체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관측자의 조건이 바뀌면 시공간틀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리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읽히지 않던 책이 읽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인류가 이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도약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것에 길들여 있어서 비이성적인 면모가 들어나면 고통스러워하고 어색해 하고 나중에는 적대시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열린 가슴으로 차분히 다른 세계에 인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성을 초월한 현상들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열린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근 미래에 개발될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가 1000년에 걸쳐 처리할 정보를 단 몇 분내에 처리해버릴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이처럼 양자적 실체내에서 벌어지는 운동들은 거의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분광기로 광양자를 분광해서 두 갈래로 뻗어나가는 광양자를 관찰할 때 한 쪽 끝의 빛줄기를 건드리면 거의 시공간에 관계없이 저 먼 우주공간으로 뻗어나간 광양자의 줄기의 끝이 동시에 떨리는 것입니다. 거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시적으로 한몸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동시성은 심리적 현상뿐 만 아니라 물리적현상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대의 물리학은 거의 도의 경지 물질을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자연과학인 물리학과 심리학 정신과학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러한 동시성의 시간적 설명으로 가장 적당한 사상은 베르그송의 시간론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항시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자연과학적인 시간조차도 주관적인 시간입니다. 시간이란 이처럼 누구에게나 주관적입니다. 험프리 보가트가 잠을 잘때의 한시간과 벌을 받을때의 한시간은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시간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아이스케키를 먹을 때와 벌을 받을 때의 한시간은 자연과학적이고 시계적인 시간으로는 같은 한 시간이지만 질적으로는 다른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시간이라고 생각한 길다랗게 공간화되고 개량화된 수량화된 자연과학적인시간 조차도 하나의 주관적인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학적인 시간 이차원, 공간화된 시계의 시간으로는 시간의 시작과 끝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적인 시간의 부정적인 면입니다. 자연과학적인 시간은 시간이라는 것을 공간화하고 개량화합니다. 도식화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간은 실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진정한 시간은 분할 불가능한 지속된 실재로서의 시간입니다. 지속으로서의 시간입니다. 지속되었으니 하나의 시간, 한덩어리의 시간이겠지요. 도의 몸처럼 전체성의 몸, 동시성처럼 전체성의 몸. 한덩어리의 몸. 그것은 지속으로서의 시간입니다. 어떤 선사는 그러한 시간을 절대현재라고 하기도 하지요. 인도의 자이나교도들도 그 절대시간의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르그송 영감님이 전생에 자이나교도 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시간 비이성적인 시간입니다. 그래서 지금 읽는 여러분의 귀에도 그러한 시간의 개념이 귀에 거슬리고 기분나쁘실 겁니다. 그런데 실재로서의 시간은 이처럼 하나의 지속된 궤로서의 시간인 것입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너무  자연과학과 이성의 타성에 젖어 있었고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진짜 시간의 질료는 영혼의 질료처럼 시공초월적인 하나의 시간입니다. 시간과 영혼의 질료는 이 우주에 있는 비이성적인 질료중의 하나입니다.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만약에 신의 존재를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정의합시다. 우리에게 100년은 그 신에게는 하나의 시간, 단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장구한 우주의 역사가 신에게는 단 한순간의 시간에 지나지 않고 또 신은 이 우주의 전체몸을 한 순간에 의식하는 그런 존재일 것입니다. 지속된 한 덩어리로 순간에 수용하는 아니 순간도 아닌 시공을 초월해서 수용하는 하나의 존재일 것입니다. 굳이 말로 나타내자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요. 신이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정의했으니까요. 전지전능한 존재니까요. 신만큼은 아니지만 물리학적으로 양자적 실체 내의 현상들에서도 그렇습니다. 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양자적 실체내에서의 양자의 동태는 거의 시간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그저 뜬금 없는 형이상적인 신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과학적인 현상의 하나로 그렇게 말해드립니다. 그런데 그런 원리 시공초월의 원리가 우리의 마음, 영혼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성입니다. 그 전체적인 하나의 시간은 신이라는 존재의 오른팔 쯤 될 것입니다. 인도 어떤 부류의 현자들은 그 하나의 시간 자체를 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체적인 하나의 존재, 동시성의 존재, 하나의 마음 하나의 의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체의식이 아닌 전체의식, 개체적인 마음이 아닌 전체적인 마음, 개체자아가 아닌 전체자아일 것입니다. 아니 개체와 전체를 초월한 동시적인 몸들일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의식, 마음, 자아의 세계내에서는 그러한 동시성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큰마음, 자아, 의식 속에서는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얘기이겠지요. 불교적인 공의 상태에서도 말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물질 공간 이외에는 암흑물질들로 가득차 있다고 했었는데 근래와 들어와 암흑물질이라는 그 빈 공간의 60퍼센트 이상이 일명 진공에너지라는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문장이 떠오르지요. 물질적 공간이나 빈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비 물질적 공간 모두 에너지로 차 있다는 얘기이니 공즉시색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제 해석입니다. 또 인도의 옛 도인들은 우주에는 우주적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기들은 호흡을 통해서 우주에너지를 섭취해 활성화합니다. 기공사들도 일명 기라고 불리는 그 존재를 운용합니다. 그 기라는 존재는 전자기 감지기에도 감지되지 않는 특수한 존재인 것입니다. 지구에는 중력장이 형성되어 에너지가 팽만해 있듯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주에는 곳곳에 빅뱅장이나 또다른 에너지장이 퍼져 있을 것입니다. 위의 일련의 이야기들이 별로 그리 다르지 않은 같은 부류의 내용들로 생각되어집니다. 기를 물리적 역학에서 힘의 원천으로 설명하면 에너지가 되고 심리적으로 심리화 시키면 마음이 되는 것일 겁니다. 이러한 마음이 불교적으로는 공의 원천입니다.


다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란 우리의 육체와 영혼를 매개하는 매개자나 중간자 쯤으로 여겨집니다. 원질은 같으면서도 매개할 수 있는 매개자 쯤으로 생각됩니다. 물질과 정신을 매개하는 중간자. 진공에너지는 물질과 정신을 매개하는 중간자! 지구 정신사를 신비주의와 신을 객관화한 종교,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다분히 위의 설명들은 범신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분위기가 다분합니다. 개인적으로 노장사상이나 주역 기독교 신비주의 인도의 흰두교에서의 아트만 브라흐만사상들, 불교의 심철학, 융의 집단무의식, 융의 집단무의식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말 되어질 수 있는 유식학의 8식으로 거론되느 아뢰아식 등 인류 정신사의 정신적인 유산들을 볼 때 마음과 에너지, 기라는 개념들이 하나의 몸에서 생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모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동소이한 면모들인 것입니다. 축구공 하나에 여러 개의 다른 면모들이 있듯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공을 초월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전체적인 마음과 마음, 의식과 의식, 자아와 자아, 정신과 정신이 맞아 떨어질 때 동시성의 시공초월의 현상은 발현되리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경건한 마음으로 염불을 한다는 것은 그 큰의식, 큰 자아와 파동을 맞추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요. 본능적인 무의식적인 과정이 아닐까요. 기공사들은 마음에 따라 기의 위치와 방향을 운용합니다. 그것은 어떤 우주적인 에너지이지요.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진공에너지를 인간화시켜서 그렇게 운용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적으로 얽어매어져 있다는 것. 즉 한 몸으로서의 우주는 이처럼 한 마음의 덩어리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미래를 투시할까요. 기의 차원에서 말하면 하나의 기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요약하자면  이 절대시간과 영혼은 시간을 초월한 비이성적인 질료라는 것. 우주의 모든 물질과 존재는 이성적이고 공간적인 것이랄 지라도 이 영혼, 마음, 의식 등과 하나로 된 절대시간은 비이성적이고 비 물질적인 질료라는 것. 더 큰 우주 개념으로 잡자면 이러한 예외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존재를 설명하려면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비주의를 설명하려면 과학적인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밤을 설명하기 위해 낮을 얘기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우주 에너지를 어떤 신이라고 정의합시다. 우주적인 큰 몸, 절대적 자아, 브라만, 하느님 등의 정의합시다. 진공에너지 등등. 우리는 간혹 이러한 존재와 주파수가 맞아 떨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해서 시공간 초월의 초능력, 텔레파시 염력 천이통, 예시, 투시 등의 능력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뇌파가 고요파가 되어 집단무의식과 전체의식과 파동이 맞으면 잠재력이 발현되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현상이 발생되는 것일 겁니다. 맑은 전체의 무의식 속에서는 영혼의 질료는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더더욱 근원적이고 맑은 에너지에 파장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는 것은 아닐까요. 더 맑고 고요한 우주적에너지와 합일함으로서 자신의 평화를 추구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그러한 존재가 자신과 부분적으로 연결된 통로를 깨끗하게 청소해서 자신에게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사랑이 들어오도록 열려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의 개인의식은 하나의  찌꺼기거나 때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언젠가 우리는 영혼의 개체로 다른 차원들을 여행하는 기계를 만들지 않을까요. 그리고 진공에너지. 써도써도 없어지지 않을 진공에너지를 원료로 해서 더 능률적인 에너지 체계를 활성화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아마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요. 태초에는 아마도, 업이나 원죄가 쌓이지 않은 태초에는 아마도 그러한 존재들이 삶을 구가 했을지도 모릅니다. 진공에너를 제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그 섬세하고 정체가 불 분명한 진공에너지를 제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메카니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과연 있을까요. 영혼입니다. 인간의 영혼! 비 물질적인 그것을 운용할 수 있는 섬세한 기계는 인간의 영혼 정신 메카니즘. 인간의 영혼도 일종의 기계라 할 수 있지요. 맑고 깨끗한 안정적인 영혼일수록 더 능률적으로 에너지를 운용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예수가 그랬다면 그는 혹시 이 에너지를 운용해서 떡도 포도주도 만든 것이 아닐까요. 하나 아쉬운 것은 이 우주 현상을 과거 현재 미래로 생각하고 동시성의 현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결정론의 냄새를 피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덩어리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있지도 않는 미래를 투시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론 서글퍼지기도 하네요... ^^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지만 이 동시성 이론은 인과론과 함께 또하나의 괜찮은 의견이지요. 인과론자인 부처님도 제 얘기를 듣고 계실까요^^


하나의 자료도 없는 주먹구구식의, 재래식의 제 글을 읽어주신 몇 분께 감사드립니다.^^ 너무도 장황하고 광범위해서 이 게시판 지면에 세계의 모든 자료들을 첨부해서 글을 쓰기란 엄두도 시간도 나지 않습니다. 그 자료들이 책장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판단은 님들의 것이지만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지금 껏 보잘 것 없는 글들을 썼던 것은 재래식 도인과 서구식 도인님들 간에 서로 소통을 원했던 데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와 영이란 단어를 써서 도를 말하시는 재래식 도인님들은 자신의 큰 도를 다른 이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전해야 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식 도인에게 자신의 재래식 전통적인 도를 전달하려고 한다면 그 서구식 도인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래야 눈높이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식 도인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래식 도인에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시는 그 도를 전달하려면 재래식 도인님이 사용하시는 그들의 언어와 세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인님들의 역할입니다. 자신이 도를 성취해서 깨달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좀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도인님들의 중요한 사명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 씨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내용을 중학생에게 설명해서 그 중학생이 모르면 자신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디 도를 많이 성취하신 도인님들은 성취하신 도를 중생들에게 쉽게 전달하는데에도 노력해주십시오. 도를 원하는 중생의 한명으로 그렇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동시성론과 결부시켜 우리말 속담이 하나 생각나네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그네 ■토마스머튼의 글을 읽고 ■20040414

쥔장님께서 올려주신 아래의 토마스 머튼의 글을 책의 지혜 서랍에서 읽었는데, 이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자 해서 몇 자 적습니다. 저도 아래와 같은 맥락, 내용의 글들을 써보고자 했으나 주위로부터 사탄이란 소리를 들을까 염려하여 매번 그만두었던 기억이 흐릿하게 있습니다.^^ㅋㅋ


"자신들의 이고(ego)를 어떤 성스러운 것으로 믿으려 하며 이 광신자들은 그외의 모든 것들을 부정한 것으로 갖주해버립니다. 성인과 위대한 명상가들이 피조물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눈앞에 드러나고 귀에 들리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해주지도, 즐기지도 않았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사랑했습니다."


걍 지구상의 사상들 이것 저것 잡식성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보고자 했던 저로서는 이 글을 읽으면서 동양의 핵심적 종교철학이 이 모든 것을 사랑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완전한 무의 세계, 아예 일말의 생명력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절대무의 지구로 빠져들어가는 것이 최상의 해탈이고 열반이고 공의 매혹 속에 있으며 깨달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힌두교와 불교 사상 역시 이 현상계는 마야이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티벳사자의 서에서도 역시 존재의 영원한 투명한 빛으로 들어가 환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현상계 자체를 무시하고 폄하하고 죽은 듯이 살아야한다는 뜻으로 전 이해했습니다. 이 생을 죽은 듯이 사는 연습을 한다면 죽음에 임해서도 어떤 커다란 변화도 동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영상적인 사고로 익숙해진 우리 현대인에게 그 공이나 투명한 존재의 빛은 우리의 영상적 의식속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생을 근원적인 원질 원자적으로 살면, 최대한 분해된 상태로 살면 죽어서도 원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원자들이 모여 꽃이나 나무나 사람이 되지 않고 원자적으로 영원히, 존재의 본질로 영생하며 사는 것이다.라고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꽃이나 나무는 사람은 하잘 것 없는 마야로 치부되는데 있어서 전 동양종교철학의 기둥적 사상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부족한 생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산다고 사는 이 생이 기껏 마야나 아무런 가치도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되어지니 밥맛이 없어졌던 것입니다.^^ㅋㅋ


종교사상이란 것은 추종자들에게는 진리로 추종되기도하지만 반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사상자체가 하나의 위협이 되기도 하기 대문입니다.그런 사상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거에 딱 잘라 뇌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기에 혹시나 사실이 이 세계가 가치 없는 마야에 지나지 않으면 나는 줄곧 더 업보만 키워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의식의 한 자리에서 싹이트는 것이지요. 부처는 투시력도 있었고 기타 잠재력을 발휘해서 수없이 많은 전생을 보기도 해서 한 말인데 혹시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삶은 관성적으로 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화장실가고 영화를 보고 업을 쌓아가는 분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필시 이런 일은 현대인에 있어서 불교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만은 아닐것입니다. 이 세계는 축적된 역사와 함께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경전과 기록물들이 쌓여 있고 추종자들은 다들 너나없이 자신의 것이 최고의 진리라고 부르짖고 있기에 근기가 약한 사람은 이곳 저곳 두리번거리다가 갈팡질팡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변두리에서 국경선에서 방황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일례로 든다면 어떤이는 금욕해야 된다고 부르짖는가 하면 어떤 이는 필히 경험을 해봐야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이가 있고 결국에 가서는 그저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적으로 진리는 찾을 수 없고 그저 우리가 이 현상계를 폭넓게 기술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식의 결과가 나와서 진리를 찾는 구도자로서 결국의 소득물은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자각뿐인 것입니다. 마치도 구조주의자들이 이 세계를 구조적으로 이해를 했듯이 어떤 절대적 가치관을 가지고 국소적인 부위에 대해 진리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저 구조적인 위치를 인정했듯이 결국에 우리가 찾으려드는 알맹이는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위의 토마스머튼의 글과는 어느정도 뉘앙스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정리를 하자면 필자는 아직도 동양 부정적인 종교관과 머튼의 긍정적인 세계관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동양적인 정신을 기반으로 도를 구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방향으로 의식의 터를 닦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적인 공의 사상의 공은 텅빈 공이 아니라 근원적 질료로서 채워진 그런, 공아닌공이라고 학자들은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자신을 텅비운다는 뜻도 자신을 텅비워서 절대무 태허의 상태, 절대허무의 상태에 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개체적인 의식를 비우면 전체적인 의식에 달하고 그 전체의식은 완전한 무, 태허가 아니라 우주전역에 가득한 충만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툭하면 욕망이란 단어를 들이대서 이 지상의 삶을 똥값 취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과 활동은 그저 부질없는 짓이고 불행, 업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그런 고질적인 언어나 세계관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죄다. 그리고 이 우주의 현상들을 지나치게 수직적으로 평가를 내린다는 것과 수평적으로 내릴 때도 전후의 틀을 내세워 평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욕망이며, 모든 것은 마야이고 그 마야를 모르면 무지하답니다. 세상의 모든 도인들은 이런 말들을 식상하게 읊어대고 다닙니다. 그런 것을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도 은연중에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사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양적 사상에도 충만적인 공으로서의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야와 환상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그 근원적 바탕, 원질, 원자적 실체의 충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물리학적으로 진공에너지 빅뱅장과 같은 장력으로도 말되어질 수 있고 신성으로 충만했다고 할 수있고 영원한 충만의 빛으로 가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대무가 아니라 공통적으로 유, 즉 존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지요.


존재와 무! 여러분들 생각해보세요. 절대무라는 개념을 여러분들은 머릿속에 개념적으로라도 떠올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개념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허념입니다. 그렇담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거론할 수 있습니까. 거론할 수 없습니다. 단 제 생각에 절대무라는 개념은 반드시 존재라는 개념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만 거론될 수 있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그저 편의상의 그 무엇인 것입니다. 존재가 있고 그것에 종속적으로만 따라다닐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절대무라든지 뭐 하는 그런 경지는 이뤄질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선이 먼저 있고 악이 있다는 얘기와 상통합니다. 이 세상의 악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선이라는 지반이 있을때 존재하는 것이지 전체인 선에서 떨어진 독립적인 존재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니이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니이체란 존재는 반드시 예수님의 지반에서반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못한다는 것이지요. 질서와 혼돈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치도 노무현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는 힘을 노무현대통령이 닦은 권위주의 타파와 인권존중, 법치주의의 지반위에서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노씨나 전씨 전직 대통령의 지반위에서는 그들을 탄핵시킬 수 없었듯이.


무슨 얘기를 하다 이곳까지 왔는지^^ㅋㅋ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 머튼 아재의 글이 너무 와닿아서 몇자 쓴다는 것이...또 고질병이 도졌네요.^^ 결과적으로 동서양 사상의 핵심 대부분이 완전한 무가 아니라 충만의 바탕위에서 열반과 지복과 신성을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깡그리 부정하는 절대무 허무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충만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충만을 기본전제로 하고 동양은 원자적 원질 상태를 옹오했고 토마스 머튼 아재는 이 소박한 피조물로서의 삶, 사심없는 삶도 모두 사랑해야할 대상이었다는 것이죠. 저는 사실 머튼 쪽입니다. 불교도들은 저에게 업이 쌓여갈 것이라고 또 말하겠지만.^^ ㅋㅋ 이 보여지는 변전무쌍한 현상계도 그대로 첫번째 어머니의 품이라는 것이죠. 사실 불교쪽하고 이쪽하고 왔다갔다 합니다.^^ ㅋㅋㅋㅋ 어쩔땐 오버랩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고나면 모든 것을 사랑하자니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걱정을 등에 지고 자야하고 이 세상 모든 지식을 머리에 넣고 살아야해야한다는 이미지가 들어찹니다. 아마도 일반인들은 그런 심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뭔가 몸과 영혼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고 한없이 무거워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외면적인 언어적 표현과 달리 자신의 에고를, 개인적 자아, 이기적 자아를 버리면 자동적으로 결과적으로 우주를 사랑하는 결과를 신을 사랑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성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나머지는 신이 다 알아서 해주십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우리들의 심층적 자아 우주적인 자아가 다 해주십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과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수고는 저는 일그램의 차이도 없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느니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자아를 버리고 분열된 생활에 대회 나날이 반성하고 순수의 여신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어느 경전 해설에서 인간의 혼은 남녀를 불문하고 다 여성적이라고 읽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부드럽고 순수하고 섬세하고 따스하고 여리다는 것이겠죠. 연민의 마음도 풍부하고 사랑도 풍부하고....... . 그리고 이 우주의 인간 모두가 선한 존재라는 것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가지고(예수님 말쌈) 태어났다는 것 참나, 참본성(부처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아무리 폭력배같은 인간의 깊은 본성에도 여리고 잔약한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혼이 담겨있다는 것을 앎니다. 직감이라고 할까요.^^ㅋㅋ 인간으로서의 인간다움의 고유한 파동을 가진 영혼이라는 것 그렇기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인도가고 싶으신 분들! 도니 뭐 해탈이니 자유니 찾아가며 인도여행 가는 사람들 보면 ㅋㅋ^^ 푼수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ㅋㅋ 거기서 아예 살라고 하면 사시지 못하실 겁니다. 그렇게 자유스럽다고 찾아간 나라에서 말입니다.차라리 그런 호기심찬 여행자로 도니 자유니 해탈이니 구경을 빙자해 철없이 놀러갈 바에는 차라리 국제기금에 인도로 가는 여비를 불우이웃돕기하는 게 나을 겁니다. 불우한 인도 아이들 식사라도 하게. 도니 자유니 하는 것은 이곳 아니 우리들 마음속에 어느때고 있을테니..... . 제 생각에 인도는 그런면도 있지만 미신과 불평등 부조리가 극과극이 공존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더군요. 오죽하면 부처님이 그곳에 태어났겠습니까. 왜 또 이야기가 인도로 빠져서..... . 며칠전 제 가족중에 한분이 인도가겠다는 말을 해서....그랬나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인류최초의 과학자입니다. 제 생각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은 인도 미신과 검증되지 않은 구습을 타파하기 위한 인과론적인 인류최초의 과학자였습니다. 경험을 통한 철저한 검증을 했던...... . 심리적인면 정신적인면에 치우친 과학자인긴 했지만.... 어쨌든... .인류최초의 과학자였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인도인들이 갠지즈강에 목욕하면 극락갈 수 있다기에 갠지즈강 물에 목욕을 하니 부처님께서는 갠지즈강에 목욕해서 극락갈 수 있다면 갠지즈강에 잉어는 진즉에 승천했을 것이다. 그렇게 말했답니다. 부처님이.... . 이천오백년 전에..... .철처한 미신타파 과학자인 것이죠. 사실 지금도 찌꺼분한 갠지즈강 물에 목욕하는 분들 많잖아요. 이천오백년이 지난.... . 전 그거 확실한 미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효과가 있다면 플라시보효과겠지요. 그런 미신을 자유로 생각하고 동경해서 인도가시려면 불우이웃돕기 하세요.^^ 여러분들도 실컷 미신 타파해보세요. 부처님처럼.... . 지금도 전후좌후 천지에 미신들로 널려 있으니까요. 오도된 종교 사심가득한 종교 오도된 형식 와전 곡해....이런 것들이 미신 같은것이 되어 순수한 첫번째어머니의 사랑을 가리고 있답니다. 배고픈 아기가 물려고 하는 어머니의 젖을 가려버리는 꼴이지요. 애구 잠와 벌써 두 시네^^ㅋㅋ 미안합니다. 여러모로.... 그리고 역시 위의 모든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다를 수 있는.... . 제 의견과 다르시다면 제 의견 속에서 뭔가를 찾으실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머튼 아재의 글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불교적으로 모든 활동을 욕망이라고 지칭하고 업을 덜어가느냐 하는 두 명제에 대한 선택은 참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니라 생각합니다. 쥔장님께서 올려주신 머튼 아재의 글과 해설이 너무 와닿아서 몇자 수다를 떨었습니다.^^ 즐거운 봄날 되십시요.


■milarepa ■milarepa@cein.or.kr ■고마움을 ■20040414

대학생 솔직님이 남겨주신 글, '너무 애쓰듯이 살지마라'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세상은 이미천국?임을 제도 인정하니까요~  ^^

 

■나그네 ■잠언 서랍에서 ■20040414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시정잡배로 살아온 내 안목에 의하면 팔뚝이며 등짝에 문신을 요란하게 새기고 다니는 뚝건달치고 무예에 달통한 놈은 전무하다. 행복에 기준할 때 지식이나 재산 따위도 어쩌면 뚝건달이 팔뚝이며 등짝에 요란하게 새기고 다니는 문신과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일체의 행복이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인생은 문자 그대로 화투판의 흑싸리 껍데기에 불과하다. - 이외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_^


■평안 ■bearazot@hitel.net ■이미천국? ■20040416

오래전에 조선일보 이던가요? 성철스님 일대기가 연재 된적이 있습니다. 그때 글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는데 "부처님이 오신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온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되어 있음을 알리러 왔다"고 성철스님이 말씀 하셨던 것 같습니다. 불가에서도 구원이라는 단어를 쓰니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분도 있을줄 압니다. 모든 언어나 말에는 트릭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따져 보아야 할줄압니다. 내 영혼 깊숙히 기울여 진실로 내가 이러하다면 받아들여도 무방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이나 위치를 정확히 인정하는것 또한 굉장히 중요할 줄 압니다. 모름지기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존중과 이해와 사랑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나의 미완으로 봄이 보다 현명한 것이 아닐런지요.


■나그네 ■악마 ■20040417

이 우주에서 신을 가장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열망하는 존재는 천사도 성자도 요정도 아닌 바로 이 우주에서 가장 악한 악마이다. 누구보다도 신을 간절히 갈구하는 존재가 바로 가장 악한 악마인 것이다. 악마가 신에게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우주적 관성과 타성이다. 둘째 자성력에 대한 상실이다. 셋째는 그릇된 교육과 종교이다. 이 세가 지 요인중 악마의 발길을 첫번째어머니의 품으로 가는 행로로 발길을 돌릴 수 있게 하는 첫 번째 것은 바로 알맹이 있는 종교와 교육이다. 그리고 더 간절히 필요하고 더 희망적이고 더 우선적인 것은 종교보다는 교육이다. 교육 중에서는 초기교육이다. 초기의 사랑과 가슴의 교육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교육은 종교의 얼굴을 한다. 신이 아이들에게 망각의 강을 건너오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신께서도 우리 인간들에게 다시 좀더 자신의 품에 가까워지기 쉽게, 교육이 더 잘 되도록 하게 그렇게 새롭게 망각된 의식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 우주 어느 곳에도 영원한 악마란 없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다. 다만 탕아가 있을 뿐이다. 첫번째 어머니의 품을 언제나 간절히 갈구하는 탕아가 있을 뿐이다. 나그네 횡설수설^^ㅋㅋ


애쓰듯 살지마라, 라는 말에서 애쓰듯 살지 않는 경지란 단순하고 하찮은 구절 같지만 인류 어떤 성인들도 추구했던 더 없이 지고한 경지입니다. 소박하지만 소박하지 않고 더 없이 높으나 높으지 않는 경지입니다. 전 그렇게 느낌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구도인들은 애쓰듯 살지 않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처럼 애쓰듯 구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1. 산은 산 물은 물--------> 평상인

2.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구도자

3. 산은 산 물은 물 ---------> 도인


1번에서는 대부분 평상인들은 자신들은 산은 산으로 물은 물대로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고 합니다. 어떤 대상을 통해 우리들이 보고 싶은 일면만 자의적으로 보게 된다고 합니다. 2번에서는 그런 착각을 인식하고 노력하는 노력의 길입니다. 세칭 구도자라고 하지요. 3번에서는 자신의 시야에 있던 망상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 독선 등을 버리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과정입니다. 이 경지를 진인 도인 신선 그리고 성령의 눈, 영안 등으로 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애쓰듯 살지 않고 몸에 신이 깃들어 신의 바람 성령의 바람에 따라 신성의 자연스럽고 알맞은 길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에구, 또 길어졌네요. 고질병,,,, 즐거운 봄날 되십시오. 투리야띠따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면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상대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좀더 자성이 높은 도인들이 보면 우리가 잠에서 깬 일상적인 상태가 그분들의 몽롱한 상태 술취한 상태랍니다. 그 분들은 더 깨어있을 수 있지요. 그래서 꿈없는 잠, 깨어 있는 잠 등, 항상 더 깊게 깨어있습니다. 말하자면 더 섬세한 영역의 진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라디오로 치면 에이엠에서 에프엠으로 초단파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상대적인 듯 합니다. 그 상태가 이상적인 것인지는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극단적인 상태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이 인류중에 몇 명쯤은 대표적으로 그런 분이 있어도 좋을 듯 하고 모두가 그렇게 된다면 더 좋을지 아닐지는 모ㅡ르겠습니다.^^ 우리는 명상과 기도 염불 그리고 일기쓰기나 자성을 통해서 좀더 깨어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투리야


■한석훈 ■친절과 존중 ■20040418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까요?

..... 만약 두 사람 모두 신을 알고 있다면요.

자신의 바이올린을 매만지는 음악가처럼

..... 지극한 정성으로

..... 마지막 선율을 어루만지듯이.

 

- Hafiz


그나저나 위기에 처한 선재동자원을 도웁시다! (글 모음 4/18 참조) 인터넷 게시판 등에 널리 퍼뜨려주시기 바랍니다. 농협 계좌번호: 552-01-022751, 예금주 '선재동자원'


■milarepa ■milarepa@cein.or.kr ■'이미 천국이 아닌 것'에 대하여, ♡생각(들)♡에 대하여 ㅠ,ㅠ ■20040420

namaste~! 우리에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어디 갈 생각이 없군요.^^ 평안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 '이미 천국?'이 아니라면 '이미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말에도 언제나 트릭이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지만요^^;) 그리고 동시에 평안님의 말씀대로,(진지한 고마움과 함께) 나는 언제나 '나의 미완(未完)'과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신중하지 못함'과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나의 미완(未緩)'을 더욱 걱정합니다. 그것이 경직되어 생각케 하고 '이완하여 느슨해지지 못해' 사물을 착각해 보는 결과를 갖는 것이 두렵습니다. 자신에게 말해봅니다. So Just BE there~! 슬프면 슬픈 것이고 화나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That's all to me now here 밤을 무대로 달과 ★별들을 관객으로 하는 음악회처럼,- (전 사실 빛인 신이 어떻게 어둠을 만들어 냈을까하고 엉뚱한 상상을하며 의아해 합니다)- 저는 음악회를 '이미 천국'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신의 사랑은 시공을 넘어 존재하는 사랑처럼 달라붙지 않(無着)으니까요. 멋지자나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요.


지금 여기에서 "임이 천국?"에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생각을 못받아들이는 ♡생각(들)♡이 무척 미완(未緩)한 것을 느낍니다. 깨달음을 위한 깨달음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있으면 됩니다.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그냥 못 있게' 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면서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냥 못있게 하는 생각들'이 자신에게 즐거운일이 될 수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두뇌와 함께 있으며 두뇌와 달리 있어야 합니다. - 이 순간에서 한석훈님의 게시판의 내용(의도)에 어울리지 않는 글들을 몇 번? 쓴 것같아 못내 죄송합니다. 꾸벅 '참 말 많네~.' 제 자신에게 해 본말입니다.ㅠㅠ 지금 여기에서 ♡Namaste~~♡


■나그네 ■석가의 말씀 ■20040420

제11장 보살행품

모든 것이 덧없는 줄 알지만 선근을 쌓는 일에 싫증을 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괴로움인 줄 알지만 기꺼이 생사 가운데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나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줄 알지만 나를 완전히 버리지않는다.

열반이 적정한 줄 알지만 짐짓 궁극의 적멸에 안주하지 않는다.

세상을 벗어난 한적함을 잘 알지만 몸과 마음으로 늘 노력하고 실천한다.

머무를 바탕이 없는 줄 알지만 맑고 깨끗한 법이 돌아가는 바탕을 부정하지 않는다.

생겨남이 없는 줄 잘 알지만 기꺼이 윤회를 선택한다.

행할 것이 없는 줄 알지만 중생의 성숙을 위해 기꺼이 행한다.

무아인 줄 잘 알지만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는다.

생이 없는 줄 잘 알지만 성문의 작은 깨달음에 떨어지지 않는다.

실체가 없으며 주체가 아니며 공허하며 무가치하며 머물 곳이 없는 줄 잘 알지만

동시에 복덕은 공허하지 않으며 앎 역시 무가치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안다.

선정에는 알맹이도 있고 만족함도 있으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앎으로 灌頂   받아 본질적인 앎을 힘써 추구하며 요의(궁극적인 가르침이 직설되는 경전 뚯)라는 여래의 종자를 머물 곳으로 삼는다.

선남자들이여, 이와 같은 법에 대해 믿고 따르는 마음을 가진 보살은 결코 무위에 안주하지도 않고 또한 유위가 모두 멸하지 않도록 한다.


미강 조갑진님 홈피에서 삽질


■나그네 ■비오네요.^@^ㅋㅋㅋ ■20040426

"명상도, 공부도, 돈벌이도 다 시원찮았던 한 주일, 나는 뭘하며 시간을 흘러보냈는가 잘 생각도 안납니다. 병치레 하는 처자식들 돌보다가 강의와 관련하여 학생들에 대한 써비스 일들 하고, 집안 행사 및 모임 등에 참여하다보니 한 주일이 후딱 가버렸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로 시간을 써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제 내면에는 아직도 어떤 조바심이 남아 있는가 봅니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지난 한 주일간 얻은 하나의 가르침일지 모르겠습니다."


쥔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비오네요. 메인홈에 주신 쥔장님 글을 읽고 나니 자꾸 웃음이 나오네요. 한선생님 글을 읽을 때 마나 저는 18세 소년의 글을 대하는 듯 합니다. 가족을 부양하시는 18세 소년의 문체, ㅋㅋㅋ 때론 25살 청년으로도요. 간혹 착각을 합니다. 한선생님 글 읽을 때는요. 그런 연령대로요. 약간 투정도 섞이고 해서.....^@^ㅋㅋ 18세만큼 싱싱하고 젊다는 얘기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도대체 위에서 적어주신, 제가 보기에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이 는 일들로 시간보낸 것이 아쉽다면 지구로 날아오는 혜성에게라도 덤벼서 박살을 내야 그래도 직성이 풀리시겠다는 말씀인데.. ㅋㅋㅋㅋ, 선생님 말씀대로 조바심 같기도 하구요. 아니 그것보다는 아마도 더 많은 것에 대한 열정과 꿈이 산재해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해보구요. 삼십대지만 선생님과는 그리 아주! 많은 나이 차가 없는(제 생각에) 저도 마찬가지 심경인 듯합니다. 조바심 치는 것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걍 달려가는 세월을 뒷동산 참나무에다 오랏줄로 꽁꽁 묶어놨슴 싶습니다.^^ㅋㅋ


비가 오네요. 어제 그제는 고향 친구가 결혼한다구해서 서울에서 땅끝 마을 여수(신부집이 여수)까지 기차타고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느라고 직살나게 고생했습니다(막말로^^ㅋㅋ) 할 수 없이 분수에 맞지않게 돈도 많이 쓰고요. 전라선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름다운 산자락의 봄꽃들 황토흙의, 봄기운이 가득한 들판이 정말 고혹적이더군요. 눈과 마음이 즐거워서 하늘에 붕떠가는 듯 했습니다. 그 천지에 널린 초록도 꿀맛, 아니 조청맛이었습니다. 첫번째어머니의 더 가까운 품속에 들어가 가까이 있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연은 그분의 심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수, 돌산 등의 바닷가 정경도 아름답더군요. 매혹당했답니다. 화창한 봄날에 장가가는 놈이 부럽기도 하구요. 개발도 열심히 잘 해놓았구요. 21세기인 지금 아직도 전라선에는 서너시간을 서서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정작 써야할 좋은 머리를 중요하지 않는 일에 더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단 생각 들었습니다.


신지학 서적을 보니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욕망을 버리되 욕망이 가득한 자처럼 열심히 일하라. 조바심을 말씀하신 쥔장님께 적용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어들은 것은 많아, 많아? 아니요 그저 주어들은 것은 있어가지고 하여간 선생님의 생활들이 부럽습니다. 약간 투정기, 아주조금, 그리고 약간은 아쉽고 불만스러운 글도 부럽구요.소년의 글을 읽는 듯합니다. 이 글을 써놓고 또 지울까 말까 몇번 고민하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문자라는 것이 마음과는 다르게 비춰질 수 있기에 결례나 조금 방정맞음이 있다면 너그러히....본의는 아니니.. 즐거운 봄날 되시길 빌며. 아아, 그리고 가족중에 편찬으신분이... 제가 많이 아파봐서 알지만 체질개선이 중요할 듯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구요. 흔한 이야기지만 실천은 좀 생소하지요. 병의 부분적인 국소적 요소를 임기응변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본원적인 체질을 튼튼하게 해서 면역체계 불균형 호르몬 불균형등에 대한 원상복귀등 골고루 효과를 보실 듯 합니다. 마치도 어떤 분의 말씀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 인간을 더 정확하게 잘 알기 위해서는 신을, 즉 전체적인 존재를 알아야한다는 말씀처럼 우리를 좀더 잘 알기 위해서는 전체속에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위치, 즉 유기적인 상호의 쉼없는(전체와 부분) 활동과 관계를 인식하는 동양적인 철학이 더 근원적으로 건강을 개선시키는대 본래적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체질개선..요. 열 많은 알레르기 체질이라면 먹거리는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체질에 맞는 먹거리, 물, 그리고 습관적으로 너무 짜게 먹지도 달게 먹지 말것, 현미밥을 먹을 수 있으면 3분의 1정도 현미섞어 백미와 혼식 할 것,(현미 너무 많이 먹는 것은 다른 음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등등요. 그리고 체질에 안맞는 음식도 조금씩 먹다 보면 적응이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시일이 걸리겠지만요. 제 생각에 우리 몸은 지구와 거의비슷해서 지구에 있는것은 죄다 조금조금씩 있어야할 걸로 생각됩니다. 체질에 안맞아도 아예 안먹는 것은 결국엔 극단적인 체질이 되어버려서 음양화평의 평안한 몸마음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저 상식에 가까워서 쉽게 넘겨버리는 이런 이야기를 저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제 허구의 바탕에 흐르는 주된 모토도 주제도 본원적으로는 건강입니다. 개인적인 건강 사회적인 건강 환경적인 건강 국가적 건강,,,건강한 영혼... 건강으로 귀결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첫번째어머니의 심장과 가슴인 자연을 잊지 말아야할것입니다. 이런 의학적 상식들을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줬으면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줄이고 아울러서 가족분들의 빠른 쾌유를 기도합니다. 기도내용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되는 건강을 기도합니다.
 

http://www.lanzio.pe.kr/classicalmusic.htm 비오는 날에 클래식 속으로 가보시는 것도.. 

 

HOME

Back to Site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