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방명록4 (2004.8.1 ~ 12.27)

 

■바람 ■지혜심은.... ■20040801

지혜심智慧心은 끊임없이 물 위를 떠도는 호리병과도 같다. 그것은 바람에 날려 아미타의 정토淨土로 떠내려 간다. 지혜심은 끊임없이 창공을 떠도는 먼지와도 같다. 그것은 쉼 없이 바람에 날려 천국으로 날아간다.

 

■시나브로 ■책추천.. ■20040803

잠재의식의 힘-죠셉 머피

마스터의 지혜-존 맥도널드(다른 출판명 : 당신의 소원을 이루십시오)

생명의 실상(또는 생장의 집 3가지 경인 감로의 법우, 생생 감로의 법우, 천사의 말씀-다니구치 마사하루

추천사유 : 책들의 공통점 탐구.

좋은 사이트를 운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그네 ■자아의 신화를 살아라!- 연금술사(퍼온글) ■20040804

@ 이 세상의 어떤 언어도 언어인 이상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로 하고 치유하고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자아의 신화, 자아의 신화를 쉽게 떠들어대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자아의 신화라는 것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커트라인 윗쪽으로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나 의사라는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려고 합니다. 교수나 회계사라는 신화를, 국회의원이나 외교관이라는,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아의 신화라는 말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 순간의 마취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보물을 못 찾았다손 치더라도 과정은 기쁜 것이었다. 그렇게 외쳐대지만 그런 언어는 동서양 인류의 지혜서 어디에서도 흔하게 있어온 언어였으므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실상 많이 와 닿질 못하지요. 불교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네 생은 해탈이라는 자아의 신화를 버리고 구태의연함에, 매너리즘에 빠져서 다시 이 생으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해탈이라는 또다른 차원이 있다면 말입니다. 코엘료류로 해석해보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의 연금술사에 대한 해석은 섬세하고 치밀하고 우리들의 성취의 과정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정성스럽고 훌륭한 글이라고 느껴집니다. 이생으로 발 디딘 이상 우리는 또 뭔가를 해야하기 때문에....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목적이나 성취와 함께 그 과정을 즐겁게 해낸다면 과정도 목적이고 목적도 과정이고 그게 그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뭔가 기어코 결론을 내서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바로 위의 제 글도 그저 구태의연한 순간적인 진통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요즘도 많은 방황(samsara)을 하고 있습니다. 윤회가 해탈이고 해탈이 윤회라는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방황이 안정이고 안정이 방황이라는 말도 어려운 말이 되겠군요.


다른 사이트에서 저와 안면이 있었던 몇 분이 제 글을 읽어주시리라 짐작됩니다. 이 홈 방명록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개인적으로 인지드리지 않았지만..... . 알음알음으로. 이름조차도 익명으로 실고 있지만 말입니다. 모두 건강한 여름되시길 빕니다.


김포공항 근처인 이곳은 비가 많이 오네요. 때로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총각인 저로서는 훌러덩 다벗어재끼고 알몸으로 장쾌한 빗줄기속으로라도 뛰어들고픈 한여름 밤입니다. 산성비라서 안될라나...... .^^


설사 자아의 신화를 못 이뤄본다하더라도 생계와 가족의 울타리로 인해 많은 분들이 신화를 향한 여정을 시도해보지 못한다하더라도 꿈을 꿀수있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조물주께서 주신 혜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불가에서는 망상이라고 폄하할지 몰라도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인간의 정신과 상상으로 시도를 못해볼 망정 꿈이라도 꿔본다는 것은 기쁨일 것입니다. 아니면 그 꿈꿈의 파동이 주니어에게 전달되서 자손이 성취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내면에 숨겨진 자아의 신화를 살아라! - 연금술사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소망할 때, 천지간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엔 꿈이 있었다. 우리 정신적 영역 내에는 그 어떤 것도, 스스로를 제한하고 약화시키는 정신적 장애물을 세워두지 않았던 그 시절. 조금만이라도 일깨워주기만 한다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가능성의 세월을 지나,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그 축복같은 어린 시절의 꿈과는 영영 거리가 먼 일들이 아닌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으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은, 내가 정말로 저자의 표현인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었다. 아니, 필자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아의 신화'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그렇기에 또한 그리 길지 않은 조그만 한 권의 소설인 <연금술사>가 주는 감동은 그토록 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자아의 신화를 살아 왔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미래에 자아의 신화를 확실히 살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아마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으리라. 왜냐면 나의 미래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마다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기에...


나는 과거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닌듯 싶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그것은 결코 순탄하지도, 그다지 쉬운 선택의 길만은 아니었다고 회상하게 된다. 나는 결코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도전했으며, 그것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때로 가르치는 듯한 인상을 누군가에게 줄지도 모르나, 나는 그저 내가 배워서 내 고통을 덜어낸 것을, 과거의 나와 같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내가 나누려 하는 부분에 대한 '세상의 지식'은 비록 미천하기 그지없으나, 삶을 살아내면서 배운 것들을, 다시 떠오른 것들에 대해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은 어쩌면 나이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볼 때가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본다면, 겨우 서른 몇 해 세상을 살아낸 필자가 이러한 글을 나누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그저 나는, 여태껏 스스로 살아낸 '자아의 신화'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 많은 분들께 나누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우리는 어쨋든 자아의 신화를 살아야 한다. 연금술사를 읽지 않았든 읽었든 간에,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우리의 몽롱한 의식이 잠에서 깨어나 자아의 신화를 살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자아의 신화를 살기 위해서 보탬이 되는 몇 가지 이야기


1. 행복한 일을 하라

왜 학교에서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가?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사회적 계급이 존재하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동하지 않는 계급이 언제나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회계급이 폐지된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노동해야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비노동 자본소득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분명히 그렇지 않은 팔자를 타고 났으리라는 것.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그런 계급이 존재하던 사회에서와 지금 사회에서의 그 비율은 분명 엄청나게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것. 그리고 또 자신의 힘으로 자수성가하여 비노동 소득만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을 정도라면 이미 이전의 노동 강도가 평범한 수준의 노동강도보다 몇배는 높았으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이런 노동필수의 시대에 정말 쳐다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일을 억지로만 하고 있는 처지라면, 아무래도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기에는 무언가 어긋난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기억하라. 행복한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큰 행복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이며, 스스로 행복한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2. 지금 만족하는 일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 하는가? 그래. 나는 보수도 사회 어느 집단과 비교해도 꽤나 높은 편이다. 업무도 전문적인 일이라 비전이 있으며 미래가 (거의) 보장되고 인정 받는다. 그리고 일도 내가 일찍부터 하고 싶었던(하지만 최고는 아닌 차선의 선택) 일이다. 그러니 나는 이 일을 계속하면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테지. 바로 필자 자신이 수년전에 빠져들지도 모르는 함정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훨씬 더 흥미롭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것만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내가 반드시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일... 그 일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작정 또 다른 이상적인 현실을 찾아 떠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현실이 안락한 울타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무언가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끌어 당기는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에 대비하라! 그리고 조만간 준비가 되면, 지체없이 그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라!


3. 결코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말것.

길을 선택하고 뛰어 들었다면, 결코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마라. 행여 그것이 떠올랐다고 해도 절대 입에 담지 마라. 이 길은 당신이 선택한 이 전 우주를 통틀어 오직 당신만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길이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버텨라!  사실이든 아니든 '우주가 도와주고 있다. 신은 나의 편이다' 라고 믿어라. 그렇다. 때로 우리에겐 그런 다소 오버액션적인 버팀목도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는 자가 이긴다.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는 것이다.


4.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라.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으며(주인공 산티아고가 사막에서 매를 보고 전쟁을 예견한 대목) 동양철학에 통달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 : 여기서는 일상적인 사물의 모양새, 배열 등을 보고 미래를 알아낸다는 의미.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현대에 실존했던 인물에 관한 실화는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생각의나무간행)' 참고) 하였다는 동양의 고금을 통틀은 현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나 사물을 보고 미래를 맞추는 신비스런 경지에 올라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자신의 자아의 신화를 걸어야만 했고, 쇠를 금으로 바꾸려는 영국인은 또 그의 길을 가야만 했다. 그리고 또 당신은 당신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그 길은 과연 어떤 길일까? 어떤 누구에게도 그 답을 구할 수 없다. 오직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러한 결정에 따른 행함만이 당신을 자아의 신화의 길로 인도할 뿐이다.


어려운 길을 가기 위해 귀와 가슴을 열어 놓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자주, 아무곳에서나 열어 놓지는 말라. 중요한 정보가 너무 많은 혼란스런 정보들에 파묻힌다면 당신은 진주를 가려내지 못할테니까. 진정한 스승은 이미 당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그를 일깨워 내기 위해 보다 명료해져라. 결국 진정한 선택의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알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을 키워라!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라!


5. 오직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자아의 신화를 살아낸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인물의 장점을 본받으려 하는 태도는 물론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코 '그/그녀'와 같은 삶을 살거나, 그처럼 되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 기억하라! 당신의 진정한 자아의 신화는 오직 당신의 내면에만 있다는 것을. 전 우주를 통틀어 당신과 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지금 당신과 같은 삶의 궤적을 살아내는 사람도 결코 존재치 않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그야말로 유일자 - The One 이다. 유일자는 스스로 존재할 뿐이지, 다른 누구처럼 되어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위대한 우주에서 위대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곧 진정한 자신을 일깨우는 길이다.


6. 여유롭게 가라.

일상에서의 변화는 느리다. 왠일인지 긍정적인 변화일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네 마음은 너무나도 조급하기만 하다. 일상에서의 느린 변화를 참아내기 힘들어 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여유를 찾지 못할 때, 성급한 마음에 굴복하여 그것에 휘말릴 때, 우리는 결국 현실에 대한 감사와 만족이라는 관점을 잃는다. 이런 관점을 잃은 결과는 뻔하다 - 불평과 불만. 그리고 체질과 성격에 따라 현실 내지 우주에 대한 불만족에서 기인하는 분노와 짜증의 혼합물이 튀어나오게 될까? 제정신을 못차릴 만큼 바쁘게 급한 걸음을 옮기며 과연 진정한 자아의 신화를 찾을 수 있을까? 미안한 말씀이지만 대답은 NO! 일수 밖에 없다. 설령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성취의 물결 속에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직 외면적 성취만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낸 증거라고 들이댈 수 있을까? 어쩌면 내면에 모래성을 쌓으며 걸어간 외면적 성취의 흔적들이란, 단 한 번의 작은 파도에도 휩쓸려 내려가 버리는 것은 아닐지...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스스로를 파괴하고 붕괴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째서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인식되거나 기억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오늘도 기도하리라. 결코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불행을 맞지 않기를. 대신, 느리고 천천히 하루 하루 한 발 한 발 조금씩 전진하여, 그와 같은 태산을 이루어 내는 그날을...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 2003. 12.5.   사랑의마법사 전용석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당장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우리는 쉽게 절망한다. 그것을 지금 할 수 없기에 앞으로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장 할 수 없는 일 중 대부분의 일이 시일을 두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 나간다면, 할 수 있을 만한 일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할 수 없다'는 절망을 주는 것은 우리 마음의 성급함이다. 당장 할 수 없는 것을 하려하는 성급함.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게으름.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겠다는 부정적 사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목표와 계획조차 세워보지 않는 소극적 태도. 그것들은 바로 어찌 되지 않는 것들이 아니라, 현재의 편안이라는 안위함 속에 스스로 떨쳐내지 않고 있음이 아닐까?


7. 현실적인 관점들을 고려하라.

정말로 눈앞에 보이는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으니 더더욱 그런 것만 같다. 이제 신화를 이루는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 그런데 망하는 사람들. 참 많이 본다. 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편으론 과한 욕심으로 인한 성급함이요 현실적인 측면에 눈이 어두운 자만이요, 현실 세계의 장애들을 명료한 시각으로 분석 내지는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템도 좋다. 지식도 있고 아이디어도 좋다. 할 수 있을거란 자신감도 있다. 이제서야 자신의 인생에도 빛을 볼 것만 같은 순간이 눈앞에 다가온듯 하다. 그래서 돈을 투자해서 (대부분의 경우에 더군다나 다소 무리까지 해가면서) 결과를 보면, 망한다. 물론, 결국에는 되지 말라는 법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안되는 곳이 바로 <현실>이다. 어떤 뉴에이지 채널러의 글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지구라는 환경은 참으로 어렵고 무겁게도 옮죄어 드는 장애들을 유난히 많이 가진 곳이라고. 그래서 지구인들은 참으로 대단한 존재들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믿거나 말거나 간에,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다. 그래서 너무 겁먹고 긴장할 필요도 물론 없겠지만, 심하게 좌절하며 둘러가고 싶지 않다면, 3의 노력을 기울여 성공할만한 곳에는 10의 노력을 기울여라. 무작정 장미빛 긍정적 미래만을 꿈꾸며 실패하느니, 제대로 된 현실을 고려한 관점으로의 대비로 둘러 갈 것을 똑바로 질러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한국적 환경의 예를 든다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처럼 저질러놓고 무식한(?) 추진력과 신념으로 결국 이루어내고야 말거나, 그런 저돌성이 없다면, 삼성처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야하는 치밀함을 보유할 것. 그도 저도 아닌 처세는 숱한 실패만을 거듭하게 될테니까. 열중 하나 아주 대단한 운을 타고 나지 않은 이상에야 말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결코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에 적절해 보이지만은 않은것 같다.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뿐더러, 그런 형이상학적 개념이 발을 디디기엔 아직도 상당히 낙후되고 유물론적인 사고가 팽배한 사회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결국 현실은 우리 마음을 배경으로 한 '주관적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그 어떤 불가능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경험하는 주관적 우주의 절대적인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혹은 스스로 선택하는 자아의 신화. 천년의 세월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면, 전혀 뜬금없는 목표를 선택하기 보다는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자아의 신화를 다시 기억하라!


잊고 있다면 다시 기억하라!

기억하고 있다면 그 길을 걸어라!

이미 걷고 있다면 즐기며 가라!

우리 모두는 자아의 신화를 향해 걸어야 한다.

왜냐면 우리가 그것을 향해 걷지 않는다면,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므로.

비록 아주 오래된 미래일지라도...

내면에 숨겨진 자아의 신화를 사는 길.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기개발의 길이다.

세상 모든 이들의 자아의 신화가 이루어지는

그날을 향해 가며...


2004. 8. 3. 치유의마법사(http://cafe.daum.net/healingwizard) 사랑의마법사 전용석


* 이곳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퍼왔습니다. ^^


■바람 ■명상 ■20040812

그대는 이 숭고하고도 축복받은 위대함을 보려고 하는가? 내가 자궁으로부터 소유한 순수하고 신선한 앎과 내가 함께 지니고 태어난 신성한 빛은, 내가 우주를 볼 수 있는 오늘 가장 선한 것이니..... 확실히 아담은, 어린아이 시절의 나보다 더 달콤하고도 호기심에 찬, 세계에 관한 앎을 가지지 못하였다. 내 지나친 무지는 모험적이었다. 나는 순박함의 상태에 들어온 자처럼 보였다. 삼라만상이 흠없이 순수하고 영광에 차 있었다. 나는 아무런 죄도, 불만도 법도 알지 못하였다. 나는 가난함도, 만족도, 사악함도 꿈꾸지 않았다. 온갖 눈물과 싸움은 내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은 조용하고, 자유로웠으며 도덕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질병도, 죽음도, 불화나 부당한 요구도, 공물貢物이나 빵도 알지 못하였다..... 모든 시간이 영원이었으며 변함없는 안식일이었다.....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었다. 영원은 한낮의 빛속에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모든 것의 피안에 있는 무한한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나의 기대와 아울러 이야기하였으며 나의 욕구를 자극시켰다. 도시는 에덴에 건립된 것으로, 또는 하늘에 건축된 것으로 여겨졌다.......


토마스 트래헌의 '명상'에서


■바람 ■조주영감님 각성기 ■20040812

내가 처음으로 도(道:이것은 선禪이다)를 배우게 된 것은 당 현종 7년(867 A.D.)이었다. 어디를 가나 나는 말들을 들었으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음 속의 의심덩이는 마치 버드나무 광주리와 같았다. 삼년간 냇가 숲에 머물면서 나는 불행하였다. 뜻밖에 융단에 앉아있는 다르마라자(Darmaraja, 선사)를 만나자 그에게 다가가 내 의심을 풀어주기를 그에게 진지하게 청하였다. 선사禪師는 명상에 깊이 빠져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즉시 그는 팔을 내밀어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쳤다. 이 모든 갑작스러움은 내 의심덩어리를 완전히 산산 조각이 나게 하였다. 머리를 들자 나는 처음으로 해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래로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가지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나날이 나는 가장 활기차게 내 시간을 보낸다. 나는 오로지 충만함과 만족의 느낌으로 가득 찬 나의 내면을 바라본다. 나는 더 이상 탁발을 들고 이리로 저리로 나다니지 않는다.


역사상 유명한 zenmaster 조주화상의 각성 체험기  엑크하르트와 선(강영계 역)에서 ibid


지금껏 저는 태양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적이 있었는가,를 자문하며 적어봅니다. 그리고 어쩜 이렇게 동서양 종교인들의 각성체험이 닮았을까요. 캐톨릭 사제의 명상체험이나 불교 고승의 각성체험이나 신과 하나됨, 우주와 하나됨, 신의 영광과 축제와 춤에 하나됨을, 동조됨을 느낍니다. 신의 찬란한 영광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볼 수 없다면 색안경을 끼고 산다는 뜻일 것입니다. 찬란한 신의 축제와 영광을 흐리게 하는 오염된 안경을 말이지요. 태양과 바람과 비와 꽃과 나무 그리고 아침과 새벽의 여명, 산과 바다와 들, 그것들의 호흡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그것이 안될까요. 그것들만 있으면 생사도 성속도 빈부도 우열도 자타도 모두 사라지고 아니 사라질 필요조차도 없이 충만한 순간이라는데..... 우리는 왜 그것이 잘 안될까요. 여러분은 다 되신다구요. 그럼 나만 안되고 있나요?^^ 알겠습니다.


사실 깨달음에 대한 신비적인 토론과 수많은 선현들에 의해 수많은 언어로 정의되지만 진정으로 태양과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다면 신은 자신의 찬란한 영광을 자연속에 드넓게 펼쳐놓았는데 실내에 갖혀 깨달음을 이런 저런 언어로 찧고 까분들....태양과 산과 바다 바람과 나무를 어느 순간에도 질리지 않고 태초의 인간이 그렇듯 처음 보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신비롭고 신선하게 언제나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깨달음을 살아내는 삶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많이 부족한 표현은 아닐뜻 싶습니다......그리고 자손들에게 어떤 물질적인 부나 정신적인 경전보다도 그런 충만의 삶의 파동을 물려준다면....그보다 더 소중하고 자연스러우며 영원조화적인 가치가 있을까 싶네요.^^


■나그네 ■빈센트 일기 ■20040814

1889, 1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고흐의 일기 중-


시간을 소중히.....?! 모처럼 흐려서 좋은 날,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바람 ■미카엘의 깨달음에 대한 생각 ■20040815

[ 질문 ] 당신은 깨달은 사람 곁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미카엘 ] 깨달은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틀렸어. 내가 기대하는 인물이 아냐."하고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많은 구도자들이 이런 식으로 이 스승 저 스승을 찾아 떠돌지만 아무 변형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아이 쇼핑'을 즐길 뿐이다. 그가 깨달은 사람을 통해 얻는 것은 자기  미에 맞는 것 뿐이다. 자신의 신념체계, 자신의 '슈퍼 에고'에 아주 안락하고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실재하는 것을 놓친다. 그는  달음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을 수집함으로써 자신의 영적인 동일시를 강화시키고 세련되게 만드는데 능숙한 기술을 터득하게  다. 결국 '완벽한 스승'이라는 그의 신경증적인 강박관념에  는 스승을 만나게 될 확률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깨달은 스승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자기 탐구를 하게 될 가능성도 점점 더 줄어든다. 친밀한 관계가 없다면 남는 것은 신경질적인 강박관념 뿐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내면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 질문 ] 당신의 사트상에 참여하면 고초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종종 당신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던진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 미카엘 ] 깨달은 사람이 말하는 진실은 위안을 주기보다 상처를 준다. 구도자에게 번뇌와 분리의식의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에고에 상처를 입힌다. 지적으로 완고하고 강직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모욕감을 준다. 그는 이미 모든 답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더 오래 잠자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방편을 쓸 필요성을 느끼는 종종 있다. 나는 사트상에 온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는데 관심이 없다. 감정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자신을 변형시키는데 관심이 없다. 이 사트상의 목적은 사람들을 자아도취적인 상태로 몰아넣어서 고달픈 일상생활을 잠시동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진아(眞我)가 드러나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다. 근원적인 에로스(Eros)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해지는 상황, 삶이 무한정 풍요롭게 느껴지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 질문 ] 깨달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미카엘 ]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다른 점이 없다. 분열된 마음의 눈으로 보기때문에 달라보이는 것이다. 깨닫는 순간, 오직 의식만이 존재한다. 우주 삼라만상 모두가 의식이다. 다르다는 문제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 질문 ]세상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 미카엘 ] 세상의 현재 상황은 지성적인 사람들에게 의식의 각성에 대해 절박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이다. 의식의 각성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라는 것을 일깨워주는데 이보다 좋은 기회도 드물다


뉴리더, 미카엘 아자씨 생각  명상나라에서 포크레인으로 퍼옴. 너무 무거운 말들이라서!


결국 깨달음이란 자신이 은연중에 구축해왔던 아상이나 주관,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타성, 열리지 않고 꽉막힌 답답함(그런 자신의 찌꺼기에 대해 자각하지 못해서 오는 부산물)에 대한 무차별한, 내적인, 자성적인, 반성적인 폭격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동반한 해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동안 구축한 와꾸를 거푸집을 파괴하는 것, 해체하는 것. 해체로 인해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아니라 활짝 열어서 우리들의 영역을 드넓게 넓혀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잃어버린 듯 모든 것을 얻는 것. 깨달음을 말하는 진실은 위안을 주기보다는 상처를 준다는 미카엘 아자씨의 말씀처럼 좋은 약은 입에 쓰듯이 성숙을 위해서 우리는 알에서 꺠어나고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의견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나그네 ■완전보다 더 완전.... ■20040817

내가 알기로 신은 실수를 했다. 그러나 딱 한 번만 했다. 태초 이래로... 이 얼마나 지독한 완전함인가! 그런데 신의 한 가지 실수는 무엇일까?


■milarepa ■milarepa@cein.or.kr ■생활의 혼동속에서도 평안을~~ ■20040818

도 닦으시느라 애쓰십니다. 바쁜 생활의 혼동속에서도,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합장, 꾸벅~~


■박수찬 ■책추천.. ■20040820

제임스 알렌의 시리즈들

*생각의 지혜

*아침의 생각 저녁의 깨달음 등등..

역시 '창조'에 관해서도 있고. 큰 나에 대해서도..


■나그네 ■사랑과 욕망에 대해 ■20040822

신지학 홈피 마나스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한번 쯤 가보신 적이 있죠? 아주 오래 전에 몇번인가 들러보고 가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나로서도 알 수 없는 맘이 생겨서 즉흥적으로 들렀습니다. 역시 신지학의 현자님들의 언어는 깊고 넓고 섬세한 통찰력을 보여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스승의 발밑에 엎드려, 라는 글중의 일부입니다. 유명호님 번역


사랑

 

..........여러분은 매일 사소한 일에 봉사하며 습관이 형성되도록 해서 위대한 일을 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이 신과 일체가 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신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달하도록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도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타인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망각한다. 그는 마치 신의손에 있는 펜(Pen)과 같은 것이어서 그 펜을 통하여 신의 생각이 지상에 표현되므로 그런 펜이 없다면 신의 생각이 나타날 수가 없다. 또한 그는 동시에 살아 있는 불의 상징으로 신성한 사랑(Divine Love)을 이 세상에 비추는 역할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는 지혜 그 지혜를 안내하는 의지 그리고 그 의지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사랑, 이것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들이다. 의지, 지혜 및 사랑은 로고스의 세 가지 면(面)이다.  그리고 신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여러분은 이러한 양상을 세상에 나타내어야 한다.


..........모든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충분히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랑은 다른 나머지 자질들을 갖추도록 하게 만든다. 사랑이 결여된 채로 다른 모든 자질들을 갖추었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때때로 이 말은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서 신과 합일을 이루려는 강한 욕망으로 변경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이기적으로 들리고 사랑의 의미를 부분적으로밖에 나타내지 못한다. 사랑이란 욕망이라기보다 오히려 의지, 결의 그리고 결심이다. 이런 결심은 여러분의 심성 전체에 충만해 있어서 다른 감정을 느낄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결과가 생겨나지 않는다. 사랑은 신과 일체가 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여러분의 피곤함이나 고통에서 탈출하고자 함이 아니라 신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신과 더불어 신처럼 행동하고자 함이다. 신은 사랑이기에 만약 여러분이 신과 하나가 된다면 완전한 이타심(利他心)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사랑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살아 있는 어떤 생물에게도 해(害)를 주지 않는다. 둘째, 항상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찾도록 한다. 첫째, 해(害)하지 마라. 세 가지 악행이 세상의 어떤 다른 죄보다 더 해롭다. 즉, 험담, 잔인함, 그리고 미신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랑에 반하는 악행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려는 사람은 이 세 가지에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험담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라. 그것은 악한 생각에서 비롯되므로 그것 자체가 악이다.  모든 사람이나 모든 사물에는 선이 있고, 또 악도 있다. 우리는 그중에 하나를 생각함으로써 강화할 수 있고 우리들은 지화를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로고스(Logos)의 의지를 행하거나, 거기에 저항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타인속에 있는 악을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동시에 세 가지 악행을 하는 셈이다.


(1) 여러분은 이웃 사람들을 좋은 생각 대신 악한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며 따라서 세상의 비애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2) 만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사람 속에 악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악을 강화하고 사육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형제를 더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쁘게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악은 그 사람 속에 없고, 단지 여러분이 그런 환상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그런 여러분의 악한 생각이 형제들로 하여금 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한다. 그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그를 여러분이 생각한 것처럼 만들게 된다.

(3)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선한 생각 대신 악한 생각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자신의 성장을 저해(沮害)하고, 자신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닌 추악하고 곤혹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욕망

............앞에 식별력에서 말한 바 있듯이 여러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부(富)나 권력 등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절실하게 느낄 때 모든 욕망은 사라진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단순하다.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천국을 얻기 위하여 혹은 환생(還生)으로부터 개인적인 자유를 얻기 위하여 세속적인 목표추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분은 이런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전적으로 망각했다면 자신이 자유로워진다거나 어떤 천국에 갈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생각할 리가 없다. 명심해라. 모든 이기적인 욕망은 그 목표가 아무리 높은 것일지라도 자신을 속박한다는 것과 그것을 없애기 전까지 그 사람은 스승의 일에 완전히 자유롭게 헌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이기적인 욕망이 사라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한 결과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있을 수 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도운다면 자신이 그를 얼마나 쓸모 있게 도와주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라고 감사하게 여기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것도 욕망이며 또한 신뢰의 결여이다.  여러분이 돕는데 힘을 쏟는다면 여러분이 알든 모르든 반드시 결과가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법칙"을 안다면 반드시 그러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의를 위해서 바르게 행동해야 하지 보답을 기대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해야지 결과를 보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바람 ■사랑 ■20040822

'진짜 사랑은 언젠가는 상대의 마음에 가서 닿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이 조용한 것일수록, 닿았을 때 마음의 울림은 더 크다는 것도 말입니다'

- 왕조현 -


위의 내용과는 전혀 별개로 글을 쓰자면 나는 사실 사랑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무성음 ㅅ으로 시작되는 사랑이라는 단어 즉 자모의 조합 형태를 싫어한다. 한없이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 자체의 능동성,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듯한 적극성이 느껴지는 것이 싫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외쳐된다고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직관처럼 자연스럽게 수동적으로 흘러나온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두음법칙에 의해서 밝고 발랄한 유성음 ㄹ이 단어의 첫머리에 오는 행운을 묵살해버리는 국어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어로 사랑은 러브이다. 유성음 ㄹ로 시작된다. 유연하고 어감좋은 시작이 아닌가.


사랑은 그저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수동적인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애정이라는 말을 훨씬 더 선호한다. 누군가와 누군가가 좋게 관계지워진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소나기 같은 단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나기는 단 시간 내리고 훌쩍 사라져버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사랑과 함께 정이라는 끈적하고 찰진, 오래가는 요소가 곁들여져? 애정이 비로소 이룩되고 보면 그것은 참답고 오래가는 관계를 말하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애정! 애정! 좋고 진실한 관계를 사랑이란 말로 정의할 때 애정의 애,는 사랑의 동적인 요소처럼 보인다. 반면에 정은 사랑의 정적인 요소로 그리고 능동적이기 보다는 자연스런 수동성, 자연과 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역시 자연스런 발로로 보인다. 애와 정이라는 이런 요소가 찰지게 가미될 때 비로소 관계는 진실되고 오래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싸가지 없는(?) 단어 하나가 좋고 진실한 관계의 뜻을 대변해버리고 만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만행이요 사변이 아닌가 싶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과 그리고 정이라는 요소가 함께 이룩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바른 정이라는 단어속에는 분명 의리라는 요소가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로움이라는 요소가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ㅅ의 재앙은 섹스라는 단어나 그것의 한국 번역어인 성이라는 단어 그리고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라는 단어에 첫머리에 나타난 걸로도 알 수 있다. 필자로서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단어들이 차가운 무성음으로 시작되는 것이 좋지 만은 않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자모로 이룩된 조어라도 하나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섹스! 성! 서울! 사람!


이상은 바람의 횡설수설....^^ 아차! 그리고 왕조현이 무지 멋진 말을 했군요.^^


■바람나그네 ■길 떠납니다. ■20040824

그 동안 넓은 아량으로 인내하며 횡설수설할 자리를 주신 쥔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낙엽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으로 봐선 완연한 가을 냄새가 납니다. 이렇게 오랜 동안 안주하며 볼품없는 글을 놓았던 홈이 많지 않는데, 나그네로서 너무 오래 있었군요. 그 만큼 이 홈의 인력이 대단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아, 그리구 한번 찾아오라하시면서(미리 연락하구) 그러실 때마다 휴대폰 넘버를 알려주시지 않아서 이거 오라는 얘기신지 말라는 얘기신지 생각하다 거기다가 또 무거운 엉덩이 게으름 반까지 합세해서 일어서지를 못했습니다. 술 끊으셨군요. 당분간?ㅋㅋㅋ^^ 신체적인 만남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달과 지구처럼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주관적인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거짓상상을 이것저것 떠올려서 이곳저곳에 문자적으로 오려붙여서 이야기를(fiction) 만드는 저로서는 수행자와는 극과 극의 일을 하고 있기에 이것도 하나의 수행의 면모가 될 수는 있지만(그런 이야기 속의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그 기술적인 면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수행자분들의 정신적인 패턴(참나 무념무상 무심)과는 극과 극의 현상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념무상 무심과는 극히 극단적으로 거리가 먼, 온갖 잡념을(상상, 공상, 망상) 들고 주물럭 주물럭 해야하는, 저로서는 무념 무상 무심의 기쁨이 얼마나 에너지 유통이 잘되고 에너지 손실이 적을 뿐 아니라 기쁨의 상태 신적인 상태인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나름대로 반복적으로 그러한 류의 글들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인도의 성스러운 사원에 보면 성애적인 조각들(부조)이 즐비하게 널려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양상이지요. 그러나 그 메세지는 진정으로 성애의 지옥에 빠져 본 자도 욕망의 폐해를 체득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메세지가 있더군요. 반복되는 내용이지만 진정으로 온갖 복잡하고 잡다한 성속 선악의 이야기(즉 잡념 망상 공상)를 끼고 사는 일을 하는 저는 무념무상이라든지 무심의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 상태, 고요히 열린 마음으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현재의 일 하나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안정된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에너지 손실이 적고 에너지 유통이 잘되는 신의 길이라는 자연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꾸 자꾸 반복해서 외친 것 같습니다. 잡념과 망상 공상의 피곤함과 극단적인 폐해를 알기에(그래서 전생에 젤루 죄많이 지은 인간이 이런 팔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의식적인 안정과 무심 참나의 기쁨을 압니다.

 

환절기에 모두들 건강하시고 평화로운 삶 되시길 빕니다.^^ 아아, 그리고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바람과 나그네는 그놈이 그놈입니다.^^ 사과드립니다. 한 이름으로 내리 도배하기가 스스로도 자못 미안해서 쥔장님께 미리 양해를? 고해성사를 드리고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술을 끊으시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 축적이 되어서 술을 마시는 기쁨보다 더 많은 에너지 축적으로 인한 신체적인 정신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몸과 마음이 열린, 경혈과 경락이 열린 이들에게는 더더욱 잘 느껴집니다. 물론 초반에는 술의 관성때문에 신체리듬의 변화로 혼란스럽고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술이란 기운을 많이 흐트러뜨리고 손실하니까요.


글 읽어주신 몇분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가을날 되시길 빕니다. 활짝 열린 마음이란 더 근원적이고 신적인 단어 인것 같습니다. 장구한 역사를 통해 지구상의 선조들에게 유산된 지구의 양식을 선입관이라든가 편견을 버리고 지협적인 인간이 아닌 지구인이라는 정신으로, 열린 정신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풍요롭고 평화롭고 건강한 지상이 되지 않나생각됩니다. 미국도 내땅이고 유럽도 내땅이고 북극도 역시 우리땅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의 땅으로 알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조물주가 공평하게 펼쳐주신 모두의 땅인 것이지요. 교황이 남의 땅의 공항에 내려서 지면에 입을 맞추는 것도 역시 그곳도 자신의 땅이라고 여기는 열린 정신에서 나오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지상의 어떤 음악이든 어떤 지혜의 기술(명상, 수많은 종류의 음악 미술을 비롯한 각종 예술들, 단전호흡이나 과학적인 정신, 요가, 첨단문명에 이르기까지) 어떤 부정적인 고정관념이나 거부감을 떨치고 인류가 남긴 정보를 토대로 정확하게!!! 터득하여 열린 마음으로 후유증없이 누릴 수 있다면 그리고 2세들에게 그런 열린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면 좀더 영원조화적인 평화로운 지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정신적 육체적인 열림중의 하나는 바로 웃음이라고 생각됩니다. 활짝 웃는 선량한 웃음 말입니다. 삶에서 오는 자질구레한 혼란이나 트러블도 유머러스함으로 잘 승화시켜 넘길 수 있는 날들, 많이 웃는 날들, 열린 날들 되시길 빕니다. 그리고 기도와 감사, 만족도 열린 정신의 정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주에 신께 자신을 활짝 열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족이 길어졌습니다. 한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평안 ■beenbeen@kornet.net ■떠남 ■20040825

누구나 다 떠나고 있는것.내가 아는 모든것 관계성,시간이나 공간 조차도 .... 진아니 뭐니하는 나라는 것도 그런데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이유는 그 질기질긴 집착이라는것 아닙니까? 오랜동안 명상생활을 하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뭐가 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은 될수 있지 않으려나 하는 허상 자체를 품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겪어보며 새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던것 같습니다. 누구나 고유한 그들만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하여 길을 가는것.  나 또한 별로 다를게 없는데 말이죠.


■한석훈 ■님들께 감사 인사 ■20040826

홈 주인이 제 앞가림만 하느라 정신이 없어 홈 관리를 소홀히 해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러 길벗님들께서 방명록을 통해서나마 좋은 말씀들 많이 남겨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 앞으로도 저는 몰두하고 있는 공부 때문에 예전만큼 이곳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행일상은 가능한 한 이어가려고 하고 있구요. 그리고 그간 도배하시느라 애써주시고, 또 그러시면서 저에게 알게 모르게 큰 도움 많이 주신 바람님 및 나그네님, 감사의 편지를 전의 메일 주소로 보냈사오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soon ■홈페이지에 처음 글을 남김니다. ■20040904

저는 요즘 용서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고집스럽게 싫고 좋은것만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았지, 그이상의 세계 '용서'라는 것을 생각못했던거 같습니다. 어제의 나의 실수를 오늘 용서받기만을 소원했지 오늘 용서하는 데는 인색했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듯이 나도 상처를 줄 수 있고 참많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고 이런저런 생각끝에 어렵게나마 실천해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루사이에 용서를 실천해본 오늘 하루에게 새삼 무지 고맙게 느껴집니다. 늘 이렇게 주어지는 시간이 모든것을 노력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자체가 축복인거 같습니다.
 

★교수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서 조금씩 변화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머리속에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감사합니다!★


■milarePa ■milarepa@cein.or.kr ■그럴듯한 이야기 ■20040905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우주는 만화경입니다. 라디오가 주파수를 달리하면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듯이 이 채널 저채널, 만화경 처럼요. 의식은 수신기랍니다. 이현실, 저현실에 ,,,  ㅠ.ㅠ" 누구에게나 운명은 다른데 제 경우는 ㅋㅋ 답답한 게 싫거든요. 그래서 이 채널 저채널 돌아다니다. 이제 그 작은 구멍으로 바라보기를 그만두고 "이제 만화경은 싫증났다"말하고 싶습니다. '집중력'이 있어야 한답니다. 매일 신과 접속하시는 잘 아는 분이 말입니다. 만일 명상을 한다면 집중을 해야만 밝은 빛과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 집중력으로 만화경의 이쪽 저쪽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게 되나봅니다. 명상을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집중력이 부족합니다. 최고의신이여~! 그렇게 되도록 하소서,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제 마음은 변하게 됩니다. 마음은 변하는 것이니까요... 기분좋은날 나쁜날,,, 오늘 하루를 걸려 청소를 했습니다. 기분이 좋네요. 최고의 신이 한석훈님과 다른 중생계의 중생을 특별히 보호해 주세요..~! 낮은 신의 현혹에 끌리거나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기를, 커다란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당신께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합장~!


■f ■y ■20040919

<link>http://blog.naver.com/uabeautiful/140005972033</link>


■김영회 ■잘 지내시지요. ■20040920

그저 그렇다는 것입니다 2

비 갠 오후, 비의 숙제는 끝나고 바람은 여전히 숙제중입니다. 바람은 알 길 없는 먼 하늘에서 찾아와 성큼 높은 감잎들 틈바구니를 우렁이 모양으로 누비고 옥상 위 콩포기와 호박잎으로 덤벼듭니다. 그러더니 어느 새 배춧잎 주위를 기웃거리던 황색나비, 하얀나비를 무등 태운 채 싱그런 배춧잎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먹장구름에 갖힌 채 서녘으로 이제 막 기울던 햇님이 신선한 창공에서 바람의 성실한 숙제를 환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단독주택 할머니는 부처님 모시는 점장이신 듯합니다. 대문가 치솟은 깃대에는 콧대 높은 히틀러씨 모자에서 본 듯한 표식의 깃발이 바람을 핥고 있습니다.


비오는 사이 여름날 송아지처럼 조용하던 식물들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감잎 호박잎 고구마잎 은행잎 대추잎 파줄기 히말라야싯다 할 것 없이 저 먼 산 수목들 할 것 없이 잠에서 깨어 속살거리고 교회당에서는 여느 때처럼 부라스밴드의 쿵짝소리가 들립니다. 악단의 리듬에 맞춰 옥상 위 키 큰 고무통 물거죽이 바람에 쉼 없이 떨고 잠자리는 곳추선 대막대기 위에서 기를 쓰며 묘기를 부려봅니다.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흰나비는 어설픈 날갯짓으로 제딴에도 우스운지 까르르 허공을 배회하고 머리를 질끈 동여 맨 채 거짓말 않고 꼭 바비 인형 만한 겨집 아해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어른처럼 풍부하고 의젓한 얼굴로 깔깔대며 축축한 골목을 지나갑니다. 우스워죽겠습니다. 어느 새 빗소리에 스며든 아해들의 따가운 목소리가 골목 골목 이집 저집 창을 통해 들려오더니 금새 고삿 고삿 마다 웃음 가득 머금고 어눌한 말들을 참새처럼 지지재재 내뱉으며 아이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그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밤낮 때없이 품앗이로 울어재끼던 뒷집 옆집 아가도 비 오는 사이 조용했지만 웬걸 금새 발정난 멧돼지의 목통을 꿔다가 생떼를 쓰며 엄마와 식상한 전쟁을 벌이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고 가는 성난 여객기 소리가 쉼없이 들려옵니다. 빗소리가 가두어 둔 마음들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기분 좋은 토요일 오후입니다. 그저 그렇다는 것입니다.


2004, 9. 18 by yhkim


■337 ■한석훈님 힘내세요 ■20040921

힘내셈! 아자 아자 !  ^__^


■향수해 ■밑에 분과 이하동문! ■20040922

(뭐냐///- ㅡ:)

^__^:

♥♡힘♥♡ 내♥♡ 세♥♡ 요♥♡ ♥


■길벗 ■응원!! ■20040922

시험 100점 맞고 통과하세요!!


■양세화 ■건강하시죠? ^^ ■20040924

선생님. 잘 계시죠?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1학기에 선생님께 수업을 받았던 학생입니다. 기억나세요? ^^ 선생님께서 싸이트 알려주신 후로 종종 들르고 있습니다. 이제야 흔적을 남기네요. 열심히 선생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입니다. 저도 그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어떤 위치에서든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아자아자. 파이팅!! 추석 잘보내시고 건강하세요~* ^^


■평안 ■젊은 수도자에게 ■20040925

아름다운 님들 조금은 교만하고 많이 게으르다보니 아래와 같은 글을 이제야 읽고 님들께도 읽기를 권유하고 싶네요


(지금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중에서

<젊은 수도자에게>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볼라면

진정으로 사랑하길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스와미 묵타난다


■여은희 ■redpigy@hanmail.net ■교수님~~ ■20040926 ■URL=http://www.cyworld.com/yeh0505

메일 잘 받았습니다. 감사해요~~@@ 삶이 시험이란 생각 매일 하지만.. 삶은 삶일 뿐이란 생각도 들어요~~ 내게 주어진 것이든 만든 것이든.. 언제나 선택은 나니까~~ 삶은 또한 살리는 것인데.. 살리는 것.. 나만 살리는 것은 아닌데란 생각이 들때.. 내 존재가 없는거 같아서 슬프기도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이 문제이기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ㅠ.ㅠ 교수님. 잠시 맘 쉼하고 갑니다.. 마음이 더욱 풍성해지는  한가위 보내세요~~@@


■breeze ■삶은 ■20040927

삶은 호흡지간이다.

-사키아무니-


이상을 좇으려거든 발밑을 조심하라.

-사키아무니-


♡。__▒▒▒__

♡。.(*⌒⌒*)~♡........☆⊙⊙ ☆

┏━○━━━○━┓...▒▒[]▒▒~~~즐거운~추석

♡.♧ .>>.♧ 천년묵은▒▒[]▒▒~

┃.()ぶ >..()ぶ 산삼입니...[]...,·´ ¸,·´`)

.ぶ() >>ぶ() 다.드시구__ ㆀ● ''

┃り >>>り힘내세요. __ ┏■┛ㆀㆀ추석선물배달중~

┗━━━━━━━┛_______┛┓ 애고 바쁘다..... 헉헉;;


■하늘호수 ■popzeal75@hanmail.net ■교수님, 괜찮으세요? ■20041006

어느 새 시월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올해가 3개월 밖에 안 남았다니. 황당하기까지 하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그렇지도 않은가봐요..-.- 교수님, 건강하셔야돼요~.


■friend ■오랜만이네요 ■20041010200646

오랜만에 들렀는데 기분좋은 배경음악은 여전하네요. 좋은 일 하시는 한석훈님 항상 건강하시고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soon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20041011

지혜의 망각을 읽어보면 내용중에 선생님은 많이 부족한데 참 복에 겨운 사랑을 받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부족함을 깨달기란 쉽지 않아요... 알아도 새겨지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깨달게 되었습니다. 울퉁불퉁하고 삐죽삐죽한 저의 성질이 잠시 부드러워지는 이순간!-진리를 맞는 순간이 이런 걸까요? 선생님께서는 '나는 부족하다'라고 깨달았지만 그걸 읽은 진리의 ㅈ도 모르는 저는 '나도 부족하다'라고 깨달았습니다.(솔직히 더더욱 엄청 많이 부족합니다.) 평소와 똑같이 오늘 할일을 생각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이 작은 감동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평소와 분명 다릅니다. 행복합니다. 이 감동도 곧 망각되겠죠...그러나 그다음 깨달음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은 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솔직 담백의 힘이 너무 커서 보는 이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저에게는 멋진 스승이시니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가세요. 아자!!^^


■breeze ■무제 ■20041015

어정쩡하게 불완전연소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진 않아. 아주 짧은 순간일지언정 눈부실 정도로 붉게 달아오르는 거야. 그리고... 그 후엔 새하얀 재만 남는 거지.. 타다가 마는 일은 없어.. 오로지 재만 남는 거야.. 아직 타다 남은 게 있어.. 이 가슴 속에 말이야. 새하얀 재가 될 때까지, 내버려둬..  -허리케인 죠中


■길벗 ■지나친 겸손은... ■20041019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물론, 그 오만까지도 자각하고 계시겠지요? 사람의 내면은 얼마나 복잡한 것일까요? 그 복잡함 속에서 귀중한 한 줄기를 뽑아내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귀중한 한 줄기를 대하고는 역시 겸허해질 수밖에 없겠지만요. ㅋㅋ


■일원 ■pillow10@hanmail.net ■오랜만에.. ■20041019

오랜만에 흔적 남기고 갑니다. ♡

저는 요즘.. 새삼,,

세상의 신비에 휩싸여 있답니다. ㅎㅎ

왜 이렇게... 신기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죠?

참.. 새삼스럽게....

이렇게.. 세상과,,

새롭게 만나나 봅니다....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소중한 나날들 되소서~~~~~~~~~~~~~~~~~~~~~


■향수해 ■moksha99@hanmail.net ■OTL(좌절포즈랍니다. 그냥 귀여워서..ㅎㅎ) ■20041019

꼭 행복한 것은 아니라 하여도, 사람의 삶은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불행 속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요

그럼요

새 글 반갑게 읽고 갑니다. 다른 님들의 글도요..

여튼 좋은 곳이예요. 여기는^_^


■박수찬 ■psc0711@empal.com ■책 추천. ■20041024

박승제-

신과의 대화법

밀레니엄 바이블II


내용상 특징 : 신과 나눈 이야기.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 무묘앙 에오의 인간 개량설. 수선재라는 단체의 지구는 영적진화특화장소-ㅁ-;, 라엘리안, 람타, 뮤탄트 메시지, 지구영혼설 모든 걸 잇는 아마도 모순되지 않는 흐름-ㅁ-a


■신인수 ■10월의 크리스마스  &  어느 여대생의 소원 ■20041024

10월의 크리스마스

서대문 학교의 야간 강의를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다. 광화문에서 내려 쏜살같이 교보문고로 달렸다. 매장 안내자에게 ‘그 책’을 물으니 즉시 한 권을 찾아다 준다. 그날 나는 교보에서 최단기 방문, 최소량 구매라는 두 개의 기록을 세웠다. 책에 찍힌 판매 소인이 2002년 11월 22일이었다. 흔들리는 곳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평소의 신조를 깨고, 강의 뒤 자정 가까운 지하철에서 책을 펴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시울이 화끈하더니 책 위로 무엇이 후드득 쏟아지는 게 아닌가. “내 이 아줌씨,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이런 얘기들이다. 암 말기 환자인 젊은 엄마가 임종을 앞두고 아홉 살과 일곱 살짜리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언제나 씩씩하고, 아빠가 새엄마를 모시고 오면 잘해드리라”고. 엄마를 묻고 온 날 형제는 아빠에게 “우리 항상 씩씩할 게요. 그러니까 제발 새엄마를 데리고 오지 마세요”라고 편지를 쓴다. 오늘 그 대목을 다시 들추니 눈이 부예지더니 컴퓨터 자판의 글씨가 둘로 보인다. 여기서 저자는 “진정 남을 위해 흘리는 이들의 눈물이 자갈밭같이 메마른 내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27쪽)고 썼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내 생애 단 한번』(샘터, 2002, 227쪽, 7500원)이 바로 그 책이다. 조선일보 독서 칼럼에서 그분의 글을 일종의 ‘직업 의식’으로 읽었으나 점점 빠져들어 이제 직업도 팽개치고(?) 팬이 되기로 했다. 독서를 끝내고 딸아이한테 슬쩍 권했다. 책에 나오는 대로 아버지에 대한 저자의 사모와 존경도 함께 배우라는 꿍심도 섞어서. 그랬더니 “아빠가 그렇게 반한 책이면 나도 한 권 살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핵전쟁이 났는데 동굴에는 여섯밖에 들어갈 수 없다. 수녀·의사·맹인·교사·창녀·가수·정치인·물리학자·농부·본인 가운데서 여섯을 고르도록 학생들에게 그룹 토론을 붙였다. 제일 먼저 나가떨어진 것이 정치인이고, 만장일치로 뽑힌 것이 본인이었다. 의외로 치열한 토론이 맹인 소년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동정보다 실리가 앞서야 한다는 그룹의 주장이 다수표를 얻으려는 순간, 평소 말을 심하게 더듬는 반대 그룹의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전쟁 피해가 가시고 그 여섯이 새 사회를 세울 때 모두 제 일에만 매달리면 다시 경쟁이 생기고 질투와 미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일단 받아들인 이상 어떻게든 이 눈먼 소년을 돌봐야 하므로 거기서 남을 위해 나를 바치는 희생의 가치를 저절로 배울 테니 그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사회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104쪽).


“무슨 여자가(!) 이렇게 글을 잘 쓰지?” 하루는 사내의 J형에게 농담을 던졌더니 “어깨에 힘을 빼서 그럴 거야”라고 했다. 남을 씹고 조지고 그래서 돌아올 반격까지 재고 따지기 일쑤인 우리네 글과 달리, 그는 힘을 빼고 소리를 낮춰 사랑과 희망과 평화를 즐겨 다룬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체득한 내 삶의 법칙은 슬프게도 ‘삶은 투쟁이고, 투쟁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190쪽)는 토로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아마비 장애로 목발에 의지하는 장 교수의 대학 시절 꿈의 하나는 흔히 2층이나 3층에 있는 다방에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니…. 그래서 말인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12쪽)라는 항의도 혹시 그 슬프고 질긴 투쟁의 연장은 아닐까.


장애 소년들의 500m 육상 경기에서 출발 신호와 함께 여남은 명이 뛰어나갔다. 머지않아 두 소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 경쟁을 벌이던 중 갑자기 하나가 무엇에 걸려 넘어졌다. “그의 경쟁자는 잠깐 주춤하더니 뛰기를 멈추고 돌아서서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웠다. 그 사이 뒤쫓아오던 선수들이 앞질러 경주는 끝났고, 이들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맨 꼴찌로 들어왔다”(170쪽). 이 외국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은 ‘승리자들’이었다.


길섶에 코스모스가 지천이던 지난 9월 그의 칼럼을 읽고 다소 들뜬 나는 우리 북 리뷰 팀장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정형, 크리스마스에 멋진 카드를 보내려니 자리 하나 부탁해”했더니 “누구한테요”라며 씨익 웃는다. 그리고 며칠 뒤 장 교수의 고별 칼럼을 통해 투병 소식을 들었다. 그가 따스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이제 이웃이 따스한 마음으로 그의 쾌유를 빌 차례다. “장미, 괴테, 모차르트, 커피를 사랑하면서” 영어 기도가 우리말 기도보다 3초 빠르기에 ‘주님의 기도’는 영어로, ‘성모송’은 반대여서 우리말로 바치겠다는 그 살가운 미소를 계속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도록! 멋지기는커녕 이 싱겁기 그지없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미리 보내는 뜻도 거기 있다.


정운영의 如是我讀(나는 이렇게 읽었다) (논설위원) 2004.10.23 09:50 입력 / 2004.10.23 10:14 수정


일기장에 남긴 여대생의 14가지 소원 세상을 차례로 밝히다


승영이는 갔지만…


어머니는 호스피스, 동생은 입양 실천  장학금 받은 사람들은 '쉼터' 만들고…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

인천 부평구 산곡1동 백마마을 산곡중학교 뒷골목에 ‘작은손길 공동체’가 있다. 파지(破紙)를 주워 연명하는 동네 노인들에게 급식을 해주던 최만재(47)씨가 4년 전 이들을 위해 마련한 보금자리다. 아들딸이 있어도 갈곳 없는 65세 이상 노인 11명이 이 무허가 월세 건물에 모여 산다. 고졸(高卒) 출신이던 최씨는 작년에 ‘승영장학회’로부터 학비를 받아 뒤늦게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승영’이라는 이름은 ‘오늘은 내가 무엇을 부족하게 살았나’ 하고 매일 되묻게 하는 이름”이라며 “마음이 지칠 때마다 성수대교를 찾아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말했다.


1994년 10월 21일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3학년 이승영(여·당시21세)씨는 어머니 가슴에 묻혔다. 교생실습을 가던 중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 교각 위에 곤두박질친 16번 시내버스 속에서 압사(壓死)한 것이다. 이날 승영씨를 비롯해 32명이 숨졌고 이 중 9명은 10대 중반의 무학여중고 학생이었다.


11개월 전 군인이던 남편을 과로사로 잃은 어머니 김영순(56)씨는 딸이 남긴 일기장에 적힌 ‘14가지 소원’을 발견했다. 그리고 대신 뜻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딸 시신을 고려대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승영씨는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처참한 주검이었다. 유족에게 나온 보상금 2억5000만원은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장학금 제도를 만든다’는 승영씨 소망을 이룬 것이다. 어머니 스스로도 전도사가 돼 호스피스, 장애인 봉사에 뛰어들었다. 그후 10년….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신학대학원생 50여명이 ‘목숨과 바꾼’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생 중에는 청각장애인으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를 꾸리는 사람, 암(癌)을 이겨낸 뒤 말기 환자 병동에서 기타로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누가 연락하지 않아도 승영씨의 기일(忌日)이 되면 해뜨기 전 고려대 의대 뒤편의 감은탑(感恩塔)에 모여 고개를 숙인다.


강원도 인제군 서흥리의 한 포병연대에는 승영장학회가 작년 8월 기증한 전천후 이동도서관 차량이 7개 부대 500여 장병들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승영씨는 군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전방부대를 다닌 기억 때문에 ‘강원도에 이동도서관을 만든다’는 소원을 적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신앙소설을 쓴다’는 승영씨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사고 이듬해인 95년 초등학교 때 승영씨의 시(詩)를 ‘연기는 하늘로’란 이름의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이 때 받은 인세(印稅) 400만원도 김장김치가 돼 장애인 재활시설 4곳에 골고루 전해졌다.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또다른 소원은? 올초 결혼한 동생 상엽(29)씨가 “내가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상엽씨는 “누나는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눈을 주고 갔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씨는 “세상에 대한 미움 따윈 없다. 세상에 사랑이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딸,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runto.chosun.com])


가장 작은 선행이 가장 거대한 선한 생각보다 낫다. The smallest good deed is better than the grandest good intention. - Duguet  - http://myfaith.netian.com/ 에서 재인용


■FRIEND ■세잔의 그림 ■20041024

조금 전 세잔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중의 한 사람입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내가 왜 세잔의 그림을 좋아하는지 저 자신도 확실한 이유를 몰랐습니다. 이제 깨달았어요. 나에게 손짓을 하지도 않고, 나를 유혹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으며 나에게 어떤 말을 하지도 어떤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꾸밈도 없고 거짓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그렇게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인생에 지친 날에는 그림 하나에도 이렇게 위안을 받네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이라" 성경구절이 떠오르네요. 애통하는 마음을 주심도 위로를 주심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람 ■&#49548;&#45376;&#50640;&#44172; ■20041026 ■URL=http://nudegirls.hisexy.net/4483/

소녀에게

--&#46160;&#49436; &#50630;&#51060; &#55192;&#52264;&#44172;--

소녀여 소녀여

삶의 눈물이 움틀땐

춤추어요 춤추어요 노래해요 노래해요

경쾌하게 휘파람 불며

춤추어요 춤추어요.

꽃 위의 나비처럼 왈츠에 맞춰

밝은 생의 들길을 따라

원스텝투스텝 춤추며 내달려요 내달려요.

휘파람 불어요 불어요

소녀여 소녀여

생이 고프고 쪼들리거든

기죽지 말아요 말아요

신기루 같은 생의 난간 당황치 말고

미풍에 맞춰 춤추어요 춤추어요.

부지런한 벌처럼 까치처럼

힘차게 생을 노래해요 노래해요

청아하고 경쾌한 휘파람에 맞춰 춤추어요

소녀여 소녀여

고독이 눈 뜰 때는

자연을 노래해요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어요 나누어요

산천이 떠나가게 휘파람을 불어요.

주인공이 되어 맑은 노래해요.

꽃들의 왈츠 수목들의 호흡 소리 얘기소리 들어요 들어요

하늘의 바람을 들어요 저 맑고 푸른 창공을 보아요.

즐거운 마음속 휘파람에 맞춰

마음으로 영혼으로 초록을 숨 쉬어요.

나무처럼 꽃처럼 신선하고 유쾌하게 숨 쉬어요.

마음을 열고 별들의 희망을 보아요.

눈물을 닦고 수목의 정령 나비의 요정을 보아요.

힘을 내요 씩씩해요

태양의 웃음 보아요 바람의 위로를 느껴요.

나비처럼 웃으며 춤을 추어요.

산 너머 바다의 가슴을 느껴요.

끝없이 노래하고 숨쉬어요

해바라기처럼 활짝 열린 마음으로

웃으며 세상을 들여다보아요.

그럼 그곳에 그대 얼굴이 있을 거예요.

그대의 열린 가슴 만큼 그곳에 더 맑고 또렷한

그대의 얼골 웃어요 웃어요.

소녀여 소녀여 맑고 맑은 하늘을 닮아요.

이 즐거운 지상의 놀이터에서 춤을 추어요.

마음이 열리고 세상과 하나되는 걸 느껴보아요.

어디선가 또다른 그대 걸어오는 소리 들려요.

귀귀울여요 사랑이 걸어와요. 생명의 양식을 들고

빛나는 눈빛으로 당신에게 와요 와요.

태양의 미풍을 따라

지구를 노래해요 우주를 노래해요.

소녀여 소녀여

그렇고 그럴 땐

휘파람 불어요 춤추어요 자연을 노래해요.

나비들처럼 태양처럼

우울한 것들은 어제에 잘 보관해두고 지금을 살아요.

노란 튜율립처럼 풍성하고 창의로운 지혜 가져요 가져요

산언덕 원추리처럼 맑고 의젓해요.

소녀여 소녀여

수상한 삶의 어둠이 화장을 할 때는 지혜로워요 지혜로워요.

토끼처럼 지혜롭게 노래해요 노래해요

줏대를 가지고 주인공인 자신을 믿어요 믿어요.

주위를 둘러봐요 친구들을 둘러봐요 함께 노래하여요

목마른 친구에게 샘솟는 휘파람 들려줘요 기도의 노래하여요

소녀여 소녀여

맑은 눈물의 웃음의 소녀여!

삶이 배고프거든 고독하거든

서럽고 쪼들리거든

기죽지 말아요 말아요

지혜롭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건강하여요 건강하여요

얼굴보다 좀 더 예쁜 마음 가져요 가져요.


■아자아자 ■주인장님 힘내세요 ■20041026

♧ 어서어서 쾌차하시소♧


■soon ■선생님 허무가 벌써 왔다가 가셨나요?? ■20041027

청산가- 나옹선사


사랑도 부질없어 미움도 부질없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버려 성냄도 벗어버려

하늘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훨훨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아~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훨훨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아~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선생님께서 저더러 슬픔이 있는 사람에겐 슬픈노래가 위로가 된다고 했었죠? 대신 그것이 병이 되기전에 털고 일어나야된다고요....그럼 허무가 찾아온사람에겐 허무한 노래가 위로가 될 수 있겠네요(댓구법^^) 저노래처럼 벗어버리세요 훨훨~~ 아마도 지금쯤은 깊이 있는 공부만큼 깊게 파여진 허무가 이 많은 응원에 의해 가려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friend ■Life is beautiful ■20041104

잠시나마 영화 'Life is beautiful'속의 꼬마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런 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나눠주시는 한석훈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호랑이 ■ibuddha@unitel.co.kr ■TITLE=어흥~ ■20041105

빨리 털고 일어나면 안 잡아먹지.


■friend ■보고싶어요 ■20041110

한석훈님의 수행일상이 보고싶어요. 언제쯤 보여주실건가요.


■이치헌 ■knowtree@hanmail.net ■student를 빼먹어서.... ■20041111 ■URL=http://cyworld.com/knowtree

목요일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인데요 수업 보충 페이지를 들어간다고 하다가 여기를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수업보충자료를 읽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나갈줄을 모르고 이렇게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충자료는요 프린트 해서 점심시간에 읽기로 작정하고 오전에는 좀더 여유를 부려보려고요. 비가와서 그런지 공기가 좋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소나기 ■ssonagi39@hanmail.net ■명상중 이신가요? 아니면 취중이신가요! ■20041112

들날 날락 마음의 안식을 엊곤하는데.. 아무 소리 없어 궁금합니다 혹시 많이 아프신 건 아니신지요? 많이 궁금하네요


■길벗 ■재기를 고대하며 ■20041113

삼년도 넘게, 조직도 없이, 지원도 없이, 혼자서 엄청난 책무를 지고 가시는 것이 대단하다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분이 숨어버리시니 실망도 크군요. 커다란 책임감 다 버려버리시고라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오래 함께 해온 팬의 바램이랍니다.


■평안 ■관상(깊은 관조) ■20041115

기독교 영성에 친숙한 분들이라면 토마스 키팅에 익숙해 지셨으면 합니다. 이분이 주장하는 집중기도,향심기도,관상기도는 명상의 꽤 깊은 경지 까지 터치 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길> 에서 저자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을 포함한 모든것을 포기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의 것이라 했던것 같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소유할 줄 알아야 포기가 가능한 것 입니다.


■한석훈 ■몸을 일으키며... ■20041116

그간 슬럼프에 빠져있는 저에게 메일 보내주신 분들, 방명록에 글 남겨주신 분들께 일일이 답을 못해드렸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오늘, 한심하게 바닥을 기고 있던 저에게 신께서 정신차리라는 따끔한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화들짝 놀라고,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몰골을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 아까운 시간에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서서히 몸을 일으켜 보려 합니다. 허망함도, 슬픔도, 고통도 다 떨쳐버리려 합니다. '재기'에 성공하게 되면 그 보고를 수행일상에 올리겠습니다. 한심한 '수행자'를 염려하시고 도와주시는 천사이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한석훈 올림


■준악당 ■오, 나의 영혼아! ■20041116

영웅은 술집따위에 가면 얼마든지 많이 있지만 치과의사 앞에서는 한명도 없다. - 은하영웅전설中 양웬리...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까뮈


캐피털리즘이 최고인지 알았다.... 맑시즘을 접하였다..... 아나키즘에 매료되어 아나키스트를 꿈꾸었다... 하지만...여전히...무언가 부족하다... 니힐리즘에 빠지었다..... 그러다...시니시즘적 사고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한다 사는거 그게 뭐 별건가? 달콤한 기억하나면 그만이지 어차피 모든건 사라져간다. 그리고... 기억만 남는다. 하지만 사는게 뭐 별건가. 그가 보여준 희미한 미소, 그 미소 하나면 그만인걸.... -튜브中


내가 너의 눈으로.. 네가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린 서로의 영혼이 되었다..

내 마음의 끝에 네가 있고

네 자유의 안에 내가 있던 그 때부터 ..

우린 둘만의 날개가 되었다..

-let다이中


그리고 난 아직 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적이 없어요

빈틈이 있다고 할까?

불완전한 아름다움.

불완전하기에 애정이 샘솟지 않아요?

완전한 존재는 다가서기 힘들지만,

빈틈이 있으면 나도 어떻게 해볼수 있을것 같은 자신이 생겨요.

친밀하게 느껴지거든요..

난 누구나 가까이 할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 좋습니다.

-Scissors中


손가락을 벌려 해를 향해 펼쳐봐라.

손가락 사이로 빛이 들어오지.

이건 너희들의 미래이자 꿈, 야망 등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게 빛나지만 너무 눈부셔 바로 볼 수가 없지.

반면 손가락을 봐라.

평소보다 더욱 어둡지. 이건 시련... 손가락이 손의 일부이듯 시련은 늘 붙어다닌다.

너무 눈부시다고 손가락을 붙이면 시련 뿐이고

너무 야망만을 좇다 보면 햇빛에 눈이 상하듯 야망으로 너희 마음의 눈이 상한다.

...이제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봐라.

푸른 하늘이 보이지...

이것 또한 눈이 시릴 만큼 푸르지만 아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 아름답지 않나? 저 푸르름...

이것은 휴식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야망으로 눈이 시릴 것이고 시련에 부딧히게 될 것이다.

그럴 땐 가끔씩 시야를 바꿔 여유로운 마음으로 휴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마음의 눈을 잃는다면 그 어떤 큰 야망도 무슨 필요가 있겠나...."

-호텔 아프리카中


세상에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阿飛正傳 中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싸움'에 관하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또한 나이 어린 손자의 마음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추장은 궁금해 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 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 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것들은 기쁨, 소망,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 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히 답했습니다. "내가 먹이를 많이 주는 놈이 이기지"라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일 다른 위치에 있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 얼 나이팅게일 <가장 낯선 비밀中>


만약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매일매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동사서독中


영원히 죽는것은 없어. 언제나 무엇인가가 남는단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것이 탄생해...

인생은 그런거야.. 이유없는 시작이지.. -안토니아스 라인中
 

세상에 완벽한 진리란 것이 있을까? 모든것이 혼란스럽다.. 모든것을 의심하면..내가 믿는 모든것이 거짓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세상에 완전한 진실이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의심하는 내가 없으면 의심조차 할수 없겠지.. cogito ergo sum! 나는 존재하고 지금 생각함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것만은 의심할수 없는 진실이지.. 내가 없으면 진실이란것의 시작점도 없으니..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지.. 생각하고 고민하고..그로인해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고민한다고...우울해 지지말자...그로인해 나는 존재가치를 느끼니까.. 카이라 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끄적


인생 자체가 예스입니다. 긍정적이란 뜻이죠. 세상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평화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겠습니다. - Yoko Ono


모든 사물위에는 우연이라는 하늘, 순진무구함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하늘, 자유분방함이라는 하늘이 걸려있다. -니체


"나는 시간흐름속을 여행하는 여자. 나는 너의 추억속에 있는 여자. 나는 너의 어린시절 마음속에 있던 청춘의 환영......"

"난 청춘의 어스름한 그림자. 젊은이들의 눈에밖엔 보이지 않는 세월의 흐름속을 여행하는 여자야. 철이의 추억속에 남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난 네 청춘과 함께 여행한 것을 영원히 잊을수가 없을거야. 안녕.안녕.철아.... 안녕..."

-은하철도999中


떠나가 버리는 소년시절...

잊혀져가야하는...존재....

꿈을 벗어나 현실의 세계....

나의 어린시절의 꿈...


결국에 남는것은 이쑤시개 이겠지...하지만...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모양을 생각하며 자른다면

자기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것과.... 비슷해지지는 않겠니?


@ 이상은 잠꾸루기별님의 블로그에서 퍼 온 것임.^@^ 많은 갯수의 글 중에서 골라온 것임. 잠꾸루기별님은 아마 느낌으로 봐서 대학생인 것 같음. 아주 매력있는 청년으로 생각됨.


■준악당 ■때로는 ■20041116

주위를 둘러보면 악당에 더 가까운 사람이 천사 흉내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천사에 가까운 사람도 가끔 악당 흉내를 내는 경우도 있다. 어설프게^@^

-김영회-


제가 퍼다 놓은 글이 길어 한선생님 근래에 올려주신 글이 안 보이는 아래로 내려가서 맨 위에다 옮겨 놓습니다. 인터넷이 중지되었었는데 이제사 제게를 시키게 되었습니다.^@^


■준악당 ■요 아래 아래란에 ■20041116

요 아래 아래 란부터 글 란 두 개 남겼습니다.^@^ 혹시 안 보일까 해서. 인조젖꼭지를 물고 있는 희동이 ^@^ 둘리에 나오는.. 지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모습 아닐까. ^@^ 첫번째는 물론 자연산 엄마젖꼭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겠지 ^@^ --크아앙---


■문인희 ■prajna@dreamwiz.com ■이곳의 도반들께 드리는 제안 ■20041116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선생님의 명상수련 사이트에 다시 들러보지만, 오늘도 ‘update 無’라는 글이 덩그라니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한구석이 허탈해 지곤 했습니다. 어느새 한선생님의 명상수련 사이트에 중독이 되었나 봅니다. 2주만에 새로운 수양일기가 오르니 반갑기 그지 없으나, 지난 한달여 기간의 홈페이지 내용은 이곳에 대한 예전의 마음에 다소 변화가 일어남을 느끼게 됩니다. 이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온것이 아닐까?


명상수련은 자기를 비워가는 과정이라고 하니, 어차피 이렇게 ‘無’를 깨달으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해 보고, 어쩌면 우리 인생도 아등바등 살다가 결국 이처럼 無로 돌아갈 지 모르지만, 아직 그만큼 큰 가르침을 담기에는 제 마음그릇이 작아서 얼른 그런 큰 깨달음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컸던가 봅니다.


여기 홈페이지를 그간 애독해 오신 분들이 꽤나 많은 모양입니다. 대개 첫 화면에서 update가 없으면 그냥 발걸음을 돌리지만, 그래도 좀 더 애착이나 미련이 있는 분들은 방명록에 이런저런 글들을 올려 놓으시고 한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시기를 애타게 기원하고 있군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수년동안 한선생님의 좋은 말씀들을 너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우리는 별로 해 드린게 없습니다. 혼자서 수행하랴 강의하시랴 이런 글도 올리시랴 새로운 내용도 읽고 번역하시랴 너무 부담이 컸을 것이라 생각도 됩니다. 아니면 그렇게 어려워 하시던 무묘앙 에오의 허무와 죽음에 대한 가르침을 우리 도반들보다 먼저깊이 깨닫고 이해하시는 계기로서 사형뻘 대가께서 시련의 큰 단계를 지나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전 인터넷 메일에 다음과 같은 글이 와 있더군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맹자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行 拂亂其所爲,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명상에 관련된 정보로 가득찬 다른 사이트도 있지만, 이곳 한선생님의 사이트에 유독 끌리게 되는 것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도인의 아득한 가르침보다, 생생한 생활체험을 들려주시는 솔직한 신앙고백이, 마치 가까운 선배가 체험을 옆에서 들려주듯 더욱 우리 가슴에 절실히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10년이 넘게 이런 분야의 책들을 찾아읽고 같은 관심을 가진 도반들을 찾아 보았지만, 이처럼 가슴 가까운 곳에서 들려주는 진솔한 체험담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중한 기회였기에 더욱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매주 업데이트를 기다려 왔고, 가끔 소감을 메일로 보내드리면 어떨 때는 이 홈페이지 어느 구석에 실어주시기도 하여 더욱 가깝게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한선생님의 이 사이트는 이제 우리들에게 소중한 수양정진의 마당이자 정보광장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많은 한선생님 홈페이지의 독자들께서 목을 빼고 한선생님이 다시 글을 올릴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 보다 한걸음 나아가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 수행일기를 올려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수행일기를 올리기가 망설여지는 분은 좋은 글이라도 옮겨 주시고 같이 읽고 음미하고 나누면 어떨까요? 여기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중에 이런 뜻에 동참하는 분들이 20-30명만 되어도, 한사람이 한달에 하나씩만 올려주시면 부담도 없고 같이 계속 여기서 명상수행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다보면 여기서 좋은 내용을 보고 한선생님이 더 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며, 혹시 너무 엉망으로 간다 싶으면 그동안 홈페이지를 애써 가꾼 한선생님이 다시 정신이 번쩍 들어서 우리들의 사형뻘 선생님(?)인 본래위치로 돌아와서 다시 이끌어 주실지도 모를 일 아닐까요? 이제는 한선생님께 너무 매달려서 부담을 드리지만 말았으면 합니다.


장차 한선생님이 더 크게 깨닫고, 마음에서 다시 우러나서 이곳의 update를 더 활발하게 하실 때까지 안정된 영혼의 안식기간을 가지도록 더 이상 부담을 드리지 말고, 우리 독자 도반들끼리 이 방명록을 이용해서 나름의 수행을 계속 해 나가기를 간절히 제안합니다. 이제까지 한선생님께 의존해서 받기만 했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기회도 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수양의 도반끼리 서로의 정진을 위한 정신교류의 마당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 참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한선생님의 update는 당연히 스스로 판단하시어 계속 하시겠지만, 독자들이 좀 더 이곳의 방관자적 입장보다는 수행의 동참자로 바뀌면 더좋지 않을까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변변찮은 의견을 적어보았습니다.


그러기 위해 한선생님께 한가지만 부탁을 드리면 홈페이지 맨 앞 update 제목창에 ‘방명록’에 새글이 올라오면 바로 ‘update 제목’으로 첫화면에서 ‘방명록의 새 글제목’을 볼 수 있도록 조금만 수고를 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방문객 도반들이 첫 화면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리지 않고  ‘방명록의 새 글’들을 통해 서로의 수행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한석훈 선생님의 침묵이 큰 성취와 영적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 사이트가 또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준악당 ■좋은 생각으로 느껴집니다.^@^ ■20041118

문인희님의 글은 좋은 의견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한석훈선생님 수행일상 안쓰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고요함이나 침묵이라는 것도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매주 바쁜 시간 쪼개서 글을 써내시기도 그렇구요. 이전에 쓰신 쌓인 수행 일상들을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감흥과 배움을 얻고 또 자성의 모범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물론 악당의 속셈입니다.^@^ㅋㅋㅋ 원래 글을 자주 쓰시는 분께 안 쓴다고 자꾸 독촉하면 더 안 나오게 마련이거든요. 언제고 다시 쓰시고 싶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글을 구상하고 쓰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지만 나오지 않는 글을 억지로 써내서 부자연스런 글을 보이시는 것보다는 아예 안쓰시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영원히 안 쓰셔도 되구요. 정신을 문자로 드러내는 작업이 많은 기력을 소진하게 하거든요. 글은 둘째 치고라도 부디 건강하시고 기력을 충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또 글이 아니라 단지 그 한선생님 영혼의 자성력과 영혼의 물결만으로도 은근히 평화를 주실 것이고 지금도 충분히 그러시고 계십니다. 저를 비롯한 방문객님들께서 좀 더 마음을 더 활짝 여신다면 말입니다.^@^


제 생각으론 한선생님께서 자전거 사고 때 충격과 함께 마이너스 기운이 잠시 거주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시간과 함께 기력을 올리시면 좋아지시리라 생각됩니다. 몸과 영혼이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몸의 기력을 좀 더 높이시면 마음도 일어서시리라 느껴집니다. 도인 개통에서는 그런 류의 상황을 아주 약간의 주화입마(?)(단어가 이미지상 그리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요) 정도로 생각합니다. 수행자의 도가 높으면 높을 수록 그러한 외부적인 부정적인 소인들이 가끔 왔다가곤 한답니다. 제가 생각기에는 그러한 부분적인 소인으로 여겨집니다.^@^ 그러실수록 기력을 실추시키는 술과 담배는 자제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소인들이 술과 담배를 자꾸 불러들이기 때문이지요. 차후에 좀더 나아지시면 적당히 드시도록 하시구요. 그렇지만 그 담배라는 것은 솔직히 끊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결국 잔소리가 되었군요.ㅋㅋ 그렇지만 부정적인 소인들조차도 우리가 잘 지켜보고 잘 다스려야할 것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것도 우주의 일부이고 우리와 한 몸에 다름 없으니까요. 결국 과거 우리들이 쌓아놓은 관성이니까요.


문인희님 의견대로 직접 수행일상을 써보시고 방명록에 올려주셔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몇 자만 적어놓고 갑니다. 아래의 글을 보니 문인희님께서는 글을 아주 잘 쓰시는군요.^@^


"명상에 관련된 정보로 가득찬 다른 사이트도 있지만, 이곳 한선생님의 사이트에 유독 끌리게 되는 것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도인의 아득한 가르침보다, 생생한 생활체험을 들려주시는 솔직한 신앙고백이, 마치 가까운 선배가 체험을 옆에서 들려주듯 더욱 우리 가슴에 절실히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10년이 넘게 이런 분야의 책들을 찾아읽고 같은 관심을 가진 도반들을 찾아 보았지만, 이처럼 가슴 가까운 곳에서 들려주는 진솔한 체험담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중한 기회였기에 더욱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매주 업데이트를 기다려 왔고, 가끔 소감을 메일로 보내드리면 어떨 때는 이 홈페이지 어느 구석에 실어주시기도 하여 더욱 가깝게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 저도 님의 느낌에 공감합니다. 세상에 수행자도 도인도 많지만 자신의 진솔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세상에 같이 살면서 또 세상사람들처럼 가정을 꾸리며 들려주는 이는 정작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소통이 되고 공유가 공감이 되는 것은 그러한 작업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공에 뜬 빛이 좋은 허황된 말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여간 좋은 의견 감사하구요. 이 세상은 문인희님처럼 좋은 생각을 마니마니 내셔야 좋아지리라 생각됩니다. 능률적이구요. 그럼 감기조심하시구 안녕히 계세요^@^

^@^ 희동!!(거수경례)


■준악당^@^ ■자연이 들려준 이야기....^@^ ■20041120

그대가 우주를 향해 마음을 연 만큼 우주도 그대를 위해서 그 만큼 자신을 열 것이다. 우주를 향해 혼을 열고 웃어준 만큼 우주도 그대를 위해 웃어줄 것이다. 요는 자신이 자신의 영혼을 얼마 만큼 열고 있는지 또 어떤 부분을 닫아두고 있는지 자신의 의식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도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가 우주를 향해 가슴을 여는 첫 여정이 될 것이다. 우주의 노랫소리를 눈으로 코로 가슴으로 혼의 진동으로 느낄 것이다.


혼의 영역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다. 혼의 영역은 전체성의 영역이며 전의식의 영역이다. 우주인터넷의 영역이다. 영적이고 심리적인 우주 데이터베이스의 영역이다. 혼의 데이터베이스 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전체성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공존한다.
 

그럼으로 해서 그대가 혼을 어김없이 활짝 닫혀진 어느 구석도 없이 열어 젖힐 때 우주의 어느 공간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대에 상관없이 모든 혼돈은 온화하게 조정되고 모든 상처는 넉넉히 치유될 것이다. 모든 영역은 하나로 맺어진 한 몸인 것이다. 그대의 영혼이 순일한 고진동의 우주 만물의 근원적인 혼의 체로서 충만으로 순수할 때 그것은 심리적일뿐 아니라 영적이며 물리적인 치료일 것이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고진동의 물질이며 물질은 보이는 저진동의 영혼인 것이다. 육체는 보이는 영혼이며 영혼은 보이지 않는 육체인 것이다.
 

그것은 이 우주 만물은 바탕으로 침잠할 수록 모두가 한 뿌리라는 일체라는 인드라망이라는 그것이 바로 동양적인 도의 전체성이며 우주의 시공을 초월한 동시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우주와 분열된 신과 인간의 이분법적 불완전한 언어 시대는 사라진다. 이제 우주의 모든 개인이면서 전체인 영혼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개인은 보이는 전체이며 전체는 보이지 않는 개인인 것이다. 이 우주는 어느 구석도 이원적이든 다원적이든 분할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도의 전체성이며 시공초월성이며 근래에 수용한 서양의 동시성의 직관이다. 양자물리학적인 세계관이며 양자의학적인 진리 수용의 단초이다. 인식이 아닌 수용의 단초이다. 근래의 베르그송의 시간적 지속에 대한 과거와 현재가 지속으로서의 한덩어리로서의 직관의 전체성이며 고대 인도 자이나교도들의 시간적 직관의 하나로 된 전체성이다.


몇 천년 동한 서구 정신은 이 우주를 주체와 객체로 분할했다. 고대희랍 자연철학 중세신학 그리고 모던, 포스모던에 이르기까지 근래의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현상학 해석학 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이 세계를 시각적으로 체계화시키려고 했다. 자신과 분리시켜 무엇인가를 보려고 했다. 외계를 시각적으로 보고 분리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끈질긴 아집이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보이는 물질에 한해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반면 동쪽에서는 외부를 향해 애써보려고 하는데 소모한 에너지를 자신의 내면에 축적하고 자신의 내면의 에너지 통로를 통해 순환시켰다. 고진동으로 순환시켰다. 그로서 의식적 언어적 개아를 구축하는 대신 그 고진동의 에너지로 인해서 자신의 육신의 내 외부를 우주의 원질과 같은 질료로 원질화 시켜 우주와 혼에 있어서 하나 되는 법을 터득하였다.


동서 서로는 서로의 개성에 맞게 장구한 세월 자신을 서로 다르게 구축하였다. 이제 새로운 시대 동서 두 세계의 문은 활짝 열렸다. 많은 혼들은 동서양을 번갈아 태어나 서로의 혼의 개성을 소통하며 하나로 결속시키는 중개자인 동시에 전체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무한의 문제를 해결치 못하는, 물리학적인 실체인 양자계의 현상을 해명하는데 이성도 불완전함이 들통난 시대가 되어버렸다. 종교는 몇 천년동안 그 분리이론을 토대로 치밀한 이론을 구축했다. 인간과 저 먼 차원의 신과 동양의 하늘과 땅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정치 종교 세력가들은 그 종교적 골격으로 힘껏 세계를 보려고 했고 다수의 군중을 변화시켜려는 욕망으로 가득했으며 자신들의 권력의 수단으로 차용했다. 작금의 시대에도 그러한 잔재는 뼈져린 아픔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이제 하늘과 땅이라는 언어의 시대는 갈 것이다. 구태의연한 신과 인간이라는 언어의 시대는 갈 것이다. 새로운 인류에게는 우주 만물의 혼의 시대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혼의 순수한 심연에서는 모든 것들이 한 뿌리로 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대가 혼을 활짝 열때 우주도 그대를 위해 자신의 옷을 활짝 열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사물도 식물도 사람도 그 모든 들이 순수한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믿음 아닌 통찰과 체현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의심을 전제하고 있는 심층의식을 속이는 거짓 표면의식의 믿음의 차원이 아니다. 심층의식은 보이지 않는 표면의식이다. 표면의식은 보이는 심층의식인 것이다. 그것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혼을 활짝 열면 열수록 우주는 딱 그만큼 그대를 아낌없이 포옹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직관하게 될 것이다. 신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자면 새롭게 구축되고 정의될 양자적인 전체성의 이 우주 어느 빈틈도 없을 새로운 신이라는 언어를 활용해 표현한다면 그대가 신의 혼을 향해 그대의 영혼이 한 없는 미소로 우주를 향해 활짝 열 때 신의 혼은 그대를 향해서 그 만큼 끝없이 신비한 처녀림의 가슴을 미소로 활짝 열어줄 것이다. 여기서 신의 혼이란 땅에 대한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신이 아닌 땅도, 그리고 인간을 동시에 동시성으로 신의 혼과 한몸으로 전체성으로 양자역학적 시공개념으로 전체성의 파동으로 포함하는 일체되는 신의 혼에 대한 언어이다. 이 새로운 언어는 신이며 동시에 땅이며 신의 혼이며 동시에 인간 혼인일수 있는 새로운 양자적 동시성의 언어이다. 자연과학적인 시공개념을, 그러한 불완전한 수학적 시공개념을 뛰어넘는 0과 1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양자역학적인 양자심리학적인 언어인 것이다. 그대가 열 때 풀과 새와 나무들의 노랫소리 태양의 웃음소리를 이 우주의 모든 사물과 식물의 의식의 혼의노래를 춤을 언제나 듣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경쾌한 휘파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신비한 물의 요정의 웃음 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0과 1이 동시에 공존하는 양자역학적 신의 혼은 스스로 만물 속에서 그대와 하나가 되어 노래하고 춤추고 신이며 그대이고 전체이며 부분이고 하나더하기하나는 하나라는 도의 전체성의 양자계내의 본원혼의 현실인 것이다.


이제는 비로소 스스로 그대의 혼을 자꾸자꾸 들여다보고 활짝 활짝 열어야 될 때이다. 그럴 때 이 세계는 그만큼 조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영원조화적일 것이다. 부분적인 사랑이 아닌 영원한 조화를 바탕으로하는 열린 자유의 세계일 것이다. 몇몇 질병이라는 짖굿은 요정의 방해를 받지 않는 아이들의 영혼은 대부분 이 우주를 마음의 창을 열고 신비롭게 받아들이고 세계를 향해 많은 부분 활짝 열려 있다. 그것이 바로 노자의 천진하며 순진무구한 적자지심의, 무념무상의, 전심전상의 마음이며 흰두교의 우주적 자아 즉 브라만의 전체성의 혼이며 불교의 테두리없는 넉넉한 크고 하나로된 한 마음이며 공자의 인의, 참사랑의 정신이며 기독교의 왜곡되지 않는 법신으로서의 절대사랑의 영원불멸한 전체성의 하나의 하나님의 이웃사랑의 혼일 것이다. 양자처럼 한 순간 우주의 이끝과 저끝을 오갈수 있는 위대한 힘이 발현될 수 있는 절대순수한 시공초월의 순수한 혼의 기쁜 유희일 것이다. 그대가 우주를 향해 가슴과 혼을 열 때 신은 절대순수한 영원조화적인 사랑으로 그대를 품을 것이다. 이것이 새시대의 왜곡되지 않은 자연과 신에 대한 언어이다.


■준악당^@^ ■회한의 장-이상 ■20041121

회한의 장(章)

이상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었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 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겐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 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soon ■동감입니다. ■20041122

앞의 의견들에 동감합니다. 좀더 욕심을 내어 guest들의 수행일상 페이지가 있음 더 좋은 듯 하나 무리한 요구이겠죠?^^ 방명록이라는 개념과 약간의 구분이 있어야 될거 같아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즘 유독 제머리속을 맴도는 단어가 '빈의자'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든게 빈의자의 개념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됩니다.


대학원엘 들어와서 수업을 들을 때 이제는 학점과 무관하게 나에게 남는 수업을 찾게 됩니다. 남는거란 결국 공감하는 무언가라는 생각이듭니다. 전진하기보다는 정리하는것, 채우기보다는 부족한것을 알아내는것...기타등등. 그래서 앞으로 제가 교사가 되어 학생들 앞에 선다면, 학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수업이 되도록 노력할겁니다. 가르치거나, 전달이 목적이 아닌 공감될 수 있는 무언가에 키워드를 잡고싶습니다. 아직 깊이 있게 방법적인 면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어서 펼치는 것보다는 나의 수업에 빈의자를 두는것이라 생각됩니다.


빈의자를 두는것! 청소기부터 약20세 초반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는 제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다음엔 그림 그 다음엔 부처님, 신....이제는 앗싸리 빈의자를 두기로 하였습니다. 흔히 마음을 비운다라는 개념은 좀처럼 실천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확 비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취사선택작업을 해서 차츰차츰 비워나가야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 꽉찬 내 마음속 가운데 빈의자를 하나 두는 연상을 합니다. 그럼 이미 내 마음속의 주인은 내가 아니니, 바람이 흔드는데로 흔들리는 느낌으로 조금 편안해 지는걸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바람도 신의 순리인지 내마음의 뿌리까지 흔들고 뽑지는 않더라구요.


빈의자란 제 3의 무언가(사람이든, 자극으로 인한 연감등등)를 위한 자리이기도 하고, 공감대를 위한 통로로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이 사이트에 빈의자를 두어야 된다라는 논리를 아주 약한 근거로 잠시 펼쳐보았습니다.^^


■friend ■용서 ■20041122

몇 년 동안 저를 괴롭히던 지난 일들, 어쩌면 제 스스로 붙잡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 지난 일에 대해서, 어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용서하고, 기억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Forgive, but don't forget." 이라고 하고, 제 딸은 아니라고, 하나님께서는 "Forgive and forget." 이라고 하셨다며 의견이 달랐었는데, 어제 알았어요. 제 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요. 한 순간에 잊어버리게 되는 알약이라도 있으면, 용서가 훨씬 쉬울텐데, 저의 좁은 마음으로 언제쯤 이 일이 해결될 지는 모르지만, 깨끗하게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 만으로도 날아갈 듯 마음이 가볍네요. 주님 감사합니다.


■준악당 ■uabeautiful@naver.com ■빈의자! 인상적인...^@^ ■20041123

빈의자라. 참으로 인상적인 비유군요. 시적인. soon님 같은 분께서 교직을 꿈꾸고 계시는 걸 보니 참으로 기쁘고 좋고 믿음직스럽고 장래가 확 밝아지는 것 같네요.^@^


그리고 이 사이트의 목적이 한석훈 선생님의 개인적인 신앙수행 공간이라는 취지를 대문에서 본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본질을 왜곡하려면 헌법을 또 개정을 해야하는 또 중대사가 있고 해야되니.....^@^ 그래서 게시판을 따로 달기는 좀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게시판에 스팸게시물들이 난무하는 때이고 한선생님께서도 동의하신다고 해도 따로 관리자도 있고 해야될 것으로 생각이 돼서 방명록에 글을 어려워하시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남기시면 좋겠습니다. 전 전에 글을 도배했었던 나그네 바람 그런 닉네임의 장본인입니다.^@^ 그때도 제가 무대뽀 비슷한 약간의 허가로 글을 이곳 방명록에 올리곤 했었습니다. 그 동안 올린 글 중 퍼온 글 몇 개를 빼고 오늘 시간을 내서 아주 긴글들을 삭제를 하였습니다. 방명록 용량절감 겸 또 제 부끄러운 글들을 갈무리하는 겸 해서요. 개운한 맘도 없지 않군요.


이곳 방명록에 방문하신 분들의 수행일상을 자유롭게 그냥 게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 이주 후에는 자신이 직접 게시했던 글을 자신의 장소에 옮겨놓고 삭제시키고 하면 될 듯도 합니다.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닌 걸로 생각됩니다.^@^ 너무 어려워 마시고 쓰고 싶으신 분들은 너나 없이 쓰실 수있는 장으로 이용하시면 좋겠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욕을 하셔도 좋고요. 진정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요. 길어도 좋고 또 짧아도 좋고 맞춤법이 맞건 아니건 자신이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나 꼭 수행이란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의 미묘하고 신비로운 단상들을 쓰시곤 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안 내키시면 안쓰셔도 자유시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래soon님의 어떤 제안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잔상을 남기는 여운이 잔잔하게 남습니다. 좋은 선생님 되시길 빌며... 제 생각을 말해봅니다.^^@


■한석훈 ■주인 없는 가게에서... ■20041123

준악당님, 아예 주인 대신 가게를 꾸려나가소. (> @ <) 주인은 바빠서 암말 않고 있는데, 알아서 싸이트 policy 다 해석하시고, 객들께 지시사항 전달하시고, 그뿐 아니라 손수 방명록 글 정리도 하시고... (^ _ ^) 노고를 치하드리오며, 헌데 한 번 놀러 오시겠다더니 언제쯤 왕림하실 계획이신지... 그리고 그냥 싸이트 주인 대변인 해주시지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제가 요즘 바빠서 관리에 잘 신경을 못쓰고 있던 차인데.


준악당님, soon님, 문인희님, 평안님, 길벗님, 비님, 이치헌님, friend님, 또 응원 보내주신 많은 님들께 감사인사 올리나이다. 복 받으소서.  - 한석훈 올림


■soon ■홀로사는 즐거움 - 법정스님 ■20041126

오늘 하루 내 살림살이

한 열흘 남짓 떠돌아다니면서 끼니마다 해놓은 밥 얻어먹다가 돌아오니 끓여 먹는 일이 새삼스럽네. 버릇이란 고약해서 남이 해주어 버릇하면 자신의 능력을 접어둔 채 의존하려는 타성이 생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이 타성에 속지 말아야 한다. 타성에 길이 들면 자주적인 능력을 잃고 게으름의 늪에 갇힌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너무나 막연하다. 구체적인 삶의 내용은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이다. 따라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현존재다.


자, 그러면 나 자신은 오늘 어떤 삶을 이루고 있는가 한 번 되돌아보자.바깥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방이 많이 식었다. 예정보다 30분쯤 늦게 일어났다. 지난밤 자다가 깨어 허균이 엮은 <한정록-숨어 사는 즐거움>을 다시 읽었다. 옛사람들의 자취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가를 배울 수 있다. 가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사는 일이 풍류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나면 냉수를 두 컵 마신다. 공복에 마시는 냉수, 즉 찬물은 목을 축일 뿐 아니라 정신까지 맑게 씻어준다.


언젠가, 스님의 건강 비결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냉수 많이 마시고 많이 걷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살아 있는 냉수를 멀리한 채 끓여서 죽은 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커피를 비롯해서 각종 음료들은 살아 있는 생수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라면 즐겨 마실 것이 못 된다.


목이 마를 때는 수시로 생수를 마신다. 땅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제 발로 걷지 않고 자동차에 의존하면서 건강을 잃어간다. 제 발로 걷는다는 것은 곧 땅에 의지해 그 기운을 받아들임이다. 그리고 걸어야 대지에 뿌리를 둔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땅을 등지고는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물든 잎들을 내다보고 있다. 지고 남은 잎들도 머지않아 가지를 떠나갈 것이다. 그 빈 가지에는 또 겨울 나그네인 눈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또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아침 식탁에서 바흐의 판타지와 푸가를 들었다. 며칠 전 취리히에 들렀을 때였다.


그곳 성모성당에 샤갈의 마지막 작품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남아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성당 한쪽에서 때마침 파이프 오르간을 조율하던 참이었다. 조율이 끝나고 조율사는 음악을 한 곡 들려주었다. 성당에서 듣는 파이프 오르간의 그 장엄한 소리는 내 속에 긴 먼지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성당에서 기념으로 산 CD를 오늘 아침 들었다. 건전지로 돌아가는 조그만 ‘소리통’이라 그날의 장엄한 울림에 견줄 수는 없지만 음악이 주는 느낌은 느슨한 감성의 줄을 팽팽하게 당겨주었다. 그리고 자동차로 멀리 지루한 길을 달릴 때는 이따금 야니의 역동적이면서도 감미로운 가락이 쌓인 피로를 씻어준다.


또 무엇을 먹는가. 아침은 대개 빵 한 쪽에 차 한 잔. 바나나와 요구르트가 있을 때는 그것을 한 개씩 곁들이기도 한다. 점심과 저녁을 위해 미리 쌀과 잡곡을 물에 불려둔다. 밖에 나갔다가 오두막에 늦게 들어올 때는 햇반의 간단하고 편리함에 기댄다.


혼자서 지내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이 먹는 일에 얽매이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먹을 게 없어 굶주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이것저것 너무 많이 먹어대기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다.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과식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먹는 것만으로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안팎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생활 습관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평생 자신을 위해 수고해주는 소화기를 너무 혹사하지 말고 쉴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출출한 공복 상태일 때 정신은 가장 투명하고 편하다. 말은 들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입을 닫은 침묵을 통해서 말의 의미가 목젖에 차오른다. 참으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간단명료하다. 그밖에는 습관적인 또 하나의 소음일 것이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나무나 새, 바위나 곤충 또는 구름이나 바람한테 혼잣말을 할 때가 더러 있다.


이런 경우는 한 줄기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무심하다. 이런 무심한 소리에는 그 삶의 향기가 배어 있을 듯싶다. 그리고 오늘 아침나절 나는 또 어떤 행동을 했는가. 아침 기온이 섭씨 영상 2도. 방이 식어 군불을 한 부엌 지폈고 집 뒤 나뭇간 사이에 있는 추녀 끝 물받이 홈통에 쌓인 낙엽을 긁어냈다.


눈이 쌓여 얼어붙으면 물받이의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해도 내가 할 일이므로 그때그때 눈에 띌 때마다 즉시 해치워야 한다. 이다음으로 미루면 무슨 일이든지 미루는 나쁜 버릇이 생긴다. 이 다음 일을 누가 아는가. 그때 그곳에 내가 할 일이 있어 내가 그곳에 그렇게 존재한다.


누가 나 대신 그 일을 거들어준다면 내 몫의 삶이 그만큼 새어나간다. 뜰에 뒹구는 가랑잎은 바람이 알아서 치워줄 것이다. 오늘 나는 이와 같이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내 실존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나를 형성하고 내 업을 이룬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무엇을 먹었는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면 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현재의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이 쌓은 업이다. 이와 같이 순간 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간다. 명심하라.


자료출처:-우먼센스


위의 말이 최근 나에게 와닿는다. 매일매일 상기시키며 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으나, 항상 까먹고 사는 편이다. 지금도 커피를 마시며, 나와 사이가 안좋은 사람이랑 한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서로 인사도 안하고, 방금도 그사람을 마주치자마자 금새 내 머리속은 '너 잘났다'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그러나 미워하는 감정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교육철학 시간에 들은 얘기로 기독교인들 중에서(기독교인들 화내겠지만) 정신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아침에 죄를 짓지 않겠다고 기도 하고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난 다음부터 인간의 하루는 어떠한가. 순식간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질투심부터 눈으로 귀로...적지않게 죄를 짓게 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과 약속을 한사람은 더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목사인경우 심한 정신병에 시달리는데, 니체가 마지막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것도 니체의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말씀이었다.


이상에서 죄를 짓고 살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인간은 날때부터 악한 존재라는 것도... 어쨌든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한가. 자제해야지하는 반성과 함께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을 씹고, 스트레스를 거의 마음맞는 동료와 수다로 푼다. 이것이 사람냄새 풀풀나고, 소속감도 느끼며 적당히 속세에서 때묻히고 적응하는 것이다라는 비약된 논리까지 서게 된다. 그러니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기란 실상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다만 내영혼을 정화시켜야 된다는 욕구가 느낄때마다 법정스님의 말씀을 상기하곤 할 뿐이다.


■바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20041214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가르쳐주기를, 천지창조 때에 상처가 있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일생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란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이로 삼아달라고 청하는 것이라 하였다 -잠언방에서-


크크크, 돗자리가 깔리니까, 왜 잘 오시던 분들까지 아니 오시고 한국분들이라서 그러신지. 다들 겸손하셔서....^@^ 이러다가 소리들릴까봐 화장실에 물틀어놓으시고 한선생님 우시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변기에 물내리시고 그 소리나는 틈에 통곡하시는 거 아니신지. 모두들 오시면 안부 메세지도 좀 남겨주시고 그러세요. 하나 같이 모든 분들이 짜고 그러시는 것처럼. 자신의 수행 일상 좀 쓰시라니까 모든 님들이 겸손하셔서..... . ^^ 그래도 안부글은 남기셔야지요.^@^ 저도 마찬가지였군요.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한선생님께서도 잘 지내셨지요. 어느새 한 해도 여느 때처럼 다 지나가는군요^^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혹시 방명록 오시는 분들께서요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세요^^


■박수찬 ■책추천. ■20041216

<신과의 대화법>  신과 대화하는 방법 <밀레니엄 바이블 II>   예언.신과의 대화내용.진실에 이르는 법


■김윤호 ■yoonho_kim@hotmail.com ■기운 내시길... ■20041217

그동안 이곳의 글들을 읽으며 '굳건한 평화' 상태가 가능하다고 믿으며 내 생활의 한 지표로 삼아 왔었는데, 그것을 말씀하신 당사자이신 한석훈님께서 많이 지치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서 빨리 회복하셔서 다시 예전처럼 평화을 되찾으시면 좋겠습니다.


■milarepa ■milarespa@hanmail.net ■수행 ■20041217

신께 감사를 스승들께 예배를,, 수행을 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해로운 것을 취하면 안됩니다. "내재한 자성"인 신을 매일 그리고 항상 보고 대화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노력으로 전부 할 수 없습니다. 통해야만 하는 "나의 자성"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가기를,,,, 그래요. 윤회는 슬픕니다. 우리는 "유일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온갖 논리와 이성을 넘어서 언어를 넘어서 생각을 넘어서 있는 "그"를 직접 봐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에 집중한다고 하는 생각들은 모조리 쓰레기가 아닌가요?^^ 그런것은 "수행의 반대인 것"입니다. 신나이나 이순간을 살아라도 반드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면으로 주의를 돌려야 하는 걸, ㅠ.ㅠ 이제는 언제든 신을 만나 보고 참다운 신앙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자애로운 신의 사랑안에서,,,,


■이홍기 ■yihongee@hanmail.net ■영문 영성(종교) 사이트 ■20041219 ■http://yihongee.com.ne.kr/index.htm

운영자님 영문 번역을 하셔서 영어 잘 하신다면, 다음 사이트에 가 보시길 권해요. 한국에는 아직 그런 내용이 번역된 게 잘 없는지라...

The Temple of The Presence (www.templeofthepresence.org)


■신인수 ■Zorba ■20041219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 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 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 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물이 아니라 열쇠야, 열쇠."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걸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는 거 봤어요?"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굴우굴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 <그리스 인 조르바> 중에서


■김영회 ■크크크^@^ ■20041219

이글은 아래란의 신인수님께서 올려주신 글에 대해 생각하며 부정적인 면만을 적어보았습니다^@^ 읽으실 분은 끝까지 읽어주시길..... .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김영회**

걸리면 안 돌리면 될텐데! 왜 걸그적거리는데 애궂은 손가락까지 잘라 가면서 꼭 질그릇을 돌려야 돼! 어디가 모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세상 수많은 도공들이 있지만 세끼손가락 잘랐다는 님은 이 분 말고는 들어본 적이...... 질그릇 혼자만 만드시나 티내시기는..... . 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어야지 왜 애궂은 손가락은..... 쯔쯔! 신체발부수지부모!^@^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 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 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김영회** 아직 매인 몸이 아니기에 저도 여자가 원자력발전이라도 하는 듯 한숨을 쉬며 잠자리로 꾀면 아마도 거절은 안 할 듯 그래도 여자라고 다 여자!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파동이 맞아야.... . 일말의 지성미라든가.. 어떤 친근 비슷한.. 파동이 성병이나 올려다줄 그 무엇같은 이미지이면 어떻게...해...뭔가 교감의 파동이 있어야지. 그리고 스님들처럼 절제하고 살면 평소 여자들 잡다한 음식 육류 먹어댄 살냄새 별로 안좋아함....주어진 절차를 잘 지켜가며 (위장에 위험할 수도 있으니) 단식을 일정기간 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음. 세상은 상대적인 것, 자신의 주체가 영원하다고 생각 그 경직된 주체로서 세상을 다 자로 재고 판단하려 하지만 언젠나 주역의 말처럼 상대적인 것, 현상적인 세계에서는. 세속적인 사람의 육체로 이 우주 모든 이를 적용시킬 수는 없슴. 고기도 안먹어버릇하면 나중에는 가죽씹는 것 같해서 맛이 없슴. 단식 바로 후에. 세상 음식류 접하기 전에. 냄새를 서서맡고 적응하면 옛날 식욕이 돌아오지만. 그렇지 않고 내내 산속에서 채식하면 고기.... 수행은 안하지만 음식이 다르면 몸의 질료도 다르고. 몸안의 에너지의 기운의 유통상태도 다른 것 같음. 그렇게 냄새가 난다고 해도.....애원을 하신다면 한숨까지 쉴 것 같으면 결혼 안했으니 인간적인 차원에서 아무 여자나도 가능할지도.... 교육잘 받고 자란 울 나라 여성들 중에 그런 여자가 있을 래나. 우리나라에선 바라지도 않고...... .^@^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물이 아니라 열쇠야, 열쇠."

 

@@@그럴 수도 있는데 몸사랑을 도닦는데 그야말로 물불 안가리고 열정적으로 이용해서 몸 버린 사람들 많을 것 같기도! 요가행자나 도교의 고수들을 빼고는..... . 그 사람들도 의심스러움. 진정한 탄트라는 몸사랑을 도덕적으로 결함없는 상대와 만나서 아주 느리게 천천히 에너지를 교감하면서 혼까지 교감하면서 이룩하는...... . 느리게 할 수 있는 그 절제력의 터득으로 평소에 크나큰 사회적인 절제력을 지닐 수 있슴. 오만방자한 그무엇이 아닌. 그것이 몸사랑 도의 결과. 느리게 하다보면 에너지가 성기부분이 아닌 온 몸 전체로 분산 에너지 축적 그러면 에너지 감각이 예민.....에너지 순환을 자유자재로 행하는.... .이렇게 하기까지는 아마도 반생애가 걸리지 않을까. 그 전에 쏟은 에너지로 후딱 늙고 말지 않을까 생각됨.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걸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는 거 봤어요?"


@@@3천번을 했으면 아마도 돈을 주고 부분적으로샀다는 말인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런 짓을 했다가는 지금 이 게시판 조르바라는 인물의 이름이 걸지도 않았을 것임. 세상이 이미 절단 났으니까. 소돔 고모라의 아비 귀환으로. 그래도 죽내사내 끙끙 앓면서 참아오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런대로 세상이 이렇게 버티고 지속되는 것. 누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것도 예수만이 할 수 있는 말씀. 김영회 생각. 인간이 그런 말을 따라 할 수 없슴. 우리는 이 사회를 계속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돌이 아니라도 돌 비슷한 약한 것이라도 던져야함 그리고 몇천년 동안 그렇게 해왔음. 조르바란 분은 교묘하게 돌을 피한 재수 좋은 분. 그리고 참다보면 그것도 한계를 넘어서면 초월까지는 못하더라도 참을 만함. 몸에 에너지가 축적되어 에너지 감각이 예민해지면 몸안의 에너지 서툴지만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슴, 그래서 신장, 즉 성기관으로 몰리는 에너지를 가슴과 머리로도 끌어올려서 쓸수가 있슴. 기가 온 몸으로 분해되어 기의 나뉨, 즉 기, 分이 좋아짐. 몸사랑의 쾌감 만큼. 조물주는 아주 오묘하신 분, 어떤 누구에게든지 잇점을 똑같이 나누어줌. 스님들의 절제의 쾌락도 기쁨일 것임. 우주는 장단의 도상. 한 가지가 단점에 있으면 다른 장점을 주는 조물주의 평등이 있는 것 같기도. 계율을 잘 지키는 사제들에게도 절제에서 오는 잇점의 쾌락 역시.


전 신을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도에서 자라왔기에 그리고 여동생이 있기에 돈을 주고 누군가에 몸을 사는 일은. 오직 그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종교나 윤리의 이유가 아닌 것 같음. 돈을 주고 산다면 그 여자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고 귀한 동생이므로 그런 생각을 하면..... .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굴우굴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김영회**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갈증이라면 나는 안 마심.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지구상의 모든 책을 쌓아놓고 불질러도 인간 안될 분은 인간 안됨. 쌓아놓고 불 지를 책을 평생 탐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경. 공부벌레 성현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 공부해서 책을 다량 썼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이 모든 것 쓰레기다 라고 말하시기는 했는데 그것도 열심히 공부해본자만이 할 수 있는말 노자 도덕경? 보면  절학무우라는 말이 있슴.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어진다는 말은 있슴. 그러나 산속으로 도 닦으러 혼자 들어가는 사람들의 환경에서 가능. 이 사회속에서 서로 어울어지기 위해 정치 경제 법 등을 운용해야 하는 사회인이 가능할지 의문. 역사적으로 공부 못하는 분들이 위로와 변명 자기도피를 위해 곡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본인은 그렇게 생각.


- <그리스 인 조르바> 중에서


@제가 알량한 소설을 쓰고 있어서 혹시나 해서 오해가 있지 않을 까 해서 안티조르바말 이라는 내용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신인수님께서는 아마도 너무 지나치게 사회적인 형식과 틀에 따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관념적 집착에 말려들지 말라는 뜻으로 옮겨놓으신 듯합니다. 혹시나 바로 위의 내용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실 분을 위해서 제가 제 개인적인 의견을 적습니다.^^ 물론 건설적 의견개진이며 신인수님께 개인 감정은 없습니다. 오히려 고전의 주인공 조르바의 삶을 한번 봄으로써 저로서는 비현실적이나마 대리만족 같은 것, 내부에 있는 혼란한 욕망의 분출을 시뮬레이션형으로라도 느껴보지 않았나 생각되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너무 영웅시해서 장점만을 부각시킬까 해서 적어봅니다. 이 단락의 내용도 단지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소설은 어떤 리얼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도 소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주 교묘한 소설, 상업성과 예술성까지 같이 겸비한 소설이나 영화가 더 나쁜 것입니다. 이 것들은 보이지 않은 안개처럼 자신도 모르게 젖어듭니다. 특히 요즘 한국영화들 태반. 상업과 예술을 겸비했다고는 하나. 확연히 나쁜 것은 잘 보이니까 그냥 피하면 되는데 교묘하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좀 먹는 그 중간치들. 이런 것들이 한참 때의 청소년에게 알게모르게 미칠....... . 으윽, 저도 카잔차키스처럼....조르바의 말 하나하나에 사회적 염려없이 써서 발표했으면 별볼일 없어도 여러권 냈을텐데. 나이가 먹으면서 글이란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것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느끼고는 여러사람이 보는 것이라... 두렵기까지. 특히 책은 미성년금지가 별로 없어서 더 그렇다는 것.^@^


부디 언제나 자신의 환경 자신의 주위사람들 친구들, 즉 자신이 보고 접한 환경을 토대로 기준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윗대 성현들이 경전에 놓은 기술들도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말하거나 확정짓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과학자였던 것 그 이상이었던 것이죠. 우리나라 이혼률이 네 쌍에 한쌍이라지만 제 주위 친구 선배에 이르기까지 몇백쌍의 부부가 있지만 제가 아는 경우는 몇 건 밖에 안됩니다.^^ 자신의 주위를 토대로. 바탕으로 해서 교묘하게 숨겨놓은 영화 매스컴 문학을 자신의 줏대로 수용하시길 빌면서..... 특히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더 많이 가르켜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매체들이 쏟아져 나와서..;.


다른 의견 있으시면 위에다 적어놓으시길....... 그러면 감사하게 읽겠습니닷^^.


■크리야 ■user0009@hanmail.net ■크리야 요가를 수행하신 재스민님께 ■20041222

크리야요가를 수행하신 재스민님께 어디에 계시는 지요~!! 님의 스승말씀입니다. 저도 님의 스승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혹 다른 분들 중에서 재스민님 아신다면 저에게 연락처를 부탁드립니다. clariekim75@hanmail.net로 이메일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연락이 안되네요~~!! 부탁드립니다.


■바람 ■보살행품  ■20041224

보살행품

모든 것이 덧없는 줄 알지만 선근을 쌓는 일에 싫증을 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괴로움인 줄 알지만 기꺼이 생사 가운데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나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줄 알지만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열반이 적정한 줄 알지만 짐짓 궁극의 적멸에 안주하지 않는다.

세상을 벗어난 한적함을 잘 알지만 몸과 마음으로 늘 노력하고 실천한다.

머무를 바탕이 없는 줄 알지만 맑고 깨끗한 법이 돌아가는 바탕을 부정하지 않는다.

생겨남이 없는 줄 잘 알지만 기꺼이 윤회를 선택한다.

행할 것이 없는 줄 알지만 중생의 성숙을 위해 기꺼이 행한다.

무아인 줄 잘 알지만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는다.

생이 없는 줄 잘 알지만 성문의 작은 깨달음에 떨어지지 않는다.

실체가 없으며 주체가 아니며 공허하며 무가치하며 머물 곳이 없는 줄 잘 알지만 동시에 복덕은 공허하지 않으며 앎 역시 무가치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안다.

선정에는 알맹이도 있고 만족함도 있으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앎으로 灌頂 받아 본질적인 앎을 힘써 추구하며 요의(궁극적인 가르침이 직설되는 경전 뚯)라는 여래의 종자를 머물 곳으로 삼는다.

선남자들이여, 이와 같은 법에 대해 믿고 따르는 마음을 가진 보살은 결코 무위에 안주하지도 않고 또한 유위가 모두 멸하지 않도록 한다.


즐거운 하루들 되시길


■바람 ■한석훈 선생님~ ■20041224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성탄절 보내셔요^^ 메리 구리스마요~~~ 가내 평안하시구요~^^


■양세화 ■gabalyang@hanmail.net ■선생님~ ^^ ■20041227

올 해 1학기에 교육대학원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은 학생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선생님의 강의를 생각하며 큰 뜻을 품고 내년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루한 내용들이라도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저두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구요. 선생님의 강의가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끔 들르는 이 곳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애프터 서비스중의 하나로 생각되구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선생님.  아자 아자 아자 화이팅! 힘네세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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