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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에뜨랑제  2018-08-30 21:24:29, 조회 : 55, 추천 : 18

성장한다는 말은 집단 문화가 수용하는 것과 수용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어

전자를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하는 것은 자아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그림자가 되는데 성장은 그림자 형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림자란 한마디로 심리으 어두운 측면이다. 그것은 자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내면의 유쾌하지 않고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가끔씩 사라지지 않고 한켠에 쌓여가던 그림자가 표출된다. 물론 이때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리처드 존슨



칼 융은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말한 바 있다. 흔히 우리는 착하고 바르다는 말과 온전한 혹은 전일적이라는 말을 혼동한다.

마치 일생을 통해 선을 행하고 성인의 자질을 계발하면 우리 안이 빛으로 가득 채워져서

어두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심층심리학에서는 전혀 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빛으로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는 것이다. 융이 말하는 전일적이라는 표현도

빛과 어두움 둘다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리처드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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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그림자도 함께 성장한다? 그림자는 성장 아니하는 그런 성장은 없을까. 불가능한가.

어떤 우주에 선이라는 것이 백개가 고정 되어 있고 불선이 백개로 고정 되어 있다면

어떤 한 부분이나 혹은 한 개인의 사회적 인간이 많은 갯수의 선을 차지하고 있으면

그 구성원 누군가는 선을 적게 가지게 되고 그와 더불어 불선 즉 악의 갯수가 늘어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전체와 부분이라는 주제로 사색하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 누군가가 선을 많이 가지고 싶어하고 노력을 하면 그래서 그런지 방해물이나 태클을 거는 존재가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장애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시험한다, 라고 표현한다.

나는 그것이 부분에 대한 부분 외의 전체가 거는 태클일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만 좋은 것을 독차지 하려는 것에 대한.

그러나 진정으로 무의식 깊은 곳까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즉 전체를 위해서

행동하고 노력하는 즉 사심이 적은 존재에 대해서는 그러한 전체의 태클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가 성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내면의 에고의 노력이 아니고

누군가가 어떤 삶을 살다보니 그 고장의 사람들이 그를 성자라고 칭해주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성자에게는 부분 외적인 전체의 태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고는 화를 잘 내고 성자처럼 얼굴에서 광채가 나게 하고 영험한 기운이 드러나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자가 되어 성자로 대접받고 싶어 어려서부터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성자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에고가 그를 성자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최면이나 내면적이고 반복적인 주문이나 주술을 통해서.

그러나 그것이 순수하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자신의 에고가 한 일이 될 수 있다.

필자 또한 일부에 이런 유형의 내면이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그래서 천사는 정해져 있나보다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위의 인용된 글과 연관성이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든다. 필자의 글이. 의식세계의 전체와 부분에 대한 가설적 입장을 적은 것 같다.


그리고 위의 상황에서처럼 에고는 자신을 흉보는 것처럼 해서 에고 아닌 듯한 행위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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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에뜨랑제  2018-08-30
21:24:29
     [re]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한석훈  2018-09-02
23: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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