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라는 개념 (2003/6/21)
 



                                                 
 

신의 현존은 우리의 증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나는 어째서 신을 확신하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물론 나에게 이에 관하여 온갖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나를 설복할 수 없었다. 나의 관념은 결코 그런 남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도대체 관념이나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을 상상하고 깊이 숙고하고 그 뒤에 믿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내게 언제나 의심쩍은 것으로 보였고 나는 그것을 한 번도 진실이라고 믿은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예수님 이야기를 그 배경에서 내게 암시된 "신"보다도 더 강하게 "신"으로서 믿기를 강요했다. 그런데 어째서 신이 내게 자명한 것이 되었는가? 어째서 이 철학자들은 신이 마치 기왓장이 머리에 떨어지듯 자명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신이 하나의 관념이며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인위적인 가정인 듯 설명하려 드는가? ....

나는 철학자들이 틀림없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神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가정이며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묘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극도로 불만이었던 것은 내가 그 속에서 신의 은밀한 행위에 관해 아무런 견해도, 설명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특수한 철학적 관심과 관조의 대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일 텐데도 말이다 ....

마이스터 엑하르트(Meister Eckhart)에 이르러 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비로소 삶의 입김을 느꼈다. 기독교적 스콜라 철학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聖 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主知主義는 사막처럼 생명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들이 모두 영접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을 논리적 곡예로서 억지로 획득하려 든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나의 믿음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체험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

나의 경험으로는 신은 어떠한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상처를 입지 않을 뿐 아니라 반대로 그런 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어둡고 背神的인 측면도 갖도록 요구함을 나는 알고 있었으므로 쇼펜하워의 견해는 내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았다 ....

나는 그[쇼펜하워]와 칸트와의 관계에서 더욱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철학자의 저술, 특히 <순수이성비판>을 고생해 가며 읽었다. 쇼펜하워의 학문적 체계의 근본결함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으니 읽은 보람이 있었다. 즉 그는 단순한 누메논(Nooumenon), "사물 그 자체"를 실체화하고 그 성질을 규정하려고 형이상학적 진술을 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것은 칸트의 인식론을 읽은 결과 얻은 발견으로서 이 인식론은 쇼펜하워의 "염세적인" 世界像보다도 더 큰 깨우침을 나에게 준 만큼 내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 C.G.Jung의 回想, 꿈 그리고 思想, pp. 78-79, 85-87


어려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어 당신의 독생자로 하여금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케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조금도 감동 받거나 감사의 마음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시어 게임의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알고 계실 신께서 일시적인 육체의 소멸을 경험하시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 별 것 아닌 선심(?)에 왜 내가 감복하여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얘긴지, 원...

지금은 그런 얘기들을 다 비유이고 상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얘기들, 즉,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요하는 종교조직들보다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추구했던 융이라는 개인을 훨씬 더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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