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매일의
지루한 노동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그것은 굶어죽기는 싫다는, 이를테면
죽음을 상정해서의 일이 아닌가?
죽음을 화제로 들먹이면 당신들은
언짢은 얼굴을 하지만, 죽음은 애당초 당신들 생활의 기반이 아닌가?
죽음의
회피, 이것이 당신의 인생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디 한번 그렇게
피하지만 말고,
마치 신경 정신과의 <반대 요법>처럼,
의도적인
긍정적 접근으로, 죽음이 우리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고 가정하면 어찌될까?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동경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기대하거나, 혹은
추측하면서, 찬반의 논의로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와 같이 죽음을
아주 쉽게 손이 닿는 것으로 하면, 막상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행동 패턴을 취할지, 깊이 생각해보라.
중얼중얼, 언제나
잔소리처럼 <죽고 싶다. 죽고 싶다>고 하면서 긴 세월의 생활을
질질 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들의 죽고 싶다는
말에는 아무런 현실성이 없었다.
또 무슨 일만 있으면 <죽으면
모든 게 편하다>고 경망스럽게 뇌까리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자, 죽을 수 있어요. 누구나 협력해주고 있으니까요,
어서 죽으세요"라고 말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막상 왜 죽지 않느냐고 물으면,
늘 그 이유를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곤 했다.
도대체 자기의 삶인데도 말이다.
환경이나
사회나 종교적 윤리 때문으로 돌린다.
"운명이기 때문에 아직
죽을 수 없다"고.
이런 인류를 제대로 생각하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자살의 환경 설정이다.
자살의 전면적인 공인(公認)이다.
물론 현실로는 되지 않겠지.
그러나 죽음의 선택이 간편하게 되고,
수단과 설비가 충족된 환경이 만들어지면 지성은 비로소 <삶>과
맞붙는다.
생계 유지와 감각적 오락이나 학문에만 쫓기는 사람은
절대로 사물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늘 말한다.
먼저 돈을
모아 몇 달 동안의 생활 걱정을 없애고, 그 다음 철저하게 세상에서
고립되어 생각하라. 끝까지 생각하라. 무엇이든 모조리 의문을 가지라고.
현대에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란 별로 없다. 빚 때문의 자살은 있지만.
현대
사회의 자살 발생의 최대 원인은 <허무감>이다.
오히려 생활에
걱정이 없는 연금 생활자인 노인, 주부 그리고 생계 유지에 쫓기지 않는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생계 유지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 결코 보지 않는 <존재의 의미>나 <허무감>,
<무상(無常)함>에 대해 그들은 조금씩이라도 사색을 했기 때문이다.
생활의
여유야말로 통찰과 철학의 기반이며,
또 그 여유있는 시간을 절대로
오락 따위에 쓰지 말고 생각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야
비로소 당신들은
생사의 근본 문제, 자기의 남은 인생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거기에 죽음을 간단히 선택할 수 있고,
인생을 중퇴할 권리나 인권이 주어진다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정말로
자유로운 지성을 구사하여 우주와 인간, 생명,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할
자격을 얻게 된다.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부추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지성으로.
- 1993.11.13
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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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붓다, pp. 27-28
불가지론자였던 제가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된 애당초의 동기가, '이대로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는
절박감이었습니다. 내가 남들 - 전지구의 평균적 인구 - 보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학식이 많고 하는 것 등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고, 오직
나의 삶의 진실한 수준이 문제였습니다. 먹고 살고 처자식 부양한다는
의무의 틀로써 여생을 바라보고, 끝없이 지식을 쌓아 박식해지고
명성을 얻어야 하고, 언제나 초라하기 그지 없는 나 자신의 심성과
인격을 컨트롤하고 달래며, 이렇게 남은 인생 살다가 죽으면 도대체
무언가 하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사의 근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었습니다.
에오는 그런 질문 던짐의 철저함을
철저하게 따집니다. 제가 수행자로서 그런 에오를 스승의 한 분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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