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얼굴 상상하기 (2002/11/30)
 



                                                                                                          
 

[주인공 신부가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에게 미사를 집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일 때입니다.]

"주일 미사가 끝난 뒤에 신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일본말로 기도를 하고, 얘기도 했습니다. 농민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뇌리에 자주 산상 설교를 하는 그분의 얼굴과, 혹은 앉아서, 혹을 무릎을 끼고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머리에 그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나는 그분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리는가? 아마도 그분의 얼굴이 성서 어디에도 씌어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씌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상상에 맡겨지고, 그리고 나는 어려서부터 수없이 그분의 얼굴을 마치 애인의 모습을 미화시키듯 가슴 속에 간직했던 것입니다. 신학생 때, 수도원에 있을 부렵 나는 잠 못 이루던 밤, 그분의 아름다운 얼굴을 언제나 마음속에 떠올렸습니다."

- 침묵, pp. 54-55


'그분의 아름다운 얼굴'이 신앙의 요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이 신부의 종교적 성숙을 이끌어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아름다운 얼굴'은 교리와 전통이 제공해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개인이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하여 찾고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란 말이지요. 이 신부는 종교에 있어서 신과의 개인적 교통이 갖는 본질적 가치를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개인적 교통 이외의 것들은 쓸데없는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마도 2차적인 것들이겠지요. 그런 2차적인 것들이 본질을 압도했음을 목격한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그 후예들은 바이블을 통하여 그 본질을 되찾고자 했지요. 본질은 '그분의 아름다운 얼굴'일 것입니다. 바이블은 본질로 향하는 길일테구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테구요. 그런데 바이블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매우 많더군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침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