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2003/12/3)
 

문제는 <당신>과 <나>이며, 세계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계는 우리의 자세가 투영된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우리에게서 독립된 존재가 아니며, 우리가 그 세계 자체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문제는 그대로 세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머리가 우둔해서 세계 문제는 우리와 관계가 없으며, 그런 문제는 국제연합이나 새로운 지도자가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 정신이 너무 둔감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세계의 눈을 가려야 할 정도의 비참이나 혼란, 그리고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전쟁 같은 것에 대하여 우리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계를 변혁시키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일에서부터 출발할 때, 중요한 것은 <나의 의욕>의 문제입니다. 이 의욕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의욕이고, 타인들이 좌파 또는 우파의 혁명을 통해서 자기를 개혁한다든가, 수정적인 개혁을 하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우리, 즉 <당신>과 <나>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무리 작아도, 만약 우리가 자신을 변혁하여 일상생활 속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이 사물을 보는 방법을 도입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아마도 세계 전체에, 또한 타인과의 광범위한 인간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 자기로부터의 혁명, pp. 45-46.


'국제사회'라는 어휘가 갖는 추상성은 평범한 우리 개인이 범접하지 못할 그 무엇인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필부필부인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고도로 추상화되었고 이곳과는 동떨어진 곳인 것만 같은... 이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우둔함이 그 이유이기도 하겠으나, 세계 무대의 변방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가 우리의 의식에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에도 어느 만큼의 책임이 있을 듯 싶습니다. 세계의 일원임을 느끼고 국제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 길은 이제는 주변에서 쉽사리 대할 수 있게 된 수많은 외국인들만 보아도 가능한 일인데, 먼저 내가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나의 자그마한 의식과 행동 하나가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자각한다면, 세계를 바꿀 '의욕'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