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인 나의 개성 (2002/9/28)
 



                                              

 

"똑같은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 피조물의 개성은 불완전함이 아니다. 오히려, 각 피조물의 완전함이란 단순히 어떤 추상적 형태와의 일치에 있지 않고, 스스로의 개인적 성격을 찾음에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이 세상의 어떤 다른 나무도 여직껏 그랬던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방식으로 자신의 뿌리를 땅에 뻗고, 자신의 가지를 창공과 빛에게로 들어올리고, 그리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됨을 보여준다."

- 명상의 새로운 씨앗, p. 29


'개성'이라는 개념은 아직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성을 특수한 것으로 취급하는 우리 나라의 분위기에 전체주의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주의는 민주주의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성장의 길도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성을 당연시하는 사회가 되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아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신께서 부여해주신 자신 만의 개성, 독특한 자기만의 자아의 아름다움을 보지 아니하고, 늘 자신을 비하하기만 하는 저의 가까운 친구를 볼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저의 친구는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착실하게 직장 생활하며 회사에서 중역으로 진급도 하고,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딸과 강남의 아파트에서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드리려고 늘 노심초사하는 선한 남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열거한 친구에 대한 묘사의 세부 사항 속에는 또 남모를 갈등과 번민과 모순이 어느 만큼씩 자리를 잡고 있겠지요. 저 같으면 저의 내면의 모순을 저 좋은 대로 해석해서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자신을 좋은 인간으로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저의 친구는 너무도 정직해서인지,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직장인이자, 장남으로서의 모든 의무에 100점을 받을 만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늘 자책합니다. 그래서 대개는 풀이 죽어 있습니다. 분명히 객관적인 척도로 보자면, 적어도 평균 이상되는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가장'인데도 불구하고. 또, 제 친구보다 훨씬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제 친구보다 훨씬 불충실한 남편, 아버지, 직장인, 장남 - 저까지 포함하여 - 이면서도 매일을 축복처럼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 친구의 번민을 저는 그의 '구도자적 개성'에서 기인한 바 크다고 믿습니다. 그에게는 그만이 걷고 있는 구도자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결국엔 '글쓰기'로 귀착되기를 스스로 소망하는 그런 길이지요. 궁극적인 글쓰기의 단계에 다다를 때까지 그가 거쳐야 할 속세의 모든 일들이 그만의 구도자적 개성을 드러내주기 위하여 신께서 마련해 놓은 축복의 장치임을 그가 눈치채기 바랍니다. 그가 자신의 개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전부를 사랑으로 끌어안기를 바랍니다. 그의 구도의 길이 이제는 훨씬 밝고 쾌활하게 될 것을 바랍니다.

그를 판단할 수 없는 저는 아무 조언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제 눈으로 관찰한 바를 이렇게 전해주는 수밖에는...

카톨릭 선승 토마스 머튼의 글귀를 읽다가 친구의 선한 얼굴이 떠올라 그를 위해 몇 자 적어봤습니다.

 

 

'토마스 머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