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용소에서
생사여부도 모르는 가족을 상상하며] 나는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아내의 대답을 듣고, 아내의 웃는 얼굴을 지켜본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는 듯한 아내의 눈빛을
바라본다. 생사를 초월한 아내의 눈빛은 내 머리 위로 떠오른 태양 빛보다도
밝다.
섬광처럼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다. 그토록
많은 사상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결론처럼 이끌어낸 지혜의 말, 그토록
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진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통해서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귀하고 높은 단계로 솟아오를 수 있다는 진리였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만 사랑 안에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문학과 사상과 종교에서는
역설해 왔는데, 나는 그 궁극적 진리의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라 할지라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비록 짧은 순간에 그칠지라도 구원의 빛이 찾아든다는
걸 뼈저리게 이해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수용소에 갇혀 아무
뜻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서도, 올곧게 고통을 견뎌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전무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가슴속에 간직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그윽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천사는
무한한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구원을 얻는다는 말의 참뜻이, 평생
처음으로 가슴에 와닿는 듯하다....
나는 그녀와 계속 밀어를
나눈다. 그녀도 나와 밀어를 나눈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나는
아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의 육체적 존재보다는
그 사람의 정신성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건 아니란 사실이다 ....
설령
아내가 죽었다는 걸 그 순간에 알았다 하더라도 아마 난 별다른 동요
없이 마음속에 간직된 사랑하는 그 얼굴을 변함없이 바라보았을 것이고,
우리 사이에 오가던 마음의 대화는 변함없이 깊고 따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대 가슴에 나를 봉인하여
주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리니.
솔로몬의 아가(雅歌)에
나오는 한 구절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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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서, pp. 72-74
프랑클
박사처럼 "그 사람의 정신성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겠지요. 아니면, 우리는
이미 그런 누군가를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다가,
극한 상황에 임해서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간에 유행처럼 쓰이는 영혼의 짝, 즉 쏘울 메이트(soul mate)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과거엔 쏘울 메이트를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발견하고자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런 헛된 꿈은 꾸지도
않지만요. 그런 뉴에이지 로맨스에 정신 팔 만큼 삶속의 수행의 길이
한가하지 않습니다. 헌데, 프랑클 박사께서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은
쏘울 메이트류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자는 전자까지 포괄하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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