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수용소에
있어 본 우리들은, 연병장에서 혹은 바라크 안에서 주위 동료들을 위로하면서
자신들의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마저도 주어버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비록 소수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강제수용소가
다른 건 다 강탈할 수 있어도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 즉 어떤 주어진
상황하에서 또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자유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 생생한 증거였다.
수용소에서도 늘 선택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매일, 매시간 잇달아
찾아들었는데 그 결정은, 우리한테서 우리의 개성, 우리의 내면의 자유를
빼앗겠다고 위협하는 힘들에 우리가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 맞설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자유와 존엄을 포기하고
수감자들의 '전형적인' 행동에 따르게 됨으로써, 환경의 노리개가 되고
말 것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것이기도 했다 ....
그들이 고통을
감내해낸 방식은 인간의 숭고한 내적 성취였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엮어나갈 수 있는 기회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
무릇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고통에도 의미가 없을 수 없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듯 고통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고통과 죽음은
인간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성숙시킨다 .... 나를 짓누른 고민은, 우리를
둘러싼 그 고통과 죽음 자체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겪은 고통과 죽음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것도 헛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요행히 빠져나오느냐
못 나오느냐에 의미의 존폐가 걸려 있는 그런 삶, 우연히 베풀어지는
은총에 기대는 그런 삶은 살 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생각이었다 ....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시련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은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도,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사람은 이기심에서
벗어나 의연하고 용기 있고 꿋꿋하게 살 수도 있지만,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성을 망각하고 종국에 가서는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시련과 고통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가치를 실현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휩쓸려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다. '고통에 값하는
삶'을 사느냐 못 사느냐는 그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수감자들
중에서 오로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내면의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시련이 가져온 드높은 가치를 구현하는 단계로 솟아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라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의 내면의 힘이
외부적으로 가해지는 운명이라는 제약을 뛰어넘어,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다.
사람은
도처에서 운명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상상키 어려운 시련을 통해 내면적
성취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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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서, pp. 117-121
시련
앞에서는 "오로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내면의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시련이 가져온 드높은 가치를 구현하는 단계로 솟아오를 수
있었다"고 하니, 저처럼 평범한 인간은 기가 꺾이는군요. 그렇다
하여도 신께서 주신 귀한 이 한 몸뚱아리를 하찮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시련 앞에서 상처입고 한심하게 자탄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실은, 나같은 평범한
인간도 나름대로 시련 속에서 이타심을 발휘했던 '실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급작스런 모친상으로 경황없이 귀국길에 올랐을 때,
제 처지는 뒷전으로 넘기고 저에게 우연찮게 맡겨진
어린 아이 둘을 친절하게 돌봐주었던 적이 있거든요. 아마 이런 극히
드문 '실적'을 자꾸만 올려야 위에서 말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에 끼일
수 있는 카르마적 저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아주 천천히나마.
이번 시련에서 고결함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기죽지 맙시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그 시련을 대할 나의 태도를 결정할 자유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잊지 맙시다. 시련과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프랑클
선생님의 가르침을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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