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통적 기독교관(2004/5/29)
 



                                                 
 

[대학생 시절]내가 토론한 신학생들도 모두 그리스도의 생에서 연유된 역사적 영향력의 관념[그리스도의 動因이 수 세기를 지나간다는]으로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관점은 나에게 유치하게 보였을 뿐 아니라 생명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또한 그리스도를 전면에 내세워 그를 신과 인간의 드라마 속의 오직 하나의 결정적인 모습으로 삼으려는 의견에 동조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견해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를 낳은 聖靈이 그가 죽은 뒤에는 인간 사이에서 그를 대치하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성령은 상상이 불가능한 신을 적절하게 설명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성령의 작용은 숭고한 성격의 것이었을 뿐 아니라 오묘하고도 수상쩍은 성질의 것으로 야훼의 행적과도 같은 것인데 후자를 나는 나의 견진학습에 따라 순진하게도 기독교적 신의 상과 동일시했었다(당시는 또한 마귀가 기독교와 더불어 비로소 생겨났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은 나에게 명백히 한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존재, 아니면 단지 성령의 대변자였다. 이러한 극도로 비정통적인 나의 견해는 신학적인 생각과는 90도, 아니 180도로 다른 것이어서 심각한 몰이해에 부딪친 것은 물론이다. 거기서 얻은 실망에서 나는 점차 일종의 체념섞인 무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는 오직 경험이 이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

나의 대학시절의 첫해 동안 나는 자연과학이 무한한 지식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지만 그것이 줄 수 있는 통찰은 극히 적고 그것도 주로 전문적인 성질을 띠고 있을 뿐임을 발견했다. 철학강의를 통하여 나는 그 저변에는 심리적인 것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들은 일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어디서고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었으나 ... 그것이 언급된 곳에서도 진정한 지식이 아니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을 수 있는 단지 철학적 추론에 불과했다. 이런 기묘한 관찰만으로는 나의 지혜를 계발할 수 없었다.

- C.G.Jung의 回想, 꿈 그리고 思想, pp. 118-119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교리를 수용하라는 것이 신에 대한 신자의 절대복종과 완전한 내맡김을 필수적으로 요청하는 기독교에서 양보하기 어려운 도그마임을 인정합니다만, 제 경우에는 저의 절대적 복종과 완전한 내맡김의 대상을 인간이 만든 종교의 역사적으로 형성된 '결론'에 국한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본질적인 신에게까지 확장시킬지의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인 결론에 다다랐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보다 신이 중요한 저에게 예수님만이 길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도그마는 오히려 하나의 벽으로 느껴집니다. 깨어져야 할 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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