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gly

추악함과 성스러움 (2002/5/7)

[다음은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탄 예수회 신부가 동승한 일본인 기치지로를 보며 느낀 점입니다.]

"짐 곁에서 기치지로의 괴로워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이 겁쟁이는 폭풍이 부는 동안 선원들을 돕기는커녕 짐 사이에서 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허연 토사물이 흩어져 있는 그 가운데에서 일본말로 계속 중얼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우리들도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그를 경멸의 시선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중얼대는 말도 지쳐 버린 귀에는 잘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그의 중얼거림 속에서 '은총,' '성모 마리아'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돼지처럼 자기가 토해 낸 오물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이 사나이는 '성모 마리아'라는 말을 확실히 두 번 계속적으로 말했습니다.

가르페와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항해 도중,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되어 왔던 그가 우리들과 똑같은 신앙을 지닌 인간이라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아니,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결코 한 인간을 이런 겁쟁이나 비겁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 침묵, p. 32

일본이라는 지극히 낯선 땅을 복음화하겠다는 불타는 신앙심의 소유자인 이 포르투갈 신부가 이러한 '뜨거운' 신앙심의 단계에서 첫 번째 혼란에 직면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기치지로라는 일본인은 비열함과 추함의 화신과 같이 묘사되는 등장인물입니다. 그런 추악한 자의 입에서 성스럽기 그지없는 '성모 마리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신부는 경악하며, 동시에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 소설을 통하여 이 신부는 기치지로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결국 기치지로같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을 이해하고, 어찌해볼 수 없는 인간적인 약점과 어두움을 끌어안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젊은 신부가 종교성의 스케일 상에서 볼 때 가장 저열한 한 인간을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동시에 그가 자신이 경배해 마지 않던 신부가 일본에서 배교하게 되는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는 과정과 중첩됩니다.

배교(背敎)와 같은 카톨릭으로서 최악의 죄를 저지른 신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런 죄인을 사랑한다 함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와 사랑이 종교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었다는 말입니다. 종교가 우리들 중의 가장 미천한 자들을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운영되고 있다면 종교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종교가 우리들 중의 어두움, 악함, 추함, 약함, 비열함 등을 품에 끌어안을 능력(위 사진의 연꽃과 같은)을 상실하였다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종교가 존재해야 하겠죠. 인간을 위하여 종교가 존재해야 하겠죠. 종교를 위하여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뜯어고쳐지는 것이 순리일 겁니다.

저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신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저에게는 다른 문제가 됩니다. 저에게 신과 종교는 두 가지의 다른 무엇입니다. 신께서, 자신과 종교는 하나라는 믿음을 인간에게 강요했을까요?

저는 종교가 아니라, 신에게 집중할 것을 선택했습니다.

'침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