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추한 것 (2003/9/29)
 

[신부가 일본 관아의 옥에서 밤을 보냅니다.]

밤에, 어둠 속에 앉아 신부는 잡목림에서 우는 산비둘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 가만히 자기를 주목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느꼈다. 파랗게 맑은 눈이 위로하듯이 이쪽을 바라보셨는데, 그 얼굴은 조용하지만 자신에 넘쳐 흐르고 있는 얼굴이었다.

"주님, 당신은 우리들을 이 이상 더 내버려 두시진 않을 테지요?"

신부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러자,

'나는 너희들을 버리진 않는다.'

그런 대답을 들은 듯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흔들고 확인하려 귀를 기울였지만 역시 산비둘기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둠은 깊고 짙었다. 그러나 신부는 자신의 마음이 한 순간이지만 말끔히 씻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


[비열한 기치지로가 신부에게 절규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습지요. 성화를 밟은 자에겐 또 그런 대로 할말이 있단 말입니다. 성화를 제가 좋아서 밟은 줄 아십니까? 성화를 밟은 이 발은 아프고 쓰립니다. 정말 못 견디게 아프답니다. 저를 이렇게 약골로 태어나게 해 놓고서 강한 자의 흉내를 내라고 하느님께선 말씀하십니다. 그건 너무 무리입니다 .... 신부님, 저 같은 겁쟁이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돈이 탐나서 신부님을 밀고한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포졸들에게 협박을 받았을 뿐이에요..."


[결국 신부가 기치지로의 고해성사를 받아줍니다.]

신부는 기치지로의 구린내나는 입김을 참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커다랗게 한숨을 내뿜으며 변명의 말을 찾으면서 기치지로는 몸을 움직인다. 땀냄새가 풍겨 나온다.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더러운 이런 인간까지 그리스도는 버리지 않으려 하셨던가 하고 신부는 문득 생각했다. 악인에게는 또한 악인의 장점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이 기치지로는 악인보다도 못한 것이다. 누더기같이 그저 더럽기만 한 것이다. 불쾌감을 누르고서 신부는 고백성사의 마지막 기도문을 외우고는 습관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가라."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한시바삐 이 구린내나는 입김과 체취로부터 피하기 위해 신자들 쪽으로 돌아섰다.

'아니다, 주님께서는 누더기같이 더러운 인간밖에는 찾지 않으셨다.' 신부는 마룻바닥에 누우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성서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헤맨 것은 가파르나움의 하혈병 앓는 여인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돌로 얻어맞는 창녀처럼 아무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였다.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빛이 바래 누더기가 다 된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신부는 그것을 이치로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기치지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에게 가까이 오며 그 물기 어린 부드러운 눈으로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았을 때, 신부는 오늘의 자기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 침묵, pp. 127, 136, 139


몇 해전 성당에서 영세를 받는 전 날, 그 예식에 대한 리허설에 참석하던 중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급히 차에 태워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내달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금세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되었지만, 딸애를 품에 안고 낯설은 응급실에 앉아서 기다리던 순간은 저에게는 경미한 지옥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응급실 기둥에 걸린 그림에 눈길이 갔습니다. 천주교 계열 병원이라 예수님 얼굴의 성화가 걸려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예수님 얼굴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가리고 있던 지옥의 커튼이 걷혀졌습니다. 아이가 진료도 받기 전에 제 마음은 편해졌습니다. 물론, 진짜 예수님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는지 어쨌는지가 여기에서 이슈가 아닙니다.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안절부절 못하며 앉아있던 그 순간이 내게 은총으로 주어졌음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후에 '악인'과 '더러운 인간'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응급실에서 순간적 불행에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것처럼, 인간의 악함과 더러움에 치를 떨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악인'과 '더러운 인간'이 악함과 더러움이라는 것들을 제게 보여주기 위해 잠시 그러한 속성들을 몸에 걸쳤던 것 뿐임을 잘 압니다. 신께서 보내주신 은총으로 제게 다가왔었음을 잘 압니다. 제 소원은, 다음 번에 마주칠 '악인'이나 '더러운 인간'이 실은 신성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임을 좀 더 빨리 알아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