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실패 (2006/10/22)
 

茶山草堂  © Suk Hoon Han                                                                                                                             
 
 

[파괴적 과학]

현재의 환원주의적 과학은 - 기술전쟁이 농업을 공략하고 산업주의 경제가 농업에 침투하도록 내버려두는 경우 - 농부들의 자살에서 목격하듯이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만일 우리가 불완전한 지식을 오만하고 위험한 행동의 근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문화적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적인 학문 자체가 가공할 위험이 될 것이다. 만일 자연에 대한 탐구가 자연에 대한 더욱 심한 파괴로 이끌 뿐이라면, 더 이상 자연을 탐구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

인간 행동의 기준은 기술적인 능력이 아니라 지역과 공동체의 성격에 근거해야 한다. 무게중심을 생산성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적응성에, 기술혁신이 아니라 친밀성에, 힘이 아니라 우아함에, 비용이 아니라 검소함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건강과 관련해서 규모와 의도의 타당성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다시 우리는 절망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


[대학의 실패]

통제불능의 "성장" 욕구를 가진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정부 기구들과 교육, 종교 역시 크기와 수에 근거해서 성공을 측정하려고 한다. 모든 제도가 기업의 조직 구조를 흉내내기 시작했으며, 기업의 가치와 목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과 법률가들, 그리고 대학교수들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재빠르게, 후안무치하게 상업주의적으로 변화되어 갔으며, 한때 치유와 자비, 동정의 규칙에 따라 운영되던 병원들도 어이없게 전문가주의와 산업주의적 방법, 경력주의, 그리고 이윤에 투항해버렸다 ....

[에드워드 윌슨과 나]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그는 시종일관 대학에 속한 사람이었고, 나는 늘 학교 밖에 있을 때가 훨씬 속이 편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윌슨은 오늘날 대학의 세분화된 분과 학문체계, 전문화된 기준들, 기업의 후원을 받는 연구 시스템, 그리고 논문발표실적에 근거한 승진과 종신교수임명 제도 같은 것들에 만족해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것들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런 것들이야말로 배움과 세계에 대해 해를 끼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수의 생산성]

[작금의 대학의 분위기는] 삶보다 일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며, 예이츠의 시에서 말하고 있는 개인적 희생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향해서도 실제적으로 큰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모든 희생들은 객관적으로 계산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윌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해에 걸쳐 나는 생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들에게 '자네가 만일 학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일주일에 40시간은 가르치는 일과 행정적인 일에 써야 하고, 나머지 20시간은 꽤 괜찮은 연구를 하는 일에, 그리고 또 나머지 20시간은 정말로 중요한 연구를 하는 데 써야한다'고 감히 충고를 했다."(55-56쪽) 그렇다면 윌슨은 젊은이에게 일주일에 80시간 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처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쉬는 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으니, 하루에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또는 점심시간 30분을 감안한다면 저녁 8시까지 11시간 반, 일주일에 7일을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168시간에서 80시간을 빼면 88시간이 남는다. 젊은 박사학위 소지자가 8시간을 잔다면 56시간이 빠지고 32시간, 즉 하루에 4시간 만이 남는다. 이 4시간 반에 그들은 먹고 씻고 쇼핑하고 가사를 돌보고 출퇴근하고 읽고 (불행한) 자녀를 돌보아야 한다. 그래도 남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는 아마도 오락을 즐기거나 가정과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는 데 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일에 대한 그같은 헌신과 희생의 삶에 모종의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덕을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같은 노력을 함으로 인해 우리가 상처받고 위협당해 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가적인, 혹은 출세지향적인 일종의 일중독이 아니고서는 그와 같은 정도로 자신을 내몰아치며 살 수 없다. 대학이 젊은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나 조교수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진화론적 위기, 즉 "책을 내든지 아니면 죽든지" ["Publish, or perish"; 미국 대학원의 유행어] 해야 한다는 위기 속에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산"해야 한다 ....

오늘날 학계에서 횡행하는 적자생존의 다윈주의는 살아남은 자나 도태된 자 모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둘 다 엄격하게 "생산성"에 따라 삶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경제체제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 말하자면 둘 다 일종의 노예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둘 다 적어도 정년보장을 받기까지는 시간=일=최초의 발견=출세라는 대학이 정한 삶의 통제 방식에 복종해야 한다 .... 그리고 그 복종은 앞서 산 사람들의 지식을 젊은이에게 전해주는 교사와 학자들의 공동체로서 참된 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학문적 이상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고도의 생산성과 영구혁신이라는 산업주의 경제의 이상에 대한 복종이다.


[대학교육의 본질 상실]

집단 경제는 극소수의 부유한 거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운영된다 .... 기업들은 주로 과학 같은 학문분야를 후원한다. 그러나 가끔은 "박애정신"을 발휘해서 예술에도 약간의 부스러기 돈을 하사한다. 이러한 기업후원의 거간꾼 노릇을 하는 것이 대학이다. 우리 시대에 대학은 학문 분야들의 조직자이기 때문이다 .... 과학은 기업들에 봉사하기 좋게 가축사육장처럼 구획화되었다. 이른바 인문학은 인간이 때때로 이루어낸 선에 대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최소한 상황을 교정하거나 순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극단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 할 말이 없는 "전달자"가 되었고, 아무 가르칠 것이 없는 "교육자"가 되었다.

- 삶은 기적이다, pp. 23-24, 29-30, 42, 93-95, 178-179


베리 싸부 정도의 내공을 지닌 이라면 모를까, 만약 저같은 이가 윗글과 같이 대학의 현실을 비판했다면 그것은 마치 이솝의 '여우와 포도' 우화처럼, 먹지 못하는 그림의 떡에 대한 질시의 표출로 해석될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 실제로 대학교수직에 지원했던 적도 한 번 있고... 허나 저는 정말로 대학에 소속되고 싶지가 않습니다. 꽤 많은 분들께서 제가 마치 무슨 큰 뜻을 품고 초야에 묻혀있는 인물인 줄로 오해하시던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에 소속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냥 게을러서일 것입니다 - 산에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아이들과 돌아다니며 놀고 싶어서; 아마 윌슨과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요구하는 '스탠다드'를 충족시킬만 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또는, 그냥 자유롭게 진짜로 하고 싶은 공부나 하며 살다 가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혹 말년에 내공이 좀 쌓인다면, 그때에 가서는 대학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관찰을 끄집어내보고 싶습니다.

'삶은 기적이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