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렌즈 너머에 (2006/12/2)
©
Suk Hoon Han
<실낙원(Paradise
Lost)>은
"시인 자신이 생각하듯이 하느님이 밀턴의 생각을 인도했기 때문에"(213쪽)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 윌슨은 합리적 검증의 영역을
훨씬 벗어나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밀턴이 "천상의 뮤즈"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신실하고 겸손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실낙원>을
시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가능한
경험적 진리는, 밀턴은 믿으면서 <실낙원>을 썼고, 윌슨은 믿지
않으면서 전혀 다른 질서에 속한 <통합>이라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윌슨은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다른
물질주의자들, 가령 무신론자나 합리주의자, 현실주의자들처럼 종교적
신앙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함으로써 결정적으로 한방 날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연히 종교적 신앙은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해주는 논증이란 없다. 그러한 증거물도, 실험도 없다.
현실에
대한 이처럼 편협한 정의를 고집함으로써 윌슨이 종교를 반박하지는
못한다. 단지 그는 종교를 오해할 뿐이다. 그는 종교적 신앙이 그외
달리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을 아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를 이해하지 못한다 ....
경험주의자는
기대에 차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경외심을 갖는다는
것은... 소중한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248쪽)
이러한 종류의 언어남용은 견디기가 힘들다. 윌슨이 말하는 "경외심을
갖는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경외심을 느낀다는
것, 경외한다는 것은 바로 "소중한 자아"를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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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이다, pp. 47-49
종종 조직된 종교체제가 본의를
저버리는 일이 일어나긴 하여도, 과학이 알려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종교가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하여 과학이 알려주는 것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사랑에 대하여 유전자
차원에서 과학이 알려주는 지식이 사랑에 대한 온전한 지식일까요? 그것이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나 하나요? 경험하지 않고 진정으로
알 수가 있나요? 경험을 통하여 관찰의 주객이 혼연일체가 되지 않고서도
무엇을 온전히 알 수가 있나요? 과학은 인간을 확장시켜왔으나, 동시에
인간을 축소시키기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베리 사부께서 보시기에는
석학 윌슨이 실은 '경외'에 대해서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한가 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도 같이, 과학도 그저 손가락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그 손가락 자체를 숭배하게 되면 달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겠지요. 저는 달을 볼 수 있도록, 즉 궁극을 알 수 있도록, 과학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믿습니다만, 그 과학이라는 도구가 절대적이고
유일한 도구이리라고는 조금도 믿지 않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의
힘과 한계를 인정하는 진정한 통합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이라는 과학자가
지향했던 바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