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해탈 (2007/12/17)
 

  © Suk Hoon Han                                                                                                                                                                                  

 

그런데, 지구라는 행성에는 재미있는 점이 있다. 물리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신 무엇을 사고(思考)하든 멋대로 할 수가 있다. 사고가 물질 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사고라는 것이 여기서는 제약되거나 관리되지 않는다. 통상 평균적 차원의 우주에서는, 사고와 물질 사이에 이 정도의 <절연 상태>는 없다. 말하자면, 보통의 일반적 차원의 세계에서는 사고한 것이 그대로 형상화되기 쉽다. 그건 마치 꿈의 세계 같다. 지구인이 보면 그것은 꼭 마술 같은 것이다. 허나 거꾸로 그런 세계는 <사고 내용에 제약이 가해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섣불리 사고하면 전원이 공유하는 의식 환경이 한방에 파괴되고 마니까. 따라서 지구는 물리적으로 부자유하지만, 사고의 차원에서는 우주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운 행성이다. 일반적 우주 민족들이 혐오하는 마이뜨레야[미륵불] 같은 존재도 그런 지구의 안전 성능을 노리고 그 행성의 특정 인물의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지구는 은하계의 뒤안길과 같다 ....

매우 절망적이지만 어떤 종족이 우리에게 어떤 기관을 심어놓았다. 옛부터 <본성> <불성>과 같은 요소가 우리에게 심어져 있다. 다만 발견되지 않도록 심어져 있을 뿐이다. 찾으면 찾을수록 발견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이른바 타오(TAO)나 깨달음의 트릭이라 일컬어지는 이 교묘한 <숨바꼭질>에서 인간을 재료로 만들어낸 작자들이 당초 기대했던 것은, 거기에 도달하려는 충동이 인류로부터 나오게 하는 한편, 실상은 거기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끊임없이 불만과 불안, 그로 인한 갈등을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 자비같은 것은 없다. 인간은 자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직 괴로워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괴로움의 발생 원인은 삶에의 욕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우주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에너지는 <삶에 대한 집착>과 활동이고, 그것은 <몸부림>에 의해 얻어진다 ....

작은 창조자들은 저희의 고차원 의식 일부를 인간에게 주입해 보았다. 그랬더니 인간은 친화력의 법칙에 따라 원래의 의식과 하나되려고 해서 결국에는 합일의 만족을 얻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 고통 회로나 남녀의 분리 등을 설계했고, 이로 인해 인간은 계속 갈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질의 루슈 곧 <생존 의지 에너지>가 얻어지고, 이 에너지를 다른 우주에 저장, 그것을 팔아서 보수를 얻는다.

결국 인간이든 지성있는 우주 민족이든 우주 전체의 차원에서는 <곡물, 가축, 제품 또는 에너지 발생을 위한 기계적 미생물>에 불과하다. 만약 당신이 이른바 우주와 창조자에게 공헌하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욱 더 괴로워하면 될 일이다.

만약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면 당신은 우주로부터 무능력자로 판단되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바로 이것. 당신이 신이란 자로부터 <해고>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자유임과 동시에 이 세계에 사는 사람은 아니다.

- 폐허의 붓다, pp. 68-69, 95-96 [본문에는 거의 각 문장이 한 줄을 차지하여 운문처럼 적혀 있고, 때로 굵은체 표기도 돼있으나, 이를 무시하고 몇 개의 문단으로 통합했음; 원본의 느낌을 살리려면 물론 원본을 보시기 바람.]


아주 재미있지 않은가요, 에오라는 이의 생각 방식이? 제가 SF류를 섭렵해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위의 아이디어들의 많은 부분은 지금까지 발표된 SF 작품들에서도 등장했을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에오는 SF 소설의 아이디어를 짜깁기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전혀 아닙니다만. 위의 이야기를 SF로 읽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로 흘려 듣든(이것과 SF가 똑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의 은유로 이해하든, 아니면 실제 명상 체험의 결과 보고로 받아들이든, 그건 각자 개개인의 몫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에오식의 이야기가 자신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개성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저는 추정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가 훨씬 많으리라고도 추정하구요. 최소한 후자가 아닐 경우, 위의 얘기에는 일상적인 두뇌 회로의 콱 막혀 있던 부분을 뚫어주는 기발함이 있다고 봅니다. 트레펑처럼. 배관 전문가들은 보통 트레펑을 쓰지 말라고들 합니다만, 실상에서는 트레펑이 유효한 경우도 적지 않지요.

최근까지 하이데거에 관한 심각한 해설서 두 권을 어렵게 읽었는데, '존재'니 '현존재'니 하는 어려운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장미꽃이 굳이 피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 물음의 답변으로서의 <왜냐하면>은 장미꽃이 핀다는 사실 자체가 그 꽃이 피는 이유라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개성이라는 꽃을 피우고, 그것이 우리가 꽃피우는 이유란 말입니다. 에오는 그런데 왜 그 꽃이란 건 피우느냐고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저의 전형적인 초라한 대답은, '그냥 원래 꽃피우게 돼있거든...' 정도이겠는데, 에오는 이 대답을 무시합니다. 어디까지 질문을 계속해나가야 좋을 것인지는, 각자의 개성이 지시하는 바를 따라야 하겠지요. 어느 선에서 질문을 접는 것과 끝없이 질문을 밀어부치는 것, 양쪽 다 나름의 무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개 종교 쪽에서 전자의 경향을 경직된 자세로 고수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하구요. 또 후자의 경우도 결국엔 허무라는 대답에 도달하곤 하는데, 과연 그게 다일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폐허의 붓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