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첫 치유 경험 (2007/6/10)
 



 © Suk Hoon Han                                                                                                                                        
 
 

[융이 취리히 대학 정신과의 수련의였던 시절에 환자의 무의식에 접근하여 치료한 내용입니다. 무의식의 이해가 한 개인의 삶의 노정에 대한 성찰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이므로, 독자 스스로 자아성찰하는 기분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당시의 학풍을 지배하던 이른바 임상적 관점에서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한 개체로서의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길다란 항목의 진단과 증상을 가진 환자 X호를 치료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딱지를 붙이고," 진단으로 도장을 찍고, 그것으로서 그 경우는 일이 대충 끝나는 것이었다. 정신병에서 심리학이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한] 환자를 내 자신의 방법으로 진찰하리라 마음먹었다 .... 나는 그녀와 함께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그녀의 과거를 밝히고 보통 문진[問診]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사실들을 듣게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정보를 그녀의 무의식에서 직접 얻었다. 그것은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이 부인이 결혼하기 전에 한 남자를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대기업주의 아들이었는데 주위의 모든 소녀들이 그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 예뻤으므로 그가 그녀를 좋아하리라 믿었고 얼마간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으므로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

5년 뒤에 옛날 남자친구가 그녀를 방문하였다. 그들이 옛 추억을 나누는 가운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결혼할 때,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었지요. 당신의 X씨(대기업주의 아들)에게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병이 생긴 순간이었다! 이 순간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몇 주일 뒤 파국에 이르렀다.

즉,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을 목욕시켰다. 처음에는 네 살 된 딸을, 다음에는 두 살 난 아들을. 그녀는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의 급수는 위생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 그곳에는 음료수로 쓸 깨끗한 우물물과 목욕하고 빨래하는 데 필요한 오염된 강물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 딸을 목욕시킬 때 그 딸이 목욕할 때 쓰는 수건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막지 않았다. 그녀의 어린 아들에게는 심지어 한 컵의 오염된 물을 먹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녀는 이것을 무의식적이거나 그저 반의식적으로 행하였다. 그녀는 벌써 시작된 우울증의 그늘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뒤 곧 잠복기가 지나자 딸이 장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어머니가 가장 귀여워했던 아이였다. 사내아이는 감염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울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살인자라는 사실, 그리고 많은 그녀의 비밀 하나하나를 나는 연상검사에서 얻었으며 그녀의 우울증을 일으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요컨대 이 경우는 심인성 장애였던 것이다 ....

나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내가 직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을 털어놓고 그녀와 이야기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큰 수술을 감행할 것인가? 그것은 나에게는 중대한 양심의 물음이었고 동시에 의무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나는 치료를 감행하기로 결심하였다. 물론 그 치료의 전망은 대단히 불확실했다. 나는 연상검사에서 발견한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했다 .... 어떤 사람에게 그의 살인을 직접 말해 버린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또한 환자에게도 그 말을 듣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14일 뒤에 그녀가 퇴원될 수 있었고 다시는 입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내게는 그녀가 그녀의 죄를 삶에서 보상할 수 있도록 생활 속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이
[환자에게 일어날 수도 있을 재난을 방지하는 데에만 급급하는 것보다]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녀는 숙명에 의하여 충분히 벌을 받았다. 퇴원할 때 그녀는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나갔다. 그 짐을 그녀는 짊어져야 할 것이다. 그녀의 속죄는 이미 우울증과 정신병원의 입원으로 시작되었고 어린애의 상실은 그녀에게 깊은 고통을 주었다.

수많은 정신과 환자들의 경우 환자는 하나의 말하지 않은 역사, 대개 아무도 모르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나에게는 진정한 치료가 이런 개인적인 역사를 탐색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그곳에 좌절의 동기가 숨어 있다. 동시에 그런 역사는 치료의 열쇠를 내포하고 있다. 의사는 어떻게 그것을 들을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는 증상뿐 아니라 전체 인간에 맞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자료만을 알아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때로는 연상검사가 길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고 꿈의 해석도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꾸준하고 인내성 있는 환자와의 인간적인 접촉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C.G.Jung의 回想, 꿈 그리고 思想, pp. 136-139


이 싸이트를 통해서 저를 알게 됐고 저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분들 중에는, 실물인 제가 제 글과는 달리 유순하다며 놀라움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를 자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겉다르고 속다른 음험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보기에도 저는 평소에 유순한 편입니다만, 때때로 매우 파격적이고 단호하거나, 냉혹해지기도 하는데, 아마 그런 면면이 저의 글에도 나타나는가 봅니다. 융 선생도 아마 대체로 유순하고 소심한 이였던 것 같은데, 위의 예에서 보이듯이, 자신이 결론지은 사항을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추진함에 있어서는 파격적이고도 단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융처럼 잘났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은 제삼자로서 어떤 가족의 중대사에 개입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윗 글의 융처럼 행동했더랬습니다. 저는 그 가족에게, 자신들에게 심대한 충격을 던질 것이 뻔한 비밀을 다 털어놓고, 그 비밀 속에 담긴 인생의 업보를 용감하게 해소하고 극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가족들의 저항과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참 냉혹하게도 그 어려운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그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었더라면 그런 부담스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습니다 -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묻어두면 그만이었으니까요. 허나 제가 구태여 욕먹을 것을 감수하며 그런 어려운 요구를 했던 것은, 융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진정한 치료"를 감행하는 것이 병을 묵혀서 애써 잊은 채 사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타인 일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인 제가 왜 그랬었는지, 때로 다시금 그때 상황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제가 절대적으로 옳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윗 글을 읽다보니 융과 같은 태도를 가졌었음은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융이라는 인물에 저 자신을 겹쳐 보게 됩니다. 아마 위대한 우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유치찬란한 소아적 심리의 발현일 테죠.

어쨌거나 중요한 건, 자신의 "말하지 않은 역사," "아무도 모르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여 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전체 상을 이해하는 일이, 단지 정신 질환자뿐만이 아니라, 수행의 길을 가는 모든 이들에게 긴히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저는 그 일을 줄곳 해오고 있습니다. 그 일의 성과는 꽤 있는 편이구요. 과거에 그랬던 것만큼 나 자신을 혐오하고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점이 큰 성과이죠.

 

'C.G. Jung...'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