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 (2008/11/4)
 



 © Suk Hoon Han                                                                                                                                      
 
 

[다음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에서 한 개인에게 '신기(神氣)'가 있다고 일컫는 경우와 상응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무속에서는 그런 개인이 신내림을 받아야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들 하던데, 융이 말하는 다음의 케이스에서는 자신에게 신이 부여한 소명을 수용해야만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케이스를 무병 앓기로 취급한다면 매우 특이하고도 극단적인 경우로 여겨지겠지만, '내 안에 심어진 신의 계획'이라든가, 아니면 '내면의 자기실현 욕구' 등의 용어로 바꿔 생각해보면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화두가 되겠지요.]

나는 자기의 신앙을 잃은 한 유태인의 경우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치료는 내가 꾼 꿈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꿈은 미지의 젊은 소녀가 환자로서 나를 찾아오는 꿈이었다. 그녀는 자기의 문제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이상한 父性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 꿈의 내용이었다.

다음날 나의 수첩에는 상담, 4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작은 소녀가 나타났다. 유태인인데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었다. 예쁘고 우아하고 무척 머리가 총명했다. 그녀는 이미 분석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가 그녀에게 逆轉移를 가지게 되어 결국 그대로 계속하면 그의 결혼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에 그가 그녀에게 오지 말도록 간청했다.

이 소녀는 몇 년째 심한 불안신경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이 위의 경험을 겪고 나서 더 나빠진 것은 물론이다. 나는 생활사부터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잘 적응된 서구적인 유태인이며 뼛속까지 계몽된 사람이었다 .... 나는 그녀에게서 부성콤플렉스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내가 보통 그런 경우에 하듯 할아버지에 관해 물었다. 이때 그녀가 잠깐 동안 눈을 감는 것을 보고 나는 곧 알아차렸다. 바로 그게 문제구나!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조부에 관해 말해달라고 했고 그가 랍비(율법학자)였으며 유태교의 한 파에 속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 나는 더 물었다. "그가 랍비라면 혹시 그는 자딕파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사람들은 그가 일종의 聖人이었다고 하고, 천리안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두 헛소리에요!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어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나는 이것으로 생활사 청취를 끝냈고 그녀의 노이로제의 역사를 이해했으며 이를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 "당신 아버지는 유태교 신앙에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비밀을 누설했고 신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의 저주라는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노이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이 청천벽력같이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다음날 밤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내 집에서 초대연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소녀도 거기에 있었다. 그녀가 내게 와서 묻기를 "우산이 없을까요? 비가 몹시 오고 있어요" 했다. 실제로 나는 우산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을 펼치느라고 이리저리 풀어 놓고는 그것을 그녀에게 주고자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그 우산을 그녀에게 마치 신 앞에서 하듯 무릎을 꿇고 바쳤던 것이다!

나는 이 꿈을 그녀에게 이야기했고 8일 뒤에 그녀의 노이로제는 사라졌다. 이 꿈은 그녀가 그저 경박한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는 하나의 성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신화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녀 속에 있는 본질적인 것이 전혀 표현될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관심거리는 남자들과 희희덕거리는 것과 예쁜 옷과 성적 매력에 있었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성만을 알고 있었고 보람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는 하느님의 딸이었다. 그녀는 하느님의 숨은 뜻을 충족시켜야 했다. 나는 그녀 안에 있는 신화적, 종교적 표상들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영적인 활동이 요청되는 그런 사람들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녀의 생이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노이로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

나는 사람들이 인생의 물음에 대한 불충분한 또는 그릇된 해답에 안주하고 있을 때 노이로제에 걸리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 결혼, 명성, 그리고 외적인 명예와 돈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불행하며 신경증적인데 그들이 찾던 것을 얻었을 때도 또한 여전히 그러하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협소한 정신적 시야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생은 충분한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보다 포괄적인 인격으로 발전할 수 있을 때, 대개 노이로제는 없어진다 ....

"잃어버린 羊"이 나에게 왔던 것이다.

- C.G.Jung의 回想, 꿈 그리고 思想, pp. 161-163


따라서 융 사부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양'이란, 삶의 표면적 가치만 추구하고 "엄청나게 협소한 정신적 시야에 사로잡혀" 있으며, "보다 포괄적인 인격으로 발전"하지 못하여, 자신이 본래 "영적인 활동이 요청되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을 일컫습니다. 기독교 도그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잃어버린 양'이 아닙니다. 참된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잃어버린 양'입니다. 문제는 우리 시대가 참된 자신의 정체를 깨닫도록 아무런 도움도 안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력하게 훼방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그 훼방꾼들 중에서도 선봉장입니다. 기성 종교들은 헛다리나 짚으며, 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안다고 주장하는 관습 체계에 가깝습니다. 융 같은 선각자는 학계와 문화계의 한 귀퉁이로 밀쳐져 있습니다. 참된 자기실현을 도와줄 수 있는 문명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기까지는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나마 융 같은 선각이 있었음이 참으로 다행이기는 합니다.

 

'C.G. Jung...'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