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Taking the Red Pill
이수영, 민병직 번역, 굿모닝 미디어, 2003

- 글렌 예페스(Glenn Yeffeth) 엮음


"매트릭스의 철학, 매트릭스의 과학"이라는 번역판 부제와 함께 출판된 이 책은 영화사상 기록될 만한 센세이셔널한 인기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영화 매트릭스를 다각도로 심층해부 해본 아카데믹한 저술물입니다. 제가 참석하고 있는 독서 클럽에서는, 이 책이 매트릭스가 제시한 끝없고 끊임없는 의문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 의문은 과학, 기술, 철학, 신학, 종교학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구요. 워낙 많은 유식한 분들이 이미 잘 설명해놓은 영화이고 또 책이기 때문에, 제가 사족을 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소개하는 이유는, 저 자신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영성 수행이라는 장르에 끼치는 영향을 매우 높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특히 아래에 발췌한 부분이 불교적 우주관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평가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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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에서 영속성, 상호 의존성 혹은 무에 대한 분명한 대화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인류가 경험하는 세계가 완전히 왜곡된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나온다. 확실히 우리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정신에 침투된 컴퓨터 프로그램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은 사실상 비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각하는 바의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말한 것처럼 사실상 "노예"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속 상태에서 태어나..... 후각, 미각, 청각도 없는 감옥, 정신만을 위한 감옥에 갇혀 있다." 여기서 요가행파 철학과의 비교가 상당히 그럴듯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요가행파는 현실에 대한 접근이 '오로지' 정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먼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이미지, 정신에 투영된 세계의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 지각된 "현실"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거기에 있지 않은 세계의 사물들에 어느 정도의 영원성과 독립성이 있다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업에 의해 왜곡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매트릭스 역시 분명히 거짓된 현실이다. "무엇이 현실인가?"라고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질문한다. "현실을 어떻게 정의하지? 만일 우리가 느끼고, 맛보고, 냄새를 맡거나 볼 수 있는 것을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현실은 그저 뇌에 의해 해석된 전기 신호들에 불과하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라네. 20세기말 그대로의 세계이지. 이제 세계는 우리가 매트릭스라고 부르는 신경들 간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으로만 존재해. 자네는 꿈 세계에 살고 있었던 거야, 네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영화와도 같은 감옥"의 미궁을 꿰뚫어 볼 수 있고, 그 곤경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이는 바로 보살과 부처의 일이다. 그리고 네오의 일이기도 하다. (pp. 192-193)


제임스 포드(James L. Ford)라는 불교학자의 글입니다. 매트릭스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우리가 현실로 알고 있는 이 현상계가 그저 가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실재는 현상을 꿰뚫어보아야만 포착할 수 있겠지요. 말로는 이렇게 쉽게 지껄이는 것, 평생 수행해야 겨우 깨달을까 말까한 것 같습니다.

(2003.8.24)

 

    '책의 지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