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윙크
 

처음으로 티베트행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인도 남부 해안, 고아에서였다. 벼룩시장이 서는 수요일, 초라한 차림으로 액세서리를 늘어놓고 앉아있는 얼굴 검은 사람들은 분명 인도인이 아니었다. 티베트인들이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땅에 들어와, 대륙 끝자락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가련한 사람들.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편안한 얼굴로 앉아있는 이 사람의 고향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래서 우선 다름살라에 가 보기로 했다. 인도로 피신한 티베트 사람들의 망명 정부가 있고, 이를 따라 들어온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달라이 라마.

만나는 사람에 제한을 두며 정양에만 몰두하는 특별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다름살라 궁전에 머무르는 기간만큼은 누구나 그에게 면담을 신청할 수 있다. 특별히 그를 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유명인과 직접 얼굴을 맞대보고 싶다는 유치한 소망에서 접견을 신청했다. 시중 드는 승려의 날카로운 눈빛에 잔뜩 긴장한 나머지,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저는 왜 살아야 하는 겁니까?"

삶의 철학 따위는 무시한 채 그저 사는 데 급급했던 내 입에서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꼭 자살을 앞두고 억지로 삶의 이유라도 찾으려는 사람마냥, '왜 살아야 합니까'라니. 얼굴이 붉어졌다. 당황스러워진 나는, 횡설수설하며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저음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삶의 목적은 신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지요. 신은 그 길을 제시할 뿐,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법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에 붙들려, 멍하니 서있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온 달라이 라마.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오!"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윙크를 던진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하다. 코 끝에 안경을 달랑 걸친 모습이,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 같았던 그와 가진 만남은 묘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삶을 관조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얼굴이 그러할까? 한없이 편안하고 선하며, 재치있는 유머와 날카로움이 함께 깃들어 있는 노승려. 종파(나는 천주교도다)와 인종을 초월해 그만 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후 고산병도 마다않고 티베트행을 감행, 산소통과 약에 의지하면서도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강한 햇빛, 한없이 푸른 하늘, 묵묵한 돌과 소망의 깃발이 뒤섞인 티베트땅을 돌며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다시 노승려를 만나게 되면, 그가 떠나온 땅은 여전히 아름다웠노라고, 그 땅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더라고, 전해주고 싶어서다.

- 여행 칼럼니스트 조정연, 중앙일보, 200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