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 예수 손잡고 태평가 합창하네"
 

큰 스님의 큰 깨달음 세계적 틀로 본다.

"노담(노자)과 공자 손을 잡고 석가와 예수 발을 맞추어 뒷동산과 앞뜰에서 태평가를 합창하니, 성인·악마 사라지고 천당·지옥 흔적조차 없습니다.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 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 소리 요란하니, 검다·희다 시비 싸움 꿈 속의 꿈입니다."

성철(性徹·1912~93) 스님이 1986년 새해를 맞아 남긴 말이다. 종교 간 구분이 사라지고 인간의, 나아가 만물의 본모습이 구현된 세상을 읊었다. 그가 입적했던 93년 신년 법어에선 "이제 세계는 한덩어리가 되었으니 50억 인구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내가 벌어서 없는 형제에게 주고 헐벗은 자매에게 나눠주니, 어허라 좋을시고"라고 말했다.

성철 스님의 열반 10주기를 추모하는 국제학술대회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 위에 있다. 오는 16∼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깨달음의 문화적 지평과 그 현대적 의미'. 스님의 사상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특이하다. 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던 스님의 생애나 불교관, 즉 불교 내부에 집중했던 예전 행사와 달리 세계화·현대화란 두 키워드를 붙잡고 스님의 사상을 기독교·도교 등 다른 종교, 그리고 현대 인지과학적 시각에서 비교·해석할 예정이다.

학술대회 준비위원장인 조성택(고려대·철학) 교수는 "스님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같은 사과를 놓고 부사다, 홍옥이다라고 다투는 것과 유사했다"며 "이번엔 사과(불교)와 오렌지(타 종교)의 비교를 통해 사과의 실체를 명확하게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깨달음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철 스님을 시봉했던 원택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도 "기존의 논의가 큰 스님이 내세웠던 깨달음의 방법인 돈오돈수(頓悟頓修:순간적 깨달음)와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점진적 깨달음)의 대립 차원에 그쳐 아쉬움이 컸다"며 "이번 행사는 큰 스님 일변도로 가지 않고 종교 간 대화도 가능하도록 유념했다"고 밝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란 법어로 유명한 성철 스님도 평소 대립과 투쟁이 사라진 세상을 희구했다. 깨달음 앞에선 종교·국가·인종 등의 구분이 부질없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석가·예수·공자·노자를 원수 같이 털어버려야만 한다"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라고 말했다. 불교의 목표는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바로 깨쳐서 본래 자기가 무량아승지겁(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성불했다는 것,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인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미국의 저명한 불교학자인 로버트 지멜 교수부터 한국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헝가리의 임레 하마르 교수 외 네팔·캐나다·호주 등 8개국 13명의 학자가 참여한다. 국내 학술대회로서는 매우 드물게 발표 논문을 인터넷으로 국제 공모했다. 원택 스님은 "앞으로 2년마다 국제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철 스님의 실천궁행을 기리는 뜻에서 일반인이 릴레이로 팔만사천배를 올리는 칠일칠야 참회 법회도 8∼15일 해인사 백련암에서 열린다.


- 중앙일보, 2003.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