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벽 허문 '종소리'…스님들 구세군 되다
 

의정부서 5명 '보시'…이웃사랑 실천 75년 만에 첫 동참

15일 오후 2시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2동 의정부역 앞 광장. 역사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구세군의 자선 냄비가 걸려 있고 종소리가 "딸랑 딸랑" 흘러나온다. 한데 구세군 군복을 입은 사관뿐 아니라 가사 장삼 차림의 스님 네분과 동자승 한분이 함께 서서 모금하고 있다. 원래 구세군 사관이 흔들어야 할 종을 예순을 넘긴 노스님이 열심히 흔들고 있다. 사관은 마이크를 잡고 오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우리 주변의 소외된 불우이웃을 위해 다함께 온정을 모읍시다"라고 외치고 있다. 스님들도 육성으로 외친다. "소외된 이웃에 온정을 전합시다." 행인들은 뜻밖의 풍경에 신기해 하면서도 온정의 손길을 자선 냄비에 담는다.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기독교 단체가 주관하는 대표적 자선행사인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운동에 불교계도 동참하고 나선 현장이다.

이 운동을 처음 착안한 것은 경기도 의정부시의 사찰 암자 모임인 불교사암연합회장 종명(宗明.63) 스님. 거리에서 종을 흔들던 주인공이다. 스님은 "기독교계에서 해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길거리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며 종교를 떠나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종명 스님은 지난주 말 구세군측에 이 같은 뜻을 전하자 구세군측이 흔쾌히 받아들여 결실을 보게 됐다. 스님은 이날부터 오는 19일까지 닷새 동안 동료 스님들과 이 곳에 나와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구세군측은 "이 같은 일은 구세군이 자선냄비를 운영하기 시작한 뒤 75년 만에 처음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우(朴秉雨.44) 구세군 의정부교회 담임사관은 "스님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선례가 없는 일이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었다"며 "그러나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종교단체가 서로 손을 맞잡는 것은 이웃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통일안국사 주지 지산(智山.52) 스님은 "종교단체가 서로의 벽을 허물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회 각 분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통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정부시 불교사암연합회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시내 곳곳에 '아기 예수 오셨네'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어 기독교의 명절을 축하해 줄 계획이다. 또 내년 봄에는 지역 내 종교단체들과 합동으로 불우노인 위안잔치를 열기로 했으며, 구세군측도 팔을 걷고 동참하기로 했다.

- 중앙일보 20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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