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n04c.gif 김진: 종교간의 갈등과 화해
(출처: http://religionstheology.org/main.htm)

1. 들어가는 말: 한국의 종교간의 갈등이 없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발간된 이후 세계 지성인들 사이에서 현 세계문명의 흐름을 "종교"라는 코드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하나의 중요한 관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책 이전에도 이러한 관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헌팅톤이 세계문명의 흐름을 종교문명의 만남과 갈등을 중심으로 바라본 것은 정치적 역학관계에만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 문제점이 있지만 이 문명 속에서 종교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각인 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간의 갈등이 단순히 개별 종교 차원에서 발생하거나 또 끝나지 않고 민족과 문명의 성쇠(盛衰)와 그 맥을 같이한다는 그 엄연한 역사적 진리를 되씹게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간의 평화 없이 세계의 평화 없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말을 역으로 풀어보면 현재 이 세계에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은 종교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종교간 갈등의 정치 사회적 갈등의 주요변수, 종속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종교간의 갈등 혹은 종교문명간 충돌이 이 세계문명의 발전의 저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하면 우리로 하여금 종교간의 갈등이나 충돌을 너무 거대담론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문제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종교간 갈등을 세계 큰 종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로 취급되거나 혹은 그 갈등이 마치 전쟁이나 민족 학살 등의 큰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곳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은 현재 종교인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갈등 혹은 내면화된 갈등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지니게 한다.

다른 한편 위에서 언급한 "종교간의 평화 없이 세계의 평화 없다"는 말을 할 때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의 근본원인을 종교문제로 환원시키는 단선적인 판단도 조심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그것이 '종교' 혹은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횡포이기에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종교사를 보면 오히려 정치가나 지배자들이 자신들이 소속된 종교 공동체들의 힘을 얻기 위해 모든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석, 적용하면서 권력을 위해 무비판적인 신앙열정을 도출하려는 시도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현재 흔히 종교간 갈등이라고 비춰지고 있는 북 아일랜드의 개신교-가톨릭 사이의 갈등이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 더 나아가서 미국과 중동국가들의 갈등은  이미 종교적 갈등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이고 사회, 경제적인 갈등으로 전이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적 갈등으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태도는 이 갈등의 원인이나 해결을 위한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판단과 노력보다는 자신이 지닌 종교적 신분에 따라 비이성적인 잣대로 판단하게 한다. 그러므로 정치 사회적 갈등을 종교적 갈등으로 위장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종교간의 갈등을 거대 담론화 시킨다든지 혹은 이 세계가 직면한 모든 갈등을 종교들간의 갈등으로 귀속시키려는 태도는 종교의 다원적 공존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온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간 갈등을 하찮은 문제로 취급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그래서 "21세기 문명사회의 갈등과 화해" 주제 또한 우리 이야기가 아닌 다른 나라의 종교상황에 어울리는 주제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우리가 겪는 종교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의 외형적 발전에만 몰두하면서 여전히 이웃종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잘못으로 발전하게 되고, 결국 이러한 태도는 한국 사회 속에서 성숙한 종교문화의 형성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 속에 많은 종교인이 있으면서도 질적으로 성숙한 종교문화를 향한 상호교류나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있지도 않은 종교간의 갈등을 일부러 끄집어내어 문제를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도대체 종교간의 갈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 그 자체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간의 갈등의 내용과 범주, 또는 형태까지도 면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갈등 해소를 위한 실천적 작업이나 방법론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은 그러한 문제에서 제외되었다는 자만(自慢)에 빠지게 될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 종교간의 갈등이 말하는 그 사회적 의미를 포착하지 않는다면 '종교간의 화해'라는 화두는 이론과 당위 영역에서 멤 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종교문화 속에서 "종교간 대화"라는 중요한 문제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해 그 열매가 미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 속에서 본 글은 '종교간의 갈등의 내용과 원인을 살펴보고 이것을 극복하는 종교간 화해를 위한 몇 가지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종교간의 갈등의 내용

종교의 세계는 그 본질상 사실은 '다툼' '갈등' 등등의 단어와는 상관없는 세계이다. 종교가 인간으로 하여금 참 행복과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방편의 역할을 가장 중요한 자기기능으로 여긴다면 '종교간의 갈등'이라는 말처럼 모순되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구원과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 일을 조장하고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현실 종교의 상황에서 '종교간의 갈등'이라는 표현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가 자신의 참 모습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나타내는 '구원' '해탈' '사랑' 인(仁)'살림', '상생', '평화' 등등의 단어는 오직 자신들의 종교를 설명하거나 이론의 영역에서 표현될 뿐 실천활동을 위해 육화된 정신(Incarnated-Spirit)으로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종교간의 갈등은 종교가 지니는 본연(本然)의 모습을 구현하지 못함에서 오는 필연(必然)의 양태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갈등이 빚어내는 끔직한 결과에 비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구호'는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즉 "종교의 본연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로서 충분하다. 그러나 그렇게 선언적인 강조가 통하기에 현실종교들은 종교의 순수성과 유연성 그리고 창조성을 상실했다. 현실 종교 내에 만연되어 있는 각종 권력과 밀착된 종교 구조(system)와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hierarchy), 그리고 자기 방어적인 폐쇄성 등등은 종교가 자신의 본연으로 회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간 화해나 평화를 향한 희망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그 희망은 종교의 본연의 모습 혹은 각 종교의 초기공동체가 지녔던 정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땅에 넘어진 자는 그 땅을 딛고 일어설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희망은 조직으로 종교구조에 물들지 않는 많은 신앙인들의 신심에서 발견하게 된다. 종교는 변질되었을지 몰라도 신실한 신앙인들은 종교 상층부의 논리나 싸움에 물들지 않고, 그 보다는 자기수련과 구원(해탈)을 위해 정진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종교간 화해가 함의(含意)하고 있는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통해 그들을 종교평화 운동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종교요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종교다.(Religion is Source and Remedy of Conflict)     


3. 종교간의 갈등의 차원

갈등(葛藤)의 또 다른 표현 '평화 없음'이다. 평화 없음의 상태는 상호관계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소통과 이해를 통한 평화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상호 무관심 속에서 갈등이 없다는 것을 평화의 상태로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의 해소를 위한 노력은 상호교류 없는 실재들 사이의 무관심한 병존(竝存)의 외형적인 평온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창조적인 만남을 통해 생산적인 만남과 상보(相補)를 가능하게 하는 평화를 지향한다. 어떤 한 종교(인)가 다른 종교(인)와 관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갈등이 없는 것을 자위하거나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상호 상관 속에서 평화를 지향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1) '종교인 사이의 갈등'으로서 종교간의 갈등

우리가 종교간의 갈등이라는 말을 쉽게 표현하지만 그 표현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실 그것은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연한 언명일 수 있지만 사실 우리의 인식 속에는 종교간의 갈등이 종교 전체로서의 기독교 와 불교간의 갈등,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등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마치 종교 그 자체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듯한 허상(虛像)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갈등의 속을 들여다보면 먼저 그 종교 안에 몸담고 있는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사회적 갈등을 종교적 갈등으로 간주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종교간의 갈등이 모두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대결구도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종교간의 갈등에서 보여지는 '종교적인 갈등'의 원인은 먼저 종교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종교간의 갈등의 요인으로 사회,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갈등은 근본적으로 종교인 자신들 사이에서 이미 배태되어 있는 갈등이라는 사실을 각인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간의 갈등의 책임이 바로 그 무엇이 아닌 바로 종교인 자신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첫 단계이기도 하다.

'종교인의 갈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그 하나는 종교인의 갈등은 자신이 종교인으로 갖는 정체성과 동시에 사회 정치적 존재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즉 자신의 종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세속세계의 가치기준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은 종교인들로 하여금 내적 갈등을 유발시킨다. 이러한 갈등의 극복을 위해 종교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본질을 가치판단으로 사회적 삶의 가치들을 극복해나가는 작업이 요구된다. 갈등이 극복된 평화스러움이 종교인들 내면에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계문명 속에서 종교가 갖는 화해를 위한 역할을 수행 할 수 없다.

종교인의 갈등이 지닌 두 번째 모습은 이 이웃종교인들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이 갈등은 교리적 신념과 종교적 신분의 상이점에서 비롯되어 점점 자신의 이해(利害)관계로 발전해 가는 현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집단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전해 나아가면서 종교간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이렇게 발전해 가는 종교간의 갈등은 더 이상 자신들의 종교가 지니는 본질적인 가치나 신념에 상관없이 갖가지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간 갈등의 내부에는 종교인들의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이 선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종교간의 갈등을 부추기던 종교 외적인 요인들이 제거된다하더라고 종교간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간의 갈등은 종교인들의 갈등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2) 종교 내 갈등(Intra-religious Struggle)내 갈등으로서 종교간의 갈등

종교가 발전해 나감에 있어 종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운동을 전개한다. 종교의 구심력적 운동과 원심력적 운동이 그것이다. 구심력적 운동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 본질,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종교 내적 동질성과 힘을 배양해 나가는 운동"이며, 원심력적 운동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이 세계에 발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간의 갈등은 바로 종교가 원심력 운동을 전개해 나갈 때 이웃종교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간의 갈등은 바로 종교 내부에서 펼쳐지는 구심력적 운동이 올바르게 전개되지 않을 때 보다 심각하게 발생한다. 즉 그 종교가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고 성숙하기 위한 운동이 변질되고 왜곡됨으로 말미암아 건강한 종교로 발전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이 부작용은 종교간으로 확대되어 갈 수 있다. 만약 한 종교 내에서 다양한 교리와 믿음, 그리고 실천적인 활동에서 그 종교가 추구하는 참(眞理)의 이름으로 갈등 없는 일치의 성숙함이 있다면, 그리고 그 종교 자체의 하나된 모습을 보고 배운 종교인이라면 이웃종교인과의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은 종교 내부의 갈등의 다른 측면이며, 종교간의 갈등 또한 그 종교 내 갈등의 또 다른 표출이다. 이것은 현실 종교에서 보면 보다 명확하다. 현재 이웃종교들과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 종교내부를 보면 더 많은 갈등으로 싸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집안 싸움'이 '바깥 싸움'의 보이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종교화해 운동은 바로 자기 종교의 정화(淨化)운동이 병행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종교간의 화해가 어느 특정 종교의 소위 '열린 종교지도자' 혹은 '개방적인 학자들'의 대화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종교의 정화나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지난 해방이후 진행되어 온 한국의 종교간 대화운동사를 살펴보면 보다 이러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종교의 원심력적 운동과 구심력적 운동이 상호 균형 있게 발전해나는 것이야말로 종교간의 갈등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4. 종교간의 갈등의 원인

위해서 고찰한 대로 종교간의 갈등은 단순히 기성화된 종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외적이고 물리적인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종교인과 그 종교의 내적인 영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종교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간의 갈등의 원인을 고찰함에서 있어서도 보다 총제적이고 세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럴 때 비로소 종교간의 갈등의 다차원적인 현상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의 부재(不在)

이웃종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가장 근본 원인 중의 하나는 그 종교에 대한 이해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이때 '이해의 부재'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웃종교에 대한 무지(無知)를 뜻한다. 현재 한국종교문화의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는 종교인들이 이웃종교에 대해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의 표현이다. 이것은 한국 종교문화 전반에 깔려있는 배타성과 보수성에 기인한다. 즉 한국의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신앙하는 종교에 대한 철저한 내적인 정체성 강화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웃종교에게 마음을 여는 경우가 극히 미미하다. '자신의 종교 이외는 구원이 없다'는 확신(기독교) '모든 종교의 가르침으로 자신의 종교 안에 있다'는 주장(불교) 등등의 견해들은 이웃종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선험적으로 차단시킴으로서 이웃종교에 무지를 불러온다. 길희성은 이러한 현상이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어떻게 만연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수많은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살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 공존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고 창조적 만남으로 전환하는 과감한 시도들이 두 종교가 이 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불자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이 상대방의 종교가 위대한 영적 전통을 가진 <세계종교>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 종교를 같은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로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태도 또한 부족하다. 특히 개신교와 불교 사이가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는 물론 두 종교의 지도층의 폐쇄적 사고와 경직된 교권주의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상대방 종교에 대한 무지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무지는 무시를 낳고 무시는 무지를 낳는 일종의 악순환이 지배한다."

이러한 종교간 상호무지는 어느 특정 종교 사이에서만 팽배한 것이 아니라 한국 종교문화 전반에 흐르는 문제이며 결국 이러한 이웃종교들에 대한 무지가 종교간의 갈등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 만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해라는 말이 종교적인 영역에서 사용될 때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종교적 영역에서의 이해란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인식론적으로 알아 그 뜻을 비로소 파악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가 타자의 가르침이나 주장을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니카(R. Panikkar)는 이러한 이해가 갖는 파격적인 측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는 것처럼 -이것이 참 이해인데- 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 사물에 대한 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없고 그의 입장을 결코 판단할 수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 입장을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상호모순 되는 말이다....내가 한 문장을 이해할 때 그것은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진정으로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해한다'는 말의 정의(定意: Definition)상 진리만 이해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교적 차원에서 이웃종교인과 이웃종교의 신앙이나 주장을 참으로 "이해한다"라는 말은 그것을 이미 올바른 것으로 인정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해하는 그 진리로 귀의하고 그것을 진리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Verstechen heisst also, sich zu der Wahrheit bekehren und bekennen, die man verstechet) 이것은 '이해의 차원'이 곧 그 상대방의 진리의 수용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이해가 가능한 이유는 "상대방을 더 이상 주객의 이분법(Subjekt-Objekt Spaltung)에서 벗어나 그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중지하고, 그를 내 자신 스스로 체험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에 대한 혁명적인 발상의 관점에서 볼 때 이웃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철저한 신앙행위 이다. 종교적 차원에서의 깊은 상호 이해가 진행된다면 종교간의 갈등은 그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2) 소통(Communication)의 부재

위에서 언급한 이해의 부재는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되고 또 귀결되기도 한다. 현재 한국에서 종교간 만남이 극히 일부 종교지도자들 중심으로 사안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종교간의 소통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소통의 부재는 만남과 대화의 부재로 구분할 수 있다. '종교간의 만남'이란 종교인들끼리 단순한 형식적인 접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안에 있는 진리의 대면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히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공간에서 이웃종교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종교간 만남에 대한 의미부여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간의 만남은 상호 다른 종교와 종교가 만나지고 그 만남을 통해 상호 종교적 체험들이 교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만남은 단순이 얼굴을 마주보는 만남(See)이나,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만남(meeting)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만남(encounter)이다.  

'종교간의 대화'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질 필요가 있다. 우선 종교간의 대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들이 갖고 있는 종교간 대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종교간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2)"종교간 대화는 불가능하다" (3) "종교간의 대화는 이론활동이다" (4) "종교간의 대화는 정체성을 변질시키는 혼합주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5) "종교간의 대화는 종교 내에 국한 주제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종교간 대화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 때문에 종교간의 소통은 극히 일부 종교인과 학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인 의미가 표출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는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거나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심화시킨다. 또한 종교가의 대화는 다양한 종교들의 진리와 믿음이나 가치들을 하나로 통합시켜내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간 대화는 또한 단순한 종교인들 사이에서 말(words)의 주고-받음(교류)이 아니다. 종교간 대화는 서로 안에 있는 진리로서의 로고스(Logos)가 서로의 가슴으로 '파고드는'(dia-) 것으로서 'Dialog'이다. 이런 종교간의 대화는 단순히 종교인의 활동의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종교가 존립하기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종교간의 대화는 서로의 종교 안에 있는 진리를 바라보는 행위(Waheitssicht)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간의 대화의 목적은 단순히 갈등을 조절하고 해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종교간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종교간 대화의 목적은 바로 이웃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진리를 보다 온전하게, 더욱 깊게 파악하는 데 있다. 만약 종교간의 갈등구조를 전제하고 종교간 대화를 이러한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만 인식한다면 종교간 대화의 근본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만약 우리가 종교간 대화의 궁극적 목적을 상호 진리의 풍요로운 경험에 두지 않고 단순한 이해와 공존을 지향한다면 종교간의 대화는 발전할 수 있다."

사실 종교간의 소통은 종교가 존재하는 한 보이든 보이지 않는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아무리 종교들 사이에 외형적인 소통이 전무하다고 하더라도 한 사회 속에서 다 종교가 존재하는 한 보이지 않는 소통과 교류는 불가피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각종 매체가 발달한 상황에서 종교간의 소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것은 한 사회 속에서 종교는 다양한 문화적 접촉을 통해 발전하며 성장해 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오해와 편견을 동반할 수 있는 종교간 무의식적인 소통이 지니는 위험을 사전에 막고 대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교류를 통한 소통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종교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으로 발전, 성숙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종교간 소통은 쌍방적임과 동시에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의 종교가 서로 교류됨을 의미한다.  

3) 종교적 다양성 인식의 부재

현상적으로 볼 때 전통적으로 한국은 다양한 이웃종교가 공존해오고 있는 종교 다원적 사회이다. 한국 뿐 아니라 기독교 중심의 서구사회도 이제 다양한 종교들의 포진으로 종교지도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이제 종교의 다원성은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특히 기독교의 유입 이후- 한국의 종교들은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무시하거나 무관심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표현이나 교리 혹은 실천행동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틀린 것'이 규정하려는 유혹을 받아 왔다. 종교간의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종교가 지니는 역사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확정하려는 무리한 요구에서 빚어진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정신이 바로 관용(tolerance)의 정신이다. 만약 우리가 이웃종교의 다양성을 관용의 정신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오늘날 많은 종교간의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을 제거한 것이다. 관용정신의 필요성에 대해 뚜웨이밍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순과 갈등이 상호 종교 및 내부의 종교적 관계에서 심화함에 따라, 전혀 다르고 상호 비교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종교들 간의 관용이 필요함은 명백하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거나 참을 만한 의지 없이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종교적 비관용에 의해 야기된 상존하는 위험한 상황들은 폭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용은 평화적 공존에 대한 최소한의 요청이다. 급진적인 상대방의 타당한 받아들임은 수동적 저항의 심리를 넘어 일어나는 관용을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종교적 관용을 불러일으키는 인식의 변화는 종교 다원성을 현대 사회 속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하고 인정하는 '현상론적 종교다원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는 그 본질적으로 다원적이라 입장인 '본질론적 종교다원주의'에서 보는 새로운 실재 인식론을 수용할 때 가능하다. 즉 현재 펼쳐지고 있는 종교의 다원성이 단순히 이 시대의 현상이 아니라 모든 실재의 본질구조나 생성발전의 형태가 다원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이웃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관용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들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임을 알게 될 것이다.
 

5. 종교간의 갈등을 넘어서는 화해의 길

1) 종교인으로 공동의 정체성 회복

앞에서 지적한 대로 종교간의 갈등의 원인의 근본기저에는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것'으로 정죄(定罪)하는 오류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어서 종교인으로 지니는 공통된 정체성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이웃종교인을 바라볼 때  '종교인으로서 정체성(Identitaet)과 종교적 신분(Identification)'을 구분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양자를 혼돈하게 되면 외형적 종교적 신분의 모습으로 그 사람의 종교인됨을 판단하고, 또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기독교인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사람이 훌륭한 종교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기독교인, 불교인, 천도교인 등등의 종교적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서 공통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함으로 이웃종교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를 상실하고 있다.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으로 발전해 나아가려면 다양한 종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종교인의 공통된 정체성을 각인 할 필요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 사람의 종교인이기 이전에 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공유한다면 서로 간의 갈등은 많이 극복 될 수 있을 것이다.  각 종교들이 사용하는 제의나 신앙체계 그리고 용어나 개념이 상이하지만 궁극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공유해가야 한다.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각 종교의 다양한 모습을 다름으로 인정하되 그 안에서 발견되는 공통 정체성에 대한 신뢰 속에서 일치를 향한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2) 종교간의 형제우(Friendship) 형성

종교간의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종교인들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면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이웃종교인들과 우정(友情)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평신도와 성직자)과 조직적인 차원(교회, 법당, 교당 등)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부 과격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법당훼손, 단군상 파괴 등등)은 이웃종교에 대한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들인데 이러한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호간의 형제애가 확산되어야 한다. 이러한 형제우는 다양한 형태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특히 성직자들 사이에서 만남은 평신도 사이의 만남으로 확산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기관별로 진행되는 상호교류를 통해 따뜻한 인간애가 조성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우 한 동네에 다양한 종교기관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장점으로 살려 한 마을, 동네에 있는 각 종교들간이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기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우정이 싹트기 위해서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알아 가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웃종교들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들의 (종교적) 유산, 그들의 언어와 관습을 인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들의 종교들을 전달해 주는 정확한 규정들이나 이 사람들의 삶에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종교적 기도나 개념들에 대한 통찰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이웃종교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데 '영적인 사귐'(Koinonia)은 불가능하다. 서로 알아가게 되는 과정에서 이웃종교의 진(眞), 선(善), 미(美)를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종교가 가지고 있는 선과 진리를 단순히 인지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것을 실제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다른 신앙체계에 대한 인지와 종교 유산들에 대한 상호인식과 존경 그리고 관용이야말로 종교간 화해를 위한 지름길이다.

3) 실천적 활동을 향한 연대(Solidarity)와 협력

종교간의 우정을 통해-또는 우정을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의 실천적인 활동을 위한 연대는 종교간의 갈등을 사전에 막는 중요한 활동이 될 수 있다. 종교간의 만남이나 대화가 단순히 종교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족적인 회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 사회 속에서 주어진 종교인의 실천적 활동을 위해 연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공동의 과제를 위해 연대하는 활동은 종교간 갈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하다.  

협력을 위한 종교간의 연대는 상호 신뢰를 요구한다. 신뢰는 이웃종교에 대한 신뢰 이전에 자신의 신앙전통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신뢰 없이 남을 신뢰할 수 업다. "이 신뢰는 어떤 형식 속에서 전통에 속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맹목적인 고집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는 또한 전통의 본질에 속한 것을 쉽게 포기하는, 그래서 자신의 고유한 종교적 전통의 정체성을 배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단호하고도 개방적인 신뢰"야말로 연대를 위한 출발점이다. 종교간의 협력과 연대는 근본적인 진리에 대한 신뢰에서 싹트는 상애(相愛)의 열매이다.

이러한 신뢰 속에 종교인은 세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공동으로 협력하고 연대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평화운동을 실천적인 연대감을 형성해 나갈 때 종교간의 갈등은 더 이상 종교들의 생명력을 손상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세 가지 방향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첫째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종교가 좌지우지 될 경우 그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종교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둘째 이웃종교에 대한 비방이 훼손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아울러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이웃종교를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발언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셋째, 각 종교들은 종교교육 커리큘럼에 필수적으로 이웃종교 이해를 위한 과정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은 이웃종교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는 하나의 길이다. 이를 위해 매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종교간의 협력을 위한 다양한 모임이 형성되어야 한다. 한 지역 안에서 모임, 젊은 평신도들의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나 사찰, 교당의 문을 활짝 개방해야 한다.
 

6. 나오는 말

오늘 종교인이 처한 세계는 종교인들로 하여금 분단과 갈등, 전쟁 등의 혼란의 시대에서 통일, 평화, 생명의 일꾼으로 나서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가치의 사회적 실현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종교가 이러한 요구에 부합된 종교보다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거나, 폭력을 합리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변질된 종교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종교상황을 돌아볼 때 외국의 경우처럼 큰 규모의 폭력과 비극은 발생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종교간의 갈등의 씨앗들이 발아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화해의 활동을 어느 특정 종교나 종교지도자들의 행동영역으로 간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적인 종교인으로 삶의 영역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치로 수용해야 된다. 자신의 종교 내적 관심과 열정에만 몰두하는 삶으로는 자신의 종교의 깊이에 다다를 수 없으며, 또 이처럼 다종교가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이웃종교와 연대하지 않는 종교나 종교인은 사실은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화해의 활동은 각 종교인의 삶에서, 조직의 사회적 실천 속에서, 그리고 종단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열전과 냉전 이후, 평화로운 공존 이후,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갈등에 있어서 구조적인 공존과 평화를 실현하는 협력을 통해 자신을 헌신하는 종교들을 필요로 한다. 종교간의 정보교환, 통교 그리고 협력이라는 긴밀하게 엮어져 있는 그물이 필요하다."

종교간의 갈등은 작은 문제에서 시작해서 큰 문제로 발전해가고, 개인의 내면적 갈등에서 비롯하여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으로 번져간다. 우리가 이웃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한 종교간의 갈등은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간 갈등의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통일을 위한 하나의 평화운동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종교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화해운동 없이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통일 후 북한지역에서 발생할 종교간의 갈등은 더욱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된 민족국가를 내다볼 때도 종교간의 갈등을 넘어선 협력과 대화의 문제는 시급한 현실 문제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의 다종교 사회로서의 특징을 창조적으로 수용함으로서 국내적으로는 종교간 성숙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세계사적으로는 현재 문명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간의 갈등과 분쟁 해결을 위한 혜안과 방안을 위한 모범적인 전례가 창출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울타리 없는 신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