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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평화 (1): 홀로 있기 (2003/3/8)

살아 움직이는 평화 (Living Peace) - 명상과 활동의 영성

- 존 디어

1. 홀로 있기

평화로운 삶은 아침마다 새로이 시작된다. 우리는 깨어 있는 가운데 숨을 쉬면서 생명과 지금 이 순간을 선물로 받는다. 위대한 영적 전통들은 자기 자신을 평화의 영 중심에 놓아두는 시간을 날마다 마련하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자기 자신을 평화로운 홀로 있기 속으로 데려 갈때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말씀하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태오 6.6) 홀로 침묵 속에 앉아 마음의 소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워 익힐 때,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실 수 있도록 성스런 공간을 만들어 드린다. 역설적이게도, 예수께서 권하시는대로 우리 안에 있는 고독한 장소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홀로 있기(Solitude)는 흔히 좋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른바 외로움(loneliness)과 혼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홀로 있기를 자신의 영적 성숙과 내적 치유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커다란 축복으로 경험한다.

왜 우리는 홀로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하고만 있는것을 싫어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홀로 있을 때 우리 자신의 두려움, 불안감, 찢겨진 상처, 증오, 내적 폭력 따위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홀로 있는 것이 겁나게 마련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깊은 외로움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그러나 참된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내면의 마귀들(demons)을 맞상대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사랑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고인이 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그 과정을 몸소 잘 보여주었다. 예일과 하버드에서 신학교수로 일하고 토론토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사목 활동을 하는 동안 나우웬은 매일 아침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을 통해 수많은 내적 갈등을 다스릴수 있었다. 수년에 한 번씩은 수도원에 들어가 6개월간 피정을 했다. 그는 일기와 저술에서 자신이 겪은 내면의 갈등들을 모두 기록했고 그것들을 다스리는 데 기도하면서 홀로 있기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설명했다. 1996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 무렵에도 그는 숱한 내적 투쟁을 겪어야 했지만 그거나 그것들을 통해서 깊은 차원의 자기 이해와 평화에 이를 수 있었다.

혼자 앉아서 느껴지는 느낌들을 모두 알아차리고 평화의 영을 끌어안을 때 우리는 깊게 숨을 쉬면서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는 동안 천천히, 헨리 나우웬이 그랬듯이,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과 혼란스러움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마귀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때 그것들은 떠나가고 마침내 우리는 내면의 자유를 획득한다. 그러는 동안 자기 자신과 친구로 되며, 홀로 있기가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를 비로소 알게된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모두 홀로 있기의 가치를 제대로 알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혼자 있었다. 그 뒤에도 군중을 떠나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복음서에는 혼자 기도하러 한적한 곳을 찾는 예수의 모습이 자주 기록되어있다. 홀로 있으면서 하느님을 만나뵙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예수는 군중을 자비로 대하며 사랑으로 진리를 가르치고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가운데 정의를 추구하며 비폭력으로 악에 항거할 수 있었다. 그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홀로 하느님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간디 역시, 자기 내면에 평화를 이룰 수 없었다면 3억 5천만 인도 민중에게 평화로운 삶을 권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50년 가까이 간디는 매일 아침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새벽마다 3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홀로 있기를 실천함으로써 그는 자기를 바라보는 수많은 군중을 지혜롭게 이끄 수 있었다.

토마스 머튼은 홀로 있기의 깊이를 탐색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1941년, 세계의 폭력을 철저히 거부하고 게세마니 수도원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기도와 묵상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1968년에 뜻밖의 사고로 죽기까지 27년동안, 머튼은 자기 말로 '전적인 내면의 변모'를 추구하여 자기 내면을 깊게 깊게 탐색하였다. 더욱 철저히 홀로 있고자 하여 수도원에서 숲 속의 은둔처로 들어갔을 때, 역설적이게도 그의 은밀한 기도는 그로 하여금 평화를 이루는 자신의 지혜를 세상 사람들과 나누게끔 부추겼다. 핵무장 경쟁, 시민의 인권운동,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이 고독한 수도자는 평화를 위한 예언자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머튼은 이렇게 썼다. "홀로 있기의 깊음으로 나는 형제 자매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온유함을 발견한다. 홀로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더 많은 사랑을 그들에게 줄 수 있다. 고독과 침묵은 형제와 자매들을, 그들이 하는 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나를 가르친다." 머튼은 자신의 고독한 삶을 그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여겼다. 1960년대의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평화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함께 나서서 일할 것을 권했을때, 머튼은 더욱 깊숙히 물러나 홀로 있으면서 동양의 명상법을 배우고 내면의 평화 속으로 파고 들었다.

머튼은 또 이렇게 썼다. "명상가들이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만일 당신이 과감하게 자신의 침묵속으로 들어가고 겁없이 자신의 홀로 있기를 발전시켜 나가며, 당신과 함께 당신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다른 고독한 자들과 그 '홀로 있기'를 나눌 때, 그 때 당신은 언어와 설명을 초월하는 경지를 이해하는 능려과 빛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 밖에 없다. 그것은 당신의 깊은 중심에서 하느님의 영과 당신의 깊은 자아가 합일을 이루어 결국 당신과 하느님이 한 영(One Spirit)임을 깨닫는 경지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이 나약한 존재요 그래서 창조주를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음을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을 머튼은 발견했다. 홀로 있을때 우리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느님을 이용할 수 없다. 더 이상 힘과 성취 또는 지배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유지할 수 없다. 홀로 있기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빈곤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며 하느님 앞에서 진실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우리가 품고 있는 환영을 꿰뚫어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한다. 자기 자신하고만 있는 홀로 있기에 머물 용기를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날마다 혼자 조용하게 있는 시간을 가지고자 나름대로 애써보았다. 지난18년간, 해마다 평화의 하느님을 찾는 8일간의 침묵 피정을 가졌다. 어떨 때는 홀로 있기의 평화를 경험하고자 여름 한 철을 혼자서 보내기도 했다.

매일같이, 자신을 대면할 때마다, 개인의 평화를 유지하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임을 나는 기억한다. 내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 마당의 폭력을 새로이 알아차리면서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평화를 이루고자 다시 애를 써본다.

1982년,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나를 지도한 수련장이 내게 예배실에 들어가서 "너는 고요히 있어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는 구절을 묵상하며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으라고 했다. 한 시간이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렇게 앉았다가 저렇게 앉았다가, 좌불안석으로 자세를 바꾸면서 마음도 쉴 사이 없이 돌아다녔다.내 속에 있는 평화를 발견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어수선함이 가라앉기 시작했다.그렇게 몇 주간이 지나자, 홀로 기도하면서 거기서 평화로 가는 길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몇 달 뒤에 나는 로욜라의 성 이나시오 '영성수련' 30일 침묵 피정을 처음으로 가졌다. 그 기간에 나는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다(아침마다 수련장과의 짧은 대화를 가진 것 말고는).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젼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메일을 받지도 않았다. 그 대신, 밤으로 낮으로 완벽한 침묵 속에서 오직 복음서를 묵상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전혀 새로운 리듬이 내 앞에 펼쳐졌다. 완전히 다른 영이 나를 사로잡았다. 마치 느린 동작(slow motion)으로 걷는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졌다. 나 자신과 남들을 향한 깊은 평화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 평화가 내게 가능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햇다.

30일 침묵 피정 속에서 나는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고, 이 세상의 지독한 불의와 잔혹스런 현실을 좀더 분명하게 보면서 뿐 아니라 평화를 이루시는 하느님에 의하여 그것들이 바뀌어가는 것을 또한 보게 되었다. 그 극적인 홀로 있기 경험은 나를 이끌어 평화스러운 삻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했고 아울러 정의를 위한 투쟁에 전보다 더 용감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내게 기도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비로소 "침묵의 기도가 내 가장 큰 무기다"라는 간디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평화의 하느님께 온전히 눈길을 모을때 우리는 변화되고 그래서 세계 또한 변화되는 것이다.

방에 있거나 수도원에 있거나 교회, 학교, 공원에 있거나, 어디에 있든지 나는 날마다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 성스런 공간에서 하느님은 내게 남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또한 그런 일이 없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홀로 있기'는 평화를 향한 내 여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가 되었다.

홀로 있으면서 하느님의 평화를 끌어안는 일에 실패했을때, 나는 이 세상의 저속한 폭력과 혼란스러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만다. 그 때 나는 내가 절연되어 흩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면의 평화를 느끼지 못하고 그리하여 모든 희망을 상실한다. 나 자신만을 의존하려 할 때, 나는 곧장 넘어지고 만다. 세상의 공포가 나를 절망으로 가득 채운다. 나를 둘러싼 폭력이 내 안의 폭력에 불꽃을 당기고 그러면 나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다. 홀로 있기와 평화로운 명상의 부재는 나를 이끌어 의심, 자기-연민, 쓸쓸함, 자기-증오, 무의미로 데려간다. 그것을 알기 전에는, 세상에 희망이란 없고 무조건적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며 평화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고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고 정의를 이루기 위한 내 노력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러주곤 했다. 자신과 남을 참고 기다려주지 못했으며, 분노와 후회에 몸을 맡기고 인생을 수고스런 짐으로만 여겼다.

'홀로 있기'의 은총이 이 모든 것을 바꾸어 주었다. 그 고요하고 집중된 공간에서 나는 변화되었다. 홀로 있기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직면하게 하면서 동시에 밖으로 나가 내 가슴을 은총에 열어놓도록 해주었다. 내가 하느님의 평화스런 현존을 향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충만해진다. 믿음, 소망, 사랑이 다시 살아난다. 나 자신과 세계 위로 올라가 하느님의 평화를 느낀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평화를 겪음으로써 나는 세상으로 들어가 남들을,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그들과 평화를 이루는데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홀로 있기는 우리를 세상의 광란에서 뽑아내어 비폭력으로 모여들게 한다. 침묵 속에 홀로 있기는 우리 내면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잠재우고 하느님께서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게 한다. 홀로 있기는 하느님께서 우리 내면의 전쟁을 종식시키실 공간과 시간을 그분께 드린다. 홀로 있기는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평화롭게 지내는 법을 배우게 해준다.

토마스 머튼이 가르쳐준대로 홀로 있기의 가장 큰 역설은 하느님의 성스런 현존 안으로 혼자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만큼 더 다른 사람들한테로, 인류 전체한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점이다. 홀로 있기는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과의 두터운 연대(Solidarity)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그 평화스런 변화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에 자비로운 사랑으로 접할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이다. 실로, 홀로 있으면서 맛보는 평화는 인류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깊은 평화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 이진경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길벗과 모은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