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2005/4/2)
 

저는 신약성서에서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은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생명이라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그처럼 분명하게 <계시된> 교리를 놓고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의 많은 단언 속에 그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이 있습니다. 당신의 주장에는 누구나 한 인간 생명의 운명과 대면할 때마다 느끼는 고민과 불안이 나타나 있으니까요. 가톨릭 신자들과 비신앙인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세속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은유가 하나 있습니다. 얼굴의 은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얼굴에 대해서 말한 철학자로는 우선 레비나스가 있습니다. 그는 마치 물리칠 수 없는 간청을 이야기하듯이 간절한 말들을 사용해서 타자의 얼굴을 논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탈로 만치니가 자기의 유언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저서 『얼굴들이 돌아오게 하소서』에서 한 말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우리 스스로를 성화(聖化)하기 위한 이 세계는 존재에 관한 가치 중립적인 이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자연 현상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세계는 얼굴이라고 하는 이타성(利他性)의 중심들이 존재하고 잇다는 사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세계도 존재한다.'


- 추기경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움베르토 에코의 질의에 대한 응답. 움베르토 에코,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저, 이세욱 번역, 무엇을 믿을 것인가, 열린책들, 1998, pp. 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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