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2006/5/27)
 



© Suk Hoon Han                                                                                                                                                                                 


[요나탄님께서 방명록에 남겨주신 금인숙님의 글을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출처: 금인숙, 『신비주의 - 요가, 영지주의, 연금술, 수피주의』, 살림지식총서 219, 살림, 2006]


신비주의의 변질화

신비체험 이전의 입문과정과 신비체험 이후의 해석과정에서는 자아의 영향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자아의 작용에 대한 자기관찰과 자기성찰은 신비체험의 추구자에게 필수적이다. 자아강화의 욕구에 넘어가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정신과 영성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공동체의 붕괴와 세계의 파괴로까지 나가게 된다. 그 증거는 수없이 많다.

첫째, 사이비 종교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밖에서 찾는다. 즉 외부의 대상에 집착하여 끌려가는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대상은 돈이다. 인간은 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권력에게도 한없이 끌려가고, 명예와 명성을 쫓기도 한다. 미모의 이성에 대한 집착도 대단하다. 물질이나 권력, 지위나 명성,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대상에 대한 집착은 대단히 크고 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 있으니, 우리 내면의 신성을 투사할 대상에 대한 집착, 초월성을 지녔다고 여기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다. 인간의 본래적인 자기, 내면의 신성으로 돌아가려하지 않는다. 반대로 신을 찾았다거나, 신과 만났다거나, 신과 하나가 되었다거나, 스스로 신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에게 끌려가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기대어 행복을 얻고자 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나 초능력을 자아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교단을 형성하여 세력을 확대시켜 나가는, 이른바 교주가 되기 십상이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은 하나 같이 추종자의 신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성을 부각시킨다. 인간정신을 불모화, 노예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정을 파멸시키고 사회를 파괴한다.

둘째, 기존의 제도화된 세계종교들이다. 세계종교의 원조로 알려진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신인합일으 체험가들이었지 종교의 창시자는 아니었다. 종교지도자나 성직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은 누구나 신’이라는 진리를 각성한 사람들이자, 신과 하나되는 길을 몸소 보여주었던 성자(聖者)들이었다.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모두가 스스로 신과 하나되고 이웃과 하나될 수 있도록 섬김과 사랑으로 돕는 데에 그칠 수 있었던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교파나 종파의 설립에는 어떤 관심도 없어서 교회나 사원을 세우지도 않았고, 교리체계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한 것들은 신인합일의 체험이 불완전하였거나, 아예 체험하지 못하였던 제자들, 또는 체험은 하였으나 자아의 작용에 대한 성찰이 불충분하였거나, 아예 자아의 욕망에 충실하였던 제자들이 스승들의 사후에 만들어 제도화한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의 간곡한 부탁이나 경고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구원자나 구세주로 신격화하였다. 스승의 가르침 중에서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발췌하여 왜곡하여 교조화하였고, 여러 수행법의 하나에 불과하였던 것을 유일한 것으로 절대화하였다. 그 결과로 제도화된 세계종교는, 선악의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해석체계를 확립하였다. 모든 제도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종교들은 죄의식과 두려움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한다. 신도들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신이 되도록 돕는 것은 고사하고, 신과의 올바른 관계조차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종교의 폐해는 개인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타종교를 배척하고 적대시하여 사회의 분열과 분쟁을 야기한다. 게다가 사회의 유력자, 가진 자, 그리고 정치권력과 긴밀하게 결탁되어 있기 때문에 신의 이름으로 사회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사회모순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억압구조의 온존과 강화에 기여하는 역할은 하나의 국가사회 내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들 간의 권력관에서도 작용하여, 신의 이름으로 타국을 악으로 규정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신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국민을 죽임과 죽음의 전쟁터로 몰아넣고, 타국민을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것이다.

셋째, 상업주의이다. 1970년대 초반 컴퓨터회로의 집적화로 본격화된 정보혁명으로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여겼던 정신노동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내장된 컴퓨터가 대신하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필요와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종식시키고, 만인이 자기실현으로서의 자유노동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조성과 기반조성의 잠재력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실제의 정보기술은 그 반대로,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데에 악용되고 있다. 최첨단 컴퓨터과학, 통신기술, 경영혁신은 인간을 필요노동의 고역으로부터 해방시켜, 자기계발에 몰두하기에 충분한 자유시간과 쾌적한 환경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로 대다수 세계민을 점점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생활방식과 표현양식으로서의 동질화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문화의 세계화로, 자율성이나 자기실현과 같은 도덕적 가치마저도 상품화하고 있다.

제조상품의 공급과잉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문화의 상품화 단계를 넘어서 체험의 상품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자본에게 신비주의는 엄청난 상품가치를 지니고 있는 보고이다. 자연치유력과 면역력의 활성화,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 자율신경의 조절기능과 간 기능 강화, 집중력의 증진, 추진력과 능률의 증대, 안정감과 자신감의 회복, 잠재력과 창조력의 발휘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를 개인들의 경쟁력 강화상품으로 개발하는 상업주의는, 존재의 근원인 우리의 영성까지도 교환가치로 수단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또는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자 모든 것을 도구화하고 사물화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자아이다. 자아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이용으로 인한 왜곡과 변질은 신비주의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아나 에고의 허구성을 간파하는 자기각성을 통하여 내면의 순수의식으로 돌아가 신과 우주와 하나되는 신비주의 본질의 실현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성인과 범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성자로 추앙받는 사람이라도 매 순간 깨어있을 수는 없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아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가 하면, 자아의 욕망에 지배되고 있는 일반인에게도 때때로 몰아나 망아의 순수하고 지고한 순간은 찾아오기 때문이다.

- 금인숙,  pp. 15~19


영지주의

우파니샤드의 요가사상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힌두 신비주의의 동양적 변형태라고 한다면, 서양적 변형태는 영지주의(Gnosticism)이다. 힌두사상이나 불교사상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도 외재적인 절대자로서 질투하고 시기하며, 격노하고 복수하며, 처벌하고 응징하며, 대적하고 파멸시키는 인격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지주의자에게 진정한 신은 자기의 의지대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지배자가 아닌, 모든 존재의 근원자로서의 순수의식이자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존재의 원천이다.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빛, 일자(一者), 신성인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특정의 시대와 장소에 한정된 사회와 세계에 갇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우리들 각자가 참으로 어떤 존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진정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참으로 해야 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자기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하느님을 체험으로 아는 것이다. 우주처럼 광대하고 심연처럼 깊어서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는 무한자이고 완전자인 신의 존재는, 이성과 언어의 논리력이나 분석력에 의해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신과 하나되는 신비체험, 내면의 신성으로부터 저절로 나오는 통찰에 의해서만 체득될 수 있다. 그래서 영지(靈知)라고 하는 것이다.

‘영지’로 번역된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아는 것’, 그것도 직관과 영감에 의한 직접적이고도 개별적인 신비체험에 의해서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노시스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의 “영혼 안에서 그리고 삼라만상 안에서 현존하는 하느님을 체험으로 아는 것이다.”

이러한 그노시스의 의미와 가장 잘 부합하는 우리말은 아마도 에고의 허구성과 ‘참나’의 부처성을 깨닫는, 즉 무아(無我)에의 지혜를 뜻하는 불교의 개념인 ‘반야’(般若)일 것이다.

제임스의 신비주의 개념에서와 같이 내 안에 있는 신의 현존체험은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으며, 논리로 설명할 수도 없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차원의 앎이다. 또한 집요하게 신성의 빛을 가리고 가두려는 에고의 어두운 장막을 스스로 정직하게 대면하고 거두어내야 하는, 힘들고도 외로운 자기탐험의 과정이다. 따라서 자기의 신성체험, 순수의식을 추구하는 영지주의는 내면에 거하는 신 이외의 어떠한 외부의 권위나 지도자, 이론이나 도그마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영지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의 본질인 순수의식으로 돌아가 신과 하나되는 자기각성과 자기실현이다. 자기각성과 자기실현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각자 단독으로 성취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개개인의 기질과 경험은 아주 고유하고 상이하다. 서로가 무한히 다른 만큼, 신성체험에서도 무수한 독특성과 다양성이 존재한다. 개별자의 단독성과 차이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은 어떤 형태의 차별제도나 위계조직도 용납하지 않았다. 엄격하게 준수하였던 만인평등주의와 만인사제주의는, 로마 지배계급의 제도종교로 변질되고 있던 당시의 기독교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2세기에 혹독한 박해를 당하였던 기독교가 4세기에는 박해자로 뒤바뀌어 영지주의자를 이단으로 몰아 잔혹하게 탄압하였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2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유럽의 전역을 풍미하였던 철학운동․종교운동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정확한 기원과 역사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의 하나는 영지주의의 사상 체계가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영지주의를 인도 요가 사상의 변형태라고 언급했는데, 힌두나 불교사상만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기원전 334~323)으로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에 노자의 도가사상, 페르시아의 배화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사상, 그리스의 플라톤철학, 유대 신비주의, 이슬람의 종교이념, 스토아 학파의 범신론, 초기 그리스도사상 등의 여러 전통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우주와 세계, 인간과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탁월한 지혜가 융화되어 형성된 제설혼합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서구 정통파 교회조직의 교부들에 의하여 영지주의 사상이 이단으로 철저하게 왜곡되어 왔다는 것이다. 1945년 남부 이집트의 니그 함마디(Nig Hammadi) 지역에서 4세기경에 만들어진 영지주의 고문서가 발견되어 1980년에 영인본으로 완간되기 전까지는 영지주의의 진면목이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에 관한 문헌은 고작해야 정통파 교부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반대급부로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비난한 글들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문서와 문헌은 탄압받는 과정에서 불태워지거나 분실되었다. 극히 일부만이 은닉되어 비밀리에 전승되거나 사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영지주의는 기원전 1세기경에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수용되었던 지배적인 이념체계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듯이, 모든 종족, 모든 사회, 모든 종교가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영지주의는 입증하고 있다. 그야말로 놀라운 인간정신의 보편성이다. 성서라고 예외이겠는가? 성서의 여기저기에 녹아들어 있는 영지주의 통찰과 지혜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시기독교의 형성시기에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 교단의 지도자들에게는 영지주의가 자신들의 종교활동과 직접적인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는 신앙으로 비쳐져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받는 4세기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영지주의는 정통파 교부들에 의하여 논박당하고 거세당하게 된다.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그리스도교의 지배적인 믿음이었던 윤회사상마저 이단으로 금지하게 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으로 성서의 내용 중 ‘전생’ ‘환생’과 같이 윤회의 의미를 내포하거나 암시하는 구문․용어는 모두 삭제하는 작업이 단행되었고, 영지주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도 자행되었다. 525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에는 단순한 윤회설의 지지자들마저도 이교도로 낙인찍어 박해하였다.

그러나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는 결코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생적으로 재형성되어 퍼져나갔다.

영지주의 사상의 중심지는 11세기의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였는데, 로마교회 정통파를 훨씬 능가할 정도로 강력해지자, 1209년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십자군을 파병하여 무차별적으로 살육하였다.
당시 유럽 전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자 정치ㆍ경제, 사회ㆍ문화, 문명과 기술에서도 가장 선진지역이었던 남프랑스 알비(the Albigens)의 주민들도 모두 이노센트 3세에 의해 대량학살되었다. 높은 문자해독률을 기록했던 알비의 지역민은 바티칸의 금지령을 어기고 성서를 애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비 주민들의 학살로도 영지주의가 근절되지 않자, 교황은 차후 500년에 걸쳐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화형에 처한 종교재판을 신설하였다. 그리하여 전 유럽을 상대로 내부의 적인 이교도와의 십자군 전쟁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지주의를 그리도 가혹하고 잔악하게 탄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영지주의 신념을 고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개인 존중주의이다. 깨달음과 신인합일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자기각성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으므로, 교회나 교리와 같은 외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권위주의 종교조직에 의하여 절대화되고 우상화되어버린 신은, 더 이상 인간을 해방하는 진정한 신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고 속박하는 또 다른 권력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 번째 이유는 만인사제주의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진화(眞化), 성화(聖化)의 정도에 따라 누구나 조력자로서의 사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직업적인 성직자를 필요로 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는 만인평등주의로, 이는 신분과 지위상에서의 계급차별주의만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성차별주의도 넘어서는 급진적인 평등주의이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운동이나 집단들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부여하여, 신의 이미지를 남성으로 표상한 정통파 로마교회와는 달리 여성성의 여러 요소를 지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으로 신을 묘사하였다.

네 번째 이유는 현재주의, 즉 부활이나 신의 왕국의 도래를 현세에서의 희생이나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미래에 주어질 실제사건으로 간주하지 않은 점이다. 다시 말해 내적인 자기변혁, 자기변형으로 지금 여기(now and here)에서 성취하고 발견하도록 했던 것이었다. 인간이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닌, ‘참나’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는 것이 영지주의의 핵심사상이다. 따라서 무지로부터 벗어나면 지금 여기에서 당장 천국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유는, 인류의 구원자로 이 세상에 왔다는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구원신앙을 부정한 것이다. 영지주의자에게 예수는 신과 하나됨의 길로 안내하는 수많은 빛의 스승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니그 함마디 문서 52편이 세상에 공개됨에 따라, 그리고 이미 발견되어 알려졌거나 중복된 9편을 제외한 43편의 문헌자료에 대한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영지주의는 결코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우주창조론, 형이상학, 존재로, 자연철학, 진화설, 인식론, 심리철학, 사회철학, 종교철학 등등을 포괄하는 방대하고도 심오한 사상체계가 영지주의였던 것이다. 지구상의 인류가 각기 살았던 시대와 사회가 다르고, 사용하였던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믿었던 종교와 신념이 극히 상이하고 다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똑같이 동일한 영지주의 지혜와 통찰에 도달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인합일의 신비상태 속에서는 존재의 궁극적 진리가 누구에게나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 같은 책, pp. 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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