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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교수님께 (1): '예수는 없다'를 읽고

안녕하십니까? 저도 책을 적지 않게 읽는 사람입니다만, 책의 저자께 팬레터를 보내는 일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메일에 적은 대로 교수님의 역저 '예수는 없다'를 감명 깊게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저 자신의 개인적 처지와 깊은 연대감을 느껴 이렇게 팬레터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저자는 자신의 저작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귀찮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핑계삼아 교수님께 저의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 올리는 당돌함을 무릅쓰고자 합니다.

[중략: 자기 소개]

저는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그 동안 제가 독자적으로 형성하게 된 저의 종교관, 기독교관이 결코 저만의 독선이자 아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물론 신학과 비교종교학에 대한 저의 지식은 초보자 수준에 불과하여, 교수님의 글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고, 새로운 신학적 개념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배움의 기쁨을 뛰어넘는 것은, 교수님의 주장 하나 하나가 제가 지금까지 형성하게 된 종교적 관점을 지지해준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미국의 대학에서 비판적으로 텍스트를 접하는 훈련을 받았으나, 교수님 책의 내용은 전부 그 자체로 제게 소화가 되었습니다. 건방진 말씀이 될지 모르겠사오나, 연대감 또는 동류의식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교수님께서 그랬다하셨듯이, 저도 현각스님의 책을 읽으며 눈물 흘렸던 경험도 있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글을 그다지도 반갑게 읽은 배경에는,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독특할 만큼 배타적이고 편견에 가득 차있는 한국의 교회라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예수의 가르침의 독점권자 행세를 하고 있는 수많은,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그 교인들의 모습에서 저는 도저히 예수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천주교 교회의 사정은 그래도 상당히 달라서 최근 들어서는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을 보이고도 있지만, 저는 그곳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은 특이하거나 때로는 오만하게까지 사람들에게 비쳐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홀로 자유롭게 신의 음성에 영혼의 귀를 기울이는 삶이 주는 성장의 기쁨을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실은, 저는 약 삼 년 전에 제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신비체험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신론자 또는 무신론자였습니다. 어떤 개인적 계기로 삶의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던 어느 날, 말하자면 '接神'의 경험을 했습니다. '신'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영적 존재 - '존재'라는 표현의 부적절성을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데에 저도 공감합니다만 - 와의 만남이 나흘간 지속되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저의 종교관, 인생관,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전 그 때 다시 태어났다고 느꼈으며, 그 이후부터는 철저히 새로운 인생관에 의해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저와 조우했던 기독교 신자들은 종종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저는 타인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조용한 성격의 평화주의자입니다만, 유난히도 개신교 신자들은 그들만의 틀로써 제 신비체험을 규정하고자 애썼고, 나아가 저 역시 제 체험에 대한 그들의 定意, 즉 특정 개신교 교파의 교리와 부합하는 정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불만스러웠던 것은, 제가 체험한 초월자, 또는 신의 본질은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고도 무한한 사랑이었었는데, 그런 사랑을 교회와 신자들로부터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영적 성장을 위한 사부님(guru)을 교회에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입산수도하는 마음으로 저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저의 '수행'을 학문으로 연결하여 종교성과 교육에 관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 글이 교수님 책에 대한 '감상문'이라기 보다, 교수님 책에 대한 저의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반응을 표현하고 있어 송구스럽습니다만, 딱 한 가지 교수님의 입장과 약간 다른 듯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전술한 그 영적인 체험 이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천국인데, 다만 육체와 '현상'에 발묶인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가르침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수많은 '惡'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모든 악이 실은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의 선물(blessings in disguise)일 뿐임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축복 이외의 것을 나에게 주신다는 것을 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으니까요. 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악에 대해서도 판단을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악을 선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제 이성은 이를 거부했으나, 하나씩 둘씩, case by case, 심판하는 것보다는 끌어안는 것이 영적으로 보다 도움이 되는 자세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극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저의 태도도 그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그들에 관하여 판단하기를 중지하고, 그들을 축복으로서 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언행에 대한 제 반감이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닙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아주 시원하다고 느꼈다는 것도 그 증거이겠지요. 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을 단죄하고 심판하는 것에는 곤란함을 느낍니다. 물론, 교수님께서 그러자는 주장을 하셨다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단지, 그들을 비판하는 것 그 이상의 실천(명상과 기도까지 포함하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호되게 그들을 질타해주셨으니, 다음에는 비판을 초월한 새로운 방식을 저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제시하여 주시면 더욱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감히 드려봅니다. 교수님의 끝맺는 말을 읽으며, 교수님께서도 이러한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없다'는 진실한 학자이자 신앙인이 그 이웃(thy neighbor)을 위하여 줄 수 있는 고귀한 서비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처에 보이는 교수님의 냉철함과 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은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저는 느낍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어, 이와 같은 훌륭한 저작을 많이 많이 내주시기를 삼가 소망합니다. 저도 미래에 교수님께서 이웃에게 하신 것과 같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 인생이 나름대로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팬레터를 읽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2년 1월 말, 한석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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