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04

오강남 교수님께 (4): 신변잡기와 '예수는 없다'에 대한 평

안녕하셨습니까? 보내주신 메일 기쁘게 받았습니다. 바로 답신 못드린 것은 제 개인적 사정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또 교수님께서 물으신 것('예수는 없다'를 읽고 떠오른 좋은 생각)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생각하느라 차일피일하게도 되었구요.

저는 다니던 연구소를 사직한 후로는 날품을 팔듯이 이일 저일을 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번역도 하고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도 하는 등, 여러 일을 해오고 있지만 수입이 안정되지 않은 탓에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하지만 이렇게 홀로 누리는 자유를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기에 새로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과의 만남 체험 이후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도무지 걱정을 안하게 된 탓에, 집에 쌀이 떨어져도 태연할 수 있게 된 것이 제 복이라고나 해야할까요. 또 그렇게 걱정없이 살다보면 결국 쌀독에 또 쌀이 부어지는 것을 계속 경험하다보니 저도 아내도 그저 평안한 마음으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책의 원고는 아직 제대로 틀도 안잡혀 있습니다. 애당초 종교라는 것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종교와 교육의 접합점을 찾겠다는 시도 자체가 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하며 정리해가고 있습니다. 몇달 안에 탈고하면 교수님께 꼭 review 부탁 올리겠습니다.

일전에 교수님께 제가 만든 웹사이트 광고를 보내드린 적 있습니다만 답신이 없으시어 혹시 그 메일을 못 받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부끄러운 웹사이트지만 주소를 적겠사오니 한가하실 때 한 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myfaith.netian.com 이 사이트에는 교수님 저서에 대한 언급이 아직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아직 제작 초기이기 때문에 'inspirational' 한 부류의 책들에 대한 저의 감상만 올려놓았고, 이제 차차 'intellectual' 한 내용들도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신간은 제가 올초에 원고를 한 번 읽어봤던 그 책일 것이라 짐작하여 아직 사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곧 사보려던 참입니다. 제 개인적인 바램은, 한국사람들이 교수님 책을 훨씬 더 많이 사보아서, 우리 사회 전체의 영적 분위기가 한층 진보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물론 교수님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이미 한국사회에는 교수님께서 제시해주신 것과 같은 열린 마음의 신앙에 대한 갈증이 꽤 높은 수위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지속적으로 많은 책 내어주실 것을 기원합니다.

'예수는 없다'는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저처럼 종교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은 초보학자에게도 큰 도움이 된 일종의 종교학 입문 교과서였습니다. 저도 이십대 때 미국의 대학에서 종교학 과목을 몇 번 수강한 일은 있었지만, '입문' 또는 Introduction to Religious Studies 같은 과정을 수학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학문적 지식만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 교수님의 책은 종교학과 신학의 여러 부분들에 대한 자상한 안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예수는 없다'를 읽고 교수님께 바로 이메일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가 어렴풋이, 비전문적으로, 또 모호하게 품고 있었던 종교다원주의적 생각이 교수님의 글에서 또렷하고도 전문적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한 커다란 반가움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국 사회에는 저와 같은 느낌으로 교수님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또, 앞으로 읽을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수님의 표현을 빌자면 '길벗'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교수님께 오랫만에 메일을 올리다보니 이것저것 수다가 많았습니다. 건강하시옵고, 그래서 많은 책 저술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한석훈 올림

'Correspondence'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