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님의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 (2003/2/23)
한석훈님! 잘 계시죠?
비오는 날에 생각이 나서 그냥 메일 보냅니다. 방명록에 올려볼까도 생각했는데 너무 저만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같아 이렇게 메일을 보내니 괜찮다 싶으시면 글 올려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훈련소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며
힘이 드는지 알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자유와 보호의 시간에서 벗어나
규율과 획일이라는 공간으로 변화된 가장 가까운 기간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 때만 해도 훈련병 시절 음식중 가장 생각나는 것은 짜장면과 콜라, 그리고 초코파이였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그런 것들에 이렇게 목메여할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죠. 사실 전 군대가기
전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웃으면서 정말 그렇겠냐하는 식이였거든요.
사회와 단절되고 바깥에서 누릴수 있는 자유를 거의 상실한
채였지만 몇주가 지나고 우리는 처음으로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답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참석이였습니다. 물론 참석여부가 자유가 아니라 어디에 갈 것인지 하는 선택의 자유였죠.
저는 그 당시 특정종교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초코파이와 콜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회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에서는 교회나 성당, 절등이 한곳에 모여있습니다.
교회에서 군목님의 설교를 듣고 우리들은 기분좋게 초코파이와 콜라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저를 포함한 소수의 몇몇은 그 목사님과 함께 교회 뒷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기억나지 않지만 한가지 아직도 분명히 기억나는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것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던 그 목사님께서 바로 건너편 절을 가리키며
'저곳은 우리(기독교인)들에겐 영적인 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남북 사이가 아니라 이미 그곳 훈련소에서 시작되고 있었답니다.
반갑습니다, 김민환님.
제 싸이트 방명록에 얼마든지 글 올리셔도 좋은데요.
이렇게 편지 보내주셨으니 'Correspondence' 섹션에 올리겠습니다.
지난 번 김민환님께서 방명록에 올려주신 글을 읽고 저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은, 홀로 가는 길이 결코 홀로 가는 길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지요; 아니 오히려 홀로 갈수록 더 많이 함께 가기도 하겠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특히 '사이비' 단체 같은 것들이 세상에 끼치는 폐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의 결정권과 판단권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하겠지만 일종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도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지금 개신교 측에서 벌이고 있는 사이비 고발 운동 같은 것도 김민환님께서 우려하시는 부분을 제대로 건드리고 있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워낙 개신교 측에서는 '이단' 시비 가리는 것에 과하게 몰두하고 있는 듯 해서 말입니다.
군대 얘기 해주시니 저도 훈련병 시절 쵸코파이와 과자를 떠올리며 침 질질 흘리던 때가 생각나네요.
저는 그때 반종교적 태도가 강했었기에 일요일에도 아무 종교 모임에 참석을 안했더랬죠.
그랬더니, 저처럼 바보같이 아무 데도 참석 안하는 놈들만 따로 모아서 삽 하나씩 주고 노가다를 시키더군요.
예배 모임 참석했더라면 빵도 얻어 먹고 편히 앉아 있었을 텐데, 고집 부리다 뙤약볕 아래서 땀만 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참 예배당에서 설교 듣기가 매맞는 거 보다 더 싫었더랬습니다.
그 정도로 목사님 말씀이 싫었으니, 친구들 말마따나 제가 '사탄'이었나 보지요. ^^
김민환님께서는 훈련소에서 그런 '분리'와 전쟁을 목격하셨군요.
지금 인터넷 위에도 만연되어 있지 않습니까?
정말 님의 호소가 널리 퍼져야 겠습니다:
"좀 그만 싸우자구요, 제발!"
십여년 전 미국 L.A.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그 폭동의 진원지인 경찰폭행의 피해자 라드니 킹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시민들에게 호소했던 장면이 문득 떠오릅니다:
"Can't we just get along?" 우리 좀 사이좋게 살 수 없을까요?
제가 몇 년 전부터 공부하고자 시도(만) 하고 있는 평화사상 같은 것도 결국 이 얘기로 압축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살자는.
좋은 글 많이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Namaste.
- 한석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