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님의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 (2) (2003/5/3)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는지요?
오늘도 비오는 날입니다.
개인적으로 비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날이 제 기억으로는 비오는 날이 많았었던 것 같네요. ^^
요번에 싸이트에 올리신 '우치무라 칸조'님의 글과 한석훈님의 글을 보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싶었죠.
그리고는 이리저리 제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보았는데 혹시나 부족한 점이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없는지 의견 구하고자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바쁘신데 염치불구하고 무례를 범하는 점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첨부한 글은 평서문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이 점도 양해해 주시길.....


영적인 성장은 궁극적인 면에서 관찰하자면 개인 즉, 자기 스스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본다. 이것은 어떤 단체를 통한 깨달음의 한계에 대한 나 자신의 견해이기도 하며(진리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단체를 통틀어 말하는 것은 아님) 조직이 가질 수 있는 집단적 가치라는 것이 개인의 외적내지는 내적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역사를 통해 보아왔듯이 개인의 영적인 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섭리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악행들은 그런 예를 절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에 본인은 <영적인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바인데 자신이라는 한 개체를 통한 영적인 성숙이 결국은 사회라는 전체의 진화와 합일을 이루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궁극적인 진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며 드러나 보이는 외적인 여건들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방편내지는 조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키에르케고르가 당시 갑작스런 개혁이나 혁명이 가져올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는데서 자명해진다. 그에게 본질적인 것은 형식이 아니라 인간이며, 제창되는 이념의 내용이 아니라 그 이념에 대한 각 개인의 태도 또는 그 이념을 지니는 낱낱의 사람의 주체적 진리였다. 키에르케고르에게는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전면적인 사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급진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운동이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어 보였고 역사는 이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단체가 가지는 안타까운 형태 중의 하나가 바로 획일화이다. 그곳에선 은연중이든 의도적이든 간에 그 단체를 결속하는 중심력인 무엇이 존재할 확률이 높으며 그 중심력은 종종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이것은 교조중심의 종교단체가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폐단이라 보아도 틀리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조가 그 누구이든 간에 그 대상이 모범상으로서 따라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숭배와 찬양의 대상으로만 자리잡을 때 진정한 진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들도 온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가 다가설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실 분이 아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단지 하늘과 법당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우상숭배는 시작된다고 본다.

개인주의를 우려하는 분들에겐 '영적 개인주의'도 또한 같은 양상을 띔으로써 사회의 근본적 조화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영적 개인주의'는 결코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사랑, 협동, 조화, 희생의 개념이 깔려있다. 부분은 전체를 이루지만 결코 전체의 부속품적인 개념이 아니다.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또한 부분인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과 힌두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과 다름아니라 본다.




김민환님
'영적인 개인주의,' 완전 동감합니다!
저는 신앙이 없을 때부터 진정한 개인주의자가 진정한 애국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요.
서구의 개인주의에서 진일보한 영적인 개인주의는 사실 제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실은, 김민환님께서 이런 글을 보내주신 것도 우연치만은 않은 타이밍이기도 한데요, 어젯밤 길벗 한 분과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늦게 들어왔더니 님의 메일이 와있더군요.
(어젠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답신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저는 어제 종교학도이신 그 길벗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기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서 동의하게 되었지요.
바로 김민환님 말씀처럼, 저나 그분이나 종교조직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입니다(저는 아예 '조직' 그 자체를 회의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만약 사람들이 같은 뜻으로 모이게 된다 하여도 그 형태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뚜렷한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직이 아니라 네트워크 형태가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트워크란 일단, 단순히 서로 연결만 되어 있으면 되는 것이겠지요(이렇게 이메일 같은 것을 통해서요).
그래서 혹시 공동의 힘이 필요한 일이 발생할 때면 순전히 자발적 의사에 의해 모일 수도 있겠구요.
제 싸이트 문 연지 일년여 되었는데, 그간 여러 '영적 개인주의자'들과 '종교 다원론자'들, 그리고 그밖의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는 분들께서 단골 방문객이 되셨습니다.
차차 세월이 쌓임에 따라 아직은 실험적이고 유치한 제 싸이트도 성숙해지고 역량을 축적하게 되면, 이런 비슷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꾸려보는 것도 유익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깊이 공감이 가는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사느라 언제나 그랬지만, 먼저 연락도 못 드립니다.
하지만 계속 연락 주십시오.
화창한 오늘 하루도 즐겁고 평화로우시기를.
- 한석훈 올림

*추신: 제게 보내주신 글과 저의 이 답신을 Correspondence 섹션에 올려도 되겠지요? 혹시 김민환님 실명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시면 말씀해주시구요. 말씀이 없으시면 실명도 괜챦으시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어떤 형태로든 저의 부족한 글이 님의 싸이트에 올라간다는 것은 저로선 대단한 영광입니다. (정말로...) 그리고 실명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네트워크 말씀을 하셔서 말인데 붓다나 예수 당시만 하더라도 뜻있는 이들이 소문을 듣고 진리의 설법을 들으려면 정말(!) 작심하고 옷가지 등을 챙겨 며칠, 심지어는 한 달을 훌쩍 넘기는 (그것도 온갖 형태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리의 여정을 떠났던 것을 상상해 볼 때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을 통한 동호회나 메일교환뿐만 아니라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종류의 책들 또한 모종의 네트워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단지 식량,  옷가지등과 함께 꼭 살아서 가야 한다는 굳건한 의지는 필요치 않겠지만요.

그렇게 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네트워크 형성은 발전에 (그것이 무엇이든) 참으로 뜻있는 일인 것 같고 단례로 한석훈님의 싸이트에서 적지 않은 배움을 얻고 있는 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유의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