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콜 택시 

해피콜을 자주 이용하는 신순애(43.여.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시각.지체 장애인이다. 그는 지난 연말 동생과 함께 10여분 거리인 친구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한 시간 동안 매서운 추위 속에서 떨어야 했다. "동생이 일반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해 참았지만 휠체어에 탄 나를 보고 택시들이 모두 지나가버리더군요." 할 수 없이 신씨는 해피콜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택시는 3분 만에 도착했다. 골수염을 앓고 있는 신씨는 뼈에 찬 고름을 빼내기 위해 한달에 다섯 차례 정도 병원에 간다. 기사들이 신씨를 안아 택시에 태우고 휠체어를 접어 짐칸에 넣는 것은 물론 도착하면 진료실까지 휠체어를 밀어 데려다 준다. "진료가 빨리 끝난다면 기다리겠다"는 기사도 있었다. 시각장애인 임지빈(44)씨도 "해피콜 기사들의 안내는 특별하다"고 말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손을 잡아주기보다 팔꿈치를 잡게 하고 이끄는 게 편한데 해피콜 기사들은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시장 골목길에 위치한 집까지 군말 없이 들어와 기다려 준다는 것이다.

1일 새해 아침 택시기사 김태호(43)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장애인 崔모(32.여)씨가 택시를 기다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金씨가 달려가 보니 崔씨는 혼자선 조금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金씨는 崔씨를 택시에 태우기 위해 연립주택 3층 단칸방에서부터 崔씨를 등에 업고 내려왔다. 목적지인 여의도에 도착해 金씨는 기다리고 있던 崔씨의 장애인 남자 친구 승용차 뒷좌석에 崔씨를 들어다 태워줬다. "수입만 생각하면 못할 일이지만 막상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운전대 잡는 게 신 바람나죠." 金씨는 보통 택시에선 꺼리는 장애인 승객들을 오히려 찾아가 태우는 '해피콜' 택시기사다.

해피콜은 시각장애인연합회가 2001년 5월 시작한 콜택시 사업.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겠다는 취지로 조직됐다. 설립 당시만 해도 3백여명에 불과했던 개인택시 봉사자들이 3년이 채 안 된 지금 8백60명으로 늘었다. 모두 해피콜의 취지를 듣고 알음알음 회원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손님들도 늘었다. 매달 서울에서는 9천여명의 시각장애인과 2만여명의 일반 고객이 해피콜 콜센터(02-555-8787)로 전화를 건다. 장애인들을 최우선으로 모시는 택시인 만큼 회원이 되려는 택시기사들은 특별교육을 받는다. 처음 회원으로 가입할 때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나 안내하는 방법을 배운 후 1년에 한차례 재교육을 받는다. 장애인들이 쉽게 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부축하는 것은 기본이다. 집 안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팔짱을 끼고 부축해야 한다. 해피콜의 취지를 듣고 고정 고객이 된 사람도 9백명가량 된다.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신동연(45)씨는 우연히 해피콜 택시를 탔다가 해피콜 전도사가 됐다. 신씨는 "장애인들을 돕는다는 말을 들으니 기사들이 유달리 친절하게 느껴진다"며 "나도 항상 이용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이용하도록 권한다"고 말했다. 이런 단골 고객 덕분에 해피콜 택시는 오히려 불황을 이겨낸다. 연합회 홍종태 총무과장도 "불황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조금 더 기다리더라도 해피콜을 타겠다'고 연락하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해피콜 콜센터에서 회원 택시와 장애인 등 승객을 무전으로 연결시켜주는 직원 12명 중 8명은 지체장애인들이다. 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려는 연합회 방침에 따른 것이다. 사업이 커지면서 일손이 모자라 장애인 두세명을 더 고용할 예정이다. 또 연합회에서는 해피콜 택시마다 비치한 '사랑의 껌'을 팔아 생긴 수익금으로 매달 불우이웃 6명에게 생활비 10만원씩을 보내준다. 연합회장 김수경씨는 "오늘 회원 택시 승객 한 분이 '콜센터 직원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드리라'며 3만원을 보내줬다"면서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덥히고 있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 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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