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장애인 '씻김이' - 의정부署 금오지구대 김연호 경사

지난달 28일 오후 7시30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애헌 장애인 안식의 집'. 점퍼 차림의 40대 남자가 한평 남짓한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50대 정신지체 장애인과 70대 노인 한명이 누워 있다. "별일 없으시죠. 어디 아픈 곳도 없고요." 누워 있던 두 사람은 몸을 조금 일으키고 빙긋이 웃는다. 방안에는 악취가 진동한다. 장애인용 이동식 좌변기를 열어본 그는 말없이 들고 나가 씻어온다. 들고 온 귤과 계란을 주방에 가져다주고는 다과상을 차린다. 상을 들고 방 9개를 일일이 돌며 안부를 챙긴다. 시각.정신지체 장애인 15명과 오갈데 없는 노인 10명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엔 안식의 집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는다. 최근 개설된 안식의 집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게시판에 시설 운영 소식을 전하고 후원자들의 문의사항에 답변해 준다. 오후 10시, 내일 찬거리가 떨어졌다는 말이 들린다. 수퍼로 가서 장을 대신 봐준다. 집으로 향한 시각은 오후 10시30분.

경기도 의정부경찰서 금오지구대 소속 김연호(金演鎬.45)경사. 그는 1997년부터 7년째 퇴근 후 안식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매주 4~5차례 들러 청소.목욕.집수리 등을 2~3시간씩 해준다. 안식의 집은 미인가 시설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데다 자원봉사자도 거의 없다.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사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다. 그는 취재를 한사코 사양했었다. "생색내려고 하는 일도 아닌데 부끄럽다."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우리 주위에는 적은 관심의 손길에도 크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그늘진 이웃이 의외로 많다""민중의 지팡이가 되기 위해 22년 전 경찰에 투신할 당시부터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길을 선택한 데는 계기가 있다.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의 가출 경험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한 뒤 좌절에 빠졌다. 가출해 식당 설거지 일을 전전했다. 그러는 동안 고통 속에 지내는 어려운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됐다. 이때 결심이 생겼다. "이웃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듬는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겠다." 안식의 집 백충일(白忠一.70.목사)원장은 "항상 외로워하는 장애인.노인들이 金경사가 오면 '아버지 경사 오셨다'며 반긴다. 큰 위안을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金경사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아내(40)"라고 말한다. 그녀는 6년째 식당 주방 일을 하면서 집안살림을 꾸리고 있다. 남편이 박봉을 털어가며 이웃돕기에 매달려도 불평 한마디 없다고 한다.

- 중앙일보, 20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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