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색 을   위 한   잠 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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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G. 융과 그의 후예 이부영 교수의 글 >

개인이 정신적으로 참으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면 사회는 재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란 구원을 필요로 하는 개인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 융

 

의미와 목적성은 의식의 특전들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체 전체에서 작용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유기체적인 성장과 정신적 성장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식물이 꽃을 피게 하는 것처럼 정신은 그것의 상징을 창조한다. - 융

 

우리의 마음은, 그리고 모든 인간의 정신적 산물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그 생각을 만들어낸 주인이 아니라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 이부영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그 고통이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를 과거의 역사에서 살펴보는 동시에, 아니 그보다도 그 고통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장차 그를 어디로 이끌어 가기를 촉구하고 있는가 하는 정신의 지향성, 목적성을 알고자 한다. - 이부영

 

무의식은 무한히 크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도 커지고 있다.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함으로써 의식은 그의 시야를 넓혀 가고 있다. "그것은 결코 이미 완성된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워 나갑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자아의 새로운 작은 측면들을 해마다 발견하지 않는 때가 없을 것입니다." - 이부영 & 융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을 마귀라 비난하는 사람에게는 그 무의식에 '마귀' 그림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이부영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심층에는 언제나 사람으로 하여금 전체가 되게끔 하려는 원동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회와 이웃과 다른 사람의 투사와 기대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의 탈[페르조나]이나 자아의식에 집착하여 좁고 경화된 '역할' 속에 기계적인 인생을 보내지 않도록 그로 하여금 주어진 전 생명력을 불태우도록 촉구하는 무의식의 힘, 그 힘은 자아의식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자체의 목적에 의하여 의식에 작용한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자신의 전체가 되도록 자극한다. - 이부영

 

광신이란 의혹의 지나친 보상에 지나지 않는다. - 융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몰이해를 그 대상에게 투사하고 있을 뿐이다. - 이부영

 

의식이 너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면 꿈에서는 게으르고 거짓말하고 탐욕스럽고 성적으로 부도덕하다고 할 만한 행위를 한다 .... 이것은 모두 의식에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고 의식이 너무 외곬으로 나아가는 것을 수정하려는 무의식의 보상기능의 표현이다. - 이부영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는 '왜', '무슨 목적으로'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유기체는 복잡한 합목적적인 기능으로 이루어지며, 각 기능이 모두 일련의 합목적적으로 방향지어진 개개의 사실을 낳기 때문이다. - 융

 

꿈은 왜 이해하기 힘든가? 여기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밖에 없다. 꿈은 하나의 자연적 사건이다. 자연이란 결코 그 열매를, 이를테면 공짜로 인간이 기대하는 대로 제공하려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 융

 

고통은 결코 병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정상적인 대극이다. 콤플렉스(내면의 자체 의지를 지닌 듯한 의식 덩어리)가 병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이다. - 융

 

노이로제(신경증)는 그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마음의 고통 .... 노이로제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병고(病苦)이다 .... 이러한 증상 뒤에는 그럴 만한 '뜻'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연히 생겼거나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 그 치료의 핵심이 된다. 왜 괴로워해야 하는지를 알면 우리는 훨씬 더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있게 되고, 그 괴로움은 그의 성장에 오히려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부영

 

인간의 정신은 단순한 기능으로만 엮어진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극히 비합리적이고 설명 불가능한 구석을 지니고 있고, 개성이란 심리학적 유형을 능가하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 이부영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는 종교가 가진 신화적 상징을 깨뜨려 나감으로써 노이로제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 이부영

 

종교가의 신비체험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이부영

 

나는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대답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보았다. 그들은 지위, 결혼, 명성, 그리고 외부적인 성공과 돈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도 불행하고 신경증적이다. - 융

 

정신치료의 고귀한 목표는 환자를 거의 불가능한 행복의 상태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통을 참는 철학적 인내와 견고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삶의 충족과 전체성은 고통과 기쁨의 평형을 요구한다. - 융

 

실험은 반복에 근거하지만 신탁神託은 하나의 독특한 행위에 근거한다. 실험은 확률계산법에 기초하나 신탁은 독특한 개별적인 수를 정보원으로 사용한다. - 융

 

의식, 즉 알고 있는 세계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무의식이 저승이다. - 이부영

 

[융은] 어떠한 위기의 시대에도 구원은 오직 개인의 자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 이부영

 

우리는 그리스도 모방Imitatio Christi을 우리가 그의 삶을 모사하듯 그대로 반복하고 그의 상흔을 원숭이처럼 흉내내는 것이라고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깊은 뜻에서 이해하면서 우리의 삶을, 그가 그의 삶을 오직 그의 특유한 현존으로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해할 것인가? - 이부영

 

동양에서는 종교와 학문(과학) 사이의 갈등이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학문도 사실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어떠한 종교도 단순한 믿음을 근거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종교적 인식이 있고 인식하는 종교가 있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무한히 작고 신의 은혜가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동양에서는 인간이 신이요, 스스로를 해탈케 한다.
[과학을 중시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보다 깊고 보다 높은 이해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것은 삶을 통한 이해이다.- 융

 

지방색, 파벌주의, 혈연주의, 개인의 신격화와 집단적 숭배는 어머니의 품 속에 영원히 의지하려는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에 전승된 '친족본능'을 토대로 파생된 것이다. 오랜 군사독재는 국민의 정치의식의 후진과 모권과의 병적인 밀착을 촉진하여 모성성과의 건전한 관계를 저해하였다. 그러나 민주정부의 출현은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도 차츰 개인의 자각과 자립정신을 키워 주고 있고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자유로이 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 이부영

 

동과 서, 남과 북 등 한국인이 직면하고 있는 대극 간의 갈등 가운데서도 심리학적 입장에서는 일차적으로 각 개인의 마음의 분단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이부영

 

깨달음이란 자신의 전체를 깨닫는 것이다. - 이부영

 

나는 내가 소유하고 행하고 체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탈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 때, 그것을 했을 때, 내가 전적으로 헌신하며 전적으로 참여했을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 융

 

붓다는 인간 의식의 우주창조적인 품격을 보았고 그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누군가의 의식의 빛을 끄는 데 성공한다면 세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침몰해 버릴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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