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적 심리학은 도덕적 감정을 연구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정신치료의 현장에서도 우리는 환자가 자기의 창조적 능력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자기비하와 자포자기에 빠져있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그 경우 환자가 자기 자신과 주위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자아의식의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그 변화가 의지나 의식적 개입 뿐 아니라 환자의 무의식의 창조적 자극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맹자는 그러한 의식의 변화를 의지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하였고 누구나 4덕과 4단을 확충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변화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맹자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보배를 모른 채 그것을 찾고자 하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이브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자신 속에 보배가 있음을 환자에게 알려주려면 치료자 자신이 그렇게 확신해야 한다. 치료자의 자세가 환자의 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바로 치료자가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무한한 가능성을 마음속에 숨기고 있어 이를 계발해야 할 존재로 보느냐, 아니면 상처투성이의 파괴적 본능에 시달리고 있는 존재로 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맹자는 단연코 앞의 입장에 서있다. 그리고 분석심리학도 뒤의 입장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앞의 입장을 근본에 두고 있다. 인간의 창조적 가능성에 대한 긍정, 그것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그것이 도덕적인 가능성이든 다른 것이든 인간에 대한 그와 같은 희망 없이 어떻게 환자를 절망에서 구출해낼 수 있겠는가. 맹자는 그러한 '치료자'의 본보기였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융을 위시해 프랑클과 그 밖의 인간주의 심리학파들에서 그 유례를 본다.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가 융에 관한 저서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융은 의사로서 악한 것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환자를 치료해왔고 그 때문에 실망도 했지만 그의 치료적 낙관주의는 보통 사람이 꺼려하는 중한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4덕과 4단이 과연 인간에게 본래 갖추어진 심성인가, 교육을 통해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들은 노자가 말했듯이 때려 부수어야 할 행동규범일 수 있다. 사실 어떤 종교적 교의도 집단적인 행동규범의 형식으로 고정되고 보급되면 융이 말하는 가상으로서의 집단정신, 페르조나Persona가 된다. 사람들은 거기에 맹종하는 나머지 자기 자신의 개성에서 멀어지고 인격해리의 계기가 된다. 공자의 인, 의, 예, 지도 역사적으로 그런 운명에 처해졌다.

맹자가 그의 도덕적 전체상에서 제외시킨 동물적 본능의 문제는 숙제로 남겨져 있다. 맹자의 설은 호연지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아의 긍정적 팽창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맹자가 이것을 몰랐다고 볼 수는 없다. 그의 강한 인간본성에 대한 긍정적 확신, 의지력을 동원한 의식의 변화, 밖의 표준을 내세워 이를 따르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도덕심을 발견하게 하는 내적 성찰, 의지에 의한 본능의 적절한 통제는 청소년기 자아의 강화와 적절한 페르조나의 형성에 이바지할 것이다.

- 이부영, 맹자의 사단과 성선설(2): 맹자와 자기실현,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 2016.04 (제17권 1호, 통권 31호),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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