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수건 - 조호정 시인의 소년 희망 편지
(위기 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 2019)

정호는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눈이 큰 사내아이인 정호는
보육원 뒤뜰에 핀 채송화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곱고 따뜻한 아이, 보육원의 선생님들과 형과    누나들이 좋아하는 정호는 보육원의 귀염둥이였습니다.

정호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학교에 가면서 알게 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겐 집이란 게 있고 엄마아빠란 사람이 있는데
자신에겐 집도 엄마아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분이 상했습니다.

엄마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안 뒤론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습니다.
그 구멍으로 슬픈 바람이 가슴 속을 휭휭 드나들었고
눈으로 스며들면서 슬픔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정호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깟 눈물은 소매로 훔치면 되니까요.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있는 학교 친구들은 비싼 메이커 새가방을 메고, 새 운동화를 신고, 멋진 새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친구들은 가방과 운동화와 옷이 떨어지기도 전에 바꾸고는정호에게 자랑했습니다. 친구들은 싫증이 나면 엄마 아빠에게 졸라서 새 물건을 샀지만 정호는 후원 물품이 아니면 갖고 싶은것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갖고 싶은 물건을 갖지 못하는 것도 참기 힘들었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놀림과 따돌림이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심술궂은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정호는 엄마아빠가 없다", "정호는 보육원에 산다"라고 놀리면서 따돌린 것입니다. 엄마아빠 없는 것이, 보육원에 사는 것이 정호의 잘못이 아닌데도 정호가 죄를 지은 것처럼 낙인찍은것입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면서 정호의 몸과 마음이 거칠어졌습니다. 밤이면 보육원 뒷산에 올라가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왜 엄마 아빠가 없을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어버릴까?

정호는 갖고 싶은 물건을 갖기 위해 물건을 훔쳤습니다. 자신을 놀리면서 따돌린 아이들과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힘이부족하면 돌로 때려서라도 이겼습니다. 그러면서 정호의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정호를 슬슬 피했고 학부모들은이름 대신에 '나쁜 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쫓아온 학부모들은 "보육원에 사는 나쁜 놈을 내 쫓으라"고요구했습니다. 정호는 '나쁜 놈'에서 그치지 않았고 '양아치', '쓰레기' 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정호는 더 삐뚤어졌습니다.
학교가 싫어진 정호는 보육원을 가출해 거리를 떠돌았습니다.
거리를 떠돌다 만난 형들과 돈과 물건을 훔치고 담배도 피웠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촉법소년'이어서 풀려났습니다.

어린 정호를 보육원에 데려와 보살핀
수녀님은 변해 버린 정호가 안타까웠습니다.
정호에게 수녀님은 엄마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채송화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곱고 따뜻했던 정호를 안아주면
큰 눈으로 눈웃음 지으면서 가슴으로 파고들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수녀님이 경찰서에 찾아가 정호를 데려왔습니다.
정호의 눈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소년희망편지] 누가, 배달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병준이는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한 지 4개월 만에 열 한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했고 세 차례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생명보다 총알 배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배달 시장에서 사고는 필연적입니다. 총알처럼 달리게 해놓고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배달 청소년이 지게 했습니다. 병준이는 배달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오토바이가 부서지면 수리비도 물어내야 합니다. 병준이를 보호해줄 안전장치는 거의 없습니다.

201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기간 동안 오토바이 배달하다 다친 19세 이하 청소년은 1303명입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전체 4460명 가운데 29.2%나 차지했습니다. 2016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삼화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년간 19세 이하 청소년 3042명이 배달 중 교통사고로 부상당했고 63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청소년들을 누가 죽게 했을까요? 총알 배달을 이윤 아이템으로 삼은 피자 업체와 이를 부추긴 소비자들이 공동 정범은 아닐까요. 그 피자 업체가 30분 배달을 선포하자 다른 업체들은 경쟁에 뒤질세라 20분~15분 배달 시간으로 앞당기며 속도 전쟁을 벌였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병준이는 열다섯 살 때부터 일했습니다. 컴퓨터 조립공장에서부터 시작해 각종 서빙과 배달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병준이에게 꿈과 희망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치스러운 단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준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꿈과 희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버리고 떠났는데 누가 자신을 지켜줄 것인가. 병준이에게 정의는 살아남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묻지 말라. 그건 살아남은 뒤에 할 고민입니다.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에서 발췌 인용 - 어게인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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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 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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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 907일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