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이론과 교육사회학의 만남: 미국교육의 좌파, '비판적 재건주의자' Critical Reconstructionist
- W.H. Schubert (1997), 도승이 외 (2018). 인성교육의 이론과 실제. 학지사, 217-221에서 재인용[비판적 재건주의 진영의 대표자가 구술하는 형식임.]


저는 대체로 경험주의자들(experientialists)과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본질적인 순진함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즉, 불평등한 권한과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적·경제적 연계망 안에 함몰되어 있는 타인들과 진정성 있고, 열려 있으며, 정직한 토의와 숙고가 가능하다고 믿는 정치적·이념적 순진함 말입니다. 자신의 일터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면, 주어진 위계와 보상 체제 안에서는 관리자와 관리받는 자들 사이에 진정성 있고, 열려 있으며, 정직한 의사소통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의사소통상의 이러한 불평등한 기회(그리고 성장할 수 있는 불평등한 기회)는 여러 요인―인종, 계층, 성별, 능력, 건강, 연령, 국적, 지역, 언어 문화, 혼인 여부, 성적 지향성, 권력자와의 연줄, 자격증, 용모 등―에 따라 기회가 사회적으로 배분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교육학 관련 연구 자료를 인용하여 말하자면, 저는 조엘 스프링(Joel Spring)의 『분류 기계(The Sorting Machine)』라는 도발적인 책을 곧잘 제시하는데, 어떤 위계질서 속으로의 진입 과정이 얼마나 자격증이나 재정 또는 권력층과의 연줄 등의 요인에 의하여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또는 4개의 상이한 사회계층 각각의 환경에서 숨겨진 커리큘럼(또는 학업 경험의 체제)을 통해 전달되는 성공에 대한 서로 다른 상(image)들에 관한 진 애년( Jean Anyon)의 비판적인 연구에 대해 말해 주기도 합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의 학교생활에서는 학생들이 규칙을 따를 때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것(즉, 학교의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진급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대조적으로 중산층 학생들은 올바른 답을 제시함으로써(윗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서 그것을 윗사람에게 주는 것―이를테면 윗사람 말을 경청하고 있든 말든 적절히 고개를 끄덕여 준다든가,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든가, 주어진 시간 내에 마치기에는 과도한 과제 속에서 윗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표면적인 것 이외의 힌트를 찾는다든가 하는 등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됩니다. 전문직 종사자 부모를 둔 집안의 학생들은 ‘창의적이 되는 것’(종종 지배계층의 권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고나 표현의 방식을 발견해 내는 일에 몰입해 있음을 뜻함)이 성공에 이르는 길임을 배웁니다. 경영자나 지배계층 출신 학생은 다른 모든 계층의 학생과는 달리 체제를 조작하고 이용하도록 권유받고 그럴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예컨대, 이들은 만약 어떤 규칙에 위배됐을 경우, 그 규칙을 변경시키는 것이 지키는 쪽보다 쉬울 수도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일종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데, 사회 전체의 계층적 위계를 학교교육을 통해 재생산함으로써 지배적인 사회계층의 권력을 영속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애년의 연구는 인성과 인성교육이 얼마나 사회계층에 따라 달라지는지, 그 정도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유발하는바, 이 질문은 교육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분석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는 한 학생을 그의 처지에 맞는 직업으로 인도해 줄 것으로 보이는 인성 특질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는 데 만족해야 할까요?(즉, 낮은 계층 학생들에게 규칙을 따르는 것의 가치를 가르친다든가, 중산층 학생들에게 올바른 답을 제시하고 윗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는 것의 가치를 가르친다든가, 전문직 계층 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반응성을 계발하는 것의 가치를 가르친다든가, 상류층 학생들에게 체제를 조작하는 일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 등). 물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각각의 지향성은 명백히 도덕성에 상처를 입힙니다. 윗사람이 만든 규칙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기, 윗사람이 자신의 신조에 반하는 경우에도 그들에게 마지못해 동조하기,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에 항거할 책무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창의적인 활동에 몰두하기 등은 도덕성을 해칩니다. 차라리 모든 학생이 체제를 조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낮은 계층과 중산층 학생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요? 어떤 이들은 체제가 그들을 짓밟아 버릴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교사는 학생들이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에 적합한 인성 특질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할까요? 사회계층의 벽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수용할 만한 인성을 정의하기 위하여 교사와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러한 예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저의 명백한 메시지는, 인성교육의 의미는 사회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은 또 인종, 성별, 건강, 연령, 문화 등과 같이 앞에서 언급한 요인들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이러한 요인을 고려함에 있어 약자 계층이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란 학생들이 자신의 삶 속에 존재하는 불공정성을 인식하고 경험주의자들이 제공하는 것과 같은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예컨대 학생이 대자보를 붙이고 시위를 할 경우 그가 입게 될 피해를 교육자는 예상해야 하고, 그래서 프로젝트 활동의 귀결에 대한 정교한 예측과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정의의 희생양이 되도록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교육자들은 사회의 엄청난 불평등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교육에 관여하는 시민으로서 그들은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교실에서 교육자들은 조지 S. 카운트(George S. Counts)가 제시한 고전적이고 진보적인 질문 ‘학교가 감히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려 하는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자들은 또 인종차별주의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조련할 수 있는지, 그 위력에 대해 경고한 동시대 흑인 사상가의 다음 과 같은 예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면 그의 행위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 여기에 서 있지 말고 저리 가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본분에 맞는 장소를 찾아가서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에게 뒷문으로 가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말 안 해도 그는 알아서 찾아갈 것이다. 사실은, 심지어 뒷문이 없다 해도, 그는 자신을 위해 뒷문을 하나 뚫을 것이다. 그가 받은 교육이 그런 게 필요함을 가르쳐 준 것이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eire)의 문제의식을 일으키는 교수법은 탄압받고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고양해 줄 커다란 잠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교수법은 학습자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소재를 활용합니다. 그리고 교사가 그런 소재들에 대해 해석을 가하는 대신에 ‘실은 그 소재들에 대해 학생 자신이 훨씬 많이 알고 있는데’, 학생들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 스스로 이름을 붙이도록 권유받습니다.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브라질 농민의 경우를 떠올려 봅니다. 선의의 외지인이자 자유주의 교육자인 교사는 그 농민을 술에 취했고 게으르다고 묘사하지만 같은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매우 다르게 표현합니다. 즉, 필사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했지만 여러 해에 걸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탄압과 지독한 불평등 앞에서 머리를 벽에 찧고 있는 길 잃은 남자라고 말입니다.

프레이리가 비판적으로 묘사한 ‘은행저금식’ 교수법에서 문제의식을 일으키는 교수법으로 옮겨 가기 위해서는 실천적 운동이 요청되는데, 이것은 은행저금식 지식 습득 방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이나 통념 등과 너무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실로 경험주의적 커리큘럼이 필요합니다만, 그 커리큘럼은 먼저 불의를 폭로하고 그다음에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경험해 보는 데 그 지적 활동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그런 작업에 몰입하는 것은 인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불의를 이겨 낼 용기와 헌신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하여 인성은 연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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