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상적 인간상

      
중세 이후의 유럽은 본디 중앙의 왕과 지역의 군소 귀족들 사이의 봉토를 매개로 한 계약에 의하여 통치질서가 성립된 봉건사회이며, 그 경제적 활동은 주로 농노들의 노동의 무대인 장원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민족 간의 이동이 매우 빈번했던 유럽 대륙에서는 장원이 외적의 공격을 받는 일 역시 잦았으며, 공격받은 농민들을 지역의 귀족인 기사(騎士)와 영주가 수호해줄 의무가 있었다. 장원 내에 성곽을 짓고 살고 있던 영주인 귀족 전사(戰士)는 외적의 침략 시에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 맞서 싸웠으며, 그 대가로 농민들은 영주에게 충성과 더불어 조공을 바쳤다. 헌데, 영주가 주거하던 성곽 안에 함께 주거하던 계층이 있었으니, 이들은 농노와는 다른 사회경제적 기능을 담당하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지식인, 교사, 법률가, 의사, 상인, 금융인, 수공업자 등등, 농업에 종사하지는 않으면서 성 안에서 귀족에게 조력하거나 도시 기능의 일익을 담당한 부류의 사람들로, 이렇게 성벽 안에 사는 거주민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고 불렀다. 이들은 농노에 비하면 수적으로 소수에 불과했고, 귀족 계층에 비하면 권력과 무력이 없었다. 따라서 부르주아들은 생존을 위하여 영주에게 잘 보여야 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부를 축적하여 금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물질욕의 근원에 이러한 자기보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음을 헤겔이 냉소적으로 평했던 것이라 하겠다.
      루소는, 온전히 영·육의 전인성(全人性)을 보존하고 있는 자연인이나 자신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시민과 달리, 부르주아는 부분적(물질적) 이익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자신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과 별개의 것으로 인식한다고 봤다. 그런데 부르주아의 이익은 사회에 의하여 발생하므로 그들이 타인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이 자명하나, 그들은 타인들을 착취하기에만 급급하다. 부르주아는 전체, 또는 조국의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데, 루소는 이것이 기독교가 천국이라는 내세의 조국을 설정하여 현세의 조국을 등한시하도록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도 봤다. 이런 구도 속에서 사회 구성원은 공적인 의무를 위하여 사적인 요구를 희생시킬 이유를 갖지 못한다. 계몽주의의 여파로 부르주아 및 근대적 인간들은 중세적 맹신과 광신에서 벗어났으며, 동시에 자기보존과 이익 추구를 위하여 이성적으로 계산을 하는데, 루소는 이 같은 합리적 성향에 대해 로크의 낙관론을 거부하여, 부르주아는 오직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기만 하는 위선자들이라 비난했다. 근세 유럽의 시민사회는 단순히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타인과 물자를 이용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려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화해버렸다는 것이다. 계몽에 의하여 자신의 이기적 본성을 깨닫게 된 인간들은 공동체보다는 자신만을 위하게 됐고, 온갖 사소한 면에서 타인들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를 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에 의해 인간의 본성은 매우 초라하게 축소됐다는 것이 루소의 관점이다.
      결국 루소는 계몽주의 철학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상상의 소년인 에밀을 창조했다. 에밀은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독립된 개체다. 루소는 에밀을 통한 실험을 성공시킴으로써 부르주아의 한계를 넘어 모든 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성과 전인성(全人性; whole person)을 실현하고, 그에 기초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미국의 사상사가인 앨런 블룸(Allan Bloom)은 서양 문명의 양대 축인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이 전통적으로 서구인들이 본받을 만한, 고귀한 인간유형을 제시했다고 봤다. 헬레니즘은 헤라클레스와 같이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뛰어넘어 살신성인을 실천한 영웅들을 최고 경지의 모델로 제시하고, 젠틀맨(gentleman; 신사)을 일반인들이 현실적으로 본받을 수 있는 보통 경지의 모델로 제시했다. 그에 비해 히브리즘은 신에 다가가고자 한 예언자들을 최고 경지의 모델로, 그리고 경건한 신자를 보통 경지의 모델로 제시했다. 그러나 근세는 그에 필적할 만한 인간유형을 전혀 제시해주지 못했고, 바로 이것이 거대하고 고귀해질 가능성을 상실한 인간상에 의존하고 있는 계몽주의 사조의 한계라는 것이다. 루소가 이 위대한 두 전통의 인간상에 필적할 만한 새로운 인간상, 또는 하나의 모범을 에밀을 통해서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 블룸의 해석이다. 이 모범적 인간상의 핵심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가능성이다. 에고보다 커지고, 위대해지고, 고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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